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통합 게시판

러시아 1 - 바이킹에 의한 러시아에 최초의 노보고르드 공국!

작성자은혜|작성시간25.06.29|조회수242 목록 댓글 0

 

러시아 1 - 바이킹에 의해 러시아에 최초로 노보고르드 공국이 세워지다!

 

 

오늘날 전 세계에 분포하는 러시아인은 14천만명 정도로 같은 동슬라브족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루신인들과 함께  "루스인"  에서 기원하지만...... 고대 부터

러시아 영토의 우랄족 계통 원주민과 공존해 유전자 계통상 핀란드인 및 타타르와 가깝습니다.

 

 

러시아는 중세에는 불가르, 아바르, 하자르 등 튀르크 계열 민족의 영향을 받고 결정적으로

킵차크 칸국이 러시아를 지배하던 "타타르의 멍에" 시절에 몽골, 타타르와

적극적인 통혼으로 문화, 사회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 몽골- 타타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원래 러시아인이 있던게 아니고 혼혈로 만들어진 것인데.... 영국도 켈트족인 브리타니아인의 나라에서

로마의 침략과 지배를 받고 네델란드에서 게르만족인 앵글족과 색슨족이 침입해 현지 남자들을

죽여버리고 여자들을 취하니 앵글로색슨족인데...  바이킹 데인족이 침입하고 그후 노르앙디인들이

침략해 나라를 세웠고 또 프랑스 앙주인들이 침략해 왕조가 세워지는등 혼혈로 영국인이 만들어집니다.

 

 

유럽 민족은 크게 라틴족, 켈트족, 게르만족, 노르만족과 슬라브족으로 나뉘는데.... 라틴족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고 켈트족은 고대에 갈리아(프랑스) 와 브리타니아(영국) 이며..... 그리고

게르만족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와 네델란드, 영국이며 노르만족은 노르웨이, 스웨데느 덴마크라!

 

 

슬라브족은 서 슬라브인이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 이고 남슬라브는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및 크로아티아 이며 동 블라브 족이 러시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백러시아) 입니다.

 

 

러시아인이라면 차갑고 냉정하다고 여겨지는 국민성과 러시아 영토의 절반을 차지하는 시베리아가 합쳐져 금발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지만 러시아는 북서쪽으로 북유럽, 남쪽으로 중앙아시아, 동쪽으로 동아시아와 접하니

지역에 따라 대중들이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금발벽안 부터 흑발흑안 까지 모발과 눈동자 색깔 등이 매우 다양합니다.

 

 

이러한 다민족국가적 특성으로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인' 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로시스키예  (Российские)'

'루스키예 (Русские)' 를 구분하니.... '로시스키예는 국가구성원으로서 러시아 시민

이나 국가로서의 러시아를 뜻하고,  '루스키예' 는 루스, 즉 러시아의 원형 동슬라브 러시아 민족을 가리킵니다.

 

 

칼미크인, 체첸인에 빙상 성수인 안현수 같은 경우는 러시아 국민 (로시스키예) 이지만 러시아 민족

(루스키예) 은 아니며...... 러시아 연방이라는 국명 역시 러시아어로는

Российская  Федерация 이며 그리고  '로시스키예와 더불어  '로시야네‘  라는 표현도 씁니다.

 

 

러시아 밖에서는 옛 소련 지역에 많이 있으니 1991년 붕괴 이전에는 같은 나라였으니 당연한데, 특히 러시아

접경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 주로 거주하며 이 지역의 친러 성향이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의

원인이고 카자흐스탄에서는 20 ~ 30%의 주민이 러시아인이며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도 25%

정도가 러시아인인데, 리투아니아는 비율상으로 다른 발트 3국 보다는 적지만 러시아인들이 9% 정도 있습니다.

 

 

미국에는 3,000,000명이 넘는 러시아계 미국인이 살고 있으며 그외 캐나다, 호주,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핀란드, 튀르키예, 몽골, 대한민국, 일본 등에도 러시아인 공동체가 있습니다.

 

 

러시아에는 공국들만 난립할뿐 왕국이 세워지지 못했는데 8세기말 부터 스웨덴에 살던 노르드인(바이킹) 루스족

(Rus 바랑기아인) 이 바다를 건너 러시아땅에 도착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라도가 호수변에 요새를

건설해 정착하기 시작했으니, 처음엔 교역에 목적을 두었으나, 많은 노르드인들이 합류하며 세력이 강해집니다.

