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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요즘 에세이 쓰냐;; 안녕하세요 누입니다🫰

작성자따봉광고주야 고마워|작성시간24.08.12|조회수4,427 목록 댓글 18

안녕하세요 눈아들.
저는 2020년에 밀토에 브런치 광고를 했던 루돌프라고 해요.
그때 한창 연재를 하다가 건강이 안좋아져서 글 쓰는 걸 멈췄는데, 몸이 많이 회복되면서 브런치 연재를 다시 시작하게 되어 밀토에 기쁜 마음으로 또 소개를 드리러 왔습니다.

브런치는 브런치 팀이라는 관리자들에게 심사와 승인을 받아야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저는 2020년도에 승인을 받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슨 글로 활동중이냐구요?


바로 우울증과 인문지식과 잡학을 애매하게 섞은 에세이 '납득 가능한 방식의 죽음' 입니다. 너무 우울할까봐, 혹은 지루하고 어려울까봐 뒤로 가기 버튼 누르려는 눈아들은 조금만 더 읽어주시궜어요?

제가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처음 정신과에 발을 들인지 벌써 5년이 넘어 가네요. 우울증이 심했을 때 저는 죽음에 관해 많이 생각했어요. 정확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내 주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이 에세이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정확히는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납득 가능한 방식의 죽음'에서, '납득 불가능한 방식의 삶'으로 가는 이야기요.

그래서 나는 몇 년만에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끝내기 위해. 이건 처음 말했듯이 나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내가 죽고 싶다는 걸 알기 위해, 그래서 살고 싶음으로 가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마무리 지어질 내 글이 우울을 겪었거나 이 순간 겪고 있는, 그리고 우울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에게 티끌만 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 0화, '납득 가능한 죽음부터 납득 불가능한 삶까지'

위와 같은 내용처럼, 저는 제가 살고 싶다는 걸 알기 위해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저는 소설을 쓰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익숙했던 사람이라서, 에세이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알고 있는 인문잡학지식을 섞어서 에세이를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소설속 화자가 구구절절 얘기했듯이 이 엔트로피 증가 법칙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가만히 놔두면 안좋게 변한다. 그걸 막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역시나 화자가 구구절절 얘기했듯이 우주에서 태양을 없애는 방법이다. 시간을 정지시켜서, 우주 어느 곳에서도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두 번째는 뭔가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이다. 맞는 예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퇴고 작업이 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이상하다. 운동화처럼 때가 타는 것도 아니고 우유처럼 상하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놔두면 점점 구려진다. 물론 가만히 놔둬도 좋은 소설도 많겠지. 하지만 적어도 내 글은 아니다. 이번에 신춘문예에 투고한 글들은 글을 고치면 고칠수록 더 나아졌다. 그럼 영원히 퇴고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이 엔트로피 증가 법칙은 내게 피로감과 희망을 동시에 준다. 가만히 있고 싶다 -> 가만히 있으면 안좋아지는구나 -> 노력해야 하는구나 -> 아, 정말 귀찮다 -> 근데 노력하면 좋아질 수도 있는 거구나 -> 다행이다 -> 근데 가만히 있고 싶다 -> 가만히 있으면... 과 같은 식이다. 그러니 여기에 대한 답은 아마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다만 2013년에서 201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있었던 나와, 어느 해 만화 카페 계단에 앉아 엉엉 울고 있었던 나에게 뭔가 말해주고 싶기는 하다. 힘내라는 말도 아니고, 위로의 말도 아니고, 굳이 말하면 그게 다 우주가 이렇게 생겨먹어서 일어난 일이니 네가 이해하라는, 그런 류의.
- 10화, '그게 다 우주가 이렇게 생겨먹어서'

공포영화를 분석할 때 가장 크게 쓰이는 방법은 스티븐 킹이 제시한 방법이다.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은 '공포'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역겨움gross-out, 공포 horror, 두려움terror이 그것이다.
역겨움은 비위생적이고 더러운 대상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는 역겨움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방문을 열었는데 피떡이 되어 파리가 풍기는 시체를 마주쳤을 때, 아니면 장기가 튀어나온 사진 등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 시체나 장기는 인간에게 물리적 위협이 전혀 되지 않는데도 인간에게 질병 같은 본능적인 공포를 일으킨다.

공포는 크툴루 신화같이 인간이 대처할 수 없는 거대한 사건, 폭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 등을 말한다.

두려움은 스티븐 킹이 말하는 '가장 정교한' 공포로써, 자신이 안전한지 불안전한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불쾌한 골짜기의 가장 높은 부분이 이 두려움에 속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걸 설명할 때 무조건 스티븐 킹의『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예시로 든다.
- 7화, '외로울 때마다 공포영화를 본다구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처음 전정신경이 소실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아주 억울했다. 전정신경염은 발병 원인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 병은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내 신경의 40%나 떼어간 것이다. 내 가치관에 따르면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 병에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었다. 소설적으로 말하면 '핍진성'이 없는 이 삶의 흐름에 나는 완전히 질려버렸다. 하지만 몇 개월 뒤 시를 쓰면서 그런 억울함은 완전히 없어졌다. 위에서 '내 전정신경의 40%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라고 스스로 물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40%는 시에게로 간 것이다. 말하자면 시를 쓰기 위해 내 신경의 40%를 공물로 바쳤달까. 그렇게 바쳐서 의미가 있었냐, 라고 물으면 그렇다, 라고 대답하겠다. 글쓰기는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는데, 글은 내 이야기에서 오므로 그건 즉 삶이 고통이라는 얘기다. 어차피 삶이 고통이라면, 기왕이면 뭔가 남기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사주를 가졌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 문장을 다시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나는 그 어떤 고통도 글로 쓸 수 있다는 소리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안심하게 된다. 나는 삶에 대한 답을 영원히 못 찾겠지만, 내가 쓴 글은 언젠가는 그 답을 찾을 테니까.
- 11화, '고통이 영원이라면 글 또한 영원'


부끄럽지만 제가 쓴 에세이의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작가 지망생이자 우울증 환자가 쓰는 삶을 향한 이야기를 더 읽고 싶은 분들은 제 브런치를 구독해주세요. 비록 그지같은 브런치는 가입을 해야만 구독을 하고 댓글을 쓸 수 있지만 저는 천사같은 눈아들을 믿습니다. (그리고 카카오 계정과 연동되기 때문에 2초면 가입이 끝나기도 합니다)

'납득 불가능한 방식의 죽음'은 매주 수요일에 연재를 하고 있어요. 눈아들의 관심이 보태지면 저는 더 더 신나서 눈아들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재밌게,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keepwriting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지금까지 루돌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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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하멍 | 작성시간 24.08.14 구독완이잔아 !! 눈아 응원하잔아요 ☘️🍀
  • 작성자최채흥 | 작성시간 24.08.16 문창과의자랑 문창과의아이돌 문창과의 대통령
  • 답댓글 작성자최채흥 | 작성시간 24.08.16 구절 구절 너무 좋네요 나와같은사람도 있다는게 위로가 됩니다 책도 기회가 된다면 꼬오옥 내주시쇼~~~!!
    눈아는 다른사람에게 분명 평소에도 위로가되는 사람일거라는게 글로도 읽혀요 잘볼게요 눈아
  • 작성자뭉치 | 작성시간 24.08.16 와 그때 구독하고 잘 챙겨봤었던 기억나..! 지금도 구독하고 응원할게
  • 작성자빠마 | 작성시간 24.08.23 왠지 글에서 겨울느낌이 나잔아 잘읽었어눈아 구독하겟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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