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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터키여행

하타이 1 - 안티오키아라 불린 하타이에서 아침을!

작성자은혜|작성시간20.06.25|조회수408 목록 댓글 0



하타이 1 - 예전에 안티오키아(안디옥) 라고 불린 하타이에서 아침을 맞이하다!

 


어제 5월 19일 오후에 카파도키아 에서 동쪽으로 한시간 거리에 위치한 카이세리 Kayseri

에서 붉은색 달과 별 터키 국기와 에르두안 대통령 초상화 가 유난히도 많은

 시내를 구경하고는 2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카이세리 공항 Kayseri Airport 에 도착합니다.





 카이세리 공항 에서 19시 30분 출발 터키항공기에 올라 이스탄불 에 도착해서는

공항 화장실에 가니.... 수도꼭지 가 있고 밑에 그릇이 있기로 그 용도를

생각하고 웃고는 다시 하타이 로 가는 23시 55분 출발 터키 항공으로 환승합니다.





다음날인 5월 20일 새벽 02시 캄캄한 밤중 에 터키 동남부에 옛날에는 안티오키아

( 안디옥 ) 라고 불리던 도시.... 하타이 (안티오크) Hatay 공항에 내립니다.





밤중이라 대중교통수단이 없으니 택시(80리라) 를 타고는 40분간 달려서는 새벽

3시에 하타이 시내 Buyuk Antakya Oteli 호텔에 도착해 하룻밤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젼을 트니 검은색 돌 로 보아 메카의 카바신전 이 나오더니

전투 장면에 이어 이어 테러 가 일어났다는 뉴스가 일상사 처럼 흘러 나옵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복도로 나오니 이번 여행에 우리가 예약한 15개 호텔 중에

가장 큰 호텔 인 탓인지 복도 여러군데 그림 들이 걸려있는데....

층계를 오르내리며 그림들을 찬찬히 구경 하다가 이 도시의 역사 를 생각합니다.





이 도시 하타이 Hatay 의 옛 이름은 안티오키아 를 거쳐 안타키아 Antakya 인데 아시아

 유럽 및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 오스만 터키가 쇠약해지다가....

1차 세계대전에 독일편에 참전했다 패하는 바람에 영토는 갈가리 찓길 운명 에 처합니다.



이에 케말 파샤 는 술탄의 정부에 대항해 앙카라에 새 정부 를 수립하고 무력으로

그리스, 아르메니아, 영국 및 프랑스 를 몰아내고 터키 공화국 을 수립하는데

이 도시 안타키아 는 역사적으로 시리아에 속한지라 프랑스의 통치 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주민은 시리아계 터키계가 반반 이라 케말 파샤 는 주민들에게 자치정부

세우라 충동하고는, 옛 히타이트제국 영광 을 생각해서 그 후손들이니 나라 이름을

하타이공화국 으로 정하게 했다가 1,939년에 다시 터키 공화국에 합치게 된 것이지요!



안타키아(하타이) 는 고대에는 안티오크 또는 안티오키아 로 알려졌으며....

성서에는 안디옥 으로 나오는데 시리아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도시로

오론테스강 좌안을 따라 지중해로 부터 25km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 있습니다.



안타키아 는 BC 2,000년경 까지는 시리아 알레포의 야무하트왕국 의 통치하에

있었으나 BC 17세기에는 앙카라 동쪽 핫투샤 에서 일어난 히타이트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제국이 붕괴된후 BC 841년 까지 몇개 공국이 분립하였습니다.



이후 안타키아 는 이라크 북부에서 일어난 앗시리아에 점령 되었으며 BC 333년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은 이곳에 이르러 물맛에 감동해 도시를 세우기

바랬다는데  말라리아 에 걸렸는지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 죽은후 그 영토는 마케도니아, 이집트, 시리아(터키) 3국으로

분할되니 부하 장군 셀레우코스 는 오론테스강 하류 사만다으 에 항구를

건설하고 수도 로 삼으니 당시 이름은 셀레우키아- 피에리아 라고 불렀습니다.



그후 셀레우코스 1세 는 BC 300년경 여기 오론테스강 25km 내륙에 도시 안타키아

건설해 수도를 옮기는데..... 도시의 이름은 왕의 아버지 안티오코스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며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 로서 번영하였습니다.




