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 3 - 칼람바카에서 버스로 메테오라에 가서 “대 메테오라”에 오르다!
2024년 5월 3일 델피(델포이)에서 6시 30분에 출발하는 리미아행 버스를
타고 산을 내려와 바닷가 마을을 거쳐 암피사 ΑμΦσαα 와
보이오티아에 테르모필레를 지나 3시간만에 라미아 Λαμία 에 도착합니다.
델포이에서 메테오라 가는 버스는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하는 한 편이 전부인데,
1) 델포이 - 라미아 Λαμία (9.9 유로 : 암피사 ΑμΦσαα 에서 환승할 수도)
2) 라미아 - 트리칼라 ΤΡίκαλα (12.9 유로)
3) 트리칼라 11시 15분 - 칼람바카 Kalambaka Καλαμπακα (2.6유로)
라미아에서 칼람바카행 버스는 모두 매진되었기로 벨기에인 노부부와 함께 170유로 하는
택시를 타고 1시간 반을 북상해 칼람바카 Kalambaka Καλαμπακα 에
도착하니 우리 숙소는 단독주택이라 배낭을 멘채 5.5 유로 하는 1일권 버스표를 끊습니다.
Information Center 가 있는 칼람바카 시청앞 분수대에서 2블럭 남쪽에 떨어진 한가한 도로변에
KTEL(ΚΤΕΛ) BUS 정류소는 메테오라 Meteora 행 버스 뿐만 아니라 아테네등
장거리 버스도 출발하는데 10시 45분 버스를 타고 20분을 달려 대메테오라 수도원에 도착합니다.
메테오라 Meteora 행 버스 는 하루 4번 있으니 칼람바카에서 09시, 10시 45, 12시 15, 14시 45분
이며 카스트라키 마을(성모 마리아 비잔틴 교회) - 성 니콜라스 아나파프시스 수도원 -
루사누 누네리 수도원 - 바를람 수도원 Varlaam Monastery - 대 메테오라 수도원
Megalo Meteoro Monastery - 트리니티 수도원 - 스테파노 수도원 Monasteryof St. Stephen 입니다.
메테오라에서 칼람바카로 돌아오는 버스는 하루 3번으로 11시 25분, 13시 20분, 16시 이니,
성 스테파노 수도원 - 트리니티 수도원 - 바를람 수도원 Varlaam Monastery -
대 메테오라 수도원 Megalo Meteoro Monastery - 루사누 누네리 수도원 - 성 니콜라스
아나파프시스 수도원 - 카스트라키 마을(성모 마리아 비잔틴 교회 - 칼람바카 Kalambaka 입니다.
계곡 오른쪽은 건너편은 대 메테오라 수도원이고 왼쪽 건너편은 발람수도원인데 지근은 관광객의 편의
를 위해 절벽에 계단과 동굴을 만들어 편하게 오르내리지만.... 옛날에는 저 험한 절벽 틈새를
기어 오르거나 아닌 위에서 내려주는 밧줄에 매달린 대나무 통에 앉아 도르레로 끌어 당겨야만 했습니다.
주변 30Km 들판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위에 새워진 수도원이 있으니 메테오라(Μετέωρα, Meteora)
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 '하늘의 기둥'이라는 뜻인데, 작은 도시 칼람바카 내의 지역명이랍니다.
공중 수도원은 15세기 말에는 24개였지만 현재 일반인들의 방문이 허용되는
수도원은 모두 여섯 개로...... 먼저 대 메테오라 수도원에 오르기로 합니다.
주차장에서 수도원으로 접근하려면 경사로를 내려가 146개의 단이 있는 돌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이 돌계단과 입구에 있는 굴로 된 통로는 1923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돌계단이 끝나는 수도원 입구 왼쪽 아래에 작은 동굴 하나가 있는데 이곳이
성 아싸나시오스가 14세기에 수도원을 건립하기 직전에 거주하며 수행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린 배낭을 메고 있는 상태라 이걸 메고 저곳을 오를수는 없으니 마눌에게 배낭을 지키며
쉬라고 이르고는 혼자 게곡으로 내려가서는 계단과 동굴을 통해 대 메테오라
수도원으로 올라가는데..... 오늘(금요일) 은 왠일인지 3유로 하는 입장료를 받지 않네요?
대 메테오라 수도원 Megalo Meteoro Monaster (Μονή Μεγάλου Μετεώρου 은 화요일이 휴무로
각 수도원은 저마다 돌아가면서 다른 요일에 쉬는데 대 메테오라 수도원은
14세기에 세워진 절벽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으로써 그리스 정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곳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의 수는 점차 늘어났고, 이 곳은 '메갈로 메테오로' 즉 <거대한 메테오로>
라고 불리며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수도원으로 발전해 나갔으니 가장 크고 높으며
(해발 613m) 오래된 수도원으로 14세기 성 아타나시오스(Athanasios) 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성 요아사프(Joasaph) 는 원래 이름은 요아니스(Ioannis)로 세르비아의 왕자
였으나 22세에 수도사가 된 인물이며.... 이 수도원은 1490년에 메테오라에
있는 모든 수도원을 총괄하는 수도원으로서 '대메테오라' 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방에서 엄철 큰 쇠로 장치를 만든 도르레가 설치된 것을 보는데.... 오늘에야 우리 관광객들은
절벽에 바위 계단을 만들고 동굴을 뚫어 돌게단을 낸 덕분에 편히 올랐지만 예전에는 절벽에
오르는 길이 없으니 도르레로 바구니를 내려서 물자는 물론이고 수도사들도 실어 올렸다고 합니다.
