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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터키여행

가지안텝3 - 모자이크박물관에 헬레니즘 문명을!

작성자은혜|작성시간20.07.18|조회수396 목록 댓글 0



가지안텝 여행3 - 가지안텝의 모자이크 박물관을 구경하며 헬레니즘 문명을 떠올리다!

 


5월 21일 터키 동남부에 하타이 Hatay 에서 09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는 이스켄데룬

 Iskenderun 을 거쳐서 13시 30분에 가지안텝 Gaziantep 에 도착해

구시가지 올드타운 에 자리한 호텔 굴루오굴루 Hotel Gulluoglu 에 체크인을 합니다.



  택시를 타고 철도역 건너편에 새로 지어 이전한 새 고고학박물관 Arkeoloji Muzesi 인

Zeugma Mozaik Muzesi 에 도착하는데 가지엔텝 근교에 있는 제그우마 에서 출토된

로마(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에 조각상과 청동기 시대와 히타이트 돌비석 이 있습니다.



 

제그우마 Zeugma 는 가지엔텝의 동쪽 비레직 에서 북쪽으로 유프라테스 강둑에

 BC 3년에 셀레우코스 왕조 가 도시를 건설했으니..... 그 규모는

당시 폼페이의 3배 이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보다도 더 컸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박물관 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 를 소재로 한 수많은 모자이크 들이 있으니... 그

크기놀라고 다음으로는 섬세한 표정 묘사 에 다시한번 감탄을 하는데

2층으로 올라가서는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뭔가 하나 빠진듯 허전한 기분 이 듭니다.



그때 지나가던 유럽인 관광객 이 우리 동양인 부부가 어리숙해 보였던지

걱정하는 마음에..... 집시여인 Cingene Kizi 을 보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히어링이 부족 한지라 어리둥절해 쳐다보니 우릴 옆으로 데리고 가는데 거기 좁은

벽을 통해 안쪽 방으로 들어가니 처음엔 캄캄해서 마치 동굴 에 들어온듯 싶은데

조금 지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니 저 안쪽에 희미한 조명을 받고 우릴 맞이하는 여인 이라! 



루부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처럼 작은 모자이크 는 얼굴 반쪽 뿐이기는 하지만 도시와

호텔광고판에서 익히 보았던 바로 그 집시여인 인데 후래쉬를 사용만 않는다면

사진 촬영을 할수 있지만 스마트폰 은 어두운지라 자동으로 후래쉬가 터지니 불가합니다.



경비원이 어둠속에서 유령 처럼 지키고 서 있는 여기 집시여인 Cingene Kizi 모자이크

디오니소수 축제에서 춤추는 여인 으로 얼굴은 400개가 넘는 자연석 돌 을 사용해

정을 표현 했으며 색깔은 13가지에다가 원근법 을 사용했다는데 은근히 매력적 입니다.



밖으로 나와 아킬레우스 를 보는데 어머니 테티스 트로이전쟁 에 가면 죽는다고 아들을

여장시켜 숨기나 오디세우스에게 들켜 억지로 전쟁터에 가서는 헥토르를 죽이는

첫째가는 공을 세우는데 영화 트로이는 반대로 어머니가 영웅이 될 기회라고 권유했던가요?



 

암소 로 변신한 바람둥이 제우스신 이 예쁜 처녀 에우로파(유럽) 를 태우고 크레타섬

으로 건너 가는 모자이크를 구경하고는 그 옆 구석에서 검은색 마르스

동상을 보는데..... 마르스전쟁의 신 으로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 에 해당하지요?




이 벽화가 출토된 도시인 제그우마로마군단의 주둔지 였으니...... 창과

자연의 재탄생을 의미하는 꽃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제그우마

도시를 만든 셀레우코스 와 또 그가 모셨던 대왕인 알렉산드로스 를 떠올립니다.




 도시 제그우마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진 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BC 334년에 그는

마케도니아군 밀집방진(플랑크스) 보병대 3만에 기병은 2천에다가 헬라스(그리스)

코린트 동맹 보병 7천명에 테살리아 기병등 4만의 병력으로 다르다넬스 해협 을 건넙니다.





아시아 에 상륙하여 아버지 필리포스가 마련했던 아비도스 병사 1만 과 합류한 5만 대군은

트로이 를 거쳐 그라니코스 강변 에서 멤논등 그리스인 용병이 포함된 페르시아군

싸우는데 기병이 되어 적진으로 돌격해서 승리하고는 그리스인들의 도시를 해방 시켰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미트레스 함락후 고르디움을 지나 카파도키아 를 평정하고 아나톨리아

통과해서는 페르시아 해군의 본거지 키리키아 연안 타르소스 를 거쳐

사르디스 함락하고는 시리아 를 공략하기 위해 이수스 (현재 이스칸데룬) 로 향합니다.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군 은 다마스쿠스를 경유하여 킬리키아 에서 남하하니 BC 333년

이수스 에서 전투가 벌어지는데, 급경사 지역이라 기병을 주력으로 하는 페르시아군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마케도니아군의 중앙을 차지하는 중장 보병의 밀집대에 압도당했네요?



다리우스 3세 는 3년전인 BC 336년에 아르타크세륵세스 3세의 아들이자 사촌인 아르세스

암살되자 페르시아 왕위를 찬탈하였는데, 그리스어가 능통해 그리스인 용병

많이 거느렸으니 이수스 전투그리스인 용병 1만 을 동원하는 놀라운 수완을 보입니다.




