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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2

코르도바 5 - 포트로 광장을 보고는 로마교에 가다!

작성자은혜|작성시간20.06.13|조회수279 목록 댓글 0



코르도바여행5 - 코르도바 골목길을 걸어 포트로광장을 보고 로마교에 가다!

 

 

  

  10월 13일 코르도바 에서 성벽으로 둘러쌓인 구시가지 역사지구 골목길 을 걸어서는....

유대인 마을의 시나고그 를 거쳐 꽃의 골목 을 보고는 메스키타 사원의 후문 에 이릅니다.

  

 

 

  

   시간이 늦어 입장은 어려울 것 같아 내일 보기로 하고 오늘은 나오는 문 으로 해서

들어우선 정원만 맛보기로 한번 둘러 봅니다!

  

  

  그러고는 옆 골목에 자그만 삼거리 인데 거기에 카페 가 있어... 밖으로 내어놓은 탁자

에서 피자 두 조각과 맥주 1잔 을 시켜 먹으니 9유로가 나옵니다.

  

 

  

   갈증을 달래고, 피로도 풀었기로 다시 동북쪽으로 골목을 걸어 가는데,  대추야자

나무에 이 매달린 대추야자 열매 가 참으로 탐스러워 보이네요!

  

 

  

  시내지도 를 보면서 걸었기로 이윽고 포트로 광장 에 이르렀는 데,  작은 말 조각에서

유래이름으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나 중앙에 탑과 분수대 가 마주보며 서있습니다!

  

 

  

  여기 포트로 광장 Plaza del Potro 분수대 에는 작은 말 동상 이 있는 데.... 소설

돈키호테 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광장에는 세르반테스 가 묵은 여관 도 있다고 하네요?

  

 

  

  해서 광장을 둘러보니 오래된 집들 이 몇 보이는데 그 중에서 타일 장식 이 아주 예쁜

집이 있어 이 건물이 세르반테스가 묵었다는 그 여관 이 아닌가 하고 짐작해 봅니다.

  

 

  

   이 광장 에는 또 흑발의 여성만을 그려온 화가 훌리오 로메로 데 토레스 미술관

고야, 무리요, 스르바란 등의.....

  

 

  

   스페인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 을 소장한 코르도바 미술관 이 있다지만 시간이 늦어

이미 문을 닫았네요!

  

 

  

  다시 걸어서 강변 으로 나오니 과달키비르 강 에는 오래된 나무 도 많기로...  천천히

걸어서 우리 호텔쪽으로 되돌아 옵니다.

  

 

 

 

   그러고는 로마 다리 Puente Romano 이니..... 2천년 전 인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건축된 아주 오래된 다리 입니다.

  

 

  

   현재 보이는 다리는 로마인들이 건축한 이슬람 교도들이 정비 했으며..... 그후에는

가톨릭 교도들이 계속 보수 하여 왔다고 합니다.

  

 

  

  석양 무렵에 다리를 건너노라니 관광객들 천지 인 데.... 저기 하류쪽으로 무슨 방벽

인양 바위 같은게 보입니다. 

  

  

  다리 아래에 강으로 돌출된 건축물 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적선의 공격 에서 도시

방어하는 시설물 일러나?

  

   

    그러고는 유유자적... 천천히 다리를 건너 칼라오라 탑 Torre de la Calahorra

이르데,   이라면 이 탑 옥상에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튀어나온 다리 교각 을 보노라니 프라하 카를교 처럼 홍수에 대비하여 물 길을 분산 시켜

다리를 보호하는 교각을 덧붙인 것을 봅니다.

  

 

  

   2천년 전 로마인 들이 건설했다면 그들은 하나를 짓더라도 설계 를 잘하여 기초

부터 튼튼히 만들었던 것이라..... 때문에 2천년을 견딘 것일테지요?


   

   

   이 다리 외에도 수도교 원형극장 등 지금도 사용 가능하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이 망할때 까지 한강과 대동강등 삼천리 강산....

  그 많은 강에 "단 하나의 돌 다리도 놓지 못했는 데...." 그 이유가 무엇 일까요?



 조선이 강에 단 한개의 다리도 놓지 못한것은 첫째는 기술이 모자란 것이고 둘째는 재정

이 빈약 했으며 셋째는 설사 돌다리를 놓아도 상업과 유통 이 발전하지 못했으니 다리를

  건너다닐 사람과 화물이 별로 없으니 효율이 낮은 데다가 네번째는 적군이 침략 했을때

진격을 더디게 하여 "임금이 도망갈 시간을 벌 필요" 가 컸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로마는 다리 외에도 이탈리아와 유럽은 물론이고 중동과 아프리카 까지 거미줄 같은 포장

도로 를 놓았는데, 조선은 3천리에 단 한개의 포장도로를 건설하지 못했으니 수레 라는게

  없었는데, 연암 박지원 은 북경 방문후 열하일기에서 수레와 벽돌 이 부러웠다고 했습니다.


 

  로마의 도로는 우선 땅을 평평하게 고른후 땅을 2미터 깊이로 흙을 파 내고 가장

에는 큰 바위돌이나 자연석 을 까는데 이것을 스타투맨 이라고 부르며 그 위에 루두스

  라고 해서 작은 돌과 모르타르를 석어 70cm 두께 로 깔고는 다시 작은 사금파리 조각등

혼합물을 10cm 두께 로 까는데 이것을 누클레우스 라고 부릅니다.



  그 위에다가 마차 가 달릴수 있도록 사암이나 판석등 단단하고 넓은 돌을 서로 견고하게

맛물리게 해서 깔면서 응회암과 석회로 콘크리트 를 하니 파비멘툼 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차도( 말과 마차)는 4m 의 폭 을 가지며 그 바깥으로 배수로 를 만들고는 다시

바깥 좌우 1~2m 씩 인도 를 만듭니다.



  로마 도로는 구릉지대에 일직선 으로 만들고 계곡을 만나게 되면 수십미터 교각을 쌓아

도로가 다리를 건너가게 하며 또 도로 가운데가 둥글게 해서 배수에 쓰며 혹여 나무

 뿌리가 도로를 파괴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가로수는 심지 않는데 조선은 흙길 인데다가

산이 많아 산길 오르막길은 한두사람이 겨우 비켜지날 정도니 수레가 없었던 것 입니다!

   

 

   반면에 조선의 도로는 평지에는 그냥 흙길 이고 산에는 한두명이 비켜지날 나뭇꾼들이나

다닐 좁은 오르막길 이니.... 홍수가 아니더래도 비가 오면 평지의 흙길은 아예 없어지고

진창으로 변하니 화물은 수레 가 아니라 "보부상(褓負商)" 이라 해서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짊어진 개인에 상품의 유통을 의지 할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는... 다시 다리를 건너 와서는 1분도 안되는 거리에 메스키타 옆에

우리 호텔 엘 트리운포 들어서니 키타를 그린 수채화 한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화장실 에는 따로 사기로 된 용기 가 하나 더 있는데.... 처음에는 발을 씻는

용도 인가 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용변후 밑을 씻는 용도라 그참 편리하네요?

  

 

  

   저녁을 먹은후 잠이 오지 않기에 다시 호텔을 나와서는 바로 근처에 있는 로마교

보고는 다시 걸어서 메스키타의 야경 을 구경합니다.

  

 

  

  낮에 이미 보았던 풍경 이지만.... 밤이 되어 다시 보노라니 어느 도시가 그러하지

않겠는가 마는...... 그래도 야경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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