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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1

가루이자와5 - 우키요에를 보고 프랑스 인상파를 생각!

작성자은혜|작성시간22.05.20|조회수174 목록 댓글 0

가루이자와5 - 구가루이자에서 우키요에 그림을 보고 프랑스 인상파를 생각하다!

 

 

2019년 4월 13일 쿠사츠 온센 草津溫泉(초진온천) 버스 터미널에서 2,200엔에 버스티켓을

끊어, 9시 10분에 출발한 버스는 산을 넘어 백사노동 (白糸の潼) 을 거쳐 가루이자와 

 かるいざわ 軽井沢 (경정택) 역에 도착해 코인로까 를 찾아 배낭을 넣고 신사가지

에서 20분을 걸어서....... 구 가루이자와역 ( 駅舍旧軽井沢 역사구경정택)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왼쪽 도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서는 성 바오르 가톨릭 교회당건물에 

도착하는데.... 주차장에는 4월 중순에 눈이 많이도 쌓여 있는 것을 봅니다.

 

 

여기 가톨릭 성 바오르 교회 마당에는 돌로 쌓은 기단 위에 다시 나무로 층대 를 만들고

그 위에 자리한 종탑 이 단순하면서도 참 자연친화적이면서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니 유럽에서 보았던 화려하면서도 성상으로 가득해 복잡해 보이던

고급스럽고 화려한 모습과는 반대로 심플하면서도 단순 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문 위에 파이프 오르간 이 보이고 정면에는 나무 십자가상 아래 강단 이 보이는데 전체 구조가

소박 하면서도 훈훈한 느낌 을 주는 성 바오로 교회  미국 건축학상을 수상 했다고 합니다!

 

 

다시 돌아나오니 옛날 거리인 구가루이자와 (旧軽井沢) 거리에는  들이 그 종류

 하도 다양해서 없는게 없다는 말이 통할만도 한데..... 어느 에쁜 집

앞에 멈춰 서서 보니 Trick Art Musium Karuizawa 라? 그럼 여긴 뭣하는 곳이람?

 

 

우키요에 (浮世絵 부세회) 인 듯 오래된 옛 그림 이 있어 발걸음을 멈추니...

 軽井沢物産館(경정택물산관) 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데 그림을 뜯어

보자니 골동품 까지는 아니더래도 옛날 사용하던 물건들을 모아놓은 곳일까요?

 

 

우키요에(浮世繪(부세회) 란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 부터 에도시대 말기까지 서민생활을

기조로 제작된 목판화(木版畵)로 평화가 정착되면서 신흥세력 무사, 벼락부자, 상인,

일반 대중 등을 배경으로 한 왕성한 사회풍속· 인간 묘사 등을 주제로 삼았다고 합니다.

 

 

우키요에 의 “우키요”라는 말은 중세에 전란에 휘말려 빈곤이 극에 달하고 생활이 비참

했을때 불교사상으로 현세는“우키요(憂き世)”로 무상의 세계라고 생각해 내세의

극락정토 를 꿈꾸었으니 우키요(憂き世)는 덧없는 세상, 속세 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키요에 는 삽화에서 목판화 로 독립하면서 1765년 스즈키 하루노부 가 다색 목판화

인 니시키에(錦繪) 기법 을 개발한후 우키요에의 판화 기법 은 정점에

달했으니 목판에 의한 명쾌한 색면 배치와 조각도의 생생한 각선 을 표현하게 됩니다.

  

 

중국 경덕진 에서 생산된 중국 도자기 가 유럽에 수출되던중 청나라가 침입해서는 중국이

혼란해지자 네델란드는 규슈 아리타에서 생산된 도자기 를 찾았는데 임진왜란 때

끌려온 이삼평등 조선도공 이 일본화한 채색도자기 생산에 성공했기 때문이니, 17~18

세기에 규슈 아리타 북부 이마리항에서 무려 1,000만개의 도자기 가 유럽으로 수출 됩니다.

