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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여행

하마마쓰 2 - 하마마쓰성에서 전란으로 지샌 센고쿠시대를 회상하다!

작성자은혜|작성시간19.08.05|조회수463 목록 댓글 0



하마마쓰 여행2 - 하마마쓰성에서 전란으로 지샌 센고쿠시대를 회상하다!

 


3월 31일 아이치현 동부 도요하시 에서 신칸센 기차를 타고 8시 47분 하마마쓰역(浜松駅)

에 도착해 코인로까에 배낭을 넣고는 광장으로 나오니 선전판이 많이 보이는데.....

“おんな城主直虎 大河 どドラマ 館”이라? 우리 말로는 “여자 성주 직호 대하드라마관 ”

이라고 되는 것이라면 直虎(직호) 는 "나오토라”이니.... 여주인공의 이름 인가 보네요?


 

여배우 시바사키 고우 가 주연을 맡은 NHK 사극 드라마 로 “直虎 이이 나오토라”

센고쿠(戰國) 시대에 여성 영주 로 도토미 이이노야 (遠江井伊谷, 하마마쓰시)

고쿠진(國人 무사) 이이 씨의 당주 를 지냈고 이이노야 덕정령 등 내정 수완에

뛰어나 "여지두(女地頭)" 로 불렸다는데 이이 나오마사 의 양어머니 역활을 했다나요?



 그러고는 하마마쓰역 광장으로 나가 14번 승차장 (다른 버스는 7번과 12번) 에서

쿠루루 (くるる BUS 西ル-プ) 시내 순환 버스 에 오르는데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1회 100엔, 1일권은 200엔 이니 관광객에게는 딱입니다!



쿠루루 버스 くるる BUS 를 타고는 시청 에 내려서 도로를 건너서 시청 을 지나

언덕길을 100여 미터 걸어 올라가니... 하마마쓰조코엔 浜松城公園

(빈송성공원) 인데, 그 중심은 하마마쓰조 浜松城(빈송성) 로 성을 둘러싼

360 그루의 벚나무 가 꽃을 피우면 환상적이라지만 제대로 피지 않아 아쉽습니다?



그런데 하마마쓰성 으로 들어가는 입구 마당에 자리가 펼쳐지고 나이든 노인 스무명

먹을 것이며 술을 나르는데 보자니 봄철 벚꽃 구경 하나미( 花見 はなみ)

왔는데 벚꽃이 피지 않았고 비가 내리며 바람이 센 궂은 날씨에도 강행할 모양입니다?



500엔을 내고 하마마쓰성 텐슈가쿠 로 들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 치른 전투 영상물을

보는데... 나고야에서 도쿄에 이르는 길(지방)을 도카이도(東海道 동해도) 라고 하니

아이치현과 시즈오카현으로, 아이치현 서부는 나고야 오와리국 이고 동부는 미카와국

이며 시즈오카현의 서부는 하마마쓰 도토미국 이고 동부 시즈오카시는 스루가국 입니다.



하마마쓰성 浜松城(빈송성)은 하마마쓰시에 있는 평산성으로 에도시대 하마마쓰번의

번청이 있었으며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거성 인데 1510년경 도토미국

이마가와 사다스케 사나루호수 동쪽 구릉지에 성을 쌓은 것이 시작으로

그후 성주들이 계속해서 증축을 하니... 히쿠마성(曳馬城) 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도토미국의 슈고 시바 가문과 스루가국 슈고 이마가와 가문의 세력다툼에서 히쿠마 성주

오코치 사다쓰나 는 시바 가문측에 가세해 이마가와 가문에 대항하지만, 이마가와

우지치카에 패배하여 1517년 자결하니 이마가와의 가신 이오 노리쓰라가 성주 가 됩니다.



 1467년 오닌의난 이래 200여개 국가로 갈라진 일본을 통일 하려는 자가 있었으니...

1560년 스루가국의 이마가와 요시모토 가 이끄는 2만5천 대군이 오와리국 나고야

침략했다가 오다 노부나가 군의 기습에 의해 오케하자마 계곡에서 전사 하니

스루가 군대는 주군을 잃고 철수할수 밖에 없었으며 이마가와 가문은 쇠퇴 하게 됩니다. 



