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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2

몰타 4 - 발레타 어퍼바라카에서 살루팅 바테리 대포 사격을!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5.08.15|조회수114 목록 댓글 0

 

몰타 여행4 - 발레타 시내 어퍼바라카 가든에서 살루팅 바테리 대포 사격을 구경하다!

 

 

202459일  아테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몰타 루카 국제공항 Malta Luqalnt. Airport)

도착해 텔린아 카드 Tallinja Card 4일권 Explore Flex 을 구입해 A1 정류소에서 X4 번 버스를

타고 플로리아나 Il-Furjina 를 지나 발레타 Valletta (Independence Monument) 에 도착 합니다.

 

 

몰 정원 The Mall Garden 을 걸어 독립기념비(Independence Monument) 와 트리톤 분수 Triton Fountain

를 거쳐 다리를 건너 성문 Valletta City Gate 로 성 안으로 들어가 발레타 광장 De Valette Square

에서 세인트 제임스 캐벌리어 St. James Cavalier 와 오베르주 데 카스티유 Auberge de Castille 을 봅니다.

 

 

성 안에서 오른쪽에 라파렐리 가든 Laparelli Garden 을 구경하고는 왼쪽으로 걸어서 1565년 성 요한

기사단이 유럽에서 최초로 계획도시로 만든 어퍼 바라카 정원  Upper Barrakka  을 찾아 갑니다.

 

 

어퍼 바라카 정원 Upper Barrakka 에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의 동상이 서 있으며 

The Saluting Battery 라고 해서..... 매일 12시와 4시에 대포를 쏜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1120분에 도착했는데 저 아래쪽에는 10여문의 대포가 보이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에 둘러섰으며.... 여기 성채 마냥 높은 곳에도 성벽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울 마눌은 지금 자리를 잡아야 한다면서 성벽의 한 곳에 쭈그리고 앉아 30분을 버틸 모양인

..... 나는 그러기는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서는 주변을 둘러본후 20분전에

되돌아오니 사람들이 이중삼중으로 물샐틈 없이 둘러싼지라 성벽으로 다가갈 수도 없습니다.

 

 

성 요한 기사단 은 1080년 성지 순례자들을 위해 예루살렘에 세워진 아말피 병원

에서 시작된 종교기사단의 이름인데....  초창기는 병원 기사단 이었습니다.

 

 

이는 7세기에 마호멧이 이슬람을 창시하고 그 추종자들이 동로마 비잔틴으로 부터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점령해 우마이야왕조를 세우니 성지 예루살렘이

이교도의 손에 넘어갔지만 이슬람 정권은 기독교도들의 성지 순레는 허용합니다.

 

 

그런데 유럽인 기독교도 순례자들은 지중해 바다를 건너면서 오랜 여행에 지쳐 병이 나서 죽는

경우가 많은지라..... 그 전인 서기 600년경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명을 받아

프로브스가 예루살렘에 병원을 세웠는데 1005년에는 칼리프 알 하킴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그후 지중해의 5개 동방 무역 해상국가 중에 하나인 이탈리아 나폴리 남쪽 아말피의

상인들이 1023년에 이집트 칼리프의 허가를 얻어 예루살렘의 세례자

요한의 묘지에 다시 병원을 세웠고 베네딕토회 수사들의 봉사로 구호 활동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푸랑스인들이 주축인 제후들의 제1차 십자군 원정으로 1099년에 예루살렘을 정복

해서는 예루살렘왕국5개 기독교 왕국을 세우자........ 탈환을 노리는 이슬람

아랍인과 투르크인들이 공격해 오니 이후 이슬람과 싸우는 전투 기사단으로 변모 합니다.

 

 

성전(템플) 기사단 및 독일의 튜튼 기사단과 더불어 십자군에서도 용맹을 떨친 주력으로 수많은 성채를

세우고 싸웠으나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지중해 도시 아코마저 함락되자 로도스섬으로 철수합니다.

 

 

몰타 기사단의 전신인 로도스 기사단은 1291년에 지중해 레반트의 십자군 도시 아크레 (현재 이스라엘

최북단으로 아코) 가 함락되자...... 키프로스 섬을 거쳐 다시 로도스 섬으로 피란하게 됩니다.

 

 

1309년에 자기들을 받아준 비잔틴 사람들의 은헤를 저버리고 무력으로 로도스섬 지배권을 장악한후 독립국가를

세우고 터키 반도 서쪽 보드룸을 획득하여 성채를 세우먀 선박을 나포하는등 이슬람세력과 수백년을 싸웠습니다.

 

 

1503년에 로도스 기사단은 후추 무역등 인도 항로를 독점하려는 포르투칼의 봉쇄에 대항

하기 위해 이집트가 터키로 부터 대포와 탄약을 수입하는 배를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가 시리아를 지나 남진해 1517년에 이집트를 손에 넣음으로써  아덴만에서

포르투갈 함대를 격파하고 동지중해를 장악하자 로도스는 오스만군에 포위를 당합니다.

