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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1

후쿠이11 - 제비를 벤 사사키 코지로를 꺽은 미야모토 무사시!

작성자은혜|작성시간22.10.07|조회수787 목록 댓글 0

 

후쿠이11 - 이치조다니 폭포에서 제비를 벤 사사키 코지로를 꺽은 미야모토 무사시!

 

 

2019년 4월 15일 후쿠이역 히가시구치 (東口 동구) 2번 정류소에서 9시 20분에 죠코지 

淨敎寺(정교사) 행 버스를 타고 교외에 조창씨 유적 자료관 을 지나 이치조다니

 一乘谷 (일승곡) 후쿠겐쬬나미 復原町並(복원정병) 에 내려서 210엔 입장료를

내고 마을로 들어가 무사들의 주택 부케야시키 武家屋敦 (무가옥돈) 집들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후쿠겐쬬나미 를 나와 도로를 걸어 내려와 내에 걸린 다리 를 건너가니 거긴

아사쿠라관 (朝倉館 조창관)인데, 에치젠국의 공적인 기관 건물들 이 늘어섰던

 곳으로 복원을 할 모양이고... 이치조다니성터 (一乗谷城跡) 는 여기서 산으로

좀 올라가면 언덕빼기에 시바타군이 불을 지른지라 그 흔적 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이치조다니 (一乗谷 일승곡)는 산의 계곡에 세워진 성채 로 2개의 문을 끼고 1.7km

의 좁고 긴 성밖 마을 城下町 이 형성되어 아사쿠라씨 朝倉氏(조창씨) 의

저택과 성밖 마을 및 4개의 산성에 4개의 정원 을 포함하는데 1471년 아사쿠라

다카가게 가 에치젠의 수교(守護 수호) 인 시바 가문 을 쳐부수고 차지했다고 합니다.

 

 

 아사쿠라씨 朝倉氏(조창씨) 가 다스렸던 에치젠 越前(월전)국  다이묘 요시카게 는 1565년

교토 아시카가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가 교토의 토호인 마쓰나가 히사히데에게

암살되자 쇼군의 친동생 아시카가 요시아키 를 이치조다니성에 맞아들여서 보호 하게 됩니다.

 

 

아사쿠라 요시카게 는 야심이 없었던지라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바라는 교토 상경전에는

냉담했기 때문에, 요시아키는 실망하고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 에게 의지하러

떠나니.... 1568년 오다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옹립해 권력을 좌지

우지 하다가 경쟁자인 아사쿠라씨를 공격 하니 1573년 여기 이치조다니는 함락 됩니다.

 

 

 이치조다니의 계곡에는 정원 이 많이 있었으니 1573년 전쟁으로 부숴졌지만 그래도

3곳의 다이묘 정원  1곳의 사찰 정원 은 살아남았으니... 화려원 정원석의

압도적인 배치는 아사쿠라 가문의 정교미 를 증명하니 스와야카타토 정원 에는

작고 아름다운 폭포 가 이어져 있고 거북이와 두루미의 모습이 보기 좋은 곳입니다.

 

 

 영국 신문사 더 텔레그라프 Telegraph 는 2016년 12월에 10 magical Japanese

gardens you must visit 라고 “꼭 가봐야할 일본 정원 10선”을 영어로

실었는데 nt 라는 분이 한글로 번역했으니.... 그중에 내가 가본 곳은 4곳 입니다.

 

 

예전에 조에이사 (야마구치 현 아마구치) 와 료안사 (교토), 무린안 (교토) 및 겐로쿠엔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네곳은 보았고 오늘 이치조다니 아사쿠라씨 정원 을 보니

5곳이고... 못본 곳은 아와고쿠분사 (도쿠시마 현 도쿠시마 인근), 엔쓰사 (교토),

주이호인 (교토 다이토쿠사), 기요스미 테이렌 (도쿄), 조루리사 (교토부 기즈가와) 입니다.

 

 

 아사쿠라관 (朝倉館 조창관) 유적 터를 둘러보고 다시 버스정류소로 돌아와서는 버스를

살펴보니 후쿠이역 으로 가는 버스는 에이헤이지(영평사) 에서 오는데, 동향선은

10시 39분이고 아사쿠라 특급은 10시 52분이니 그 차이가 13분 이라.... 그럼

첫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아사쿠라 자료관 앞에 내리면 10분 정도는 볼수 있겠습니다?

