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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1

나라 8 - 도다이지와 정창원을 보고 걸어서 연못에 가다!

작성자은혜|작성시간25.04.02|조회수1,370 목록 댓글 0

 

나라 여행8 - 도다이지 절과 정창원을 보고 박물관을 지나 연못에 가다!

 

 

20241123일 나라(奈良) 고후쿠지 興福寺(흥복사) 절을 보고 이스이엔 (依水園 의수원) 과 요시키엔

(吉城園 길성원)을 구경한후 걸어서 도다이지 (東大寺 동대사 とうだいじ ) 에 도착해 거대한

난다이몬 (南大門) 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서 목조 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대불전으로 갑니다.

 

 

도다이지 (東大寺 동대사) 는 일본 화엄종(華厳宗) 의 대본산으로 호국불교를 상징하는데 일본을 비롯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물인 대불전(大仏殿  다이부쓰덴) 과 최대 크기의 청동 불상, 그리고 거대한 정문인

남대문(南大門/ 난다이몬) 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21금당식의 양식이었다고 합니다.

 

 

걸어서 천황가의 보물창고 라는 쇼소인(正倉院 정창원) 으로 찾아가는데 연못이 보이고 둘레에는 야생

사슴들이 많은지라 구경을 하면서 계속 걸으니 문이 닫혀 있기로 빙 둘러 걸어가는데 시간이

늦어 그런가 보는데, 평일 3시 까지만 개방하니 먼 발치에서 쇼쇼인 건물을 바라볼수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 쇼소인(正倉院しょうそういん, 정창원) 은 도다이지(東大寺, 동대사) 북서쪽 300m

거리에 있는 일본 황실의 창고이니 검은 통나무를 쌓아(귀틀식) 만들어졌는데

고상식(高床式) 이라고 부르니, 한반도에서도 삼국시대 까지는 흔한 형태였다고 합니다.

 

 

도다이지(동대사) 의 단풍도 유명하니 넓은 경내에 아름다운 단풍을 볼수 있는데.... 연못

너머로 바라보는  대불전과 단풍의 대비는 가을에만 볼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며

또한 나무 사이로 절을 바라보며 사슴과 단풍을 즐길수 있는 것도 이곳 특유의 멋입니다.

 

 

빨강과 노랑으로 물든 단풍과 은행나무에 사슴을 더한 사진을 찍는다면 도비히노나 가스가타이샤

春日大社 (춘일대사) 가 좋으며 특히, 사진 애호가에게 인기 장소는 원내의 사기이케 연못에

선 육각형의 우키미도(浮見堂) 이니 우키미도는 일몰 부터 22시까지 매일 라이트업 한다고 합니다.

 

 

가스가타이샤 (春日大社 춘일대사) 는 후지와라 씨족신(氏神, 우지가미) 들의 총칭인 카스가신

(春日神) 을 모시는 신사로 나라시대가 한창인 768년에 창건되었다는데, 고대 나라의

역사 기념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며..... 수많은 청동등과 석등이 경내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신사에서 모시는 신인 카스가신(春日神, 카스가노카미)는 한 위의 신이 아니라 후지와라 가문이

씨족신으로 모시는 네 위의 신들의 총칭이라고 합니다. 후지와라노 후히토가 야마토국

카스가에 있는 미카사산에시 가문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타케미카즈치 를 제사

지내며 카스가신이라고 명명한 것이 시초라고 하며 이후 다른 씨족신들도 합사되었다고 합니다.

 

 

가스가타이샤 (春日大社 춘일대사) 는 쇼토쿠 덴노 치세 때 권신 가문인 후지와라씨가 황실의 지원을

받아 세웠으니, 후지와라노 나가테(藤原長手)768, 카시마 신궁에 모셔진 타케미카즈치,

카토리 신궁에 모셔진 후츠누시, 히라오카 신사에 모셔진 아메노코야네와 히메가미의 신위를

미카사산 (御蓋山, 지금의 카스가산) 기슭의 4개 전각에 봉안하여 카스가사(春日社) 라고 칭했습니다.

 

 

헤이안 시대에는 후지와라가의 위세가 높아짐에 따라 이곳에서 지내는 카스가마츠리(春日祭,

춘일제) 는 교토 가모 신사(賀茂神社) 의 아오이마츠리(葵祭, 규제)와  이와시미즈

하치만궁(石清水八幡宮) 의 이와시미즈사이(石清水祭, 석청수제) 와 함께 삼칙제(三勅祭)

로서 황실의 지원을 받아 성대하게 치러졌고 1871년에 관폐대사 (官幣大社) 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라에 도읍을 옮긴 710년에 새 도읍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세운 가스가타이샤 신사 에는

정원이 있는데 서기 760년에 엮은 가집(歌集) 인 만요슈 萬葉集(만엽집) 에 나오는

식물만 재배하니 꽃이 아름답다는데 1년에 두 번 신사 진입로 석등에 불을 밝힌다고 합니다.