외항 셀레우키아 를 통하여 지중해 각지와 연결되고 또 동쪽으로 이어지는 대상로가 있어

 통상· 무역의 요지 로서 예로 부터 “동방의 여왕”이라고 하였는데 BC 64년

로마에 점령되어 속주 시리아의 수도 가 되었고 헬레니즘· 로마 시대에 번영 을 이룹니다.



47~ 55년 사도 바울의 기독교 전도 근거지였으며 그리스도교의 이방인 전도 기지 로서

알려졌는데, 그리스도교도 를 처음으로 “크리스천”이라고 부른 곳이라고 하며 

 3세기중엽 이래 기독교 종교회의 가 열렸으며 아시아 총대주교의 소재지 가 되었습니다.



안타키아는 바울 근거지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가 신약성경에 편입 되었고..... 3세기후 이 도시에서 종교회의

자주 열렸으며 아시아 총대주교 가 설치된 도시로 누가복음의 누가 가 태어난 도시 입니다.



526년의 대지진 과 538년 페르시아군의 파괴 로 황폐화된 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재건했으나 옛 번영을 회복하지는 못했다는데.... 고대에는 소아시아의 프리지아에

있었던 “피시디아의 안타키아” 안티오크로 명명된 도시가 16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635년 이슬람 사라센인 에게 점령되어 300년동안 그 지배를 받다가 969년 동로마

속하게 되었으며..... 1084년 부터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 를 받게 됩니다.



그러자 유럽에서 제1차 십자군 이 결성되어 레몽과 고드프루아등 10여명에

달하는 유럽의 영주들 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니케아 를 함락하고

소아시아를 남진해서... 1,097년 말에 이슬람령 안타키아 로 쳐들어 옵니다.



주요 영주인 레몽 4세는 툴루즈 백작 에 나르본과 마그레브의 공작 이었는데

초기 십자군의 가장 중요한 군주들 가운데 하나로 당시 50대 였다고 합니다.



아데마르 주교와 같이 남프랑스 를 세력기반으로 삼고 있었는데 영지 일부를 팔아 군자금

마련해서는 아내 에비라와 아기인 아들 까지 데리고 원정 을 떠났다고 하네요?




6개월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마침내 도시는 배신자 로 인해 십자군에 의해 점령

당했으며 십자군이 쇠퇴한 이후에는 아랍측에 재점령 되었다가 16세기

전반에는 오스만투르크 가 장악했으며 1920∼1939년 까지는 시리아 가 지배합니다.



그림을 보며 이런저런 회상에서 깨어나 2층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벽에 걸린 그림은 아마도

 고고학박물관 에 있다는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벽화인듯 싶어 한참 바라봅니다.




그리고 식당으로 들어가니 엄청 넓은데 큰 호텔이라 그런지 여행사 패키지

손님등 사람들이 많은데....... 젊은 터키 여자들도 많이 보입니다.



관리하는 여직원이 2명인데 검은 바지에 흰 와이셔츠 정장 차림인데

히잡 을 쓴 여자 손님들과 어울리니 묘한 느낌 이 듭니다.




원래 여행계획서에는 고고학박물관 성베드로 동굴교회 에 교외에 다프네의 유적지

하르비예 에다가 돌무쉬로 30분 걸리는 지중해 바닷가 사만다으 까지 볼려고

했는데 어제 밤, 아니 오늘 새벽 3시에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이 모자라니 걱정 입니다.




동로마 비잔틴제국 시절에 사만다으실크로드의 육로의 끝으로 여기서

배에 실린 진귀한 동방 상품들은 콘스탄티노플 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사만다으 로 부터 6km 떨어진 체블리키산 중턱에 길이 1,300m, 높이 700m 티투스 터널

위치하는데 당시 해수면 상승 으로 항구 도시가 자꾸 바닷속으로 가라앉자 홍수방지와

관개수로 두가지 목적으로 산 중심을 똑바로 파고 들어가 반대편까지 뚫어놓았다고 합니다.






또 산 위에는 사만다으가 셀레우코스조 시리아 초기 수도 였으니 옛 왕족의 무덤 이 있는데

 바로 영화 벤허 촬영지 이니 여주인공과 어머니가 문둥병자 가 되어 생활하던 곳이라네요?





여기까지 볼수 있을른지 마음이 급하니 아침은 대충 떼우고 일어서 작은 가방만

메고는 밖으로 나와서는 안티오키아 고고학 박물관 부터 찾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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