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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2

페르피낭 2 - 꼴리우흐에 도착해 골목길을 걸어 해변에!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6.06.22|조회수36 목록 댓글 0

 

페르피낭 2 - 기차로 꼴리우흐에 도착해 예쁜 골목길을 걸어서 해변에!

 

 

2026513일 새벽 5시 반에 바르셀로나 남쪽 해변 휴양도시 시체스 (Sitges) 의 호텔에서 일어나

골목길을 5분쯤 걸어서 시체스역 Estacion de Sitges (Sitges Train Station)

도착해 유레일 모바일패스 QR 을 보이고 R2 Sud 기차를 타고 35분 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합니다.

 

 

바르셀로나역 창구에서 고속철 아베 좌석을 예약하고는 다시 0814분 리옹 Lyon

Part Dieu  행 아베 AVE 기차를 타고 오른쪽에 지중해 바다를 끼고

북쪽으로 달려서 0937분에 프랑스 페르피낭역 Gare de Perpignan 에 도착합니다.

 

 

페르피낭역 Gare de Perpignan 을 나와 호텔에 가서 체크인을 하는데 정식 체크인은

오후 2라기에..... 호텔에 배낭을 맡기고는 다시 페르피낭역에서 1055

기차를 타고 20분 후인 1115분에 3번째 역인 꼴리우흐 Collioure 에 도착합니다.

 

 

꼴리우흐역 Gare de SNCF Collioure  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승객들이 내리는데,

무리를 뒤따라 5~6분 가량 아히느띠드 마이욜 가를 걸어 내려와

한참 벼룩시장을 구경하고는.... 해변으로 가기 위해 다시 골목길을 걸어 내려갑니다.

 

 

빠스띠흐가를 걷다가 다시 생바썽가를 걷는데, 꼴리우흐 Collioure 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에 위치한

매력적인 마을로 중세 콜리우르 성이 바닷가에 서 있으며.... 해안선의 숨막히는 경치를 제공합니다.

 

 

여기 항구 도시 꼴리우흐의 골목길은 사통 팔달인데 저마다 개성 있는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한 선물가게와 옷집이며 카페와 레스토랑들을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눈이 즐겁습니다.

 

 

오늘 꼴리우흐 Collioure 의 거리는 골목 골목 관광객들로 넘쳐나는데.... 본격적인 여름철

수기에 온다면 아마도 사람들에 치여 골목길을 걷기도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윽고 골목길을 벗어나 해변에 도착했는데 긴 해변을 둘러 보자니 오른쪽은 육중한 성채가

보이고 그 사이 긴 모래사장이 있으며 왼쪽으로는 돌출된 방파제 끝에는 등대가 보입니다.

 

 

해변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도보 20분이면 충분하고, 작은 골목 골목마다 개성있는 다양한

상점들이 있어 성수기에는 구경할 맛이 나지만 비수기에는 한적한

동네로 변한다는데, 지중해에서 수영하고 레스토랑에서 해산물을 즐기는 휴양 도시 입니다.

 

 

17세기 노트르담 데 장즈 교회는 등대 역할을 했던 종탑이 있고 그리고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생 엘름 요새 Port Saint Elme 1552년에 지어진 별 모양의 요새라고 합니다.

 

 

아직 여름이 아니라서 그런지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은 적고 모래사장에 천을 깔고

비키니 차림으로 누워서 선탠을 하거나 책을 읽는 여인들은 많아 보입니다.

 

 

그리고 카페며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서 커피와 음요수에 와인과

맥주등을 마시면서...... 더러는 이른 점심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Our Lady of the Angels Church 를 지나 등대 Collioure Lighthouse 를 구경하기 위해 돌출된

방파제 위로 올라섰더니... 엄청난 바람으로 인해 도저히 등대까지 갈수 없어서 도중에 돌아옵니다.

 

 

카를 5세의 통치때 건설된 요새는 침입자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인상적인 8미터 두께 벽을

자랑합니다. 방문객에게는 폐쇄되어 있지만, 아래의 자갈 해변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멀리서도

감상할수 있으며... 건조하고 일조량이 풍부해 그주나슈등 포도 재배가 성하며 해안선 경치가 숨막힙니다.