 

 

만요슈 萬葉集(만엽집) 에는 서기 630년 부터 760년 까지 지은 노래 4,536수 가 실려있으니 일왕(천황)

에서 부터 서민에 이르기 까지..... 노래에 사용한 어휘가 당시 생활용어 인지라 언어 연구에

아주 유익하다는데..... 덴무왕의 비()인 누카다노 오키미 額田王 가 가장 많은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향가 (鄕歌) 라고 이두 (吏讀) 로 쓴 노래가 1075년 혁련정이 지은 균여전 에

11그리고 1281년에 일연이 쓴 삼국유사 에 14수가 실려있는데, 시기적으로도

315~ 521년이 늦은데다가 노래도 만요슈의 4,536수에 비해 우린 모두 25수 로 적습니다.

 

 

그래도 나는 우리나라의 향가가 좋으니..... 정읍사 (井邑詞) 한 수를 적어 봅니다만,

두권 책에 25수 뿐인게 아쉬운데, 일본 처럼 한 5천수쯤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데를 드데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데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그러고는 대로로 나와 한참동안 걸어서 네거리에 도착해 동쪽으로

올라가니 여긴 카페며 레스토랑이 멋이 있고 또 절도 볼만합니다.

 

 

그러고는 대로를 건너서 국립 나라 박물관으로 찾아가는데..... 지금은 밤이

되어 문이 닫혔으니 옛날에 이 박물관을 구경한 일을 떠올려 봅니다?

 

 

나라 국립 박물관에 들어가 관람하니 고대 유물이 어찌나 풍부한지 놀라는데, 한국에서 본 것들과 유사한

것도 많아 나라’ (奈良) 가 백제 도래인들의 땀으로 이룩된 도시임을 새삼 되새기게 하여 주었습니다.

 

 

660 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망했을 때의 왜국의 수도는 여기 나라시에서 먼 남쪽인

"아스카" 인데..... 백제 의자왕의 사촌 누이동생 사이메이(제명여제)

집권시대로 여왕의 아들인 태자 나카노에 (중대형) 가  왜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일본에 인질로 와서 수십년간 벌을 치며 살던 의자왕의 동생(아들?) 풍왕자에게 5

왜군을  주어 백제로 나가 부흥군에 합류해 백제 왕위를 잇게 한후..... 왜국은 수도를

규슈 후쿠오카로 옮기고는 일본의 전 국력을 기울여 배를 만들어 3만의 병력을 파병합니다.

 

 

 저 1천척의 왜군 배는 백마강 하구에서 풍랑으로 배들을 서로 묶었다가 적벽대전 처럼 당나라

수군의 화공으로 수많은 배가 불타고 패하자 일본으로 철수한후 710년에 이곳 나라에

"평성경" 을 건설하여 아스카에서 천도한 후에는 대륙의 백제(가야)와 인연을 끊고

국호도 왜() 에서 해뜨는 나라 "일본(日本)" 으로 바꾸어  찬란한 문화를 이룩한 것입니다!

 

 

저번에 왔을 때는 여기 나라 국립박물관을 본 후에 나라역에서 기차를 타고 호류지(법륭사) 역에 내려

미나미구치(南口)로 나와 2번 버스 정류소에서 셔틀버스로 5분을 가서 호류지마에(法隆寺前)

정류소에 내려 서기 607년 쇼토쿠(聖德) 태자 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호류지 (법륭사)" 를 보았습니다.

 

 

서원의 왼쪽에 고주노토(5중탑)의 위용을 보고 이른바 금당으로 들어서는데... 이곳에는

고구려 사람 담징의 그 유명한 "금당벽화" 가 있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나 그 벽화는 1949년에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복사품으로 다시 다이호조인(대보장전)의 유물을

둘러보다가 눈이 번쩍!  "백제관음 (百濟觀音)"  이라고 쓰인 큰 부처님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싶어 고교생에게 이것을 일본말로는 어떻게 읽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햐꾸사이 간몬

이라는게 아닌가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아득한 벽을 마주 하는양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인데 그때

옆에있던 40대의 일본 아주머니 한분이 그건 구다라 간몬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정정해 주는게 아닌가요?