 

 

해서 10시 39분 버스 를 타고 2km 떨어진 다음 정류소 에서 10시 43분에 내려서 아사쿠라

자료관(朝倉 資料館) 으로 들어가는데, 100엔 입장료를 내니 직원이 무슨 유인물을

챙겨주건만 받을 여유가 없는지라... 그대로 들어가 한바퀴 휘잉 두르고는 바로 나옵니다.

 

 

 정류소에 이르니 멀리 기차 가 들어오는게 보이는데 후쿠이역에서 JR 에쓰미호쿠선 기차

를 타면 여기서 30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이치조다니에키 一乘谷駅 역에 내리니 저

유적지 까지는 도보 25분 정도인데... 걸어가기는 애매하고 버스를 타야 하는가 봅니다,

 

 

시간이 있다면 이치조타키 一垂潼(일수동) 폭포 를 보면 좋은데 이 폭포에서 일본 최고의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 의 최대 라이벌인 고쿠라성의 무술 사범 사사키 코지로 가 하늘

을 나는 제비를 벤다  쓰바마가에시 燕返し(연반시) 라는 장검 검법 을 익혔다고 합니다.

 

 

미야모도 무사시 와 사사키 코지로 가 결투를 벌인 곳은 후나시마 (ふなしま, 船島)

라고도 하는 시모노세키의 간류지마 (がんりゅうじま, 巌流島, 제비섬)

인데 시모노세키에서 유람선을 타고 갈수가 있으니 몇년전에 배를 본 기억 이 납니다.

 

 

에도시대 초기인 1612년 초가을 쌍검 (両刀,りょうとう) 의 달인 미야모토

무사시 (宮本武蔵) 와 장검 (太刀,たち) 의 달인 사사키 코지로

(佐々木小次郎) 가 간류지마에서 목숨을 건 결투 를 벌여 코지로가 죽습니다.

 

 

코지로 는 제시간에 와서 기다리며 날아다니는 제비를 8마리나 베어버리며 몇시간을

기다리면서 “무사(武士,ぶし)라는 자가 시간도 안지킨다 (武士という者が時間

も守らない!)”라며 화를 내는데, 축 늘어진 채 쪽배를 저으며 미야모토 무사시

가 오는데 변명이랍시고 온천하면서 따끈한 사케 한잔 하느라 늦었다고 히죽~ 웃습니다.

 

 

어이가 없어진 코지로는 화가 머리꼭대기 까지 올라 몸이 추위에 경직된지도 모른채

큰 칼을 들어 내려치는데... 거리가 맞지 않아 미치지 못하자 무사시가

배의 길다란 노를 들어 코지로의 정수리를 내리쳐 한방에 보내니....

무사시는 취한게 아니라.... 상대방의 약을 올려 빈틈 을 보이도록 만든 것 입니다?

 

 

무공전 에 보면 “미야모토 무사시 는 승부의 시간을 알리는 파발꾼이 계속 와도

늦잠을 자다가 일어나서는 천천히 아침밥을 먹고서는 유유자적 노를 깎아

목도를 만든 후에야 비로소 결투장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칼집을

버렸으니 넌 진거나 다름없다' 라고 일갈하고는 간류(사사키)를 죽였다고 한다. ”

 

 

우리 한국 정서 와는 맞지 않는데... 한국 씨름은 한번 져도 삼세판 은 기본이지만 일본

스모는 단 한판 뿐 입니다! 상대방이 심판의 시작 소리가 나기 전에 몸을 움직이는

반칙을 하면 한국은 무효로 하고 다시 하지만 일본은 그것으로 승부는 끝난 것으로 봅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이긴 선수는 비열한 자로 낙인 찍혀 이후 시합에 출전 자격을 박탈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합 자체는 유효하니 이긴 것 입니다. 무사들의 진검

결투 에서 낙엽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칼을 쓰기로 약속했다 치면 그 전에 먼저

칼을 휘두르면 반칙 이지만, 칼맞은 사람은 죽어버렸으니 시합 자체는 끝난 것 입니다?

