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18 - 몰타의 옛 수도 엠디나에 도착하여 성 안에서 유리공예방을 구경하다!
2024년 5월 11일 옛날 수도를 보기 위해 위해 발레타 시내를 걸어서 성 밖으로 C2 정류장에서
53번 버스를 타고 40분만에 엠디나에 도착하는데 몰타의 옛 수도인 엠디나
Mdina 의 메인 게이트는 1724년 요한 기사단장 마노엘 데 빌하나가 건설한 다리 라고 합니다.
“엠디나” 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를 점령해 다스리고 있던 시실리안 아랍인들이 붙인 이름
으로 수도라는 뜻이며....... 성채 도시로 성벽 밖은 라바트 Rabat 라고
불리며 1570년에 수도가 발레타로 옮겨지니 고요의 도시 Slient City 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육중하고 견고해 보이는 성 안으로 들어가니 큰 대포가 보이고 한 구석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으니...
이른바 단두대 체험인가 본데? 그리고 자연사 박물관을 구경하고는 나와 성 안으로 좀더 들어갑니다.
다시 건물 사이를 돌아서 들어가니 피아차 (piazza) 광장이 나오고 그 한 모퉁이
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들고 나며...... 북새통을 이루는 가게가 보입니다.
바로 그 유명한 엠디나 글라스 (유리공예) 라고 부르는 곳이라 안으로 들어가니 참으로
기기묘묘한 유리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하나 사고 싶지만 가격도
비쌀뿐더러 아직 여행 중이니 가지고 다니다가 깰 것이 걱정이 되어 차마 사지는 못합니다.
여기서 옛날 베네치아에 갔을 때 무라노섬을 방문한 기억이 떠오르는데.... 첫 번째는 잘 모르고
갔었고 두 번째는 배를 타고 부라노섬을 보고는 돌아오다가 무라노섬에 내렸습니다.
무라노 섬 Murano 파로 선착장에 내려 걸어서 구경을 하는데.... 13세기에 유리 제조 기법이
무라노섬에 전해진후 유리공예품 으로 명성을 쌓은 제작소를 구경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무라노 섬에는 유리 제품을 진열하고 있는 가게들이 워낙 많은지라 그냥 거리를
걸으며 우선은 이집 저집의 다양한 제품들을 유리창 너머로 구경부터 하기로 합니다.
13세기에 유리 제품에 이어 안경 을 제조하며 창유리 까지 생산했던 무라노 공방 거리를 사진을
찍으며 걸으니 자그만 마당에 "유리 제품으로 꽃밭" 을 이룬 모습이 참 신선해 보이더군요!
또 몇 집 이런 저런 가게를 구경하면서 모퉁이를 도니 아!!! 거리에 마치 큰 불꽃
모양의 대형 유리 제품이 서 있어 보노라니 가슴이 다 두근거리더라는....
무라노섬의 유리공예는 유럽에서도 독보적 존재라 중세에 베네치아 정부가 성지 순례 패키지팀을 운영하면서
면죄를 위해 성당에 있는 성 유물을 참배하게 하고는 순례자들을 무라노섬 유리공방 견학을 안내하였으니
산토 브라스카라는 사람이 13세기 스키보니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무라노를 견학한 여행기가 출판되었습니다.
성지순례 패키지 는 베네치아에서 배를 타고 예루살렘을 다녀오는 6개월이 넘는 오랜 일정
인데.... 브루텔베르그 백작이 도메니코파 성직자 슈미트에게 했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이 세상에는 남에게 권하는 것이 좋을지 망설여지는 것이 3가지가 있다, “ 하나는 결혼 이요,
두 번째는 전쟁 참가 (용병) 이며, 세 번째는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가느냐 하는 여부라...”