1453년에 술탄 마호메트 2세가 이끄는 오스만 터키에 의해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며 그후 아테네도 1458년에 터키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고, 1503년에는 그리스 전역이 완전히 오스만 제국의 주로 되었습니다.
터키인의 그리스 민족 지배는 1821년의 ‘반란’ 이 있기까지 400년간 지속되었으니 오늘날
까지도 ‘터키의 멍에’ 라고 말해지는데, 1700년 까지 그리스인의 인구가 4분의 1이나
감소했다는 사실은 오스만 제국의 압정이 얼마나 극심했던 가를 잘 알게 해주니
18세기 전반 까지 그리스인은 토지를 갖지 못한 소작농민이거나 노예의 신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슬람교 터키인은 그리스어로 교육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터키어를 강요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정교를 정신적인 지주로 삼으면서 민족적인
자존을 지켜나갔으니 교회 지하에서는 밤이면 ‘비밀학교’ 를 열어 그리스어와 민족정신을 전수했습니다.
1669년에는 베네치아의 지배하에 있던 크리티(크레타) 섬도 마침내 함락돼서
터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는데, 이탈리아반도 쪽인 이오니아해의
7개 섬 만은 유럽 제국과의 충돌 우려 때문에 터키 지배권에서 벗어났습니다.
18세기 그리스는 농업경제였는데 유럽이 공업제품의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려고 그리스
에도 손을 뻗쳐 상인들이 찾아 들면서 그리스 농산물들도 활발히 팔려 나가게됩니다.
이후 그리스에는 각국 영사관이 설치되었으며, 유럽과의 교역이 이루어지며 데살로니키,
이오안니아, 라리사, 이드라 섬 등의 지역들이 번창하면서 상선도 늘며 부유해집니다.
18세기 후반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 제국 간에 1768년~1774년, 1787년~1792년 전쟁이 발발
하니, 그리스인의 해방을 원하는 욕구는 반란이 되어 펠로폰네소스 반도 전체로
확산되었으니 그리스 상선은 러시아의 보호 아래 러시아 국기를 사용할수
있게 되었고 19세기에 프랑스혁명의 자유주의의 사상이 파급되어 해방 기운이 고조되어 갑니다.
마침내 러시아 항구 오데사에‘헤타이리아 필리케(동지회)’라는 그리스 상인의 조직이 결성
되었으니 알렉산드루 입실란티 장군을 지도자로 하는 해방조직인데, 1821년 2월
마르다비아에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 가서 혁명을 선언했고 3월 펠레폰네소스
반도에서도 비밀 조직과 연계를 맺고 있던 파파프레사스를 중심으로 반란이 발발합니다.
혁명은 그리스 전역으로 확산되는가 싶었지만 펠레폰네소스 반도, 중부 그리스 그리고 에게해 일부 섬의
해방에 그치고 말았는데, 1821년 3월21일 펠레폰네소스의 칼라브리타에서 선언된 혁명은 파트라스와
칼라마타, 에게해의 이드라섬으로 번지던중 1822년 그리스 해군이 히오스섬에서 터키 군함을 침몰
시키자 터키군은 보복으로 히오스 섬에서 무참한 학살을 감행하니 23,000명 살해에 47,000명 포로 입니다.
그리스의 반란에 무관심했던 유럽 제국들도 히오스섬에 터키군의 무참한 학살에 대해서는
비난의 여론이 거세지자, 1824년 오스만 터키는 이집트와 조약을 맺고 전투를 개시합니다.
이집트군은 크레타섬의 혁명을 진압시키고 카소스 섬을 공격했고 터키군은 프사라섬을 초토화
시켜 22,000명을 학살하니....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개입해 그리스의
자치를 확보했으며 3국 연합함대는 나바리노 해전에서 터키, 이집트의 양 함대를 격멸합니다.
1829년 터키와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콘스탄티노플에 군대를 파견하여 단독으로‘그리스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하자 ‘위기’ 라고 감지한 영국과 프랑스는 그리스를 독립국가로 승인하니 1830년 런던의정서
인데.... 그러나 그리스 영토란 중부 그리스 남반부와 펠레폰네소스 반도, 키클라데스 제도 뿐이었습니다.
1483년 여기 대메테오라 수도원의 본당에 처음으로 성화가 그려졌는데... 이 본당 건물은
메테오라의 건축물 중 가장 뛰어날 뿐 아니라 그리스 내에서도 빼어난
성당 건축물 중 하나로 인정받으니 수도원 내의 성화들은 16세기에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크레타 출신의 성화가 쎄오파니가 많은 성화를 남겼다고 하는데.... 성당을 비롯한 건물
들은 16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이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수도원의
옛 식당에는 수도사들의 필사본, 이콘, 나무조각 등 귀중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예배당 등 내부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한 벽화는 주로 16세기 것으로 당시 비잔틴 양식의
프레스코화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이 놀라운 프레스코화는 화려하기 그지
없는데, 아쉽게도 사진 촬영 불가라! 여행기에 단 한장의 사진도 올릴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또한 수도원 안에는 수도사들의 유골들도 보관되고 있더고 하는데.... 특히 그 가운데
붉은 색의 유골은 포도주를 자주 드셨던 분의 것으로 전해진답니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