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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터키여행

시데 9 - 원형극장을 보고 열주대로를 걷다!

작성자은혜|작성시간20.10.25|조회수331 목록 댓글 0



시데 여행9 - 원형극장을 보고는 아고라며 열주대로를 걸어서 오토가르로 가다!

 


5월 26일 터키 콘야 에서 버스를 타고 마나브가트 를 거쳐 지중해의 시데 Side

도착해 로마 시대 아고라와 박물관을 보고 아폴론신전에 이르러 일몰

Sun Set 을 구경하고 하룻밤을 잔후 아침에 다시 마을 해변을 산책하고 돌아옵니다.





남쪽 항구와 시청을 거쳐 서쪽 해변까지 보고 기념품숍이 늘어선 골목을

빠져나와 마을 입구에 해당하는 기념문 앞에 이르러

독일산 검은 사냥개 를 피해 호텔로 돌아와서는 식당 으로 내려갑니다.






식당 벽에는 여러 장식과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몇십년은 된듯한 군인 상반신

사진은 케말 파샤? 아님 혹시나 이 집의 조상님 인지 모르겠습니다.





개인별로 차려주는 수프등 진수성찬 아침을 드는데 아주머니가 어찌나 다변 인지....

손님이 밥먹을 시간마저 주지 않을 정도로 계속해서 말을 거네요?



아침을 먹고는 배낭을 메고 내려와 체크아웃을 하는데 아주머니나 스마트폰에

번역기에다가 터키어를 입력해 한국어로 변환 해서 대화를 이어 갑니다.



첫째 그간 호텔에서 불편하지는 않았느냐?

둘째 시데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느냐, 

 셋째, 당신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등등.....



신용카드로 호텔비를 계산하자 영수증을 끊어주면서 신용카드에 비밀번호

설정하라고 일러주네요? “분실이나 도난을 대비해 다 네 돈이다?”라면서....




우리가 신용카드로 ATM 에서 현금을 찾을때는 반드시 비밀번호를 넣어야 하지만 카드로

일반결제시는 그냥하는데 이때도 비밀번호를 넣어야 결제가 되는 제도 가 있는 모양입니다.




배낭을 메고 골목을 빠져나와 기념문을 지나면 로마시대에 지은 야외 원형극장 인데 2세기에

지어져 1만 8천을 수용할수 있다고 하니 그럼 당시 시데의 인구는 18만 정도였나 봅니다.



 야외 원형 극장은 로마 시대에는 검투사 시합 이 열렸고 동로마 비잔틴 시대에는

예배장 으로 사용했다는데 보존상태가 좋은지라 마눌에게 배낭을 맡기고 입장합니다.




5월 14일 앙카라 고고학 박물관에서 185 리라(7만여원) 하는 15일짜리 

 뮤제 카르트  Muze Kart ( Museum Pass) 를 구입했으니

보여주고 들어가는데 이제 이틀 밖에 안남았으니 부지런히 써야 하네요?  




밖으로 나와 도시 진입로 열주대로 를 걸으며 유적을 보는데 시데(Side) 는 고대에

팜필리아 지방 의 최대 항구도시로 바다를 향해 남쪽으로 돌출된 반도인데

BC 5세기경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시기임에도 독자적인 주화 가 발굴 되었습니다.




원형 극장과 가까운 아고라의 남서쪽 모퉁이에는 아주 독특한 아치형 지붕을 가진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라트리움(latrium)” 즉 공중화장실로

사용된 것으로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화려하고도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하수도 는 이곳으로부터 오물을 멀리 운반해 가는 역할을 하였다는데 24개의 화장실 처리가

가능했으며 반면 건물의 정면에 있는 수도관 은 깨끗한 물만을 운반하였다고 합니다.




아고라 의 정중앙에는 원형의 사원이 있는데 티케, 즉 행운의 여신 에게 헌정된 것으로

지금은 구조물의 토대(podium) 밖에 남지 않았지만 본래는 12개의

원주들이 외부를 장식하고 있었고 피라미드 형식의 지붕으로 덮여있었다고 합니다.