 

 

생 엘름 요새 Fort Elme 는 현재 공개되지 않지만...... Collioure 에서 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마을의 전망은 훌륭하고 정상에서 반대편 해안도 볼 수 있으며  길 오른쪽에 있는

방앗간이 참으로 볼만한데 길이 바위가 많고 가파르기 때문에 편한 운동화를 신어야 합니다.

 

 

해변에는 견고한 성채에다가 오래된 옛날 청동 대포도 보이는데.... 중세에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알제리에 위치한 이슬람 해적들이 지중해를 휩쓸고 다녔으니.....

이탈리아가 피해가 심했고 프랑스와 스페인 해변 마을들도 자주 해적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1562년 이슬람 베르베르인 해적 "울루치 알리" 는 갤리선 7척을 이끌고 북아프카에서 북상해 사보이공국

(훗날 수백년간 수십개 나라로 갈라져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각축장이었던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나라)

공작이 프랑스 공주인 부인과 모나코 인근  빌라프랑카항에 있는 성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알리는 해적들을 이끌고 빌라프랑카 항구에 상륙하니 사보이공이 그 숫자가 적은걸 보고는 군대를

내보냈지만.... 배후로 돌아간 부하 해적들이 사보이 군대 후방을 습격해 사보이군대를 격파

하고는 100여명에 달하는 가신과 병사들을 포로로 잡고는 석방 댓가로 엄청난 돈을 뜯어 갔습니다.

 

 

이슬람 사라센 해적들은 이보다 무려  700여년전인 830년과 845년 두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서부에 위치한 항구 치비타베키아에 상륙해 "로마를 포위" 공격했으니..... 전임 교황이

이탈리아에 상륙한 사라센 해적에게 체포될뻔한 일을 겪은 교황 요한네스 8세는 기겁합니다.

 

 

요한네스 10세 교황은 시도 때도 없는 해적의 침입에 마침내 굴복해서 878년에 은화 25천냥을

주고 해적들에게서 1년간 평화를 샀지만..... 약발이 몇년 가지 않는지라

914년 교황은 나폴리, 아말피등과 연합해 로마 외곽에서 사라센 해적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사라센 해적들은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를 점령해 이탈리아 내륙까지 노략질하고 성벽으로 둘러쌓인

마르세유를 수차례나 포위 공격하며 내륙으로 들어가 아를 까지 공격하는등... 위세를 떨치면서

프랑스땅 생 트로페에 해적기지를 차리고는,  이탈리아 사북부 토리노 해안 까지 약탈에 나선 것입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에서는 대장장이였던 발리앙 (올랜도 블룸) 이 전쟁에 참여하며 성장해

1187년 예루살렘을 살라흐 앗 딘 (살라딘) 으로 부터 지켜내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훌륭한 영지물이라는 평가도 있는데, 발리앙은 고프리의 제안을 받고는 성스러운 도시를

지키기 위한 영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데, 명예로운 서약세상을 바꿀

새로운 운명이 펼쳐지니 고프리로 부터 검술과 전술 등을 배우며 용맹한 전사로 거듭납니다.

 

 

그런데 발리앙이 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먼저 시칠리아섬에 상륙하며 그후 3

십자군에 프랑스왕과 영국왕 사자왕 리처드도 마찬가지로 시칠리아섬 메시나에

상륙하는데.... 대사에 여긴 유럽이 끝나고 이슬람 아랍이 사작되는 곳이란 구절이 나옵니다.

 

 

시칠리아는 고대에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들이 상륙해서 도시를 건설했으며......

그후 로마가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차지했다가 게르만민족

대이동기에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반달족의 지배를 거쳐 동고트왕국이 차지합니다.

 

 

그후 동로마에 속했다가 612년에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마호멧의 제자들이 세운 아랍왕조의 침공을

받아  8~9세기에 시칠리아 토후국이란 이슬람 왕조가 세워졌고 그후 노르만족 기사들의

왕국이 들어서지만 옛날 지배 세력인 북아프리카 해적들의 노략질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꼴리우흐 Collioure 는 화가 마티스에게 영감을 준 곳이니 오래된 성, 작은 등대, 검은 조약돌과  푸른

지중해가 어우러진 항구 마을로 그후 피카소와 달리도 마티스처럼 이곳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앙리 마티스는 1905년에 꼴리우흐를 방문한 후에 풍경을 그렸으니 열린 창문이라고 하는데.....

