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프케 여행3 - 굑슈강 다리에서 3차십자군을 회상하고 타수주에 도착해 범선을 보다!
5월 24일 터키 남부 지중해의 크즈칼레시 에서 돌무쉬를 타고 실리프케 Slifke 에 도착해
호텔을 정하고는 로마 신전과 아타튀르크의 집을 지나 산 정상에
실리프케성 Slifke Kalesi 을 구경하고 굑수강 타쉬큐프류 Goksu Tas Kupru 다리를 봅니다.
이집트의 술탄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이 함락자 일어난 3차 십자군 원정때에 신성로마제국
(독일) 의 바르바로사 프리드리히 Barba Rossa 황제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이슬람 룸 셀주크의 옮긴 수도인 이코니움(콘야) 전투 에서 셀주크군에게 승리 합니다.
그러고는 기세좋게 남하해서는 여기 실리프케의 엑실레르 Eksiler 마을을 흐르는
살레프 강 ( Saleph River, 현재 굑수강 Goksu Nehri ) 을 건너다가 말이
발을 헛디디는지라 낙마해 익사하니 독일 군대는 성전을 포기하고 독일로 철수합니다.
하지만 차남 슈바벤의 프리드리히 는 부친의 시체를 식초로 방부처리 해 5천의
병력 을 이끌고 계속 전진해 안티오키아 로 가서는 성전에 참가하는데
황제의 시신 은 타르수스와 안티오키아를 거쳐서 레바논의 티레 에 까지 이릅니다.
유럽 고향의 성당에서 열린 출정식 에서 성직자와 수많은 백성들 앞에 하느님
에게 성지 탈환을 서약한 십자군 들이 왕이 죽었다고 해서
무려 95% 가 이를 어기고 돌아선 것은 "군비와 보급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신성로마제국 독일 은 동프랑크왕의 가계가 단절된후 주요 제후와
성직자들이 황제를 선출 하는데 누가 차기왕이 될지 모르는 상황 에서 황제 선출
문제가 급하데다가 그가 십자군에 돈과 보급품 을 보내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 이지요?
그래도 차남 슈바벤의 프리드리히 는 오스트리아 백작 레오폴드 와 함께 5천의 군대로
레반트 로 진군해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및 프랑스 필리프 2세 와 합류해 셀주크 및
이집트 살라딘 군대와 이스라엘 최북단에 위치한 아크레성 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입니다.
하지만 이때 프랑스의 왕 필리프 는 사자왕 리차드 와 프랑스내 영국 영토 를
두고 오랫동안 다투었으니..... 서로 사이가 나쁜지라 먼저 철군 하지요?
그런데 어렵게 동방에 도착했던 저 신성로마제국 독일군 오스트리아 백작 레오폴드
가 아크레성을 탈환 한후 성루 에 오스트리아 국기 를 내걸자....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는 왕도 아닌 주제에 건방지다며 국기를 뽑아서 던져 버립니다.
이후 리처드 왕 은 야파까지 팔레스타인 해인지방을 빼앗고 이슬람 군대를 격파한후
예루살렘 으로 진격하다가 성이 튼튼한데다가 병참 부족 에 고국에 있는 동생
존이 프랑스왕 필리프와 손을잡고 영국 왕위 를 노린다는 소식에 휴전하고 철군 합니다.
그런데 영국왕이 탄 배가 이탈리아 동북부 오스트리아령에 표착 하니 왕은 변장 한채
신분을 속이고는 독일을 거쳐 육로로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데......
신분이 탄로나 오스트리아 백작 레오폴드에게 체포되어 뒤른슈타인 성에 감금 됩니다.
황제 하인리히 6세는 리차드를 넘겨달라는 프랑스 요구를 거부하고 영국에 15만 마르크의
몸값을 요구하니 존왕의 반대 에도 불구하고 엘레노아와 가신 들이 교회 성물까지 팔아
왕을 데려오는데 리차드 는 반란을 일으킨 프랑스내에 리모주성을 공격하다가 전사 합니다.
