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황상제(玉皇上帝)
옥황상제(玉皇上帝)는 도교(道教)에서 하느님을 이르는 말이다. 북극오성을 옥황상제(玉皇上帝)와 그 가족들이라고 생각하여 주변을 옥황상제가 사는 궁궐이라는 뜻의 자미궁(紫微宮)이라고 불렀으며, 또한 작은곰자리를 이루는 북두칠성을 옥황상제를 호위하는 여섯 장군들이라고 여겼다.
또 다른 신화로써, 광엄묘악국의 왕인 정덕왕은 후손이 없자 여러 도사들을 불러 기도를 올리게 하였다. 도사들이 힘을 모아 기도를 올린 지 6개월이 지난 어느날 정덕왕의 왕비 보월비가 태상노군에게 간청하여 아기를 받는 꿈을 꾸고 일어나 임신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옥황상제라 하였다.
옥황상제는 자비심과 인정이 많은 인물로 성장하였고, 나라의 보물을 없는 자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정치를 폈다. 그후 정치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산속에서 수행에 힘썼다고 한다. 800겁(劫)을 거쳐 도가의 비법을 깨달아 인명을 구제하였다고 전해진다.
중국의 송(宋)나라 때에는 도가를 숭상하는 황제들이 옥황상제의 숭배를 승인하였으며, 유교의 최고 지도자와 같은 지위를 부여하였다. 현재 타이완에서는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 있는 존재를 담당하는 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용 무늬가 있는 예복을 입고, 머리에는 구슬 장식의 모자를 쓰며, 손에는 비취로 만든 의식용 명판을 들고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옥황상제는 고래(古來)로 농경민족의 가장 큰 소망인 풍년을 기원하는 제천의식(祭天儀式)에서 섬긴 신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옥황천존(玉皇天尊)’ 또는 ‘옥황대제(玉皇大帝)’라고도 부른다. 옥황상제를 묘사한 무신도를 보면 용포(龍袍)에 관을 쓰고, 희고 긴 수염을 기르고 있으며,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홀(笏)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 모습으로 그려진다.
가장 거룩하고 권위적인 양태를 드러내기 위하여 정면상을 하고 있으며, 위엄 있는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배경의 휘장은 그가 하늘의 최고신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본래 도교에서 최고신으로 모시는 숭배의대상이었다.
시대에 따라 ‘태상노군(太上老君)’, ‘원시천존(元始天尊)’, ‘옥황상제’ 등으로 그 이름은 바뀌어 온다. 옥황상제에 대한 신앙은 당나라 때의 원진(元稹, 779~831)이 쓴 시에도 그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9세기 초에는 중국에서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옥황상제라는 최고신 밑에는 많은 신이 있다. 신들의 상·하 계통에 대한 설명인 신통론(神統論)은 분명하지 않지만 신들의 관계는 현세 봉건사회의 군신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즉 황제에 해당하는 옥황상제를 정점으로 하여 피라미드형의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이능화의 순한문 저술인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에는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를 인용하여 고려시대 복원궁(福源宮)과 조선시대 소격서(昭格署)에서 거행한 도교식 제사인, 초제(醮祭)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는 삼청전(三淸殿)에서 옥황노군(玉皇老君)과 천존제군(天尊帝君)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태일전(太一殿)에서는 칠성(七星)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밝혀 놓았다.
이에 덧붙여 태일전에서 모시는 ‘칠성신과 여러 성신(星辰)의 상’[七星諸宿其像]은 여자의 용모를 하고 있는 반면에 삼청전에서 모시는 옥황상제와 태상노군·보화천존(普化天尊) 등 10여 위의 상은 모두 남자상이라고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신들이 옥황상제와 함께 한국의 샤머니즘 세계로 유입되어 신앙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천도교나 증산교 등의 경전에 신앙대상으로 나타나는 상제(上帝)의 경우에도 도교로부터 유입된 옥황상제와 동일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민간 도교가 성행하고 있는 대만의 옥황상제 신앙 사례가 있다. 대만 사람들은 집에서 거행하는 제사의 경우 입구 가까이에 있는 큰 방 정청(正廳)의 출입문 부근 천장에 드리워져 있는 천공로(天公爐)를 향하여 먼저 절을 한다.
천공로는 바로 옥황상제의 신체(神體)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옥황상제의 탄생일인 음력 1월 9일에는 천공묘(天公廟)에 참배하는 한편 각 가정의 정청에는 등좌(燈座)라고 하는 신상을 그린 종이로 만든 통 모양의 장식을 꾸며 놓는다. 이것 역시 옥황상제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그곳에 신령이 깃든다고 믿는다.
한편 서울 지역 전통 무당들의 세계에서 옥황상제는 선관 및 보살 계통에 속하는 무당들이 모시는 가장 높은 계급의 신령이다.
옥황상제는 하늘을 다스리는 신으로 하늘에 있는 신령들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신인데, 원래는 중국의 민간 도교에서 받드는 최고신의 명칭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무당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진 신격이다.
