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랴 9 - 해수욕장에서 돌아와서는 구시가지에 있는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보다!
여행 16일째인 5월 28일 지중해안에 위치한 휴양도시 안탈랴 의 구시가지인 칼레이치
kaleici 의 공화국 광장에서 트램 을 타고는 10여분을 달려 종점에 내려
안탈랴 고고학박물관 을 보고는 언덕을 걸어 내려와 해변 바닷물에 발을 담급니다.
오늘이 5월 하순이니 아직 해수욕철이 아니고 오전이라 그런지 해변 에 수영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비키니 차림으로 선탠 하는 사람들은 많으니 눈이 즐겁습니다.
모래 사장에 한참동안이나 드러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나서는 걸어 올라오니
언덕 위에는 고급 호텔 에 다시 눈이 가지만 여행사 패키지
라면 몰라도..... 우리 같은 가난한 배낭여행자 에게는 그림의 떡 이지요?
여기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유명세를 간직한 쿠르순류 폭포 Kursunlu Selalesi
이지만 시간이 모자라니 우린 그만 공원에 들어가 잠시 쉬는 쪽을 택합니다.
공원 의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며 아이들이 노는걸 구경하는데 마침 노면전차 트람봐이
Tramvay 트램이 들어오기로.... 어제 구입한 교통카드 한 장으로 두번
찍는데... 카드가 없으면 3리라를 주고 현지인에게 한번 찍어 달라고 부탁하면 됩니다.
여긴 바다에 절벽처럼 보이는 높은 언덕인데 트램은 오른쪽으로 지중해 바다 를 끼고
줌후리예트 거리 Cumhuriyet Card. 를 달리니 공원이 보이고 공화국 광장과
시계탑 (칼레카프스 : 성문) 이니 구시가지 칼레이치 입니다만 내리지 않고 계속 갑니다.
모퉁이를 돌아가 조금 더 달리니 다시 오른쪽으로 보이는 것은 로마시대 에 지어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 Hadrianus Kapisi 인데 저것도 조금 후에 보기로 합니다.
트램은 멋진 야자수 가로수 가 하늘에라도 닿을듯 줄지어 늘어선 거리를 따라 달려서는
모퉁이를 돌면서 다시 바다 가 보이기에..... 이쯤에서 그만 내리기로 합니다.
언덕으로 가서는 푸르디 푸른 지중해 바다 를 보는데 여기에서는 해변으로는
내려가기 어려운지라..... 다시 돌아서서 걸으니 호텔인가 본데
8개 나라 국기가 걸려있으니 태극기가 일장기와 나란히 나부끼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고는 걸으니 요란한 경적음을 울리며 흰색 스포츠카 가 지나가는데
보자니 풍선이며 색깔 천 이니 그럼 방금 결혼식 을 올린
신랑신부 인가 본데...... 그들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빌어 줍니다.
그때 울 마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게 터키의 대형 체인 마트 를 발견했기 때문인데
“SOK" 라고 적힌 마트로 들어가서는 어제 시내 마트에서 구하지 못했던
참치캔 3개를 모두 5.75 리라 (2천3백원) 에 구입하고는 물도 한병 집어 듭니다.
이제 길을 알았으니 트램 을 타지 않고 걸어서 돌아오는데 도로변에 서
있는 큰 사진은 항구 인데 보니 어제 오후에 우리가 보았던
안탈랴 구항구 에스커리만 인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아도 참으로 우아합니다.
여기 야자수 늘어선 풍취있는 거리에는 청동 조각상 도 많이 보이는데 플룻 을
부는 소녀며 키타와 바이얼린을 켜며 노는 청개구리 에 갈매기 그리고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며 터키 차 짜이를 파는 노인 의 모습등 아주 다채롭습니다.