 

 

그래, 햐꾸사이는 百濟(백제) 를 단순히 한자의 발음에 따라 읽는데 불과한 것이고, ‘구다라

큰나라(大國) 라는 뜻이니.... 당시 일본에서는 문화 선진국인 백제를 대국

이라고 불렀던 것이니, 우리나라 조선에서 중국의 명나라를 "대국 大國" 이라고 불렀듯이...

일본말에 구다라 나이는 백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니 " 일류 상품이 아니다 " 는 뜻이었습니다?

 

 

"인간의 조건" "왕도" 를 쓴 프랑스 앙드레 말로가 일본열도가 침몰하면 꼭 구해내고 싶다고 한 것이

 "백제관음' 이라 했었는데, 말로는 앙코르와트에서도 반테아이쓰레이 사원에 여신상  "테바다

동양의 모나리자로 보고 밀반출하려고 했던 것이..... 루부르에 보물 하나를 더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밤길을 걸어 반 바퀴 돌아 첫번째 연못 아루이케를 지나 두번째 연못 사루사와이케 (猿泽池) 에 도착하는데

옛날에 처음 왔을 때는 마쓰리(축제) 인양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쌍쌍이 넘쳐 흐르고... 연못을

가로질러 등을 달아 불을 밝혔는데, 불경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니 남녀 쌍쌍축제인 것만은 알겠는데....

 

 

두번째 왔을 때는 연못 벤치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서북쪽 교외에 옛 궁궐인 헤이조큐세키

平城宮跡(평성궁터) 를 떠올렸으니 헤이조큐세키 平城宮跡(평성궁터) 710

겐메이왕(元明天皇) 이 헤이조쿄(나라) 로 천도 하면서 나라시대 (奈良時代) 를 열며

세운 궁궐터 로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나라 역사 기념물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8세기에 헤이조쿄(평성경, 나라) 에서 번성한 귀족문화를 텐표문화라 하는데 당나라에서 직접 문화를 수입

했으며 도다이지, 고후쿠지, 사이다이지, 야쿠시지, 간고지, 다이안지, 호류지등 7대 사찰을 건립했으니

일왕(천황)을 간호한 승려 도쿄는 후지와라의 절인 도다이지를 견제하기 위해 사이다이지를 건립했습니다.

 

 

도쇼다이지 唐招提寺(당초제사) 759년 당나라 승려 간진 鑑眞 이 쇼무천황(일왕) 의 초청으로

일본에 건너와 세운 절이라는데.... 불교와 조각, 건축술 및 의약품 도 일본에 전했다고 합니다.

 

 

스타벅스 커피숍을 거쳐서 상가가 늘어선 거리로 접어들어 이것 저것을 구경하며

걸어서 어느 이자카야로 들어가서는 맥주 나마비루에다가 안주를

몇가지를 시켜서 먹는데 안주 중에는 기무치라는 일본식 김치가 있어 놀랍니다.

 

 

문득 "음식 한류" 가 생각나는데 일본인들은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겉으로 보아

조용한 편입니다만 몇년전에 한국의 창작 뮤지컬인 사랑은 비를 타고

(사비타)” 가 일본에 수출되어 도쿄 소극장  도라무 시어터”  에서 공연된 적이 있습니다.

 

 

오이소박이, 나박김치, 고들빼기......” 극중 배우 고마다 하지메가 김치 이름을 한국어

소리대로  줄줄 읊었는데 " 이 일본어 아니키로 바뀐 것 말고는

줄거리, 대사, 노래, 등장 인물의 이름도 모두 "한국어 원어" 그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일본 사비타를 연출한 나카시마 아쓰히코씨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

관객들이 한국 관객들처럼 박수치고 환호하는 공연이 될수 있을까

무척 고민했다는데... 막상 뚜껑을 여니 똑 같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말하네요?

 

 

극중 동욱이 요리 연기를 하며 맨 앞 관객의 머리를 손으로 비벼대자 그의 머리 모양이 헝컬어졌는데

그러자 옆사람에게 닿을까봐 손과 무릎을 곱게 모으고 보던 일본 관객들이 폭소가 터지는 등....

 

 

일본에서는 공연 주제로 잘 다루지 않는 잊고 있었던  가족” 

사랑을 다룬게 좋았다니..... 그럼 겨울연가 와 같은 것이네요?

 

 

그러고는 다시 거리를 구경하면서  긴테쓰 전철역 건너편에 자리한  도요코인  호텔로

돌아와  하룻밤을 자는데.... 내일은 사쿠라이시로 가서 버스로 단잔신사를

보고 돌아와 다시 너철을 타고 나라현 남부에 요시노와 아스카를 구경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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