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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

우위안 10 - 왕구촌을 보고는 이갱 마을 구경을 나서다!

작성자은혜|작성시간20.02.14|조회수369 목록 댓글 0



우위안 10 - 강만진과 효기촌에 왕구촌을 보고는 돌아와 이갱 마을 구경을 나서다!

 


10월 24일 우위안 婺源(무원) 리캉 李坑(이갱) 에서 차를 타고는 전망대에서 왕구촌

(汪口村) 을 조망하고 강씨 마을 장완전 江弯镇(강만진) 에 도착해 오래된

옛마을을 구경하고 나와 10분을 달려 샤오치 (晓起 효기) 촌에 내려.....

골목길을 걸어 마을을 둘러보고 돌아오다가 유씨 집성촌 왕구촌 (汪口村) 을 봅니다.



오늘 호텔 사장이 모는 승용차를 280위안에 전세내어 가이드 겸해서 둘러보았는데 만약에

마을 버스 를 이용하자면 리캉 李坑(이갱) 마을에서 4~500미터를 걸어나가 대로 에서

무원에서 오는 버스 를 기다려서 타고는 20여분을 달려 장완전 江弯镇(강만진) 에 내립니다.



입구에 江弯旅客中心(강만여객중심) 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 장쩌민(강택민)의 조상

들이 살았던 유서깊은 강씨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오다가 강변에 내려서 왕구촌(汪口村) 을 보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여기 

리캉 李坑(이갱) 으로 돌아오는데 효기촌 은 대중교통이 없으니 찾아 가기 힘듭니다.




무원에서 리캉 李坑(이갱) 입구와 왕구촌(汪口村)을 지나 장완전 江弯镇(강만진)으로 가는

봉고 버스 20분 간격으로 하루 30편 있으며 40분 걸린다고 하는데, 물론

간대별로 엄격하게 운행하는 것은 아니고..... 손님이 없으면 도중에 한편씩 차가

빠질수도 있으니 그러면 하루 30편이 아니라 20편 심지어는 15편까지 운행될수도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우위안 婺源(무원) 에서 첫 버스는 06시 40분이고 막차는 16시 20분이며

장완전 江弯镇(강만진) 에서 첫 버스는 07시 20분이고 막차는 17시 라고 합니다.




 


리캉(이갱) 의 호텔로 돌아와 휴대한 전기남비로 점심을 해서 먹고 호텔을 나서서 개울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집이며 가게와 여관등을 구경하며 올라가는데... 갖가지

색깔의 우산 들도 예쁘고 또 돌이며 나무를 조각한 가구를 파는 가게들도 기웃거립니다.




이 마을 리캉 李坑(이갱) 은 같은 무원 에 속한 채홍교, 사계연촌 과 함께 중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향촌 으로 강서성, 안휘성, 절강성의 접경 지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명말청초 중국 상계를 주름잡았던 휘상의 발원지 로 부의 상징이였던 많은 고저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과 전원풍경이 조화되여 무릉도원 에 온듯한 느낌을 줍니다.




무원 에는 여기 여러 마을들 외에도 자연풍경구로는 대장산협곡, 문공산, 원앙호,

영암동굴 등이 있으며 완벽하게 보존된 고촌락은 효기, 강만,

이갱, 사계연촌 송나라 때 만들어진 채홍교(무지개다리) 가 볼만하다고 합니다.



 


차를 파는 가게를 지나 어제밤에 보았던 다리를 지나 올라가니 거기 큰 건물이 보이는데

大夫第(대부제) 라는 건축물로 150년전 청나라 함풍제 시대에 5품 벼슬인 대부를 지낸

이문진 이라는 사람의 옛 집이니 춘갈당 사당과 돌사자에 대나무 죽간 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이젠 장사하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大夫第(대부제) 를 나와 여관 열래객잔

지나니, 도장인지 글자를 새긴 단추 같은걸 구경하고 개천에 무심히 메어져 있는 배를

보는데 그 너머 작은 다리 위에는 노인 부부가 무료히 앉아 시간 을 보내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으니 어느 가게에 젊은 부부가 땀을 흘리며 뭘 만들고 있으니 떡과

과자 인지라 구경하다가 10위안 어치를 사서 다시 계속 골목을 따라 걸어 올라갑니다.




그러고는 우람하게 선, 아니 날렵하게 생긴 멋진 건축물을 보는데 이름이 申明亭(신명정)

인데..... 정자 라기 보다는 위치로 보아 이 마을의 북문 정도에 해당하는가 봅니다.




다시 멋스런 옛 건물 이 나타나는데 무슨 菜馆(채관) 이라니?  그럼 식당 인데

중국은 "반찬도 하나의 요리"  인지라..... 옛날에 백두산 이도백하

마을에서 콩나물 을 시키니 한 접시 가득 콩나물 요리 가 나오던게 떠오릅니다?




이어 개울에서 빨래하는 여자 를 스쳐 지나니 벼루와 붓을 파는 문방사우 가게이고 또

멋진 건물이 보이니 光明茶楼(광명다루) 찻집 인데, 길가에 어린아이가 보이니

대소변을 쉽게 하도록 엉덩이 부분이 오려진 옷 을 입고 있기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붉은색으로 칠한 紅仙客殘(홍선객잔) 여관을 지나 길은 오른쪽으로 구부러지고

이어 무슨 아주 오래된 건물을 보는데, 중국 CCTV 4에 방영 되었다니....




그럼 위치로 보아 이곳이 지아오 스프링 그러니까 蕉泉(초천) 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우물 인가 본데.... 지금은 식수용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금붕어 를 기르는가 봅니다?