풍선을 수없이 매달아 놓은 가게에 사람들이 둘러서서 간단히 서서 접시에
음식을 즐기기에 기웃거려 보는데 무슨 "개업식"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고는 드디어 도로 왼쪽에 위엄있게 버티고 선 고풍스러운 로마시대의 문이
보이니 바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 Hadrianus Kapisi 인데
서기 130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도시 방문을 기념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Three Gate 라고 불리는 이 문은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이는 문이 현재
시가지 보다 3m 아래에 서 있기 때문인데 그럼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흙이 3m 나 옛 시가지 건물 위에 쌓였다는 뜻인가 봅니다?
오늘날의 소아시아 지중해 연안을 로마가 정복한 것은 폼페이우스 장군으로... 그는
BC 67년 지중해 안탈랴에서 실리프케에 이르는 해적 들을 소탕했으며 BC 66년
미토리다테스를 격파하고 동쪽으로 진군해 BC 63년까지 레반트 지역 을 수중에 넣습니다.
로마제국의 전성기라면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 이어지는 5현제 시대인데
중국의 요순 처럼... 황위를 자식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을 골라 넘긴게 특색입니다.
하드리아누스 는 스페인 이타리카에서 출생해 당숙이자 후견인 트라야누스의 양자 가 되어
황위를 이은후 선제 트라야누스가 전쟁을 일으켜 넓힌 방대한 영토를 2차례에 걸쳐
12년간을 순시 하여 내정의 안정을 꾀한 현명한 황제였는데 안탈랴에도 방문 했나 봅니다.
트라야누스 황제 는 평화정책을 버리고 다키아인(루마니아)과 5년간 격전 끝에 격파했으며
강적 파르티아 왕국과 전쟁을 벌여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를 잇달아 빼앗고
로마 황제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티그리스 강을 내려가 페르시아 만 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저 광대한 영토를 유지하는 것은 정복보다도 어려웠으니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시작으로 반란이 잇달아 발생했고 선제가 원정 귀환중에 죽자 하드리아누스는
시리아에서 즉위했으니 그도 진압전쟁에 참전했던 것이지만 완전한 진압은 불가능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는 반란의 불씨 가 남아 있는 먼 속주 통치를 단념 하고는
아라비아를 제외한 동방 영역을 포기했으며 수세(守勢) 로 돌아섭니다.
정복보다는 방위쪽에 관심을 쏟게 되니 브리타니아 북부의 "하드리아누스의 성벽" 건설이나
라인강, 도나우강 상류를 강화하는 550㎞ 에 이르는 게르마니아 방위선 이 그것이지요?
또 하드리아누스는 여행을 좋아하여 21년의 재위 기간 동안 제국을 시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모든 속주를 직접 방문 하고 현지에서 직접 문제들을 해결 했으니 무엇이든
확실히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비밀경찰을 조직해 경쟁자들의 사생활을 엿봅니다.
서기 132년에 그는 파괴된 성지 예루살렘 을 재건하여 식민 도시로 삼으려다가
이교도의 이주에 반발한 유대인들의 반란 을 초래했으니.....
유대인들의 진압 에 4년이 걸렸고 로마군은 수많은 전사자 들을 냈다고 합니다.
그리스풍 을 좋아하는 취미는 네로 황제를 연상케 했으며 하드리아누스는
사랑하던 연인 안티노우스 를 이집트에서 사고로 잃은 후에는 더욱
신경직절이고 냉혹한 사람으로 변해 그의 평판은 점점 더 땅에 떨어 집니다.
매사에 변덕스럽던 폭군 하드리아누스는 후계자를 선택할 때도 파문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국에는..... 고결한 성품을 지닌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를 지명 합니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는 바로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인데 하드리아누스는
후계자를 지명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서기 138년에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나마 로마 제국으로서는 아직 운이 다하지 않았던 것이네요?
이러저런 하드리아누스 와 로마제국의 옛일에 대한 회상을 마치고는 개선문 을
지나 올라가 골목길로 접어들어 엣 터키인들의 풍습을 재현해 놓은
칼레이치 박물관 을 보고는 다시 흐드를럭 탑 을 지나 해변 으로 갈 생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