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여행7 - 요한 대성당을 보고 걸어서 성 요한 기사단장 궁전을 구경하다!
2024년 5월 9일 몰타공항에서 텔린아 카드를 구입해 X4 번 버스로 발레타 Valletta 에 도착해 Valletta City
Gate 로 성 안으로 들어가서는 라파렐리 가든을 거쳐 어퍼 바라카 정원 Upper Barrakka 을 찾아갑니다.
여긴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드는지라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40분을 성벽에 달라 붙어 오래토록
기다려서는 The Saluting Battery 라고 매일 12시와 4시에 대포를 쏘는 것을
구경하고는 나와 구시가지에 Triq ir-Republika 거리를 걸어서 성 요한 대성당에 도착합니다.
"성요한 대성당" St. John's Co- Cathedral (Kon-katidral ta' San Gwann )
은 관광객들이 엄청 몰려드는지라........ 개인줄, 단체줄에 인터넷 예약줄 등
3개로 단체 줄은 빨리 입장하지만 반면에 개인 줄은 근 한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린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인파 속에서 한시간이나 줄을 서서 입장하는데 입장료는 1인당 15유로이지만
금빛 휘황찬란한 대성당 내부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지니 돈 15유로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는 대성당 구경을 마치고 나와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서 몰타 국립 도서관 Bibljotka
Nazzjonali ta' Malta 을 지나 시내 지도를 보고 또 사람들에게
여러번 물어서 Republic Square 를 지나 어찌 어찌 "성요한 기사단장 궁전" 을 찾아갑니다.
마눌은 보나마나 전쟁을 하던 무기며 전쟁도등이 전시되었을 것이니 들어가지 않겠다기에 배낭 2개
를 지키며 쉬라 이르고는 혼자 10유로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요한 기사단
궁전은 영어로 Grand Master Palace Courtyard 또는 Grand Master's Palace 라고 부릅니다.
1571년에 지어진 궁전은 원래 성요한 기사단 병사들의 거주지인데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주지사의 궁전으로 사용되었고 현재 몰타의 하원과 공화국 대통령의 집무실
Palazz tal President) 로 사용하며 1층 그랜드홀의 5개 방은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최고위원회는 1565년 오스만 투르크와 개공성전을 묘사한 페레즈 디알리시가
그린 12개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으며 궁전 기사단 갑옷이
출신 나라별로 전시되어 있으며 10시부터 개방해 16시 30분에 문을 닫습니다.
성요한 기사단은 원래는 1048년 성지 예루살렘에서 순례자의 간호를 위해
생긴 의료 봉사단이었으니.... 중세에 동방무역에 종사하던 5대
도시국가 중에서 이탈리아 서남부 "아말피의 상인" 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099년 제1차 십자군 전쟁으로 기독교도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함락한 이후 탈환하려는
이슬람교도들과 전쟁이 길어지자.... 전투원이 모자라게 되면서 점차 전투기사단 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그후 1291년 예루살렘이 쿠르드족으로 셀주크족의 장군에서 이집트를 정복하여
왕이 된 살라딘 에게 함락된후.... 요한 기사단은 키프로스 섬에서
농성하다가 후퇴하여 1309년에 로도스섬을 점령하고 기독교 왕국을 세웠습니다.
로도스 섬은 395년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영토였으나 654년에는 아랍인이, 1082년 부터는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다시 비잔틴제국 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1309년에 이르러 성요한 기사단의 수중에 떨어지고 1523 년에 오스만 터키에 점령당합니다.
로도스섬은 비잔틴제국 지배하에 있었는데 1308년 이집트군에 의해 팔레스타인의 아크레에서 쫃겨난
성요한 기사단이 키프로스 섬을 거쳐 로도스섬에 상륙하니...... 프랑스등 유럽 귀족의 자제들 입니다!
이듬해 그들은 이 섬을 동로마 비잔틴의 지방 통치자로 부터 강제로 빼앗아 십자군 왕국을
건설하는데...... 이슬람 오스만투르크 의 침략을 200년 이상 온 몸으로 막아 냅니다.