이마가와 가문이 쇠퇴하자 하마마쓰 지방의 토착 세력인 이이 가문이 반기 를 들게되는데

하마마쓰 성주 이이 나오치카 는 1563년 이마가와 우지자네 에 의해 슨푸성에

소환되어 살해 되니... 히쿠마성성주 미망인 을 중심으로 지키게 되는데, 그 어린

아들 이이 나오마사 는 살아남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천왕이 되고 히코네성 을 쌓습니다.



나가노로 쳐들어가 영주들을 제압한후 에치고국 우에스기 겐신 에게 발목을 잡혀 20년간

고된 전쟁을 치른 가이국의 다케다 신겐 이 드디어 1568년에 후지산을 넘어 남하해

스루가국 이마카와씨를 공격해서 시즈오카현 동부 를 차지하니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에 호응해 군대를 움직여서는 서부 인 여기 하마마쓰가 속한 도토미국 을 손에 넣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는 미카와국 오카자키성주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호족이었던 마쓰다이라

가문은 할아버지 기요야스 시기에 영주 가 되지만 전사하자, 히로타다가 뒤를 이었으나

당시 10살 에 불과한지라 오와리의 오다 가문과 스루가의 이마가와 가문 양 강대 세력

사이에 끼여 불안정한 처지에서 이마가와씨의 후원으로 성주 가 되니 속국의 처지 입니다.



오다이 가리야 성주 미즈노 타다마사의 딸로 14세에 오카자키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

에게 시집와서 이에야스를 낳는데... 친정 아버지가 죽고 가리야 성주가 된 오빠 미즈노

노부토모가 오와리국으로 돌아서자 이마가와씨가 압력을 넣어 이혼을 강요하니 이에야스

3살때 어머니 오다이와 헤어지는데... 6살때 아버지 마저 암살당하자 인질 로 가다가

오다 가문에 납치당했다가 인질교환으로 8살때 스루가국(시즈오카) 에서 인질생활 을 합니다.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씨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패한 후에 오카자키성으로

돌아와 자립 미카와 통일을 이룬 이에야스는 오와리국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 을 맺은후

1568년 가이국 다케다 신겐의 제의를 받아들여 시즈오카의 이마카와씨 를 공격해

다케다가 동부 스루가국 을 그리고 이에야스는 하마마쓰가 속한 도토미국 을 차지합니다.




이에야스 는 1570년 도토미국 히쿠마에 하마마쓰성을 쌓아 오카자키성은 노부야스에게 주고

본거지를 옮기는데... 노부나가가 교토 상경에 성공후, 요구대로 군대를 이끌고 상경해

아사이 및 아사쿠라 가문과 싸우는 중에 1571년 부터 다케다 가문의 침략 을 받게되는데

다케다 신겐 은 교토로 올라가 아시카가 막부를 대신해 일본을 제패하려는 야심을 가졌으니!



1467년 무로마치 막부 쇼군 후계자 자리를 두고 내란인 오닌의난 이래 일본은 수백개 나라로

갈라져 전쟁으로 날을 지새는데 오다와라의 호죠, 에치고의 우에스기, 시코쿠 조소카베,

히로시마의 모리, 규슈의 시마즈에 교토로 올라가 일본을 다스리겠다는 센고쿠 다이묘가 둘

있었으니 후지산 북쪽 가이국의 다케다씨 와 남쪽 스루가국(시즈오카)의  이마카와씨 입니다.



그런데 다케다 신겐 이 교토로 가는 길목인 시나노(나가노)로 진출해 10여명 군소 영주들을

제압할 때, 북쪽 동해(일본해) 에치고국의 우에스기 겐신 이 남해해 10년간 5차례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이는 동안.... 1560년 스루가국(시즈오카) 의 이마카와씨

상경하다가 오케하자마 전투 에서 전사하니 새로 오다 노부나가 가 교토를 차지하게 됩니다.



교토 무로마치 막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 가 노부나가를 반대하는 세력 규합을 촉구하자

가이국(야마나시)의 다케다 신겐이 호응 하니 시나노(나가노) 를 평정한 신겐은 동쪽

오다와라의 호조 가문과 동맹을 맺고 창끝을 서쪽으로 돌려 도토미와 미카와를 침공 합니다.



