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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2 - 메소포타미아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 대홍수!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2.04.11|조회수401 목록 댓글 0

아브라함2 -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대홍수!

아브라함은 BC 1800년경에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의 

거주지인 우르에 살았다는데... 이 지역은 기원전 4000년경 부터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으니 수메르인들이 만든 문명인 우바이드 문화는 앞선 문명 없이 갑자기 

일어났는데 그로 부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나오니 오늘 서양 문명의 뿌리라고 할 것입니다.

 

 

BC 2330년 수메르 도시들을 점령하고는 세계 최초로 제국을 세운 아카드인 사르곤왕은 

자신들의 선조들을 수메르인이라고 불렀으며.... 아카드인이나 수메르인은 하늘에서 

지구로 온 방문자들을 신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니 신성한 존재나 신이라는 개념은 

이후 다른 종교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언어와 사고 속으로 들어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바이드 문화는 B.C. 3700년경에 일어나 B.C. 3500년경 에리두에 이어 슈루파크와 우루크 

및 우르등 도시국가들이 출현하니 대홍수후인 B.C. 2900년경 키시왕국이 출현했고 

그후 우루크의 5번째왕 길가메시가 키시를 정복하니 우루크가 패자가 되었으며 12번째 

왕인 루갈키툰은 B.C. 2633년에 우르왕 메산네파다에게 패하니... 우르 왕조의 출현입니다.

 

B.C. 2355년 움마의 왕 루갈자게시는 우루크를 점령해 수메르 통일왕국을 세우나 B.C. 2330년 아카드

의 침공으로 패하는데.... 이후 아카드를 물리친 구티 왕조가 들어섰다가 BC 2150년경 수메르인들이

우르 제왕조를 건설하고 그후 BC 1764년에 함무라비왕의 바빌로니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오래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인일리아스보다도 1500년 가량

앞선 이야기인데길가메시는 기원전 28세기경 키시를 멸망시키고 우루크를 126년 동안 

지배한 왕이니 신화에 따르면 3분의 1은 인간, 3분의 2는 신인 영웅이라는데 그는 인생 무상을

느끼고 영생을 얻기 위해 대홍수에서 살아남은우트나피쉬팀(지우수드라)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B.C. 2900년경 천신 아누와 대지의신 엔릴등 신들은 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지만 

지우수드라(Ziusudra) 노인은 물의 신인 엔키의 귀뜸으로 대홍수를 미리 알고는 방주를 

만들고 짐승들을 암수 한쌍씩 실어서 40일간의 표류 끝에 살아남으니 영생을 얻어 

딜물(Dilmun) 땅에서 영원히 사는데 이 이야기는 그 후에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등장합니다.

길가메시가 영생을 얻기 위해 찾아간 '우트나피쉬팀은... '지우수드라(Ziusudra)‘ 라고도 

하는데.... 천여년 후인 기원전 18세기에 정리된 최초의 대홍수 신화의 등장인물로 

수메르 신화에서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살아남은 인류의 조상이라는데이름의 의미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니 성경 창세기에 '노아의 방주이야기의 원형이라고 여겨집니다.

 

홍수 이전에 신들은 가뭄과 질병을 발생시켜 지상의 인구 수를 줄이려고 했으니 엔릴신은 지상의 난잡함

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지상에 대홍수를 일으키기로 하고 신들을 불러들여 '인간에게 누설

하지 않음을 전제로 '홍수가 나는동안 신들만 잠시 지구 밖으로 대피하자는 사실을 비밀리에 알립니다.

 

인간 창조에 관여한 물의 신 엔키는 엔릴의 계획에 반대해 설전을 벌이지만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인간들에게 알려주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나 어떻게든 인간을 살리려는 생각으로 인간에게 

직접 누설하지 않으면 되는 거지라는 자의적인 판단하에 도시의 왕이었던 아트라하시스를 갈대

벽 밖에 세워두고 '갈대벽에게 혼잣말을 해 엿듣게 하는 편법으로 홍수가 일어날 것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아트라하시스라는 사람은 수메르 지우수드라” 이야기의 아카드어 버전으로 보이며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우트나피쉬팀” 으로 등장하는데.... 그 오랜 후에 동로마 

비잔틴제국의 헬레니즘 시대에 쓰여진 그리스어 버전에서는 크시수트로스 라고 나옵니다.

 

동시에 아트라하시스에게 가로세로높이가 같은 정육면체에 이층 구조인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니... 아트라하시스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방주를 건조해 엔키에게 예고받은 그날 

마을 사람들과 방주 제작에 참여한 기술자들 및 동원할수 있는 동물들을 모두 배에 태우고 

하늘에서 해가 뜰 때 그 문을 봉했고...... 신들이 우주로 대피함과 동시에 홍수가 시작됩니다.