1522년에 10만 투르크군이 섬을 포위 공격하니 무려 반년을 버텼으나 대공세에
중과 부적으로 무느지는데 15세기 요한기사단이 세운 병원과 기사단장
공관은 이제는 고고학박물관 Archaeological Museum 으로 개방중 이랍니다.
흔히 말해지는 기사단은 3개가 있는데 하나는 독일의 튜튼기사단이요, 둘은 프랑스
의 템플 기사단이며 그리고 셋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성요한 기사단 입니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023년에 이탈리아 나폴리 남부 아말피 와 살레르노 의
상인들은 성지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여행자를 보살피는 조직을 만들었으니
이집트 칼리프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에 의료봉사단을 조직해 순례자들을 보살핍니다.
그러던중에 1080년 부터는 귀족의 자제인 수도사들이 참가합니다. 수도사들의 참가가 늘면서 훗날
성요한 기사단은 이탈리아인으로 부터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인 들에게로 주도권이 넘어 가게됩니다.
1099년 십자군 전쟁이 터지면서 병원 봉사단은 전투원이 모자라니 전투 기사로 변신하여
싸워서는 동방에 예루살렘 왕국등 5개의 기독교 왕국 을 건설하고 기세를 올렸습니다.
투르크족으로 셀주크 투르크의 장군이던 살라딘을 비롯한 아랍인들의 반격으로
결국은 11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후에도 전투를 계속했으나
1291년 이스라엘 서북부에 아코 (아크레) 성이 함락되자 키프로스로 후퇴합니다.
1187년 십자군 성전 기사단의 레이날이 카락성주가 되자 아랍과의 평화협정을 무시 하고
대상을 기습해 약탈하니 아랍인들이 살라딘의 휘하로 단결해 티베리아성을 공격합니다.
기독교 예루살렘 왕국의 왕 기 드 뤼지냥은 아랍군을 격퇴하기위해 출격했다가 갈릴리
호수 못미쳐 하틴전투에서 대패하고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아크레로 후퇴합니다.
3차 십자군에 참가한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 가 조카를 아크레 성주로 앉히기
위해 기 드 뤼지냥 을 키프로스로 쫓아 버렸 데..... 1291년에
요한 기사단이 후퇴했을 때는 키프로스 왕은 그 뤼지냥의 후손 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더이상 버티기가 어려워지자 1308년 비잔틴제국 관할의 로도스섬으로 후퇴한후 비잔틴제국
의 보호를 받다가 이듬해에 배은망덕하게도 아예 로도스를 빼앗아서는 성요한 십자군의 요새로 만듭니다!
그후 함대를 조직하여 이슬람 상선을 습격하는 해적질로 악명 을 떨치며 오스만터키 등
이슬람 세력과 최전선에서 싸웠던 성요한 기사단이니 전성기
에는 터키 서부해안의 보드룸 을 점령해 성채를 쌓고는 지중해를 제패하기도 하였습니다.
검소하기로 유명한 기사단장실의 벽에는 다른 장식은 없이 “FERT FERT FERT" 세 글자 가 새겨져
있으니..... 불어로 ”참고 견디라" 는 뜻으로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오직 인내만이 살 길이라!
1309년 무력으로 로도스섬을 손에 넣고 이슬람과 싸운이래 200년의 세월 이 흘러 1522년에
오스만 터키의 술탄 술레이만이 로도스 정벌에 오르니 이슬람 해적이기도한
콜토글루가 지휘하는 300척의 전함이 섬을 봉쇄한 가운데 10만 대군이 로도스섬에 상륙합니다.
귀족의 자제인 성요한 기사단 600명은 출신지역에 따라 이탈리아, 프로방스, 영국 및 아라곤으로 나뉘어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은색갑주 를 입고 성벽 위에 정렬 하니 병사들을 다 합쳐도 5천이 안되는 군세로 유럽
세계의 지원을 간절히 기다리며 5개월 동안의 처참한 공성전 끝에 오스만터키군 수만명을 사살하는등 분전합니다.
이때 유럽에서는 독일과 스페인을 지배하는 카를5세는 북이탈리아 지배 를 놓고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전쟁중에 있었으며 영국군은 노르망디에 상륙해 프랑스군의 후방을 노리는 상황
이었으니, 독일 황제에게 여유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영내의 프로테스탄트 신교도 척결이 급선무입니다.
