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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터키여행

크즈칼레시4 - 일출을 보고 해변에서 처녀의 성을!

작성자은혜|작성시간20.08.20|조회수230 목록 댓글 0



크즈칼레시 여행4 - 크즈칼레시 일출을 보고 해변에서 바다에 처녀의 성을 바라보다.

 


5월 23일 타르수스 Tarsus 에서 버스를 타고는 메르신을 거쳐 지중해안의 휴양도시

크즈칼레시 Kizkalesi 에 도착해 해변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해변을

구경한후 다음날 24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5층 베란다로 나가 5시 반에 일출 을 봅니다.




 해변으로 내려가 모래사장을 걸어 지중해 를 보는데 해변에서 300미터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는 18세가 되기 전에 뱀에 물려죽을 아르메니아 왕국의

공주 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처녀의 성”Kizkalesi 성채가 환상적 입니다.




크즈칼레시 가 속한 킬리키아 Cilicia 는 터키 남부 토로스 산맥의“킬리키아문”을 지나

지중해에 서쪽 아나무르에서 동쪽 아다나 에 이르는데 BC 12세기에 히타이트 제국

붕괴후에는 아시리아의 지배가 미쳤고 BC 6세기에는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에 예속됩니다.




BC 33년 킬리키아문 을 통과해 내려온 알렉산더 대왕 과 페르시아가 대결한 이수스전투

비롯한 중요한 전쟁의 무대가 되었는데 대왕 사후에 셀레우코스 왕조

 지배를 거쳐서 BC 67년 폼페이우스의 킬리키아 해적 소탕 으로 로마의 속주 가 됩니다.




비잔틴제국 시대에 아랍 이슬람 세력이 진출했고 그후 1080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시대 300년을 거쳐 1265년 이집트 맘루크 왕조 에 지배당했으며 1,515년에는

오스만터키 땅이 되었는데 1919년 프랑스가 일시 점령했으나 터키공화국에 반환하였지요?




 아르메니아 왕국 셀레우코스 제국 이 쇠퇴하던 BC 190년 아르타시아스 에 의해 창건된

후에 시리아, 레바논과 동터키 지역으로 확장해 위세를 떨쳤으나 로마 폼페이우스

장군에게 패해서 로마 속국 이 되었다가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셀주크에 정복 됩니다.




여기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 은 원 근거지인 카프카즈를 셀주크 투르크가 침공하자

도피한 아르메니아계 유민들 이 1080년에 타르수스에 세운 루벤조 공국

시초인데 수도를 시스 로 옮겼으며 유럽 십자군에게는 강력한 기독교 동맹국 이었습니다.




1198년 루벤조 레본 1세가 킬리키아를 왕국 으로 만들었으며 몽골과 동맹을 결성해 이집트

맘루크에 대항 했으나 십자군 국가들이 해체되고 몽골이 이슬람화되자 이집트 공격으로

1375년 멸망하는데 크즈칼레시성에 보호된 공주의 아버지 아르메니아왕 은 13세기 사람이라?




1095년 루벤이 죽자 아들 코스탄딘 1세가 공국을 이어받았는데 1차 십자군 원정 이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아나톨리아를 지나 킬리키아로 진군해오자 아르메니아 공국은

프랑크 십자군을 동맹군 으로 얻게되는데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구원자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코스탄딘 은 킬리키아에 남아있는 동로마 비잔틴의 요새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이 킬리키아

지배를 확고히 하려는 계획이었으니 안티오키아, 에데사, 트리폴리에 십자군 국가 들이

세워지는 등 십자군들의 도움으로 동로마 비잔틴인들과 투르크족 위협으로 부터 벗어납니다.




교황 은 "아르메니아인들 이 교회와 기독교 세계에 보여준 선한 행동 중에 기독교 군주들과

전사들이 성지를 되찾기 위해 나섰을때 열정과 기쁨, 충성과 믿음 으로

십자군에게 군마와 식량 을 제공하고 인도해 주었다 는 것이다.“ 라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아르메니아 공국과 십자군은 서로 통혼 했으니 에데사 백작 조슬랭 1세 는 아르메니아공

코스탄딘의 딸과 혼인 했고 고드프루아의 형제 보두앵 코스탄딘의

조카딸과 혼인 하는등 2세기 동안 서로는 동맹자이면서도 라이벌 관계 를 유지 합니다.




레본 1세 는 1129년에 집권해 여기 킬리키아의 해안도시 들을 통합해 아르메니아인들의

공국 으로 만들었으나 셀주크 투르크와 사이에 적대 상태 가 계속되었고,

  안티오키아 공국 과도 남부 아마누스산맥 근처에 위치한 요새들을 놓고 분쟁을 벌입니다.