왕위에 오른 존 은 무능한 탓에 전쟁마다 패해 프랑스내 영토를 잃고 스코틀랜드와 전쟁을
위해 국회 를 소집해 추가 세금 을 요구하자 의원들이 국왕을 굴복시킨후 마그나카르타
(대헌장) 를 얻어내니 상설 국회와 법치의 출발점 으로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시작 이지요?
실리프케 Slifke 는 BC 3세기초 셀레우코스 1세 에 의해 칼리카드누스 강 연변에 건설된
도시로 9개 셀레우키아중 하나 인데 도시의 지배권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를 오가다가..... 최종적으로 셀레우코스왕조 에 귀속 되었습니다.
BC 67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가 아란야에서 해적을 격퇴하고 동지중해 를 지배할 때
실리프케도 포함 되어 석교와 신전이 지어졌으며 크리스트교 가 퍼지면서 박해를
피해 도망친 여성 테클라 가 교외에 위치한 동굴에서 은둔생활 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슬람 아랍인 은 비잔틴 시대인 7세기에 침략하기 시작 했으며 11세기에는
투르크족 이 침입 하고 십자군 침공 등 혼란이 지속되다가 1,471년에 이르러
오스만 타키에 귀속되었는데 셀레우키아라는 도시명이 실리프케 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강변에 들어선 임시 시장을 구경하던 울 마눌은 눈썰미 가 있는지라 용케도
호치키스 처럼 생긴 아주 작은 미싱 을 발견하고는 두개를
구입하는데 귀국후 실제로 사용해 보니 일반 미싱처럼 옷이 기워진다고 하네요?
이런저런 회상에서 깨어나 사람들에게 항구 도시 타수주 Tasucu 로 가는 버스
가 출발하는 곳을 물어 석교에서 한블록 떨어진 곳으로 찾아가니
여긴 작은 공원 앞에 3거리인데.... 돌무쉬 dolmuş 차량들이 많이 보입니다.
또 사람들에게 물으니 그 중에 노랑색 버스 를 타라는데 10분쯤 지나 출발해서는 도시를
빠져나가 남쪽으로 달리더니 돌연 대로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산길 을 올라갑니다.
의아하게 생각 했더니 이 버스는 직행이 아니고 도중에 있는 여러 마을을
들러 손님들을 내리고 태우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산에서 내려와 대로를 잘 달리다가도 또 사잇길로 들어가 어느
농촌 마을에 서더니 승객을 내리고 태우고 그러고는
또 다시 대로로 나가 언덕을 넘어가니 드디어 바다와 도시 가 보입니다.
타수주 Tasucu 는 유명한 관광 항구로 실리프케 보다도 더 큰 도시라 아고다와 부킹닷컴에
여러 호텔이 검색되는데 실리프케를 출발한지 30분이 넘어 항구에 도착하기로 내립니다.
그전에 버스가 복잡한지라 청년 이 우리에게 어디가냐 묻고는 돈을 받아 기사에게
건네주었는데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는 우리 앞에 붙어서서
이것 저것 묻기에 걱정되었는데.... 내리니 뒤도 안보고 쿨하게 제갈길을 가네요?
우리 부부가 내린 곳은 타수주의 해변 공원 인데 갈매기 등 이런저런
기이한 모양의 조각상 들이 많이 서 있어서 구경할만 합니다.
그러고는 항구에 정박중인 배 들을 둘러보는데 그중에서는 범선 도 보이고 또
캐러비안 해적 등 여러 모양을 장식한 배도 많은데 아마도 여기
바다와 섬 을 한바퀴 둘러보는 관광선 에다가 어떤 배는 선상 식당 인가 합니다.
이 도시 타수주 Tasucu 는 동쪽 메르신 과 마찬가지로 키프로스 섬 으로
가는 페리 항구 가 있으며 도시는 바닷가 삼각주로
터키 최대 400 마리의 철새 를 관찰할수 있는 새 보호 구역 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안탈랴를 거쳐 패티예 에 이르는 지중해 해안 에는
요트와 보트 는 물론이고 범선 과 이런류의 관광선 배 들이 무수히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