 

 

노르드인 (바이킹) 루스족은 강을 따라 내륙으로 진출해 토착 슬라브족들을 정복하거나 교류하며

정착지를 넓혀 나갔으니 침입자들이 세운 나라를 루스 카간국” 인데, 러시아(rus + sia)

는 루스족 (노르만 바이킹) 에서유래하니 루스인의 나라라는 뜻인데... 루스인을

달리 루시라고도 하며,  9세기 초중반에 루스족은 노브고로드 일대까지 진출하여 정착합니다.

 

루스인은 슬라브인, 추드인, 크리비치인, 메레인, 벱스인들에게 무리하게 공물을

받으려 하니, 토착 러시아인들이  모처럼 합심을 하여 저항했으니.....

마침내 이겨서 침략자이자 외지인인 루스인들을 북쪽으로 내쫓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후 현지 부족들 간에 지리한 싸움이 도저히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친 나머지 토착 부족들은

루스인 (바랴기) 을 찾아가 자기들 대신에 통치해 질서를 잡아주기를 청하니, “류리크

이끄는 루스인은 노브고로드역에 정착촌을 만들어 862년 노브고로드 루스 (노브고로드 공국) 를 건국합니다.

 

 

아니? 아무리 나라가 혼란스럽기로서니 침략자 이자 외지 이민족으로 말도

통하지 않는 자들에게 왕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 달라는게 우리

한국인들 사고 방식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 노르드인(북쪽 사람) 바이킹들은 정말로 대단한 미족이니.... 8세기경

부터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가  해적질에 종사했으니 북쪽으로

아이슬란드를 개척하고 멀리 그린란드를 거쳐 캐나도 동북해안에 이르렀습니다.

 

 

 

서쪽으로는 영국과 아일랜드를 수없이 침공해 지친 앵글족과 생슨족으로 부터 왕의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프랑스 서부에 상륙해 센강을 거슬러 파리를 공격하자 굴복한 프랑스왕은

금은보화와 공주에다가 땅을 떼주니 노르망디이며, 지배자는 노르만디공으로 브레타뉴까지 얻게 됩니다.

 

 

 

저 노르망디의 후손으로 공작 윌리엄은 2만명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쳐들어가서 앵글족과 색슨족을

무릎 꿇린후 잉글랜드 라는 나라를 세우니 오늘날 영국이고..... 또 노르망디의 기사들은 불과

수십명이 이탈리아 남부로 건너가 동로마 제국을 몰아내고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러니 이들 노르드인 바이킹(루스) 이 최초의 러시아 국가를 세웠다는게 별로 놀랍지도  않는데.... 

이  노브고로드 루스가 오늘날 러시아, 벨라루스(옛 백러시아), 우크라이나

3국의 공동 기원이 되는 나라니 러시아에서는 1862년에 건국 1,000주년 기념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마치 부여가 고구려와 백제의 공동 조상임을 떠올리게 되는데..... 최초의 노브고로드 루스는

루스인 (바이킹, 노르드) 들로만 구성된 나라였을 수도 있지만, 루스인들과

이들 보다 먼저 현지에 정착해 있었던 슬라브인이 함께 존재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루스인들은 일멘호에 있던 상업도시 노브고로드를 수도로 해서 중세 루스의 귀족

공화국으로 북 러시아의 모피를 무역하면서 1136년 부터 모스크바 대공국에

흡수된 1478년까지 존속했는데, 몽골 제국의 파괴로 부터 무사했던 몇 안되는 나라입니다.

 

 

원래는 크냐즈가 지배하는 '노브고로드 공국' 이었으나, 네바강 하구와 연결된

발트해 덕분에 상업이 발달해 러시아 의 민회라 할수 있는 베체와 시민

들의 입김이 강한 편이었으니.... 1136년에는 결국 시민들이 공작을 추방합니다.

 

 

그리고 시민의 이름으로 노브고로드 대주교를 선출할 권리를 얻어내는등 공화정화가 이루어져, 중세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시민이 공작, 시장, 대주교를 투표로 선출했으니... 노브고로드 공작은 이름만 공작이지 봉토를

따로 소유할수 없고 시에서 나오는 급여로 생활했으며 국가 수반 지위와 군사령관의 지위를 지니는 정도였습니다.

