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태정태세문단세~~~"하며 달달달 외워대는 국사과목을 제일 싫어 했던 제가 흥미위주로 나름대로 알아본 사실들을 정리해 봅니다...
참고적으로 우리가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라는 목적의식을 갖고 바라본다면 정말 재미있는 분야입니다...대학입시 한문제 더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1. 우리민족의 언어학적 뿌리
가. 우랄알타이어족(Ural-Altaic languages)
먼저 우리가 쓰는 말이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과는 다르다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민족의 언어학적 분류는 우랄알타이어족(Ural-Altaic languages)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랄알타이어족은 우랄어족이 알타이제어와 함께 더욱 큰 어족을 형성한다고 가정했을 경우의 총괄적 명칭이라고 합니다.
1) 우랄어족 (Uralic languages)
우랄어족은 핀우그르어파와 사모예드어파의 두 관련된 언어들로 구성된 어족이라고 하며 핀우그르어파에는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 ·랩어 등을 포함하는 핀어군과 헝가리어 등을 포함하는 우그르어군이 있으며, 사모예드어파에는 네네츠어 ·에네츠어 ·셀쿠프어 ·가나산어 등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우랄어족의 대부분이 분포지역의 서쪽 지방에 있는데, 가장 거대한 집단은 약 1,400만의 헝가리인들이다. 그 밖에 500만의 핀란드인, 100만의 에스토니아인이 우랄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큰 집단에 속한다.
2) 알타이제어 (Altaic languages)
투르크어·몽골어·퉁구스어 등 3계 어군의 총칭이며 유라시아대륙 알타이지방에 사는 알타이 여러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로 교착어(膠着語)에 속한다. 최근 이 3개의 언어 외에 한국어까지 넣는 학자도 있다.
가) 몽골계 언어: 알타이제어가 쓰이는 지리적 공간의 중앙에 위치하는 언어로 주로 몽골과 네이멍구자치구에서 쓰인다. 또 중국변경 제지구나 볼가강 하류, 부랴티야공화국에서 쓰인다.
나) 투르크계 언어: 추바시야투르크계 언어라고도 한다. 이것은 추바시야어가 다른 투르크계 언어와 발생 당초부터 서로 달랐다는 생각 때문이다. 투르크계의 언어는 광대한 영역을 차지한다. 사용지역은 터키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 지역 일대, 북부 카프카스지방, 이란 북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몽골의 알타이·사얀 산맥지대에서 동시베리아 지역까지 미친다. 또한 추바시야어는 볼가강 유역에서도 쓰인다. 광대한 영역에 널려 있기 때문에 방언이 많다.
다) 만주·퉁구스계 언어: 퉁구스계의 언어 또는 퉁구스어라고도 하며, 퉁구스인(人) 고유의 언어를 가리킨다. 분포지역은 동쪽으로 캄차카·사할린, 서쪽으로 동부시베리아, 남쪽으로는 만주에 이른다. 그러나 분포지역의 광대함에 비하여 사용인구는 매우 적다. 남·북의 2대방언으로 나뉘고, 다시 하위 소방언으로 나뉘며 분립(分立)한다. 중국에 청나라를 세운 만주민족의 언어인 만주어, 다시 그 전신인 여진족의 언어인 여진어도 퉁구스어에 속한다.
(1) 퉁구스어 (Tungus language)
시베리아 동부, 사할린섬, 중국 동북(만주)지방 및 변경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언어이며 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유역에서 캄차카반도 ·연해주까지의 지역과 중국 만주 ·신장[新疆]에서 쓰인다. 방언으로 갈라져서 전역에 걸친 공통어가 없다.
방언은 몇 개의 차이점에 의하여
(가) ① 에벤크방언(협의의 퉁구스어), ② 솔론방언(①의 일부로도 보인다), ③ 네기달방언, ④ 라무트방언(에벤방언 또는 라무트어)
(나) ① 우데헤방언, ② 오로치방언
(다) ① 골드방언(나나이방언), ② 오르차방언, ③ 오로크방언
(라) 만주어의 4군으로 분류된다.
이 밖에 금(金)나라를 세웠던 옛날 여진족의 여진어도 퉁구스어의 방언이다.
나. 위의 사실들로 볼때 우리민족의 언어학적 분류는 우랄알타이어족의 알타이제어족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가장 근접한 어족은 퉁구스어족이 될 수 있겠다.