 

40일간 홍수가 지속되었고 아트라하시스 부부는 맨 처음 비둘기를 날렸으나 다시 돌아와 

물이 덜 빠진 것을 알았고다음 제비를 날렸으나 다시 돌아오자 마지막으로 까마귀

를 날려 돌아오지 않자 드러난 뭍에 배를 정박하고 방주의 동물들 중 하나를 잡아 

하늘에 번제를 드리자 굶주림에 시달리던 신들이 주변에 파리떼 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결국 살아남은 인간이 있음을 엔릴이 알게 되고 엔키를 추궁한 끝에 그가 결과적으로 맹세를 

어겼음을 깨닫고 분노하나엔키는 "비밀을 폭로한 것은 내가 아니다나는 단지 

우트나피쉬팀에게 나타나 꿈을 보여주었는데그가 신들의 비밀을 들었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 그의 처우에 대해 상의해 보도록 하자!" 는 식의 억지스러운 말로 그를 달랩니다

 

대지의 신 엔릴은 화가 났으나자기들을 대신해 노동을 해주는 인간들이 없어

지면 자기들도 굶는다는 걸 깨닫고는...... 아트라하시스 부부에게 영생을 

약속하며 태양이 뜨는 곳이자 신들의 낙원 '딜문에 거처할 권리를 부여합니다.

 

1853년 영국 탐사팀이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세운 니네베 도서관에서 아카드어

로 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점토판을 발굴하였으며그후 1872년 홍수에 관련된 

내용이 번역되면서 길가메시 서사시는 학계의 큰 화제가 되었는데 나중에 발굴된 

수메르어 판본은 주인공의 이름 등 아카드어 판본과 내용에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따로 수천년을 전해지던 길가메시 이야기들을 처음 채록한 이들은 수메르인

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뿐이라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서사시가 

아니라 시리즈물이었는데파편적으로 채록된 이야기들을 오랜 세월이 지나 바빌로니아

시대에 시간 순서대로 줄거리를 짜서 서사시로 정리한 것이..... 현재의 길가메시 서사시 입니다

 

길가메시의 생일이 당시 중시되던 춘분점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수메르 시대 춘분점이 

아니라 그 후대인 바빌로니아 시대 춘분점인 황소자리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이런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데.... 길가메시는 수메르의 도시국가 우루크의 왕으로 

반신(半神)이었으며잘생기고 총명한데다가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길가메시는 온 세상을 둘러보고 우루크로 돌아온 후에는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없다는 

사실에 취해 자만에 빠져 허구한 날 강제 노동을 시켜 백성들을 괴롭히고 싸움

좀 한다는 남자들은 다 두들겨패며 악행을 일삼았는데..... 그 중에서 특히나 

가장 악한 짓이 초야권으로결혼하는 처녀들의 첫날밤을 자신이 대신 치렀습니다.

 

참다못한 백성들이 천신 아누에게 길가메시를 벌해달라고 호소하자 아누는 창조의 여신 아루루

를 시켜 엔키두를 만들었으니... 그 역시 매우 강했으며 몸통은 온통 털로 덮여 있었고 

여인처럼 긴 머리칼이 소의 몸 같은 그의 신체 위를 덮고 있었으니 우루크 이슈타르 신전

의 여사제 샴하트가 엔키두와 6박 7일을 동침하며 빵과 맥주를 먹여 그의 야수성을 벗겨냅니다

 

엔키두가 짐승에서 인간 처럼 지혜로워지니 샴하트의 안내에 따라 우루크에 도착해 백성

들의 호소를 듣고 분노하는지라.... 길가메시의 귀에도 들어가고 어느 누가 자신에게

대항할수 있겠냐며 엔키두에게 결투를 신청하지만 결투 중에 길가메시가 먼저

무릎을 꿇어버리고 어린애처럼 주저앉아 울어버리니 둘은 화해하고 친한 친구가 됩니다.

 

그 후 둘은 영웅으로 태양신 샤마쉬의 부추김으로 엘림(삼목산의 훔바바를 무찌르는데

엔릴 신의 대리자로서 7개의 후광을 가진 훔바바는 버거웠는지라... 정면 승부를 

피하고 친구가 되자느니여동생을 아내로 주겠다느니 온갖 감언이설로 방심하게 만든 

뒤에 기습해서 쓰러뜨리자 훔바바는 "영웅이라는 놈이 속임수를 쓰다니!" 라고 비난합니다.