요안니스 2세 콤니노스 황제의 동로마 비잔틴군이 킬리키아 평원지대에 위치한 마을과 도시를

정복하고는 아르메니아의 레본공과 자식들을 콘스탄노플에 감금했는데... 두번째 아들

도로스 2세는 1141년 탈출해 킬리키아 로 돌아와서 동로마 비잔틴에 대한 투쟁 을 이끕니다.




킬리키아 공 레본 2세 는 1187년 작위를 계승해 코냐, 알레포, 다마스쿠스의 지배자들과

싸웠으며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패배시키면서 3차 십자군 이 시작되어 교황 클레멘스

3세로 부터 지원요청을 받고 1199년 타르수스 대성당 에서 왕위에 오르니 레본 1세 입니다.




아르메니아 레본왕 십자군 안티오키아와 동맹국 으로 귀족들과 통혼했으니 안티오키아

 복속하려고 하자 “안티오키아 계승전쟁”이 일어나지만, 셀주크 투르크의 위협

직면하자 안티오키아 보에몽 4세의 아들인 필리프와 자벨 여왕을 혼인시켜 동맹 을 맺습니다.




 카톨릭교도인 필리프 아르메니아 교회 계율 을 따를 것을 거부했으니 1124년 시스에서

살해당하고 자벨여왕은 헤툼 가문에 결혼을 강요당해 왕위가 넘어가는데 안티오키아

보에몽 은 아들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룸 셀주크 술탄 케이쿠바드에게 동맹 을 제안합니다.




 징기스칸과 후계자 오고타이 가 이끄는 몽골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중동에 진출해 시리아와

이집트로 진군하며 1243년 6월 몽골인들은 쾨세다으에서 셀주크 투르크 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자 아르메니아왕 헤툼은 동생을 몽골의 카라코룸 궁정으로 보내 동맹을 맺습니다.




아르메니아 왕 헤툼 은 1259년 몽골 훌라구 군대의 깃발 아래 종군하며 이슬람화 된

시리아로 진군해 알레포와 다마스쿠스 함락에 참가 하는데 이무렵 이집트 에서는

투르크계 노예인 맘루크 들이 아유브조를 대체하고는 1253년 팔레스티나 를 장악합니다.




여기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기독교왕국 도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로 진출해 향료무역

주도권을 놓고 이집트 맘루크조와 충돌 하는데 1226년 맘루크의 바이바르스는

킬리키아를 침략 하니 헤툼은 포로가 된 아들 레본은 구하고자 요새와 돈을 지불합니다.




1268년에는 큰 지진 이 나고 이어 1275년에는 이집트 술탄의 에미르 들이 군대를 이끌고

아르메니아를 침략하니 타르수스 시가 떨어졌고 성 소피아 성당이 불탔으며 국고는

약탈당하고 1만 5천명의 민간인들이 살해당했고 1만명이 포로가 되어 이집트로 끌려갑니다.




그러자 1281년 몽케 테무르 가 지휘하는 몽골-아르메니아 연합군 이 결성되었으나...

2차 홈스 전투에서 맘루크들에게 패배 한후 1285년에 이집트의 칼라운이 강력한

공세를 가하자 아르메니아인들은 가혹한 조건으로 10년 기약의 조약을 맺어야 했습니다.




1299년 헤툼 2세는 페르시아의 몽골 칸인 가잔 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칸은 시리아로 군대를

이끌고 왔고 키프로스 프랑크족인 키프로스왕, 성전기사단, 구호기사단, 튜튼기사단

참가해 와디 알 하잔다르 전투 에서 맘루크을 격퇴했으나 몽골군이 철수 하자 다시 뺏깁니다.




1303년 일한국 몽골은 8만명 군대를 일으켜 아르메니아와 연합해 시리아를 정복하려했지만

1303년 홈스와 다마스쿠스 남쪽 샤캅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격퇴당하고 말았으며

가잔칸도 다음해 병사 하니 1341년 레본4세 왕이 군중에게 살해 당해 아르메니아는 망합니다.




해변 에서 이런저런 회상 에서 깨어나 모래사장을 걸어 호텔에 돌아와서는

정성스레 차려주는 아침 식사 를 여유롭게 하고는 체크아웃을 합니다.





그러고는 호텔을 나와 배낭을 메고 걸어 큰 도로변에 위치한  Akdeniz 버스 사무실 앞에서

돌무쉬 를 타고는 40분만에 실리프케 Slifke  에 도착하는데 요금은 5리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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