꼴리우흐 마을의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조형적 특성이 그에게 큰 영감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연인 프랑스와즈와 헤어진후 외로운 시기에 피카소는 1954년 페르피낭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작업실의 조수였던 자클린 로크를 알게되고 1961년 자클린과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는데, 피카소는 이때 80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였다고 합니다.

 

 

살아 생전에 유명해져 자기 그림이 팔려서 윤택해진 몇 안되는 화가중에 하나인 피카소는 유독 여인 편력이

심한 편이었으니..... 어려웠던 무명화가 시절에 파리에서 낡은 건물인 세탁선에 머무르는 동안

알게된 동갑내기 여인 페르낭드 올리비에와 1904년 동거하지만 1914년에 사이가 나빠져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고는 마르셀 윙베르(에바) 를 만났으니 피카소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이기도 했지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피카소가 깊이 사랑했던

에바는 1915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 피카소는 홀로 외로움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다 피카소는 1918년에 처음으로 결혼했으니 러시아 무용단의 올가 코흘로바라는 여자였는데,

1921년  파울로를 낳지만 그때는 꽤나 유명한 화가가된 이후이고 상류사회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올가와의 결혼 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끼고는 나이어린 마리테레즈 발터를 만나게 됩니다.

 

 

올가는 장남 파울로와 피카소를 떠나게되고 마리테레즈 발터와도 사이가 멀어지게 되니 피카소는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데 "도라마르라는 유고슬라비아 출신 사진 작가에게 빠졌고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에

머물 당시 도라마르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1947프랑수아즈 질로라는 매력적인 여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프랑수아즈와 같이 살면서도 결혼은 하지 않고 아들 클로드팔로마가 태어났는데 팔로마를 낳고

얼마후 프랑수아즈와도 사이가 나빠져 헤어지고는 페르피낭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자클린 로크

를 알게되어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36세의 여인과 결혼하는데..... 20년간 함께 살며 두 아이를 낳습니다.

 

 

피카소는 스페인내전시 독일공군의 폭격으로 숨진 게르니카 시민 소식을 듣고 격분해 게르니카라는 그림을

그렸으니 마드리드 소피아왕비 미술관에 있으며 반전(反戰) 그림이 하나 더....  1951년 한국전쟁시

신천군 대학살사건을 모티브로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그려서 한국전의 참상을 고발했습니다.

 

 

북한은 황해도 신천군을 점령한 미군 해리슨 중대와 한국군이 19501017일부터 127일까지 신천군

에서 양민 수만명(?) 을 학살했다는데, 유엔군 점령하 우익 반공세력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당한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저지른 것으로 여겨지니, 브루스 커밍스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표지에 이 그림을 썼습니다.

 

 

내가 어릴때 "구월산 유격대" 라는 만화책을 열심히 본게 생각나는데 대학살의 현장인

황해도 신천군 서부에 우리나라 6대 명산의 하나인 구월산은 김종벽 대위가

부대장을 맡아 195012월 창설된 구월산 유격대가 1.4후퇴 때도 남쪽으로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잔류하면서 유격전을 펼쳐 혁혁한 전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19513월부터 미군이 켈로부대등을 북한에 공수 낙하시키고 유격부대원들에게도 무기와 탄약에 식량을 제공

하는데 "실적으로 보급" 을 하니 살기위해 싸워야했는데, 대화도 백마 유격부대는 조기를 잡아 판매했으니

3척이 돈을 들고 달아나니 부대원들이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됐고 휴전시에 연락받지 못해 탈출못한 대원도....

 

 

꼴리우흐의 레스토랑 Casa Léon 은 생선, 해산물 및 육즙이 풍부한 스테이크를 특징으로 맛있는

요리를 제공하니 베이를 바라보는 테라스에서 그림 같은 경치를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데... 레스토랑 Chez Simone Cote Faubourg (피자 & 햄버거 집) 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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