2. 우리민족의 인류학적 뿌리
가. 몽골로이드 (Mongoloid)
몽골인종 ·황색인종이라고도 하며 인도에서 동아시아 대륙, 태평양제도(諸島) 및 아메리카대륙에 분포한 인종이고 코카소이드 ·니그로이드와 더불어 3대 인종군(人種群)이다.
피부색이 다양하지만 주로 황갈색이며, 모발은 검고 직모(直毛)이다. 체모는 적고 중두(中頭) 또는 단두(短頭)로 키가 작으며, 얼굴은 편평하고 광대뼈가 높다. 눈은 검고 몽골주름이 있으며, 어린아이에게는 둔부(臀部)에 몽골반(斑)이 나타난다. 아시아에서는 B형(型)혈액형이 많고, 아메리카에서는 O형이 많으며, 또한 RH-가 거의 없는 등 다른 2대 인종군과는 두드러지게 다르다. 코카소이드의 거주지역과 접하는 곳에서는 양 인종군의 혼혈이 나타나고 있어서, 남(南)러시아나 투르키스탄의 투란 인종 및 시베리아의 삼림이나 툰드라에 거주하는 고층(古層)시베리아 인종 등은, 몽골주름은 적지만 눈꼬리가 치솟은 듯한 외모이어서 중간적인 형질을 보인다.
‘북(北)몽골인종’은 몽골로이드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시베리아 ·몽골 ·투르키스탄에서 백해(白海)까지 분포하며, 단두에 부푼 눈꺼풀을 지닌다. 이러한 전형적인 특징은 남쪽으로 갈수록 적어져서, 중국인의 주요한 전형인 ‘중앙몽골인종’은 키도 크고(168 cm) 중두이며, 얼굴이 길다. 이와 비슷한 형태는 한국 ·일본 ·티베트 ·타이 ·미얀마에 분포한다. ‘남(南)몽골인종’은 키가 작고(159 cm) 단두이며, 코가 넓고 턱뼈가 약간 돌출하였는데, 중국 남부 ·미얀마 ·타이 ·인도차이나 ·티베트에 분포한다. 홋카이도[北海道]나 사할린의 아이누는 장두(長頭)로 털이 많고, 눈썹 언저리뼈가 융기(隆起)되고, 두발이 약간 파상(波狀)이어서 코카소이드로 분류하나 몽골로이드의 영향도 강하다. 인도네시아 인종은 키가 작은(157 cm) 중두 또는 장두로, 피부색도 매우 짙다. 몽골주름이 뚜렷하지 않고 눈꼬리도 치솟지 않으며, 두발은 파상이며 콧날이 높게 선 사람도 있어 3대 인종군의 혼혈로 가정하기도 하고, 분화(分化)되지 않은 몽골로이드에서 출생하였다는 설도 있어 기원을 알기 어렵다.
한편, 아메리카대륙 원주민들은 약 5만 년 전에 육지로 이어진 베링해협을 거쳐 아시아대륙으로부터 건너간 원시몽골로이드의 후예이다. 그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간헐적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 중에는 고층인디언으로 불리는 종족, 즉 푸에고섬 및 중남미에 점재(點在)하는 단신(短身) ·장두 ·협비(狹鼻)의 종족군(種族群)에서부터 북태평양 인디언이나 에스키모와 같은 몽골로이드적 특징이 강한 새로운 집단까지 여러 인종이 있다. 에스키모인종은 인디언에서 제외되기도 하지만, 그 밖의 집단은 남북아메리카를 동서로 나누어 4아인종(亞人種)으로 구분하며, 아르헨티나의 팜파스에 거주하는 또 하나의 아인종이 있다. 팜파스에 사는 인종은 짧은 수족에 편평한 얼굴과 숱이 많은 장발(長髮) 등의 특징이 한지적응성(寒地適應性)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1)북(北)몽골인종
가) 퉁구스족 (Tungus)
동쪽은 사할린으로부터 서쪽으로는 예니세이강에 걸치고, 또 북쪽은 야쿠티아자치공화국의 극한(極寒) 툰드라 지대로부터 남쪽으로는 중국 동북(만주) 지방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분포하여 만주-퉁구스어계(語系)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며 인종학적으로는 몽골인종에 속하며, 신장은 크지 않고, 두형(頭形)은 단두(短頭) 내지 중두(中頭), 코는 작고 낮으며 광대뼈가 솟아 있다. 눈과 모발은 검거나 암색(暗色)이고 두발은 직모(直毛)이며, 수염과 체모는 적다. 피부는 누런빛을 띠고 있으나 비교적 흰 편이다. 영아의 엉덩이에는 몽골반점이 나타나는 율이 높다. 분포지역의 자연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생활양식의 차이가 있다.