오와리국의 노부나가 는 아사이 · 아사쿠라 · 혼간지 세력의 포위망 속에서 고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후원하지 못하다가 도토미 땅이 다케다 신겐의

손에 들어간 후에야  비로소 사쿠마 노부모리를 대장으로 3천명의 원군 을 보내 옵니다.



1572년 다케다 신겐 도토미국·미카와국·미노국 3방면으로 침공하니 야마가타 마사카게

5천은 미카와로 침공해 나가시노성을 공략한후 도토미국으로 진입하고, 야키야마

노부토모 5천은 미노에 침공해 오다 가문의 이와무라성을 포위하여 11월 초순 함락 시킵니다.



다케다 신겐의 본대 2만 2천 은 10월 3일 가이국(야마나시현) 고후에서 출진해

도토미국으로 침공해 바바 노부하루 가 이끄는 5천 별동대에게 서쪽

다다라이성을 공략하게 하고 본대는 남진하여 요충지 후타마타성 으로 향합니다.



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는 일부 병력을 미카와 본국 에 남겨서 야마가타군의 침공을

방어해야 하는지라... 이 전투에서는 8천을 집결 하니 오다군 사쿠마 부대 3천을

합쳐 1만 1천 인데... 다케다군은 2만 7천 군세로 하마마쓰성 으로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케다 군대는 하마마쓰성에 접근했으나 공격 없이 그냥 지나쳐 가자 1572년 12월

이에야스는 성을 나와 뒤를 쫓는데, 오다군의 사쿠마 노부모리는 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야전에서의 결전을 반대 하고 농성 을 주장했으나 이에야스가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1572년 12월 이에야스 는 하마마쓰성을 나와 다케다군을 저지하니 미카타가하라 전투 인데

일본 최강의 기마군단 다케다군 과 전투를 벌여 학익진 을 펼쳤으나 어린진 으로

공격해온 다케다군에게 중과부적으로 돌파 당하니 싸움은 이에야스군의 대패 로 끝납니다.



 전투가 벌어진지 두시간도 되지않아 아군 진영이 돌파당한지라 이에야스 는 전사하기

직전에 몰렸는데, 나쓰메 요시노부 이에야스의 대역(카게무샤)맡은 사이

이에야스는 몇 안되는 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간신히 하마마쓰 성 으로 되돌아 옵니다.



이에야스는 다케다군 기마대 의 무시무시한 돌격을 맞아 패하면서 얼마나 식겁 했는지...

"바지에 똥을 쌓다" 고 하며 패배를 상기하기 위해 고뇌에 찬 표정 을 생생하게

 그린 초상화 를 만들어 옆에두고 곱씹어 보았다는데 이후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이에야스는 공성계 를 써서 성문을 활짝 열어젖혀 놓으라고 명령하고는

지친탓에 쓰러져 잠들었다는데 다케다군의 야마가타 마사카게 가 추격해왔다가 성문이

열린데다가 고요하니 흉계가 있다고 지레 짐작하고 물러가니 요행으로 목숨을 부지합니다.



이에야스군을 격파하고 교토로 향하던 다케다 신겐 은 미카와국 야다성을 공략하던중

1573년 4월 갑자기 "진중에서 병사" 하니,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최대 위기

사라진 것이라.... 이 기쁜 소식을 들은 오다 노부나가 사흘간 잠만 퍼잤다나요?




다케다 신겐 이 죽으면서 남긴 絶命詩 (절명시) 입니다.

大ていは地に任せて肌骨好し 紅粉を塗らず自ら風流

“대부분 땅에 맡겼으니 몸을 쉬고 싶다. 꾸밀 것 없이 내 인생은 풍류였도다.”



하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이런 뜻이라고도 합니다. 

