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도바여행5 - 코르도바 골목길을 걸어 포트로광장을 보고 로마교에 가다!
10월 13일 코르도바 에서 성벽으로 둘러쌓인 구시가지 역사지구 골목길 을 걸어서는....
유대인 마을의 시나고그 를 거쳐 꽃의 골목 을 보고는 메스키타 사원의 후문 에 이릅니다.
시간이 늦어 입장은 어려울 것 같아 내일 보기로 하고 오늘은 나오는 문 으로 해서
들어가 우선 정원만 맛보기로 한번 둘러 봅니다!
그러고는 옆 골목에 자그만 삼거리 인데 거기에 카페 가 있어... 밖으로 내어놓은 탁자
에서 피자 두 조각과 맥주 1잔 을 시켜 먹으니 9유로가 나옵니다.
갈증을 달래고, 피로도 풀었기로 다시 동북쪽으로 골목을 걸어 가는데, 대추야자
나무에 높이 매달린 대추야자 열매 가 참으로 탐스러워 보이네요!
시내지도 를 보면서 걸었기로 이윽고 포트로 광장 에 이르렀는 데, 작은 말 조각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나 중앙에 탑과 분수대 가 마주보며 서있습니다!
여기 포트로 광장 Plaza del Potro 의 분수대 에는 작은 말 동상 이 있는 데.... 소설
돈키호테 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광장에는 세르반테스 가 묵은 여관 도 있다고 하네요?
해서 광장을 둘러보니 오래된 집들 이 몇 보이는데 그 중에서 타일 장식 이 아주 예쁜
집이 있어 이 건물이 세르반테스가 묵었다는 그 여관 이 아닌가 하고 짐작해 봅니다.
이 광장 에는 또 흑발의 여성만을 그려온 화가 훌리오 로메로 데 토레스 미술관 과
고야, 무리요, 스르바란 등의.....
스페인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 을 소장한 코르도바 미술관 이 있다지만 시간이 늦어
이미 문을 닫았네요!
다시 걸어서 강변 으로 나오니 과달키비르 강 에는 오래된 나무 도 많기로... 천천히
걸어서 우리 호텔쪽으로 되돌아 옵니다.
그러고는 로마 다리 Puente Romano 이니..... 2천년 전 인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건축된 아주 오래된 다리 입니다.
현재 보이는 다리는 로마인들이 건축한 후 이슬람 교도들이 정비 했으며..... 그후에는
가톨릭 교도들이 계속 보수 하여 왔다고 합니다.
석양 무렵에 다리를 건너노라니 관광객들 천지 인 데.... 저기 하류쪽으로 무슨 방벽
인양 바위 같은게 보입니다.
다리 아래에 강으로 돌출된 건축물 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적선의 공격 에서 도시 를
방어하는 시설물 일러나?
그러고는 유유자적... 천천히 다리를 건너 칼라오라 탑 Torre de la Calahorra 에
이르는데, 낮 이라면 이 탑 옥상에서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튀어나온 다리 교각 을 보노라니 프라하 카를교 처럼 홍수에 대비하여 물 길을 분산 시켜
다리를 보호하는 교각을 덧붙인 것을 봅니다.
2천년 전 에 로마인 들이 건설했다면 그들은 하나를 짓더라도 설계 를 잘하여 기초
부터 튼튼히 만들었던 것이라..... 때문에 2천년을 견딘 것일테지요?
이 다리 외에도 수도교 와 원형극장 등 지금도 사용 가능하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이 망할때 까지 한강과 대동강등 삼천리 강산....
그 많은 강에 "단 하나의 돌 다리도 놓지 못했는 데...." 그 이유가 무엇 일까요?
조선이 강에 단 한개의 다리도 놓지 못한것은 첫째는 기술이 모자란 것이고 둘째는 재정
이 빈약 했으며 셋째는 설사 돌다리를 놓아도 상업과 유통 이 발전하지 못했으니 다리를
건너다닐 사람과 화물이 별로 없으니 효율이 낮은 데다가 네번째는 적군이 침략 했을때
진격을 더디게 하여 "임금이 도망갈 시간을 벌 필요" 가 컸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로마는 다리 외에도 이탈리아와 유럽은 물론이고 중동과 아프리카 까지 거미줄 같은 포장
도로 를 놓았는데, 조선은 3천리에 단 한개의 포장도로를 건설하지 못했으니 수레 라는게
없었는데, 연암 박지원 은 북경 방문후 열하일기에서 수레와 벽돌 이 부러웠다고 했습니다.
로마의 도로는 우선 땅을 평평하게 고른후 땅을 2미터 깊이로 흙을 파 내고 는 가장 아래
에는 큰 바위돌이나 자연석 을 까는데 이것을 스타투맨 이라고 부르며 그 위에 루두스
라고 해서 작은 돌과 모르타르를 석어 70cm 두께 로 깔고는 다시 작은 사금파리 조각등
혼합물을 10cm 두께 로 까는데 이것을 누클레우스 라고 부릅니다.
그 위에다가 마차 가 달릴수 있도록 사암이나 판석등 단단하고 넓은 돌을 서로 견고하게
맛물리게 해서 깔면서 응회암과 석회로 콘크리트 를 하니 파비멘툼 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차도( 말과 마차)는 4m 의 폭 을 가지며 그 바깥으로 배수로 를 만들고는 다시
그 바깥에 좌우 1~2m 씩 인도 를 만듭니다.
로마 도로는 구릉지대에 일직선 으로 만들고 계곡을 만나게 되면 수십미터 교각을 쌓아
도로가 다리를 건너가게 하며 또 도로 가운데가 둥글게 해서 배수에 힘쓰며 혹여 나무
뿌리가 도로를 파괴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가로수는 심지 않는데 조선은 흙길 인데다가
산이 많아 산길 오르막길은 한두사람이 겨우 비켜지날 정도니 수레가 없었던 것 입니다!
반면에 조선의 도로는 평지에는 그냥 흙길 이고 산에는 한두명이 비켜지날 나뭇꾼들이나
다닐 좁은 오르막길 이니.... 홍수가 아니더래도 비가 오면 평지의 흙길은 아예 없어지고
진창으로 변하니 화물은 수레 가 아니라 "보부상(褓負商)" 이라 해서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짊어진 개인에 상품의 유통을 의지 할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는... 다시 다리를 건너 와서는 1분도 안되는 거리에 메스키타 옆에
우리 호텔 엘 트리운포 에 들어서니 키타를 그린 수채화 한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화장실 에는 따로 사기로 된 용기 가 하나 더 있는데.... 처음에는 발을 씻는
용도 인가 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용변후 밑을 씻는 용도라 그참 편리하네요?
저녁을 먹은후 잠이 오지 않기에 다시 호텔을 나와서는 바로 근처에 있는 로마교 를
보고는 다시 걸어서 메스키타의 야경 을 구경합니다.
낮에 이미 보았던 풍경 이지만.... 밤이 되어 다시 보노라니 어느 도시가 그러하지
않겠는가 마는...... 그래도 야경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