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기 나루코온천5 - 나카야마 다이라 계곡에서 나루코온천에 돌아와 온천욕을 하다!
2022년 11월 1일 아키타현 오야스쿄 온센 (小安峽 溫泉) 에서 나루코 온천 鳴子溫泉 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산을 올라 나카야마다이라 (中山平) 에 내려 계곡을 물들인 단풍을 구경합니다.
'나루코쿄(鳴子峡)' 는 오사키시(大崎市) 에 위치하는 V자형 협곡 으로 가을에는 빨강과 노랑
으로 계곡이 물드니...... 100m 높이의 단애절벽이 수km 에 걸쳐 이어지는 협곡 입니다.
다리 위에서 사진을 실컷 찍고는 언덕을 내려가서는 휴게소인 나루코쿄(鳴子峡) 레스트 하우스
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인산인해인데 소고기 덧밥 을 먹는 사람들과는 달리 우린 만두 를
사서 먹은후 일어나 아랫길로 해서 잠시 계곡을 구경하고는 다시 올라와서 우리가 내린
정류소 반대편에 정류소가 보이지 않는지라 걸어 올라와 나루코 온천행 정류소 를 발견합니다.
16시 35분 버스를 타고는 산을 내려와서 16시 48분에 나루코온천역에 도착해서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맡긴 배낭 을 찾아 나오니 저녁 5시로..... 몇시간
전에 인포에서 약속한대로 행운각 호텔에서 차량이 픽업 을 하기 위해 도착합니다.
호텔에 도착해서는 체크인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배낭을 넣고는 산행을 했으니 온천욕 을 해야 하는데
호텔 안에도 대중탕 이 있지만 호텔 밖 별관에도 좋은 온천탕 이 있다기에 찾아가서 온천욕을 합니다.
'나루코 온천' 은 일본 10개 온천 수질 중에 8개 수질 을 가진 온천으로 '나루코 온천' 과 '나카야마다이라
온천' 등 5개의 온천지 중에서도 나루코 온천은 온천 시설과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이 늘어선
관광명소로 다테 마사무네 는 요네자와성에서 태어나 이곳에 옮겨왔다는데 훗날 센다이로 주성을 올깁니다.
여기 나루코 온천에서는 다른 호텔등 여러 온천탕 을 찾고 싶으면 온천 입욕에 사용
할수있는 돈을 대신하는 입장권이 6장 있는 '유메구리 티켓' 이 1,300 엔
(세금포함) 이고..... 목각인형 표시가 포함된 것은 1,650엔 (세금포함) 이라고 합니다.
온천탕 접수 카운터에서 정해진 수량의 입장권 을 전달하고 온천을 이용한다는데...
공동 욕탕 외에 기획전에 참여하는 온천료칸의 당일치기
입욕 에도 사용할수 있으며 일반 입욕료 보다 조금 저렴하다는게 장점이라고 합니다.
두번째는 '나막신 계산서' 로.... 100엔(세금포함) 인데 안내센터에서 배포하고 있는
'카라코로 지도' 에 게재된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 등에서 할인 또는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모두 나루코 온천역의 관광·료칸 안내 센터 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온천의 종류는 유황, 산성, 이산화탄소, 함철, 염화물 등으로 흔하게 볼수 있는 온천수는
유황온천, 염화물온천, 단순온천 이니 유황온천은 냄새가 지독하고, 단순온천은
단순하고 염화물온천은 보습에 좋으니 보디로션을 펴 바른 것처럼 감촉이 미끈거린다고 합니다.
나루코 온천은 화산 폭발로 온천이 땅에서 솟아난 지역이니 온천 종류는 11개 중에 9개의 수질이
나온다고 하는데..... 무려 400개에 달하는 원천 이 있어 ‘온천 백화점’ 이라고
불리는데, 나루코의 료칸들은 사용하는 원천수가 따로 있고 각 집마다 효능도 다르다는 뜻입니다.
온천욕을 마친후 방으로 돌아와 쉬다가 식당으로 저녁 을 먹으로 가는데... 문득 한국일보에 김경화씨가
올린 ‘서양인들의 일본을 보는 왜곡된 시선, 그 안엔 '뿌리깊은 편견' 이라는 기사가 떠오르니
서양이 우리 보다 일본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지하는 경향 이 있기는 하지만..... 일본에
대한 서양의 독특한 시선은 타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뿌리 깊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사회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배울 점도 있는 나라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침략과 전쟁 을
일삼는 말썽쟁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공존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양 사회의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긍정적 이다. 서양인의 눈에 비치는 일본 문화는 정적(静的)이지만 심오한 정신세계 가 깃들어
있고, 일본 공예품의 미학은 독특한 개성 이 있다. 일본인은 수줍지만 예의 바르고, 내성적이지만 성실하다.