다리우스 는 시리아에서 우회해 북쪽 마케도니아군의 보급로 를 차단하니 알렉산드로스

되돌아서서 남쪽에 진을 치는데, 페르시아군은 보병 7만에 그리스인 용병 1만

그리고 기병 1만등 9만 에 비해 마케도니아군은 보병 3만 5천에 기병 6천등 4만  입니다.




다리우스의 군대 는 좁은 해안가에 진을 치고 강가에 말뚝을 박아 적을 저지하려 했으며

다리우스는 페르시아군 중앙 배후에 최정예 보병 과 함께 위치하고 그 앞에

그리스 중장 보병들과 페르시아 보병을 배치하고 기병은 우익을 맡아 타격대로 배치합니다.




 알렉산드로스 최정예 컴파니언 기병대을 직접 지휘 하여 오른쪽 날개를 맡고 테살리아

기병을 좌익 에 배치하고 중앙은 파르메니온이 이끄는 중보병인 팔랑크스 를 배치합니다.




전투는 페르시아의 기병이 강을 건너 마케도니아의 왼쪽을 치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알렉산드로스의 왼쪽 날개는 수적으로 우세한 페르시아군을 맞아 최대한 버티면서

오른쪽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정예 기병이 페르시아 를 격파할 시간을 벌어주는 임무네요!




중앙의 마케도니아 중보병 은 강을 건너 페르시아의 전열에 타격을 가하는데 성공했고

알렉산드로스는 컴페니온 기병대 를 이끌고 다리우스의 본진으로 돌파해 들어가자

다리우스는 도망쳤고 알렉산드로스는 뒤로 돌아 페르시아의 그리스 용병을 공격했습니다.



다리우스가 도망가는 것을 본 페르시아 군대는 앞다투어 도망치기 바빴으니 마케도니아군은

패주하는 페르시아군을 살육 하였는데 페르시아군의 시체로 강은 붉게 물들었고

댐을 이룰 정도였다는데 다리우스는 패주하고 왕모와 왕비 및 왕자들은 포로 가 되었습니다.



1831년 폼페이에서 출토된 유명한 모자이크 대벽화는 이 전투 광경을 그린 것이라는데

독일 화가 알트도르퍼도 이수스 전투 라는 이름의 그림을 그렸으니 미술에서 사용하는

히스토리는 그리스어 이스토리아로“역사”라기 보다는 “이야기”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된 폼페이 모자이크 “파우누스의 집”

에서 출토되었는데..... 젊은 알렉산드로스 가 불리한 전황을

뒤집고 극적으로 승기를 잡는 순간을 역동적으로 묘사한 걸작이라고 하네요?



 알트도르퍼가 그린 이수스 전투 는 전차를 타고있는 다리우스 3세나 알렉산드로스가 두드러

지지 않는데 소재를 부각시키는 대신에 스케일이 큰 파노라마 풍경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의 전환을 개관하는... 이른바 “세계 그림”의 구성을 취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수스 전투 알렉산드로스 는 내륙으로 달아난 다리우스 3세를 추격하지 않고 지중해를

따라 페니키아로 남하해 티루스 등 험난한 전투를 거쳐 이집트 를 점령하는데

 이는 페니키아의 페르시아 해군 이 후방에서 보급을 차단할 것을 염려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2년 후인 BC 331년 10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끄는 헬라스 동맹군과 다리우스 3세

이끄는 페르시아군이 유프라테스강 동쪽 바그다드 북쪽에 위치한

가우가멜라 에서 역사상 유명한 가우가멜라 전투 는 알렉산드로스가 대승을 거둡니다.



  다리우스 3세 는 페르시아군 20만명 코끼리· 전차· 기병으로 2중으로 횡진을 펼치니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헬라스 동맹군은 4만 7000명 으로 기병은 페르시아군

좌익을 강습하여 다리우스 3세를 패주시킴으로써 이 전투 결과 페르시아왕국은 멸망 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수사와 페르세폴리스 를 함락하고 아프가니스탄의 발흐와 중앙 아시아의

부하라 및 인더스 강 유역까지 정복하고는 바빌론 으로 돌아와 대성공을

축하하는 연회를 베푼후 곧 병들어 사망하니 BC 326년으로 그의 나이 32세 였다고 합니다.



 장군들에 의해 네나라 로 분할되었으니 셀레우코스 Seleucos 는 시리아와 소아시아반도

대부분 및 인도 변방에 이르는 동부 지역을 차지하였고, 소아시아 반도의 나머지는

안티고누스 , 마케도니아는 안티파트로스 그리고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가 차지 합니다.



이것을 구약 성서 에서는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 현저한 뿔 넷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죽기전에 페르시아 사카이에 옥시아르테스의 딸인 록사네와 결혼 하고 부하 장군들에게도

결혼을 권유하여 동서문명이의 융합 을 꾀했으니 헬레니즘 문명 인데 BC 330년

부터 프톨레마이오스조 이집트 로마 에 정복당하는 BC 30년 까지 300년간 이어집니다.




후계자중 하나인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키아와 제그우마 등 많은 도시들을 건설하고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모자이크 벽화 를 제작해 헬레니즘 문명  발전시킨후 BC

30년 로마에 넘겨주었으니 동로마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비잔틴 문명 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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