북방의 툰드라에 사는 사람들은 토나카이[馴鹿]를 기르고, 그 고기와 젖을 식용하고 있으며, 가죽은 옷감으로 쓰고 있다. 또한 이 짐승을 탈것으로 이용하거나 썰매를 끌게 하기도 한다. 이런 생활양식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타이가(침엽수림) 지대에 들어가 수렵을 하지만 농경생활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토나카이의 사료인 이끼류(類)를 찾아서 이동하기 때문이며, 주거에도 원뿔 모양의 간단한 텐트를 이용한다. 야쿠티아와 부랴티야에 인접한 에벤크의 일부는 이미 말 사육으로 업종을 바꾸고 농경을 경영하면서 정주생활(定住生活)로 이행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한 오호츠크해(海) 연안의 에벤이나 아무르강 ·쑹화강[松花江] 유역의 나나이처럼 어획(漁獲)을 주된 생활수단으로 하면서 개를 가축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구성의 단위는 부계적 씨족이고, 결혼은 혈연적 외혼제(外婚制)를 따르고 있다.
(1)예맥(濊貊)족
한민족(韓民族)의 근간이 되는 민족이며 맥(貊:檍), 또는 예(濊:穢 ·娘)라고도 약칭하였다. 중국 고전의기록에 의하면 《시경(詩經)》 《논어(論語)》 《중용(中庸)》 《맹자(孟子)》에는 맥(貊)으로, 《사기(史記)》의 <흉노전(匈奴傳)> <화식전(貨殖傳)>에는 예맥으로 기록되어 있다. 맥족의 원주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으나 《위지(魏志)》 <고구려전>에 따르면 대수(大水:漢代에 鹽難水라고 하였던 鴨綠江) 유역에 거주한 부족과 소수(小水:漢代에 馬罹水라고 하였던 渾江) 유역에 거주한 2개의 집단이 있어 각기 수장(首長)을 추대하고 있었는데, 한인(漢人)들이 소수지역에서 거주한 집단을 소수맥이라 칭하였다. 또한 《한서(漢書)》 <무제기 원삭원년조(武帝紀 元朔元年條)>와 《후한서(後漢書)》 동이전 예조(東夷傳 濊條)에 보면 BC 128년 예의 군장(君長)인 남려(南閭)는 조선왕 우거(右渠)와의 관계를 끊고 그가 지배하던 전예맥사회의 인구 28만을 이끌고 한(漢)의 요동군(遼東郡)에 가서 내속(內屬:半 예속적 관계)을 청하였다.
무제는 그곳에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하여 이들을 거주하게 하였으나 BC 126년에 폐지하였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당시의 남려는 대수맥과 소수맥을 연합한 최고의 맹주(盟主)였음을 알 수 있다. 예맥족은 이후 부여(扶餘) ·고구려 ·동예(東濊) ·옥저(沃沮) 등으로 중국 북동부와 한반도의 동부 및 중부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남으로 망명할 무렵 북방에서 함께 내려온 이주민들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 토착민과 연합하여 삼한(三韓)이라는 연방체를 만들었다. 여기에 고구려의 한 갈래인 위례(尉禮)가 한강 유역에 자리잡으면서 차차 커져서 백제가 되었는데, 이 또한 예맥족의 나라이다.
이 사실로 미루어 예맥족은 초기에 숙신(肅愼)과 동호(東胡) 사이에 끼어 중국의 쑹화강[松花江] 및 헤이룽강[黑龍江]과 압록강 ·두만강 유역 및 한반도 북부 지역인 함경도 ·강원도 등지에 걸쳐 살고 그 갈래가 남부에 백제를 이루며 번창한 대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종족상으로는 알타이어계(語系)의 퉁구스족(族)에 속하는 한 갈래이다. 농경문화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발전하면서 한민족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가)한민족(韓民族)
한반도(韓半島)와 그 북쪽에 연한 만주(滿洲) 일부에 살고 있는 종족으로, 공통된 한국어를 사용하며 공동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민족을 말하는 명칭이며 황색인종(黃色人種)에 속하며, 우랄-알타이어족인 원시 퉁구스의 한 갈래로, 고대 중국에서는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일족이다. 한민족이 언제부터 만주와 한반도에 살았는지 그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으로부터 1만 년을 전후한 신석기시대부터 이 지역에 살고 있었음을, 그들이 남긴 유적 ·유물에 의하여 알 수 있다. 정론(定論)은 없으나 한민족의 조상들은 일찍부터 인류의 발상지라고 일컬어지는 중앙아시아 지방으로부터 구석기시대를 전후하여 몽골과 만주지방에까지 이동해왔다고 여겨진다.