 

 

노브고로드 공화국만 그런건 아니고, 베네치아 공화국이나 제노바 공화국, 피사 공화국 등, 국가 원수와 시장을 시민

들의 투표로 선출하는 나라는 꽤 있는데, 저 나라들은 과거 로마 제국의 영토라 로마 공화국 시기의 전통이

어느정도 살아있던 나라들이고,  노브고로드는 그런 전통이 전혀 없던 러시아에서세워진 공화국이라 특이한 것입니다.

 

 

노브고로드는  남쪽 키예프 루스 (키예프 공국) 시절에도  수도 키예프의 중앙

집권화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반대파  집결지였으니, 때문에 키예프

루스에서 이반 4세까지의 역사를 보면 거의 정기적으로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노보고르드 공국은 페이푸스호에서 우랄에 이르는 북부 러시아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한 때는 모스크바 대공국과 패권을 다투었고 988년 키예프의 대공

블라디미르  1세가 정교회로 개종한후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국가 통합수단 역할을 합니다.

 

 

노브고로드 시는 도시 한 가운데를 볼호프강이 흐르는 교통의 요지인 특성상 무역이 매우 발달했다고 하는데, 키예프

루스 시절부터 흑해를 통해 수입된 동로마 제국과 오리엔트의 교역품들이 노브고로드를 거쳐서 발트해와

스칸디나비아 일대로 팔려나갔으니.... 도시는 교환된 모피와 밀랍, 꿀을 수운을 이용하여 흑해 방향으로 수출합니다.

 

 

중세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노브고로드는 주민 대다수가 방벽 안에서 거주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시내 인구가

지나치게 밀집해 있었지만 매일 화재가 발생한 모스크바와 달리 화재 방비시설 및 목재로 정교하게 포장된

도로, 송수관 체계 같은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었기에 인근 사람들이 노브고로드성에 입성하기를 바랬다고 합니다.

 

 

노브고로드인들은 주로 유틀란트 및 발트해 연안에서 시민들의 생필품으로 사용할 금속제품과 훈제 청어,

포도주, 맥주를 수입했으며, 영국과 플랑드르 인근에도 이들의 상업망이 뻗어있었으며

중요한 무역 상대였던 유틀란드 섬에는 노브고로드 상인들을 위한 정교회 성당이 두 개가 있었다 합니다.

 

 

하지만 13세기 후반이 되면 유럽에서 한자 동맹이 결성되고 노브고로드의 소형 선박들이

적재량이 훨씬 많은 한자 동맹의 대형 선박들에게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노브고로드인들은 어쩔수 없이 한자 동맹 독일 상인들에게도 특권을 허용해야만 했습니다.

 

 

노브고로드 시민들은 귀족들 뿐만 아니라 상인들이나 소작농까지 글을 읽고 쓸 수 있을 정도로

문해율이  높았지만 양피지는 비쌌기 때문에 자작나무 껍데기를 종이삼아

사용했다는데, 자작나무 껍데기에 기록된 문서들이 소련 시절에 대거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독자적인 영웅 서사시 문학도 발달했는데, 상업 도시였던 특성상 서사시의 주인공이 사업가인 경우가

많았으니.... 11~15세기에 작성된 중세 러시아 문헌들을 모은 책을 보면,

15세기에 러시아 본토에서 머나먼 지역인 인도에까지 다녀온 러시아 상인의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또한 베체 (Veche) 라고 하는 귀족과 대상인의 합의제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공 () ·

관리를 임명하고 재판권도 가졌는데, 세분화된 행정 구역과 합의제도

때문에 노브고로드의 정식 문서들은 때때로 8개의 인장으로 공증되어야 했다고 합니다.

 

 

노브고로드의 베체는 대체로 가장 큰 시장터에서 열렸으니 시민 누구든지 베체의 종을 울리면

베체가  즉시 소집될 수 있었는데.... 이러한 노브고로드의 정치 체제를 두고

노브고로드 공국을 노브고로트 봉건 공화제 ·  노브고로트 후국  (侯國이라고도 합니다.

 

 

노브고로드 인의 전초기지이자 위성도시 역할을 했던 프스코프 시 역시 베체를 비롯해서 노브고로드와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었었다고 하며, 노브고로드 시는 형으로 프스코프 시는 아우로 불렸다고 합니다.

 

 

11세기에서 15세기까지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계속해서 동쪽과 북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는데..... 확장한 영토의

북쪽에서 얻은 질 좋은 모피와 소금 등으로 안그래도 부유했던 지역이 경제적으로 훨씬 더 부유해졌다고 합니다.