구원군이라고 해 보아야 베네치아 함대 몇 척이 전부인 상황에서 중과부적 으로 마침내 성은 함락될
수 밖에 없는데.... 해상봉쇄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포와 석궁, 불화살과 상벽밑을 파서
폭발시키는 지뢰 공격에 대해 석궁과 대포 그리고 화염방사기인 그리스의 불로 무려 6개월 을 버팁니다.
기사단장 릴라당 이하 성요한 기사단이 항복하니 로도스는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에 속했다가 20세기들어
오스만 터키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탈리아에 점령당하고 2차세계 대전시는 독일군에 점령 당한후
대전 후에는 터키 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리스 영토가 되니 인류 역사는 모두 전쟁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스만 터키의 술탄 술레이만 은 대국의 군주답게 은혜를 베푸는데... 예전에 이집트왕 살라딘이 예루살렘성
함락후 기독교인들을 모두 살려서 보낸것 처럼 자비를 베풀어 기사단과 기독교도들을 방면 하는 것이라!
과거 기독교 1차 십자군 이 예루살렘성을 함락한후 항복한 이슬람과 유대인들을 사전 약속을
저버리고 전원 살륙 했던 것과는 비교되는 바니, 기독교도는 무자비하며 약속등
신의를 지키지 않지만, 이슬람교도는 자비심을 베풀고 신의를 중시한다는 헛된 자만심 일러나?
이때야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후일 오스만 터키는 몰타섬에 웅거한 성요한 기사단을
치기 위해 4만 대군을 동원하고도 뼈아픈 패배를 하는 것이라..... 마치
항우가 홍문에서 유방을 놓아준 것이며, 또 송양지인(宋襄之仁) 을 보는 것도 같네요?
하지만 이 때는 대포를 제외한 일체의 무기류와 성물이며 재산을 싣고 가는 것을 허락하다보니
배가 모자라자..... 오스만 터키의 배를 제공해 크레타 섬 까지 실어다 주는 배려를 했으니?
로도스섬을 떠난 성 요한 기사단은 유럽 각지를 전전하며 러시아까지 밀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스페인
왕 카를로스 1세의 계산적인 지원으로 1530년에 200명의 기사들은 몰타섬에 정착합니다.
그런데 불과 35년 후인 1565년 5월 18일 오스만터키의 술탄은 4만명의 대병력으로
침공해오자 기사와 병사를 합쳐 8천명의 군세로 분전하여 버티니....
9월이 되어 마침내 유럽지원군 의 도착으로 오스만 터키군은 포위를 풀고 물러갑니다.
하지만 몰타의 성요한 십자군은 이슬람세력은 막아내었으나 정작 이집트를 정복하러
가는 저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을 받아 함락되어 본거지를 잃었지만 이후에도
해산되지는 않고...... 로마에 근거지를 마련하여 아직도 그 명맥만은 이어 간다니!!!
예루살렘에서 함께 싸운 성전기사단 은 아크레 함락후 프랑스로 후퇴하였으나.... 명성을
흠모한 유럽인들이 토지와 재산을 기부하니 소유한 수도원만 3천개 를 헤아렸습니다.
그 재산과 영지 및 명성을 탐낸 비열한 교황과 탐욕스러운 프랑스 왕 필립 4세 에 의해 1314년
이단이라는 거짓 누명을 쓰고는...... 잔인한 고문을 당한후 몰사죽음으로 멸족을 당합니다.
프랑스 왕으로서는 왕권 확립을 위해 자국의 영내에 큰 세력이었던 성전 기사단을
요절내었던 것이니... 그럼 요한 기사단은 그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해야 하나요?
튜튼 기사단 은 이때 헝가리에 침입한 이슬람 세력을 격퇴하고 폴란드왕의 요청
으로 폴란드 동부에서 야만족의 침입을 격퇴하는 기사단령 을
세웠으니.... 후일 프로이센 유래로, 다시 말해 독일 제국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몰타의 요한 기사단 왕국은 1798년 나폴레옹 군에게 점령당한후, 지금은 로마에 본부
를 두고 있으며 아직도 30명의 신부와 8천명의 기사 를 거느리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