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중국인 사역을 시작하다
'1997년 한국에 IMF 가 시작했을 때 저는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현재 유니언 국제 학교가 세워진지 14년이 된 이 시점에서 돌아 봤을 때 저와 남편에게 사관학교 사역은 꼭 필요했던 사역이었습니다.'
어제에 이어 사라사모의 선교 이야기를 다시 시작 하겠습니다.
필리핀 사관학교 사역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필리핀 사람들의 느긋한 성격 이 낳은 지각 문화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사관생도의 결혼식 반주를 부탁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처음으로 참석하는 사관생도의 결혼식 반주라 준비하는 마음으로 1시간 전에 갔었는데~
헉!!!
결혼식을 제시간에 시작하지 않고 모든 하객들이 다 올 때까지 기다리다 대략 1시간 후에나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긴~ 결혼식을...
그때 당시에는 필리핀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교만함이 팽배해 있었던 시절인지라 우리나라와 너무 다른 그들의 문화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매주 드리는 사관학교 예배시간도 성도들이 어느 정도 다 왔을 때
까지 기다렸다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이미 그들의 문화를 파악하긴 했지만서도~ 설마 결혼식까지 그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날 겪은 충격으로 저는 다음번 야외에서 하는 사관생도의 결혼식에는 제시간 보다 조금 늦게 도착을 했습니다.
도착했을 때 보니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와 있었고 뭔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띠리리~
결혼식 반주 없이 이미 결혼식이 시작된 것이죠. ㅠㅠ
그날 저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버리고 싶었답니다.
당시의 남편의 사역을 소개하자면 사관생도들을 말씀으로 훈련하고 집에서는 필리핀 주인(당시 대학교수)과 매일 한두 시간씩 대화를 나누더니 어느 날부터 우리 집 앞마당(사실은 주인의 앞마당)에서 주인의 자녀들과 농구를 하는 아주 가난한 아이들을 토요일마다 집으로 불러서 성경도 가르쳐 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며 거의 매일 그 아이들과 함께 농구를 하며 놀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앞집에 사는 그 아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갈 지프니(필리핀의 버스) 비용이 없어 못 가기도 하고, 작은 집에 친척들까지 약40명이 함께 머물며 반찬 없이 설탕과 밥을 비벼 먹는 아이들입니다.
남편은 어느 날 그 아이들을 한국의 롯데리아 같은 좔리비라는 곳에 데리고 갔는데 그 아이들이 갖고 있던 가장 좋은 옷을 차려 입고 와서는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곳에 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더 큰 기쁨을 주고 싶었던 남편은 없는 살림에 그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도 다녀왔습니다.
지금도 그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그때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쉽게도 그때 찍었던 사진이 여러 번 이사하며 다 없어졌네요)
그러면서 저와 남편은 또 다른 사역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중국인 사역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아주 작고 지저분한 차고가 있는 곳에 절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선 쫄이를 신고 어디서 일하다가 온 사람들이 와서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남편이 그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전 그들이 그저 중국인이라는 거 외에는 잘 몰랐습니다.
영어를 잘 못하니 늘 자신감이 없던 저는 교회에 가도 예배시간에 키보드 반주만 하고 누가 뭐라고 말하면 못 알아 들어서 그냥 미소만 지어줄 뿐이 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저에게 중국인 교인들 심방을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지요.
우리가 심방 갔던 곳은 중국인들이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남편과 얘기하는데 돈을 세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목회자와 얘기를 나누는데 돈을 세면서 대화를 할까 하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그들의 집에도 가게 됐는데...
와~와~
그들의 집은 정말 성이었습니다.
집이 얼마나 넓고 좋은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들의 집이고 가게인지도 모를 만큼 어마어마하게 컸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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