“뒤는 남은 자들에게 맡긴다. 꾸미지 않아도 빛나는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




다케다 신겐 은 10여명의 영주들이 할거하던 시나노(나가노) 를 침략해 1542년 스와를 손에

넣은후 10년간 시나노의 80% 를 점령했는데 에치고국(니가타) 우에스기 겐신 이 남하하니

1553년 부터 1564년 까지 5차례 가와나카지마전투 를 치르며 발목이 잡혔는데 우에스기가

아니었으면 다케다씨가 오다 노부나가 대신 교토를 차지해 일본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며

노부나가의 부하 히데요시 따위가 권력을 잡지 못했을 것이니 임진왜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 최고의 명장 다케다 신겐이 병사 한지라 다케다군은 일단 본국인 가이국(야마나시)

으로 후퇴했으나 병력은 온존한 상태였기 때문에 후계자인 다케다 가쓰요리

군을 이끌고 도토미와 미카와국으로 진출해 이에야스 와 싸우는데 신겐이 없는데도

공세로 나온건 도쿠가와측이 신겐의 죽음을 눈치챌까 불안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1980년 소재로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의 영화 카게무샤(影武者) 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하는데...  다케다 가쓰요리는 도토미를 재차 침공하여 1574년에 신겐도 함락하지  

못했던 난공불락이라는 다카텐진성 을 손에 넣기도 했으나 1575년 상황이 바뀌니...

5월에 이에야스오다군과 연합 하여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군에 대승 을 거둡니다.



나가시노 전투 는 1575년 5월 21일 미카와 나가시노성에서 노부나가 3만에 이에야스 8천과

다케다 가쓰요리군 1만 5000명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로 철포(화승총) 3000자루를

준비하고 신 전법인 3단 발사 를 실행한 오다군 에게 다케다군 기마대가 전멸한 전투 입니다.



나가시노성에는 도쿠가와군의 사다마사 가 200자루의 철포를 가진 500명으로 방어했는데

원군을 요청하러 내보낸 가신 도리이 스네에몬 이 귀로에 다케다 군에게 붙잡히자

다케다군이“원군은 오지 않는다.”라고 전하면 살려준다고 제안하니 승낙 하고는

정작 밑에 가서는 “원군은 수일내에 오니 항복말라.”라고 외치고는 처형 당합니다.



노부나가군 3만과 이에야스군 8천 은 시타라가하라에서 렌고강을 수로로 방어진 구축에

힘써 강을 사이에 둔 대지 양쪽 경사면을 깍아내 인공적인 급사면으로 3중의

토루(土塁) 에 마방책 을 배치하고 뒤에 철포대 를 주력으로 수비진지를 구축 하였습니다.




다케다군의 야마가타 마사카게, 바바 노부하루 등은 숱한 전투를 치른 역전의 명장 으로

노련하니 전세를 살피고는 노부나가가 직접 출진한 것을 알자 수하자고 진언 하나

 분별심을 잃은 가쓰요리는 결전 하기로 결정하니... 나가시노성 견제에 3000을 두고

1만 2000 을 시타라가하라 로 향하자 중신들은 패전을 예감하고 결별주 를 마셨다 합니다.



5월 20일 밤 사카이 다다쓰구 는 3천으로 나가시노성을 포위중인 다케다군에 기습을

감행해 성공하는데, 작전회의 도중 다다쓰구가 이를 제안 하자 노부나가는 바로 

거절하며 심하게 핀잔 을 주고는.... 회의후 따로 몰래 다다쓰구를 불러내어

오늘밤 바로 출진할 것을 명했으니 진중에 첩자가 있을 것을 염려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5월 21일 다케다군 기마대 가 오다와 도쿠가와군 진지를 공격했으나 노부나가가 고안한

철포 3단 연속 사격전법 방책에 걸려 몰살 당하니 8시간후 전투가 종결되는데

연합군은 병사 6000명 이 전사했으나.... 다케다군은 1만 2000 이 전사했는데 

문제는 야마가타, 나이토, 바바, 하라, 사나다등 다케다군의 대장이 모두 죽은 것입니다.



다케다 가쓰요리 수백명 하타모토 에게 보호받으며 다카토 성으로 후퇴하여

동해(일본해) 의 에치고국(니가타) 우에스기 겐신 과 화친을 맺고는... 

 고사카 마사노부가 이끄는 우에스기 부대와 합류 후에 가이국 고후로 퇴각 합니다.