 

 

 제비섬 간류지마에는 코지로의 무덤 이 있고 결투장면 석조물 과 당시 타고 온 쪽배 가

전시되어 있는데 코지로는 올곧은 행동 은 했지만.... 아무런 대비나 융통성과

전략 이 없었으니 그래서 맞아 죽은 것인데, 무사시는 코지로의 성격을 이미 충분히

파악 하고 있었던 것이니... 결투나 전투는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몇년전에 희메지에서 돗토리 가는 기차를 타니 가미고리 를 지나서“宮本武藏の誕生地”

라 적힌 간판을 보았는데, 바로 劍聖(검성) 미야모토 무사시의 고향 으로....

오래전에 요시카와 에이지 가 쓴 “미야모도 무사시”책을 읽은 기억이 되살아나

며칠 후에 시모노세키에 도착했을 때에는 간류지마로 가는 유람선 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무사시는 13살 되던해 성년식 을 올리고는 자기보다 훨씬 연배로 신토류를 익힌

아리마 기베에와 진검 대련에서 검으로 상대를 베어 죽였으며 3년후

16세때 아귀야마라를 죽인 것을 시작으로 29세에 이르기 까지 무려 60회의

진검 승부 에서 단 한번도 패한적이 없는....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 라고 합니다?

 

 

 선승 다쿠앙 밑에서 3년을 수행한후 이름을 "미야모토 무사시" 로 바꾸고 세상에

다시 나온후 교토 요시오카 도장을 찾아가 도전을 해서 요시오카 세이쥬로등

여러명을 물리치자... 이번에는 도장의 수련생 70명이 집단으로 달려드는

것을 산으로 피하면서 차례로 물리치며 이토류 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장원에서 창술 을 익히고 곤노스케와 사슬낫을 쓰는 시시도 바이겐을 패배 시킨후

시모노세키 섬에서 간류의 대가 사사키 고지로를 죽여 천하에 명성을 얻는데

1,640년에 히고 구마모토의 다이묘 호소카와 타다요시 에게서 “간닌분

고리키마이 (손님대우)” 600석에 채용 이 되어 병법서 “오륜서”를 저술 합니다.

 

 

미야모토 무사시 가 검법을 수련하면서 스스로 익힌 "독행도" 를 보자면.....

1.세상의 도리를 배반하지 않는다. 2. 모든 것에 대해 편애하지 않는다.

3. 육체적인 낙을 삼가한다. 4. 일생동안 욕심부리지 않는다.

5. 선악에 대해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6. 매사에 후회하지 않는다.

 

 

7. 이별에 슬퍼하지 않는다. 8. 자타가 서로 원한을 살만한 구실을 만들지 않는다.

9. 연모할 생각은 갖지 않는다. 10. 매사를 좋거나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11. 거처할 집을 원하지 않는다. 12. 오래된 도구를 지니지 않는다.

13. 내 한 몸을 위해서 사치스러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14. 나의 것을 훔친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15. 병장기(兵裝器) 이외에는 자신만의 도구를 고집하지 않는다.

16. 도(道) 에 관한 것이라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18. 노후를 위해 재물을 축적하지 않는다.

19. 신불(神佛) 은 존경하나 그렇다고 신불에게 의지하지는 않는다.

20. 마음은 항상 병법에서 떠나지 않는다.

 

 

미야모토 무사시 는 로닌( 浪人, 방랑 사무라이) 으로 세상을 떠돌며 일본

최초로 쌍칼을 사용하는 니토류(二刀流) 의 창시자로서 독창적 사고의

소유자 였으니.... 일본의 손자병법 이라고 불리우는“오륜서”

저술 할 수 있을 만큼의 전략성이 그의 무패 행진의 무기 였던 셈일러나?

 

 

여섯살 어릴 때 부터 엄격한 아버지 신멘 무니사이의 손에서 단련된후, 세키가하라

싸움에서 체험 하고 또 홀로 산속에 들어가 나무를 상대로 터득 했으며....