일반적으로 귀신이란 좁은 뜻으로 쓰일 때는 죽은 이의 넋을 지칭하기도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흔히 일상어에서 '귀신 곡할 노릇'이라거나 '귀신도 모를 일'이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귀신의 개념 그 자체가 많은 변화를 지닌 복합적인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귀신은 우리 나라 사람의 신앙행위와 신비체험의 대상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앙이나 민속현장에서 그 개념이 매우 다양하다.
무가(무당들의 노래)에서 '일만팔천신' 또는 '팔만신'이라고 표현할 때 그것은 단순히 신들의 수가 많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귀신의 개념 속에는 무속신앙과 유교 및 도교 그리고 불교 등에 연원을 둔 개념들이 얽혀 있는 만큼 단정적인 정의로는 그 정체를 잡기가 힘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르는 명칭들에서도 신과 귀 및 잡귀와 객귀, 여귀 그리고 신명과 신령 및 신인 등의 개념이 귀신과 포개져 있다.
더불어 자연신적인 것과 의인신적인 것, 심지어 주물신앙의 대상이 됨직한 물령적인 것까지 겹쳐져 있어서 귀신이라는 개념이 지닌 복합성은 더욱 더 복잡해 진다.
서양의 개념으로 귀신이 범신론적인 명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념의 복합성에 있는 것이며, 서구 인류학이나 종교학의 개념을 빌린다면 '제신들(gods)'과 '물령'이라고 번역 할만한 스피릿(spirit)이 있고, '마귀'를 뜻하는 데몬(demon)과 '사령'을 뜻하는 고스트(ghost) 등이 있겠다.
우리 나라의 민속신앙 및 무속신앙의 현장에서 행해지고 있는 실제의 귀신론에서 사령신이 가지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귀신을 범신론적인 것과 사령신적인 것의 두 범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 이러한 전제를 두면 범신론적 귀신은 다시 크게 보아 성스러운 신의 초자연적 존재와 공포스러운 괴이의 탈자연적 존재라는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두가지 기본적 기준과 그에 관련된 세부적 기준들은 사령신의 귀신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옥황상제' 한자로는 '玉皇上帝'로 표기하는데, 구성요소를 나누어 보면 '황(皇)'이나 '상제(上帝)'는 존칭 가운데서도 극존칭에 속하는 호칭이므로 '옥황상제'의 핵심 정체를 나타내는 요소는 '옥(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玉'자는 '구슬 옥'으로 풀이하거니와 '구슬'의 특징은 '둥글다'라는 것이며, 옛 임금과도 같은 높은 벼슬에 있는 이들이 옥으로 치장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 옛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옥(구슬)으로 온 몸에 장식하기를 좋아 했을까? 그 답은 구슬은 둥글다는 것과 옥으로 둥근 구슬을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둥글다'는 것이 '해'의 특징이라는 것을 참고한다면 '해=구슬=임금'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임금이나 족장 등 지도자는 '해'와 같은 인물로 존경을 받았다는 것이 또 하나의 단서가 될 것이다.
실제로 '玉'자는 '王'자에 치장으로 점이 하나 붙어 이루어진 글자로 '구슬'를 나타냈데, 임금이 구슬로 된 장식으로 몸을 치장하는 것은 자신이 '해'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방편이다. 아침에 해가 뜸으로써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 일조량에 의해 곡식이 결실을 거두며 해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생명을 유지하게 되므로 '해'야말로 생각과 생활과 삶의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상 '구슬'로 자기 이름을 사용한 임금이 있다. 그래서 '구슬임검'으로도 불리는 이 분은 바로 삼황오제시기 오제의 한분인 '전욱 고양'씨다. 전욱 고양씨는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구슬'을 그대로 사용했다. 옛 상형문자로는 '알 고양'이라고 썼는데 '알'이 곧 '구슬'의 표시인 것이다. 그런데 이 '알'을 옛 지나(중국)사람들이 잘못 불러서 '전욱'이라고 하였으며 실제로는 '흠없는 구슬'이라는 뜻의 '정옥'을 잘못 부른 것이라고 한다.
('전욱'이라는 한자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오로지 어리석은'이라고 하니 옛 성인의 호칭으로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알(구슬, 옥)'로 자기 이름을 사용한 분으로부터 동양에는 '난생설화' 즉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혈통이 고양씨의 후손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옛그런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시조의 탄생설화 중에
'알에서 태어나다'라는 식의 설화를 가진 성씨들은 모두 '정옥 고양'씨의 후손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말은 난생설화를 가진 성씨들의 혈통이 '단군의 자손'이라는 식의 포괄적인 민족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정옥(알, 구슬) 고양씨가 나이들어 고양씨의 큰 아들(민속에서 축륭씨로 알려짐)이 정사를 대신하면서 자기 아버지를 높여 부르면서 세상에는 '옥황상제'라는 호칭이 생겨나게 되었다고도 한다.
한민족의 민속에 등장하는 '옥황상제'는 '구슬임검', '정옥' 등으로 불리는 '고양씨'를 일컫는 존칭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