서구에서 일본이 매혹적인 이국(異国) 으로 자리 잡은 역사도 길다. 19세기 서유럽에서 일본의 미술품과
공예품이 수집가들의 고상한 취미로 유행하면서 ‘자포니즘 (Japonism, 일본풍)’ 이 인기를
끌었고, 실제로 유명한 인상파 화가인 마네, 고흐등이 일본 미술의 영향 을 받았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요즘에도 미래지향적인 예술 작품이나 미니멀리즘을 구현한 디자인에 ‘일본풍’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때 서구 사회가 ‘일본인은 경제적인 동물’ 이라고 야유했었지만, 이 조롱의 이면에는 일본의
경제적, 기술적 성장 을 인정하는 정서가 있었다. 섣부른 일반화는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서양인
의 눈에 비친 일본은, 적어도 한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 보다는 훨씬 긍정적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 살면서 서양인과 만날 기회가 잦았다. 사업이나 연구 등 구체적인 목적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본
문화에 강한 호감과 호기심 을 가진 순수한 ‘일본팬’ 이 의외로 많았다. 예를 들어, 여백 을 중시하는 일본
전통 건축을 좋아한다든가, 일본사나 불교 철학에 정통하다든가, 일본의 공예품과 다도, 꽃꽂이 등 전통
미학에 관심이 있다든가 일본 문화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존경이나 관심을 표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애니메이션 이나 게임 등을 통해 일본에 대한 호감 을 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중문화가 일본을 찾는 모든 서양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몇 년 전 도쿄의 지하철에서의 일이다. 큼직한 여행 가방을 든 서양인 여성 이 좌석에 앉아서, 신기한 표정으로
창 밖을 두리번대고 있었다. 때마침 한 할머니가 전철에 올라타 그녀 근처에 섰다. 여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좌석을 권했다. 할머니는 몇차례 점잖게 사양한뒤,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서양인 여성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할머니에게 깊숙이 절 을 한 뒤, 지하철 한구석에 다시 자리
를 잡았다. 창 밖을 바라보면서 뿌듯한 미소 를 짓는 그녀의 표정이 흡족해 보였다. 이 광경이
내게 이색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일본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노인들이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는 것
을 그다지 반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두 손을 모아 손윗사람에게 공손히 절하는 모습도 일반적이지는 않다)
나는 예전에 서울에서 지하철 로 통근하면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이런 호의를 선뜻 받아들이는 노인이 많지 않았다.
자리를 양보받은 할머니가 내내 좌불안석 이어서 도리어 양보한 내가 무안해진 적도 있었다!
좌석에 앉지 않겠다는 의지표명을 위해 일부러 경로석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는 할아버지도 많다. 이런 일을 몇번
겪은 뒤에는 “자리에 앉으시겠느냐?” 고 미리 물어보아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한뒤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노인들이 자리를 양보받기를 바라지만, 일본 노인은 반대인 것은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뜻?)
사실 지금의 일본 사회에서는 아시아 문화권에서 중시하는 예절이나 공동체적 가치관보다, 공사 구별이 확실
하고 개인의 결정을 우선시 하는 서구 문화의 개인주의 가 더 지배적이다. 그 서양인 여행객은 그런 사정
을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손윗사람을 깍듯이 높이는 ‘동양의 예의 바름' 이 일본 문화의 중요한 덕목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모처럼 일본을 여행 중인 만큼 ‘동양’ 의 예의를 실천에 옮겨본 것이리라.
아쉽게도 그녀의 대담한 시도는 오히려 일본에 대한 뿌리깊은 무지와 편견 을 드러내는 ‘웃픈 에피소드' 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이렇게 말은 해도,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정도의 편견이라면
‘무해’ 하다. 오히려 진지한 여행자라면 이런 귀여운 실패를 한 번쯤은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다만,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녀가 왜 그런 편견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이 쓰인다.
1970년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주장한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이라는 개념은 서양의 동양
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태도를 비판 한다. 동양을 뜻하는 ‘오리엔트(orient)’ 에서 파생된 오리엔탈리즘
이라는 말은 원래 이국적 정서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이나 취향 을 뜻했다.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이 식민 지배를 합리화 하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는 것이 사이드의 핵심적 주장이다.
제국주의 시절에 ‘서양’ 문명은 합리적, 이성적, 남성적, 평화적 이며 도덕적으로 성숙한 반면, ‘동양’ 문명은
비논리적, 미신적, 감성적, 여성적 이라는 인식이 재생산되었다. 식민주의는 열등한 ‘동양’ 을 우월한 ‘서양’
으로 이끄는 정당한 과정이라는 합리화 가 이루어지면서, 반인권적 행태와 폭력성은 교묘하게 은폐되었다.
사실 우리는 동양 하면 중국 대륙이나 한국, 일본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이드 가 주로 언급하는
동양은 인도와 아랍 문화권 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서양에 가깝게 인식되는 서아시아
지역이, 유럽의 관점에서는 동양의 대표 주자 인 것이다. 타문화에 대한 자의적인 선긋기가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사이드의 비판에는 이견이 없지만, ‘서양’이니
‘동양’ 이니 하는 이야기 그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의 모순 을 드러내는 듯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20세기 중반이후 무력을 내세운 노골적 제국주의는 쇠퇴 했고, 예전처럼 ‘동양’ 을 열등하고 미성숙한
문화 로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많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은 지금도 자주 언급된다. 지금도 타자에 대한 대상화와 왜곡 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기 때문 이다.
예를 들어, 서양 사회가 일본을 보는, 미묘하게 왜곡된 시각을 ‘테크노 오리엔탈리즘 (techno-
orientalism)’ 으로 자리매김하는 학자도 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의 디지털 기술 이
약진하면서, 일본의 테크놀로지가 미래의 기술 사회를 선도 한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일본의 기술적 우월성을 인정한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속사정 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앞으로 더 밝고 행복한 유토피아가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결국 ‘서양’ 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휴머니즘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미래 사회 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타자로 자리매김 되는 일본의
상징과 수월하게 결합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인간적이고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린 SF 영화나 애니
메이션 등에 일본 문화에 대한 묘사 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상징 분석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사실 일본에 대한 서양인의 평가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일본에 대한 서양 사회의 시선 속에 타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뿌리 깊다는
현실에 주목한다. 이것이 과연 서양인과 일본인의 관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국지적인 사안 일까?
자기와 다른 주체를 타자로서 대상화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지 특징이다. 하지만
글로벌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이, 타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과 연관 되어 있다. 타자에
대한 오해가 편견으로, 편견이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