 

 

1차 오스만 투크크의 침략은 죽기살기로 싸워 간신히 격퇴했으나 1522년 술탄 술래이만이 이끄는 10만의 오스만

제국군에 의해 중과부적으로 로도스 섬에서 쫓겨나 방랑하다가 경국 스페인 관할의 몰타섬으로 이주합니다.

 

 

그후 몰타 기사단은 몇척 안되는 함대로 동지중해 로도스섬 까지 진출해 이슬람 배들을 공격하니 성전이라지만

사실상 해적 행위로 재미를 보는데..... 이들이 크레타섬 남부에 보급차 상륙하니 오스만 투르크가 노합니다.

 

 

그러자 오스만 투르크는 아프리카의 이슬람 해적들을 동원해 1645430일에 갤리선 80, 수송선

250척에  5만 대군이 크레타섬을 공격하니 우선 서쪽 제2의 도시 하니아를 함락하고 동진해

수다를 거쳐 칸디아 (이라클리온, 헤라클레이온) 를 공격하니 무려 22년간이나 방어전이 벌어집니다.

 

 

그러니까 베네치아는 이빨을 악물고 사생결단을 하며 섬을 지키려 분투한 것인데..... 1667

에는 베네치아군이 지키는 칸디아 (이라클리온) 성 밑에 지뢰가 무려 613발이나 폭발합니다.

 

 

이때 큰 타격을 입은 크레타 주둔 베네치아군은 1668년 항복을 했으나 그후 1683 년에

오스만 투르크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포위공격하다가 그만 패퇴하니....

베네치아는  2년후 반격했으나 1714년 전쟁에서 홀로 싸우다가 협정을 맺고 섬을 내줍니다.

 

 

대포 사격 시간이 다 되어 가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아이를 목에 태운 아빠도 보이는데 조금전에 부부와

어린아이 동상도 보았거나와 문득 하정민 국제부 차장이 동아일보에 쓴 전쟁 중인

이스라엘도 한국 저출산 전쟁’  걱정,  0.8에 불과한 한국의 출산율을 우려합니다.” 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25일 텔아비브대에서 열린 포럼의 연설자로 등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실각 시 재집권설이 도는 그는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부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음에도 경제사회적으로 강한 복원 능력을

보유했으며 그 비결이 3.0 에 달하는 출산율이라고 했다정반대에 있는 나라로 한국을 지목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조앤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법대 명예교수 등 한국의 저출산을 걱정하는 유명인은

많았다. 서울에서 8000km 떨어진 텔아비브에서도 같은 말을 들으니 한국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느꼈다.

지난해 4분기 (1012) 출산율이 0.65 임을 알면 베네트 전 총리가 향후 강연에서 한국 상황을 더 언급할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만난 많은 시민과 정재계 관계자는 묻지 않아도 자식이 몇 명, 손주는 몇 명이라며 번창한 후손을

자랑했다. 하나은행, NH 농협은행 등의 자금을 유치해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아워크라우드의 존 메드베데프 CEO 네 자녀와 15명의 손주가 있다. 8명의 손주가 장남 소생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높은 출산율은 2000년 넘게 떠돌다 간신히 나라를 세우고 아랍국에 둘러

싸여 늘 전쟁을 치르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쪽수에서 밀리면 나라를

다시 잃을지 모른다는 실존적 공포가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을 무조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출산율 증가의 주역이 초정통파 유대교도(하레디) 인 탓이다. 이들은 평균

6.6명의 자녀를 낳는다. 일반 유대인(2.5) 의 약 세배다.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을 찾았을 때도

길게 늘어뜨린 구레나룻에 검은 옷과 모자를 쓴 하레디 남편을 따라 7, 8명 자녀를 데리고 가는 하레디 여성이 많았다.

 

 

200975만 명이던 하레디 인구는 2022128만 명으로 늘었다. 전체 인구

945만 명의 13.5% 이이들의 비중은 2035년에는 19% 로 늘어난다.

 

 

잘 알려진 대로 하레디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으며 직업도 없이 정부 보조금 등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병역과

납세 의무를 지지 않으며 빈곤율도 44% 에 달해 사회 전체에 상당한 부담을 안긴다. 지난달 25

대법원이  하레디도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라고 판결하자 이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폭력 시위를 벌였다.

 

 

저출산을 논할 때 늘 등장하는 집값, 사교육비, 일자리, 보육 제도 등을 개선해야 출산율이 오른다는  지적은

맞는 말이다. 다만 이 모든 정책이 본질적으로 화이트칼라 계층을 겨냥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보다 양육 환경이 우수하고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이 덜한 북유럽에서도 출산율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20131.75 였던 핀란드 출산율은 불과 10년 만인 지난해 1.26 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 복지 제도 확대 같은 정책이 유의미한 인구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은 여러 나라에서 입증됐다.

이를 감안하면 이제 인구 소멸 위기를 비상사태로 여기지 말고 상수 (常數)

로 인정해야 한다. 피해는 어쩔 수 없되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에 집중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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