여기 대로변 아고라 는 남쪽 모서리를 따라 이어지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어제 우리가 보았던 제2 아고라와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 아고라 역시 정방형의 구조를 하고 있으니 주랑(protico) 에 의해 감싸져 있는데 아고라

중앙에 있던 높은 단상은 노예를 전시하고 판매 하는 장소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동쪽의 주랑 뒤편에는 큰 규모로 장식되어 있는 건물이 있었고 거기에는 세개의 방이

있었으니 아마도 궁전 이었거나 아니면 도서관으로 쓰이지 않았나 짐작되는데

이 건물은 본래 2층으로 석상들로써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오늘날에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고라의 목욕탕 은 다섯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비잔틴 양식의 건물로서 그 년대는 AD 5세기

경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은 아치형의 현관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첫번째 방은 즉 작은 냉욕탕 을 보유하고 있는 프리기다리움이니 이곳을 지나면 석조돔

(stone-dome) 으로 된 한증막 (sweating room) 즉 로코니쿰(lokonicum) 으로 이어집니다.



 

세번째 방은 제일 큰 방으로서 뜨거운 방 즉 칼다리움(caldarium) 인데 목욕실의 대리석

바닥 아래에는 열기를 유지하기 위한 보온시스템 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칼다리움을

지나서 좁은 문을 통과하면 두 개의 방으로 되어있는 테피다리움 즉 샤워구역 이 나옵니다.



목욕탕 정면에는 “팔라에스트라(체육관)”가 있는데, 이곳은 주랑의 형태로 감싸져

있는 안뜰이며 여기에서 사람들은 목욕하기 전에 운동 을 즐겼습니다.





BC 1세기 무렵 시데에는 실리시아(Cilicia) 해적 들이 쳐들어와서 도시를 해적의 본거지와

노예시장 으로 바꾸어버렸다지만 시데 사람들은 해적들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것

 같으니 왜냐하면 그들로 인한 "교역으로 많은 수입" 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데의 주 도로 는 북동쪽의 성문으로 부터 시작되며 반도의 서부 끝 지점에

이르기 까지 거의 직선으로 계속해서 뻗어있으니.....

도로를 따라서 도시의 주요 관공서들과 그 구획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시데는 완벽하게 계획된 수도시설을 갖추고 있었다는데 수도시설은 지하수도관 (Vault)

으로 감싸져 있었고, 주도로 밑과 기타 소도로 밑에 매설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성벽 바깥 정문 반대편에는 님파에움이라는 기념 분수대 가 있었는데 이는 세개의

닌치로써 전면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그 앞에 분수샘 (fountain) 이 있었다고 합니다.



파이프관을 통해서 흘러들어온 물은 니치들의 정중앙에 있는 분출구(spout) 를 통해

뿜어져 나왔다는데 이렇듯 부유한 도시에 사원이 많은 것은 신들의 짖꿎은

경제활동 방해를 염려해서 더욱 "신전을 세우고 종교가 발달" 했다고 여겨집니다.




팜필리아 에서 다채롭고 아름다운 사원들은 시데에 있는데 반도의 남쪽 끝 부분 항구에

아폴론신전 아테나신전 두개의 사원이 있으니 AD 2세기에 대리석으로 건설되었고 

 2줄의 열주 (列柱) 페리프테로스(peripteros) 양식으로 고린도식의 배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6개와 11개의 기둥을 가지고 있는데 AD 5세기 경에는 이들 사원 정면에 커다란 바실리카가

 세워져 안뜰(atrium) 이 조성되었으니 많이 손상되기는 했지만 본래의 형태는 추정

가능한게 뱃사람들 가운데서 수호신으로 숭앙받던 신이 아테나(Athena) 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덮인 아치형 거리인 아케이드 거리와 원형 극장 사이에는 초기 로마시대 신전

유적이 자리잡았으나 지금은 토대만이 남아있을 뿐인데 신전 성상안치소

(cella) 정면에는 기둥이 네개 가 있으니 이들은 고린도 양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원형극장의 형태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디오니소스 를 위한 신전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자신만의 언어로 “석류”인 시데 Side 는 이름처럼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종교가 성했지만 유명한 노예시장 이었다는 악명을 가진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원형극장에서 10여분 이상을 걸어 오토가르 Side Bus Station 에 도착해서는

오늘은 지중해변의 최대 휴양도시 안탈랴 Antalya

가야하는데 먼저 마나브가트 Manavgat 로 가는 돌무쉬 버스 를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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