 

길가메시가 훔바바의 애원에 측은함과 죄책감을 느껴 살려주려고 하자 엔키두는 "후환이 두려

우니 당장 죽여야 한다." 라고 주장하니 죽였다고 하기도 하고또는 엔키두의 반대에 

화가 난 훔바바가 엔키두를 욕하자 엔키두가 그 자리에서 훔바바의 목을 쳐 죽였다고도 합니다.

 

그 명성이 하늘까지 알려질 정도가 되자 사랑과 풍요의 여신 이슈타르의 눈에 길가메시가 들어왔으니

이슈타르는 길가메시에게 구애를 하지만 길가메시는 장문의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그녀를

무시하는데... "당신의 옛 애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내가 다 아는데 어떻게 사귀겠는가?"

화가 난 이슈타르는 아버지인 아누에게 부탁해 하늘의 황소를 지상에다가 풀어달라고 애원합니다.

 

하늘의 황소는 대지를 황폐하게 만들고 성을 부숴 많은 백성들이 고생하는지라 결국 길가메시

와 엔키두가 나서서 하늘의 황소를 무찌르게 되는데길가메시는 신의 짐승이라 망설

였으나 엔키두가 나서서 황소를 죽여버린지라 결국 하늘에서는 회의가 열리니

길가메시는 신의 피가 섞인지라 죽일 수 없었으므로 창조물인 엔키두가 죽는 걸로 결정됩니다.

 

엔키두가 병으로 죽자 애통해하던 길가메시는 죽음에 대해 느낀게 있는지 불사(不死)를 추구하니 

그 방법을 얻기 위해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쉬팀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 

중에 여관 주인은 "그런 허무한 생각은 버리고 차라리 궁궐로 돌아가 노는 게 낫다신들은 

불로불사지만 그런 즐거움은 누리지 못한다라고 말하지만 우트나피쉬팀의 거처를 수소문합니다.

 

우트나피쉬팀을 찾아 애원하자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면 영생의 비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고

했으나 길가메시가 마지막에 잠들어버려 실패로 돌아갔는데... 우트나피시팀이 

아내에게 길가메쉬가 잠든 시점에 빵을 만들게 하는데그 빵이 상할 정도로 오래 

잤다고 하니 우트나피시팀은 "잠을 못 이기면서 어찌 죽음을 이기려 하는가." 라고 말했다나요?

 

그러나 길가메시가 불쌍해 보였던 아내의 부탁으로 우트나피쉬팀은 불로초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 불로초를 얻은 길가메시는 혼자 먹을게 아니라 우루크로 가져가서 모든 

노인들에게 나눠주어 회춘하게 하려 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연못에서 방심하며 

목욕하다가 뱀이 불로초를 훔쳐먹어 껍질만 남겨두고 도망가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갑니다.

 

우루크로 돌아와 한탄만 하다가 잠이 든 길가메시는 꿈 속에서 신들을 만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죽으면 저승의 왕이 될 수 있으니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꿈에서 깬 

길가메시는 자신의 여태까지의 행적을 돌에 새긴 후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의연하게 죽습니다.

 

슬퍼해서도절망해서도의기소침해서도 안 된다너는 이것이 너의 탯줄이 잘려진 순간

부터 품고 있었던 일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인간의 가장 어두운 날가장 

고독한 장소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멈추지 않는 밀물의 파도와 피할 수 없는 전투

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그러나 너는 분노로 얽힌 마음을 갖고 저승에 가서는 안 된다.

 

길가메시가 영생을 얻기 위해 찾아간 '우트나피쉬팀은 '지우수드라(Ziusudra)‘ 라고도 

하며기원전 18세기에 정리된 최초의 대홍수 신화의 등장 인물로 수메르 

신화에서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살아남은 인류의 조상이라는데 이름의 의미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니 성경에 '노아의 방주이야기의 원형이라고 여겨집니다.

 

'손님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예의라는 아내의 간청으로 젊음의 풀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니 그 

풀은 가시가 있었고 물 속에 자라고 있었으니 길가메쉬는 자신의 다리에 무거운 돌을 

묶고는 돌에 끌려 물 속 깊은 곳까지 내려갔는데 손은 가시에 찔렸지만 식물을 움켜잡아

힘들게 얻은 불로초를 가지고 돌아오다가 목욕할 때 뱀이 몰래 가져가 버려 허사가 되었네요?

 

현재까지 고고학적 성과에서 수메르 문명 이후라고 추정된 시기에 이라크 남부지역에서의 대홍수와 관련

된 증거를 찾지는 못했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대홍수와 관련된 설화나 대홍수와 연결되는 설화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에 대규모의 홍수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습니다.