그들은 다시 새로운 신석기의 기술을 배우면서 만주지방으로부터 남하하여 반도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일부는 일찍이 일본으로 옮겨가서 일본민족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다. 또, 남해안지방에는 해류관계로 부분적으로 남방계통의 민족이 흘러들어와 혼합되었고, 황해(黃海)를 건너 한족(漢族) 계통도 들어왔을 것이다. 따라서 원시시대부터 황허강[黃河] 유역의 문명이 주류가 되고 만주나 몽골의 북방계통의 것이 가미되었으며, 남해안 지방은 일본의 기타큐슈[北九州]와 서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까닭에 그들과 같은 문화권을 이루고 있었다.
《시경》이나 《논어》 등에는 맥(貊:檍)이 불함산(不咸山:長白山)을 중심으로 백민(白民:古朝鮮族)의 북쪽에 산다고 하였고, 《사기(史記)》를 비롯한 후대의 사서(史書)에는 이 종족을 예맥(濊貊:穢貊)이라고 하였는데, 예맥족은 연구 결과 오늘의 한민족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이 밝혀졌다. 예맥족은 고대 아시아 민족인 퉁구스족에 속하며, 만몽계통 또는 터키계통과 공통된 먼 공동조상에서 갈라진 일족이다. 예맥족은 곰[熊]을 신성시하여 수호신 ·조상신으로 숭배하던 토템족으로, 이러한 사상은 동북아시아의 여러 민족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예맥족은 신석기시대의 초 ·중기부터 대륙지방에서 동쪽으로 진출하여 만주족의 조상인 숙신족(肅愼族)을 만주의 동쪽으로 몰아내면서 열하(熱河) 방면에서 한반도의 구릉지대와 헤이룽강[黑龍江] 유역을 생활무대로 하여 정착, 원시적인 생활을 해왔다. 원시사회의 토기를 보면, 이들은 만주와 시베리아로 연결되는 북방 아시아계통의 요소를 지닌 빗살무늬토기 계통과, 화북(華北)과 만주 ·몽골계의 요소가 깃든 민무늬후육토기[無文厚肉土器] 계통과, 화북계(華北系)인 주도마연토기(朱塗磨硏土器) 계통의 세 갈래 길을 택하여 이주해왔다.
이들은 그 뒤 만주 북쪽과 동쪽 지방에서 부여(夫餘)를 건설하고, 한반도 북부에 고구려 ·옥저(沃沮) ·예(濊) 등의 고대 부족국가를 건설하였다. 이와 전후하여 한 갈래의 부족은 일찍이 남하하여 반도 남부에 자리잡았다. 이들은 오랫동안 한강(漢江) 이남에 살면서 별로 북방의 종족들과 접촉이 없는 가운데 대소의 씨족적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3한이 그것이었으며, 이들은 총수 70여 개의 부락국가를 이루고 원시생활을 해왔다. 《삼국지(三國志)》에 의하면, 이들은 말과 풍습이 서로 다르다고 하였으므로 단일종족으로 볼 수는 없으며, 또 그들의 이주 연대와 정착지도 틀린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나 풍습도 따로따로 별개의 방향으로 발전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남쪽 해안에는 해양성 종족이 다분히 표류되어 와서 살게 됨으로써 여러 갈래의 군소국이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되나, 민족의 근간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마한 목지국(目支國)의 진왕(辰王)을 맹주로 하여 부속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막연하나마 통일된 민족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중에서 4세기경에는 고대 국가인 백제 ·신라가 형성되어 북쪽의 부여계통인 고구려와 남방의 3한을 중심으로 한 한민족 계통의 신라민족으로 크게 분리되었다. 어느 민족이나 처음에는 한 종족이 여러 곳에 씨족사회를 이루고 살다가 차츰 부족국가를 이루게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민족의 통일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한민족은 이와 같은 경로를 거쳐 남과 북에 부족국가를 이룬 삼국시대를 거쳐서 7세기 중기에 이르러 민족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신라가 3국을 통일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백제만을 완전히 통합시켰을 뿐 고구려는 그 일부, 즉 남포(南浦)에서 원산만(元山灣)에 이르는 경계선 이남의 영토를 정복한 데 불과하며, 신라는 고구려의 남쪽 일부분만을 차지하고 그 유민(遺民)들을 거느리게 된 데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에 통합되지 않은 고구려 민족의 대부분은 한민족과 분리된 만주족이 되었다.