그 옆에 자리한 고택 은 서기 850년 남송 흠종때 무과 최종 전시에서 1등을 했다는

李知成古居 (이지성고거) 라 들어가니 형광등이 없어 무덤속인양 캄캄한데도

그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을 보니..... 죽을 때 까지도 장사를 놓지 않을

사람들이니 세계에서 유대인과 더불어 양대 상인 이라는 중국인들 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불현듯 떠오르는게.... 한 60대 남자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조문객들이 서둘러 화장장으로 가는 버스 에 오르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은 이내

고인을 추억하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5분여나 흘렀을까...... 별안간 경쾌한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버스 텔레비전 모니터에 고인의 환한 생전 모습 이 비칩니다?



“안녕하십니까? 궂은 날씨 에도 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비록 먼저 다른 곳으로 가지만.... 사는 내내 '아름다운 동행' 이었습니다."



바로 유일한씨를 존경한다며 1억 기부자 명단에 올랐으며 자신의 재산을 우리사주 조합등

사회에 환원한 KSS 해운의 창업자 박종규 회장 인데 그는 유언장 도 남겼으니....



"나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니 이만하면 수지맞는 인생을 산 셈이다.

나의 행복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 탓이니 나의 장기는 모두 대학병원에

기부해라. 남은 시신은 화장하여 무덤을 만들지 말고 내가 한 평생을

함께 해 온 바다에 뿌릴 것이며..... 며느리 고생시키는 제사는 지내지 마라."



"아침에는 번잡하게 모이지 말고 각자의 집에서 꽃 한송이 꽂아놓고 묵념 추도

대신할 것이며 저녁에는 식당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하며 형제들끼리

우애를 나누어라. 그리고 이런 추도도 너희 대 까지만 하고 손자 대 까지는

물려주지 않도록 해라.... 그동안 너희와 함께한 세월 이 참으로 '행복' 했단다!"



우리 선인들도 죽은 후에 사용할 묘비명 을 스스로 미리 쓰는 "自銘(자명)"

통해 "삶의 의미" 를 구했다고 하지 않던가요..... KSS 해운의 윤장희

사장은 "창업자 박종규 회장" 에 대해 언론사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장인 내가 일본 도쿄사무소에 가도 공항으로 마중 나오는 직원이 한명도 없습니다.

나 역시 도쿄 사무소장 시절 박종규 사장(현재 고문) 이 오셔도

나리타 공항에 한번 나간 적이 없어요. 마중 나가는 시간, 비용 을 생각하면

얼마나 아깝습니까?  윗사람 마중하는 일이 없다는 것, 그게 우리 회사 문화 예요.”



“‘KSS 해운 에는 없는 것이 참 많다’ 는 기자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윤 사장은

1974년 이 회사에 공채 1기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으니 회사를 알 만큼

아는 사람이다. KSS 해운은 1969년 설립된 가스와 화학제품 같은

특수화물 전문 해운업체 ‘없는 것이 많은 참 특이한 회사’라는 평을 듣는다”



“ 우리 회사는 38년째 노사분규가 없습니다. 노조는 있지만 분규 한번 없었죠. 직원들이

대부분 회사 주주(우리사주 12.5%) 인 데다, 오랜 세월 가족 같은 문화 를 이어왔기

때문이겠죠. 거짓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경영진이 알아서 잘 해줍니다. 딴 비결은 없어요.”



장부 조작도 없어요. 자신하건대, 거짓말이 전혀 없습니다. 저희 회사는 처음

부터 고객(화주) 에게 리베이트를 준 적이 없어요. 요구하는 곳이 있으면

다른 회사 알아보라고 합니다. 창업자 부터 지켜온 원칙 입니다.

위가 깨끗하면 아래도 그렇게 됩니다.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깨끗함’입니다.”




“KSS 해운은 사옥도 없다. 돈을 못 벌어서? KSS 해운은 지난 10년 연속 흑자 다.

매출은 지난해 841억원으로 해운업계에서는 중상위권이지만,

당기순이익은 189억원으로 매출액 대비 비율로 따지면 업계 1위다.

사옥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쓸데없는 데 투자 안 한다”는 이유 때문 이다.“



사시나 사훈도 없다. ‘그런 거 있다고 회사 잘되느냐’는 게 윤 사장의 얘기다.

오너의 경영 간섭도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

이기도 한 창업자 박종규 고문은 3개월에 한 번 정도 회사에 나온다.

모든 것을 전문 경영인 에게 맡겼기 때문이며..... 경력 사원을 뽑지 않는다.



“예전에 조선소를 해보려다 쫄딱 말아먹은 적이 있어요.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를  했는데 비싸게 데려오다 보니 문제도 있고.... 보기도 안 좋고 해서

우리가 인재를 키우자는 것이 창업자 마인드였어요. 그러다 보니 회사가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더라고요. 일단 윗사람과 아랫사람 언로가 뚫려있습니다. ”



“KSS 해운은 지속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왔으며 효율적인 원가 관리로 이익률

 높습니다. 그리고 유훈 경영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장두찬 회장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전문경영인으로서 권리를 확실히 행사합니다. 경영자로서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오너는 물론 부친의 뜻을 아는 자제들도 전혀 간섭하지 않습니다



미국 유명 부호가 죽었다는 신문 기사가 오보로 났는데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돈에 집착한

수전노 라고 평을 한 기사를 읽고는 놀라움에 깨달아서 자선 재단 을 만들었다던가요?



그런 사람중에 한명이 다이나마이트 화약의 개발자 "알프레드 노벨" 이니 바쿠유전을

개발해 성공한 형인 루트비히 노벨 죽었는데, 프랑스 언론에서 "착각" 해서는

사람을 더 많이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돈을 번 죽음의 상인 저승으로

 떠났다”라는 비판 기사를 보고는 크게 깨달아 만든게 바로“노벨상”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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