지역에 한정해서 본다면 메소포타미아의 슈루파크(텔파라)는 기원전 제3천년기에 문화적 중심지였는

데 기원전 2900년경 일어난 끔찍한 홍수는 이 도시의 우선권을 잃어버리게 한 패전과 동시에 

일어났으니 홍수와 패전 이 두가지 재앙은 분명 신들의 노여움 때문으로 인식된지라 서기관

들이 기록했고 이것이 나중에 슈루파크 왕조와 함께 수메르 제왕 목록에 첨가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수메르의 도시 슈루파크는 크게 확장되어 있었는데 재앙이 발생할 당시에 인구 과잉과 기근이 있었다면 

이 도시의 사제들은 아트라하시스” 에서 읽었던 교훈적인 이야기의 원형을 구성할 수 있는 모든 요소

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볼수 있으니... 대홍수 사건과 대홍수 신화는 서로 결합되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일부 개신교 측에서는 애초에 대홍수 설화는 세계 각지에 퍼져있어서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고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이와 엇비슷한 설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성경은 아트라하시스 이야기를 베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고대근동

신화와 성경이 서로 비슷한 것은..... 대홍수에 대한 서로 다른 기록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홍수의 기억은 인류 문화사의 공통된 기억이어서 동일 기억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각이 

따로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더라도.... '왜 이야기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아트라하시스

와 성경의 창세기는 너무나도 닮아 있는 것일까?' ..... 에 대한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신이 특정 인간에게 홍수를 대비하라고 계시를 내리고그 인간이 방주를 건설해서 동물들을 짝으로 보존

하여 홍수를 피하고,“40”일간 비가 내리며새를 이용하여 육지를 찾는다는 구체적 설화는 아트라하시스

에서 최초로 기록했으며 성경은 이러한 이야기 구성과 같은데 “40”은 계속되니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것

과 호렙산 단식도 40일이고 히브리인들은 40년간 광야를 떠돌았으며 마태복음의 광야 40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는 성서비평학을 인정하지 않는 근본주의 혹은 보수주의 개신교의 주장으로성서비평학

을 받아들이는 다른 기독교 종파에서는 창세기의 천지창조나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며 히브리인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권에서 살았고 또 BC 587년에 포로가 되어 끌려간 바빌론 유수 라는 사건을 겪었습니다

 

다윗왕과 솔로몬 왕 이후에 이스라엘은 10개 부족의 북이스라엘과 유다족 등 2개 부족의 남유대로 

분열하는데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10부족은 앗시리아로 

끌려가서 노예 생활로 타 민족에 흡수되어 사라져 버렸으니 오늘날 그 후손들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유다의 히스기야왕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왕 산헤립의 침공 전에 땅을 파고 800m의 수로를

만들어서 기혼샘의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이는 등으로 예루살렘성을 지켜내고 이후 136년을 더 견뎌

내는데..... 앗시리아 수도 니네베에서 발굴된 실린더처럼 생긴 비석에서 똑같은 내용이 발견되었습니다

 

 

그후 유다왕국은 기원전 587년 신바벨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했고 예루살렘은 초토화됐으며

하나님의 법궤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으니 치드키야 왕을 비롯한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폐허를 뒤로 

하고 메소포타미아의 신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으로 끌려가게 되는데기원전 538년에 신바빌로니아

를 정복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에 의해 풀려나 그 중에 일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바빌론 유수기 동안 유대인은 고난과 고통으로 민족일치를 강화했고 일부가 돌아와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여 유대교를 정립하였고이 기간 동안 경전을 정리하여 구약 성서의 기초를 만들었는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앞선 화려한 문화를 체험하였고 페르시아 종교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절대적인 신을 설정하였으며...... 그 신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개념으로 인간사에 윤리성을 도입합니다.

 

고대 중근동에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곧 패배한 국가의 신이 승리한 국가의 신

에게 패배한 것으로도 여겨졌습니다즉 고대의 신앙관에 따르면 히브리 민족의 바빌론 유수는 야훼가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에게 패배 한 것으로 여겨져 히브리인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혼란을 주었을 것입니다.

 

유배 도중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가진 뛰어난 문화나 종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야훼 신앙이 흔들

리는 가운데야훼가 결코 메소포타미아의 신들 보다 뒤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신들로 여기던 해나 달과 같은 천체들은 히브리 민족의 신인 야훼가 만든 피조물에 불과

하다는 신앙을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고백했다고... 성서학자들은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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