오다 연합군은 3000자루 철포대를 3대로 나누어 총구청소, 총알과 화약장전, 조준 발사로

 총탄을 채우는데 허비시간을 없애는 3단 연속발사 로 다케다 기마대를 전멸시키는데

17년후 고니시가 탄금대에서 이 전법으로 신립의 조선군 기마대를 전멸 시키게 되니,

신립은 조총은 한번 쏘고나면 장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그 사이 기병이 돌격해

적진을 뚫으려 했으나 3단 사격법에 무느지니 적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조선군은 강물에 빠져 죽으니 전투는 반나절만에 끝나는지라 구경하던 가토 기요마사군

거들 기회조차 없었으니 피해가 거의 없는 고니시군 과 서로 북진 경쟁 에 나서는데...

조선군 기마대는 창을 들고 돌파하는 중기병이 아니고 달려가다가 활을 쏘고 물러나는

경기병 인데, 무과 시험에 병법서와 기마술 및 활쏘기 3가지뿐이니 평생에 칼과 창을

한번도 잡아보지 않은 자도 무과에 급제할수 있었으니 근접전을 꺼리고 원거리 활쏘기 라!



다케다군을 전멸시킨 오다 노부나가 는 이후 오사카의 이시야마 혼간지 제압하였고

도쿠가와도토미를 완전히 장악해 후타마타성과 다카텐진성을 되찾는데 성공하며

나가시노 성주 오쿠다이라 사다마사 는 전공으로 노부나가가 자신의 이름중 한 글자인

노부(信) 자를 하사하여 “信昌(노부마사)”로 개명하고, 이에야스 장녀 가메히메

얻어 정실로 맞이하니 후대에까지 영지를 보장받아 후손들은 메이지 시대까지 번창 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하마마쓰성을 쌓은건 1570년으로 정실 2명과 측실 8명에서 11남 5녀

를 생산하는데 1579년 4월에 측실 사이고 노쓰보네는 3남 히데타다 를 낳으니 1595년에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의 3녀 고우와 결혼해 1605년 에도막부 2대 쇼군 에 오릅니다.




이에야스는 부인 10명에 자녀가 16명이니 일본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부인과 자녀가 많은 특이한 경우지만... 조선의  세종은 13명의 부인에게서 25명, 

태종이 29명, 성종 28명, 선조 25명, 정종 23명에는 미치지 못하는데, 서자로 3남인

히데타다후계자가 된건 하마마쓰성에서 그가 태어난해 9월에 장남 노부야스

이에야스의 정실 이마가와 가문 출신 어머니 쓰키야마도노와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으며 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 를 며느리로 맞았는데

이마가와 가문 시어머니 는 이에야스가 오다편이 되니 아버지가 할복한 원한으로 오다

가문 며느리와 사이가 좋지못하니 며느리가 친정에 시어머니가 다케다 가문과 내통 한다는

소식을 전한 때문에 노한 노부나가 가 할복을 명하니 이에야스가 처와 장남을 죽인 것입니다.



할복자결한 노부야스 의 딸 구마히메 는 하리마국 히메지번 초대번주 혼다 다다마사 에게

출가하는데, 2대 쇼군 히데타다의 딸 센히메 도요토미 히데요리 와 결혼했다가

이에야스가 오사카성을 공격하니.... 시어머니 요도기미와 남편이 죽은후 극적으로

구출되어 혼다 다다토키와 재혼 하니 시어머니 구마히메 는 촌수로 보면 친 사촌 이 됩니다.



이런저런 엣날일 을 회상하다가 하마마쓰조 (浜松城 빈송성) 성을 나와서는....

전통적인 일본정원 이며 또 안도 히로시게 를 중심으로 한 우키요에

판화 및 유리에 그린 향토 작가의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 을 볼까 망설입니다.




도요하시 를 출발해 하마마쓰와 시즈오카에 아타미 세 도시를 보는 빡빡한 일정이라 시간이

없으니 공원을 가로질러 대로로 나가 도로를 건너 쿠루루 버스 くるる BUS 서부노선을

타고 하마마쓰 악기 박물관 을 보러 가는데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과 한국, 중국, 동남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등 전세계 1,300점악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연주 도 가능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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