오늘 유리제품들이 뿜어내는 강열한 색채를 보면서 어쩐지 아프리카가 떠오르는데.... 문득 정양환 국제부
차장이 동아일보에 쓴 ‘되돌릴 수 없는 이별’ 로 가는 프랑스 - 아프리카“ 프랑사프리크
(Fran¤afrique· 프랑스와 아프리카)는 이젠 사라져 가는 과거의 유물이 돼 버렸다.”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어는 친숙한 말 중 하나다.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나라는
23곳. 영어와 더불어 가장 많다. 프랑스어가 유일 공용어인 나라는 11개국으로 영어(8개국)
를 앞선다. 10여 년 전 아프리카 출장 때, 한국인이 더듬더듬 뱉은 영어를 벨기에 출신 가이드가
프랑스어로 통역하니 이라크계 공무원이 아랍어로 현지인에게 물어봐주던 희한한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식민지 시절 부터 이어온 프랑스의 아프리카 영향력은 그만큼 질기고 뿌리 깊었다. 하나
요즘 파리의 입김이 예년 같지 않다. 솔직하게 “되돌릴 수 없는 (irreversible)” 지경이다.
지난해 부터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에선 줄줄이 쿠데타가 벌어졌고, 프랑스에 반기를 들고 주둔군
을 몰아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WSJ)은 “세네갈 등 그나마 안정적인 국가조차 반 (反)
프랑스 물결이 거세다”며 “과거 식민지였던 20여 개국 중 상당수가 연을 끊으려는 모양새” 라고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프랑스가 자초했다는 게 중론이다. 현지 치안을 등한시한 병력 주둔은
자국의 군사적 이익만 좇았다. 투자 역시 자원 개발에 치중해 부당한 경제 수탈로 읽혔다.
한참 전부터 경고음이 났건만 프랑스 정부는 안일했다. 민심을 잃은 정권 편만 들어 시민사회도
등을 돌렸다. 프랑스의 마르크 메미에 전 아프리카 특별고문은
WSJ 에 “현지의 부패한 집권세력이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존 정책을 고집했다” 고 했다.
그럼 프랑스가 밀려난 ‘빈자리’는 누가 채우고 있을까.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마저 아시아
태평양에 치중하며 소홀한 틈을 타 러시아와 중국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 고 보도했다.
두 나라의 접근법은 다소 다르다. 러시아는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 을 통한 군사 지원이
중점이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경제 원조에 집중한다. 이리 정성을
쏟는 이유는 자명하다. 아프리카를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 대항할 교두보로 삼으려 한다.
물론 프랑스가 팔짱만 끼고 있는 건 아니다. 뉴욕타임스 (NYT) 에 따르면 프랑스는 최근 수직적이던 전통적
관계를 버리고 동등한 눈높이에서 협력하는 ‘파트너십’ 으로 외교노선을 바꿨다. 대표적인 나라가
르완다다. 1994년 수십만명이 숨진 르완다 대학살뒤 냉랭했던 두 나라는 최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섰다.
4월 학살 30주년 추도식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의지가 부족해 희생을 막지 못했다”
며 사과 영상을 보낸 것도 이런 맥락이다. NYT 는 “프랑스의 영향력 강화와 르완다의 빈곤
퇴치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새로운 ‘데탕트(D´etente·긴장 완화)’의 문을 열고자 한다”고 평했다.
다만 앞길에 붉은 주단만 깔려 있진 않다. NYT에 따르면 르완다 대학살은 여전히 갈등의 불씨다.
르완다는 프랑스에 머무는 관련자 인도를 요구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더 결정적인 건, 양국 화해를 주도적으로 이끈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대패하며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졌다는 점이다. 승기를 잡은 극우 세력은 자국우선주의를 강조해 왔다.
프랑스의 아프리카 입지 축소는 그저 한 시대의 종언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WSJ 는
“불량 정권들이 ‘힘의 공백 (power vacuum)’ 을 메우고 있는 상황은 결국
아프리카의 서방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 국제질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 이라고 내다봤다.
강산이 변하면 꽃이 지는 건 순리다. 프랑스가 떠난 뒤 러시아나 중국은 아프리카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할까. 돌고 돌아도 검은 대륙의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만 같다. 세상 어디도 편할 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