다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도장에서 대련을 통해 익히며 동굴에서

터득한 것들이 무의식 중에서 불꽃이 되어 튀어나오니 “生死一如 생사일여”라!

 

 

검에 모양과 법 이 있듯이 차(茶)에도 나름의 법식 이 있다했는데 눈 앞에서 다에히데

가 차를 끓이니.... “참으로 훌륭하다. 조그만 틈도 없어 보이는구나!”

이렇게 말했다니... 검의 달인이 검을 잡을 때는 오감을 벗어난 초월의 경지 

죽음에 대한 공포도, 승리에 대한 오만함도 없으니 명경지수(明鏡止水) 바로 그것이라!

 

 

꽃 중의 꽃 모란꽃 은 "살아서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죽어서 불로 찻물을 달이며 그윽한

향기 를 풍기니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이라? 또 " 비파의 속은 텅 비어 있으니 변화무쌍

하고 천변만화하는 음조와 음색 은 이 몸체 가운데 걸려 있는 횡목 에서 나오는 것인데....

 

 

횡목은 비파의 몸을 지탱해 주는 척추 로서 비파의 심장 이기도 하고 마음 이기도

하나 단지 곧게 몸체를 잡아당겨 줄 뿐으로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으니 

 음조와 음색 은 이 횡목의 양 끝의 힘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는 느슨함"

에서 생겨나는 것 이다“ 이런 것이 미야모토 무사시의 깨달음 이었던 것일러나?

 

 

사사키 코지로 (佐々木小次郎)는 전국시대 말기와 에도시대에 활약했으니 모노호시자오

(物干し竿; 빨래 너는 장대) 라는 무려 3척에 달하는 장도 를 사용했다는데 이즈모

슈고 였던 아마고 집안 출신으로 간류(岩流 또는 巖流) 라는 유파 를 창시했으니

또는 츄죠 나가마사가 창시한 츄죠류(中条流) 를 배웠다니 그 아류 였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특기는 츠바메가에시  내려치다가 갑자기 베는 기술인 듯 한데 제비를 잡으려고

만든 기술 이라든가.... 제비의 모습을 본뜬 기술이라든가 혹은 나룻배에서

강 위를 날아가던 제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베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등... 여러가지 말들이 있으니 이와 관련되어 코세츠(虎切) 라는 것이 유명합니다.

 

 

코세츠 검술 은 크게 횡베기를 해 상대방의 칼을 흔들리게 한 뒤 그 방어하는 칼이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할 때 역으로 다시 횡베기를 해서 상대의 칼을

날려버리고, 가사베기로 적을 참살하는 기술 이어서 츠바메가에시

처럼 빠르게 3번 베고, 막을 수 없다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이리고 합니다.

 

 

사사자와 사호의 소설에서는 코세츠 는 바닥을 쓸듯이 한바퀴 돈 검이 갑자기 위에서

부터 원베기를 시전 한다고 나와있는데.... 이 또한 츠바메가에시 의 유력한

추측중 하나로서 제비 '뒤집기' 라는 이름에 착안한 것이니 내려친 후 날을

뒤집어서 빈틈을 노려 들어오는 적의 손목을 올려베는 필살의 반격 기술이라고 합니다.

 

 

"칼의 나라 일본" 은 "검술 수련에 평생을 바친 사무라이" 가 많아 검법이 많이 전해오지만

 "붓의 나라 조선" 은 이름있는 검법이 알려진게 없는데... 문신들이 권력을 쥔 조선에서

그 아래 무신들의 과거시험 과목에는 병법과 활쏘기에 말타기 3종목 뿐이니, 평생에

칼이나 창을 손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자도 무과에 장원급제 할수 있었으며, 조선의 전술

은 들판에서 적군과 칼과 창으로 대전하는게 아니고 성 위에서 활로 적을 죽이는 전법이라?

 

 

 에이헤이지(영평사) 를 출발해 10시 56분 버스를 타고는 강변과 들판에 만개한 벚꽃 

보며 달려서 11시 12분에 후쿠이역 으로 돌아오는데이제 다시 서구 로 나가 

시테츠(사철 사철)후쿠이 철도 기차를 타고는....일본 화지 종이 마을 을 구경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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