 

 임진왜란 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박형준 씨는 동아일보에 “日 도오토미의

‘임진왜란 명령서’ 발견” 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가 부하 장수에게 조선 침략을 명령했던

문서 가 발견됐다고 아사히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아이치(愛知)현

가리야(刈谷)시 역사박물관 은 27일 “도요토미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에게

조선 출병 (침략을 미화한 일본식 표현) 을 명령한 공문서를 발견 했다” 고 발표했다."

 

 

"가로 125.5cm, 세로 21.5cm 크기의 명령서에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등에게 조선

출병을 명했으니 너(가토 기요마사)도 전장에 나가라. 이국(異國·조선을 의미) 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생각해 방심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먼저 간

자들이 도중에 막혀 있으므로 모두 상의해서 원활하게 진격하도록 하라’ 는 지시도 있다." 

 

 

"명령서에는 용(龍) 모양이 특징인 도요토미 도장 이 찍혀있고, 작성일은 3월 23일 이었다.

박물관은 도장 모양과 종이 재질로 볼 때 진본 이고,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

하면서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침략 명령서는 전쟁직전 준비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내용을 담은 명령서가 일본 주고쿠(中國), 규슈(九州) 등에

폭넓게 퍼진 것 으로 추측되지만 3월 23일이라는 날짜 

적힌 명령서 실물 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아사히 신문은 전했다."

 

 

일본 도자기는 유럽인들을 매료 시켰으니 유럽인들이 이를 모방하여 유럽 도자기 

생산할 때 까지 유럽에 일본 예술품의 명성 을 드높였던 것이었고 이마리 에서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하면서 포장지로 목판화인 우키요에 종이 를 사용했는데

우키요에 그림 이 유럽에 알려져서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들이 열광 하게 됩니다.

 

 

1865년 프랑스 화가 브라크몽 이 일본에서 보내져온 도자기의 포장지로 사용된 우키요에

(浮世繪(부세회) 라 불리던 호쿠사이의 민화 한 조각 을 발견하고는 마네, 드가 

친구에게 돌린게 유럽 인상파 탄생 의 발단이 되었으니 자포니즘 (Japonism : 일본

미술붐) 이 유럽에 빠르게 퍼졌으며 1867년 파리 박람회에 출품 된 이래 높이 평가됩니다.

 

 

고흐 는 우키요에 작품을 수집하고 따라 그렸다고 하는데 무려 477점 이나 된다고 하니

우키요에의 강한 색감 이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색다른 느낌 이었나 본데 인상파

화가들이 지향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겠다는 자세나 빛으로 충만한 화면,

순간의 표정을 놓치지 않는 방법 등 '우키요에' 로 부터 배운게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우키요에' 는 서양 예술가들에게 자연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등 테마를 제시하여 주었고,

일상생활 중에 "미" 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 일본 미술이 유럽에 끼친 영향

은 아주 대단해 고흐 는 자기 방을 우키요에 그림으로 장식 했으며 귀를 자른후

그린  “자화상”에도 배경은 우키요에 그림  이 덮고 있는등 수백편 에 이른다고 하네요?

 

 

모네 는 부인 카미유 를 모델로 “일본옷을 입은 여인” 을 그렸으며 우타가와 히로시게 

그린 우키요에 그림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를 모방해“ Bridge in the Rain" 을

그리는등 수십편에 이르고 드가, 마네, 고갱 등도 우키요에 그림에 열광했으니

프랑스는 “일본 도자기와 우키요에 그림과 옷칠공예” 로 “자포니즘” 광풍에 휩싸였습니다!

 

 

유럽에 수출된 일본 도자기 들은  “古伊万里 고 이만리“  라고 부르는데 임진왜란때

남원에서 사쓰마번 시마즈씨에게 끌려간 이들은 규슈 가고시마에 심수관가

등을 이루었고..... 김해에서 히젠번 나베시마씨에게 끌려간 이들은 규슈

북부 아리타(有田) 에서 도조(陶祖) 이삼평의 지도하에 조선 도예촌 을 이루었습니다.

  

 

사가현 아리타(有田) 에는 “고이마리”,  “카키에몽”,  “이로나베시마” 도자기를 감상

수 있는데 오늘날 일본은 도자기 왕국 으로 통하니 “닛코나 노리다케" 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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