(나)만주족(滿洲族)
중국 북동지방 만주지역에 거주하는 퉁구스계의 민족이며 퉁구스족 중에서도 청조(淸朝)를 세우고 그 지배층이 된 남방(南方) 퉁구스족에 속한다. 역사상 나타나 있는 숙신(肅愼) ·읍루(獵婁)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 등은 만주족의 전신(前身) 또는 같은 계통의 종족이다. 형질(形質)은 몽골로이드계로서 키는 비교적 작고 단두형(短頭型)이 특징이다. 만주라는 명칭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문수의 음(音)이 전화한 만주(曼珠→滿住)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명대(明代)의 여진인의 수장(首長) 중에는 문수(文殊:滿住)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적지 않았다.
만주족의 사회는 1920년대, 30년대까지 모쿤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부계적 씨족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모쿤은 어느 한 남자를 시조로 하는 5대에서 9대 정도까지의 부계친(父系親)과 그들의 아내로 구성되며, 그 성원은 비교적 근접하여 생활하고, 씨족장(氏族長)에 의하여 통솔되어 가벼운 범죄나 민사사건은 내부에서 처리되었다. 또, 이 조직은 샤머니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①말갈(靺鞨)족: 6∼7세기경 중국 수 ·당 시대에 만주 북동부에서 한반도 북부에 거주한 퉁구스계 민족이며 주(周)나라 때에는 숙신(肅愼), 한(漢)나라 때에는 읍루(獵婁)라 불렀다. 본래 쑹화강[松花江] 유역의 물길(勿吉)이 지배하였으나 6세기 중엽 물길의 세력이 약화되자 각 부족들이 자립하였는데, 이들을 총칭하여 말갈이라 부른다. 이들 부족 중 대표적인 것은 예맥(濊貊) 계통으로 농업을 주로 하던 속말(粟末), 백산(白山)과 순수 퉁구스계로 수렵에 의존하던 백돌(伯왹) ·불녈(拂涅) ·호실(號室) ·흑수(黑水) ·안차골(安車骨) 등 7개 부족이었다.
그 중에 속말과 백산부족은 고구려에 복속하였다가 고구려가 멸망하자 영주(營州:遼寧省朝陽)로 이주하였고, 후에 발해가 성립되자 대부분의 말갈족이 발해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흑수부족만은 쑹화강과 헤이룽강[黑龍江] 하류 지역에 근거를 두고 발해에 대항하였고 발해 멸망 이후 흑수말갈은 거란에 복속되어 여진(女眞)이라 불렀으며, 그후 생여진(生女眞)과 숙여진(熟女眞)으로 나뉘었다가 생여진은 금(金)나라를 건국시킨 주체가 되었다.
3. 결 론
위와 같이 우리민족의 언어학 및 인류학적 뿌리를 알아보니 우리민족의 근간은 중앙아시아를 기원으로하는 알타이어족의 퉁구스어족 또는 한국어족으로 볼 수 있으며 북몽골인종의 퉁구스족에 속하는 예맥족의 한민족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고 각종 역사서 및 유물 등에 의해서도 이를 뒷받침 한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민족을 근간으로 하여 일부 남방계의 해양민족과 피난을 온 한족이 섞이고 같은 퉁구스족인 만주족의 말갈족과 더불어 만주와 한반도를 기반으로 역사를 이루어 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참고로 보다 일찍 남하하여 한강이남에 터를 잡은 삼한(三韓)의 마한(馬韓)은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小國)을 총괄한 명칭이며 진한(辰韓)은 대구·경주 지역에 분포한 12개의 소국을 총괄한 명칭이고 변한(弁韓)은 김해 ·마산 지역에 분포한 정치 집단을 가리킨다...특히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변진은 진한과 잡거하며 언어 ·법속 ·의식주가 같고 다만 귀신의 섬김이 다르다”고 한 것으로 보아 진한과 변한은 전체적으로 같은 문화기반을 가진 정치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정도면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에 어느정도 길잡이가 될 수 있겠지요?
사견이지만 세월이 지나고 강산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었지만 DNA와 유전자가 우리들의 몸속에서 우리를 계속 역사의 쳇바퀴 속에 머물고 있게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