 

 

또한, 노보고로드 공화국은 높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도 발달했는데, 12세기~15세기 가장 잘 알려진

동유럽 예술품들은 대부분 여기서 생산된 것이니 특히 예술품 중에서도

전통적인 슬라브 양식과 로마 제국의 양식,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결합된 이콘이 유명했습니다.

 

 

전성기에 노브고로드 공국은 주변의 발트-핀 민족들과 페름 민족들에게 조공을 받았으니 그 중에서

페름의 코미인 들은 노브고로드 공국의 모피 무역에 적극 참여했으며, 이 때 배운

노하우를 바탕으로  러시아 제국시대에 부유한 소수 민족으로 이름을 날리며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브고로드 공국이 모스크바 공국에 밀린 이유는 척박한 북부 러시아 중에서도 농업 생산성이

안 좋은 편이라 고질적인 식량부족을 겪었고, 중세 공화정 특성상 내부 정치 암투가 심했다는 것입니다.

 

 

말기에 들어 베체가 귀족층에 장악되고 경제적 부와 영토를 노린 주변국들의 침략이 빈번해진데다가 농민

봉기도 늘어나면서 완전히 흔들리기 시작했으니..... 1364년과 1370년에는 기근이,

1352년과 1390년과 1414년에는 전염병이 있었고 1359년과 1384, 1388년에는 농민봉기가 일어납니다.

 

 

이때 모스크바 대공국이 1332년과 1386년에 드미트리 돈스코이를 앞세워 맹렬하게 공격해왔으나 의외로

잘 싸워서 모두 견디어낸 노브고로드는 1456년 바실리 2세의 러시아 침략군에 결국 패배하게 됩니다.

 

 

1471년에는 노브고로드 공국에 회색 다람쥐 모피를 공급하는 부족들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정복되면서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무역 기반이 타격을 입고, 결국 1478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한 모스크바 대공국의 이반 3세에 의하여 나라는 망해 합병당합니다.

 

 

노브고로드 공국이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해서 세운 나라가 키예프 루스(키예프 공국)” 인데.... 주변 슬라브인

들을 복속하며 적극적인 팽창을 했기 때문에 슬라브인들이 피지배 계층을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보니,

지배계층은 루스인들이었고 노브고로드 공국과 키예프 공국은 노르드인들의 문화가 지배했던 나라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인에게 카자크(코사크)는 러시아와 차별되는 우크라이나 국가의 원형을 만든 민족이지만

러시아인에게 카자크는 러시아의 변경을 개척한 애국주의의 상징인데, 러시아 돈강의

돈 카자크(쿠반 카자크) 와 우크라이나 드네프르강의 자포로제 카자크로 대별되니 유사한

역사적 배경과 경로를 거쳐 '경계인 집단' 으로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 다른 역사적 길을 걷게됩니다.

 

폴란드의 지배를 받던 우크라이나 지방의 자포로제 카자크는 폴란드, 루스 차르국, 크림 칸국 및 오스만 제국

과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대립하면서 끊임없이 자립을 추구했으니, 폴란드는 자포로제 카자크를 폴란드

사회에 편입시키고 통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에는 카자크 및 왕국 내 루스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칩니다.

 

 

자포로제 카자크의 저항은 폴란드의 운명에 치명상을 입히고 말았으며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는데.... 러시아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카자크 헤트만국을 해체합니다.

 

 

그후  '소러시아' 관구를 설치했으니 이로써 자포로제 카자크의 역사도 종언을 맞았지만

저 자포로제 카자크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민족 정체성" 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돈 카자크는 일찌감치 러시아 치하에 편입되었고 어느정도 자치를 허용받는대가로 차르를 위해 복무하는

특수한 군사집단으로 변모했으니 군사적 카스트가 된 것인데, 폴란드가 카자크를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노력이 실패한데 비해 러시아는 성공했으니 돈 카자크는 러시아 제국의 선봉이 되어 영토팽창에 앞장섭니다.

 

 

돈 카자크는 기병인지라 카프카스,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는 물론 극동의 연해주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영토 개척(침략) 의 선봉이었으며.... 러시아가 크림칸국 및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할 때도 늘 선봉에

섰으며 훗날 나폴레옹의 침략때 게릴라전을 벌이고 프랑스군이 후퇴하니 추격의 선봉에 서기도 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