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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 3 - 메리켄 파크 공원을 구경하고 메모리얼 파크를 보다!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5.06.22|조회수76 목록 댓글 0

 

고베 여행 3 - 고베에서 메리켄 파크 공원을 구경하고는 메모리얼 파크를 보다!

 

 

2024년 9월 21일 손주등 7명 가족은 오사카에서 렌터카에 올라 텐노지역을 지나 서쪽으로

달려서 바다를 건너 고베에 도착해 먼저 지진 박물관을 구경하고는 고베

시내로 들어가서 점심을 먹기 위해 딸이 구글 지도에서 검색했다는 일본 식당을 찾아갑니다.

 

 

식당 앞에 적당히 차를 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도로는 물론이고 골목길, 심지어

단독 주택의 경우 자기집 담장 아래에도 "불법 주차" 가 전혀 없는 나라이니.....

주차장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먼 곳에 주차하고 일본 가정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시 렌터카를 타고 부두이자 해변인 메리켄 파크 メリケンバ-ク 에 도착하는데 고베(神戸 신호)

는 효고현의 현청 소재지인데 1868년에 개항을 했으니 서양의 배와 서양인들이

대거 몰려오는지라, 한적한 작은 어촌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거대 도시로 발전했읍니다!

 

 

1868년 이라면 조슈번과 사쓰마번에 히젠번과 도사번의 존왕양이론자 무사들이 일왕(천황)

을 받들고 260여년 내려온 도쿠가와 에도 막부를 타도하려는 메이지 유신

무진전쟁이 일어나던 해인데... 아마도 고베 개항은 막부에서 결정하고 실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메리켄 파크 입구에는 예쁜 건물이 있으니 얼핏 보아  호텔 카페인 것 같은데....

잘 차려입은 청춘남녀들로 보아,   결혼식 피로연”  이 열리는 모양 입니다.

 

 

일본은 결혼식장이 일반적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예식장이나 호텔 또는 레스토랑 등에서

피로연이 바로 결혼식인 셈이니..... 청첩장 엽서를 받으면 참석 여부를 동봉한

반송 엽서로 통보하고 그 인원수 만큼 레스토랑등을 빌려 테이블마다 이름표를 붙입니다.

 

 

결혼식날 피로연장의 주 테이블에는 신랑과 들러리드레스 입은 신부와 들러리에다가 사회자

등 5이 앉는데..... 사회자가 간단히 식을 주재하며 신랑, 신부 부모는 일반 하객들

처럼 보통 테이블 에 앉고 주례는 없는데.... 요즘은 한국의 결혼식에서도 주례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정식 결혼식은 따로 진쟈(神社신사)  에서 신랑 신부와 부모님 및

양가 친지 등 20여명 내외 만이 모여 검은색 일본 전통 복장으로

엄숙한 재래식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니 그럼 결혼식을 두번 하는 셈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에는 신랑 신부가 더러 옛날 전통 한복인 혼례복을 입고 결혼식을 치루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없어졌고.... 한복은 일부 경복궁 입장때나  결혼식날 신랑, 신부

어머니가 입는 정도로 평소 한복을 입는 사람이 전혀 없으니 한복 자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평소에도 나이든 여자들 중에는 기모노를 입는 사람이 더러 있고

설과 추석등 명절이나 생일 ,온천에 가거나 축제 마쓰리에 참여할 때는

기모노나 유가타를 즐겨 입으니 조상들의 관습과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봅니다?

 

 

일본의 장례식은 보통 절 에서 치르며 화장을 하여 가족묘의 뚜껑을 열고 뼈를 조상의 뼈

위에  뿌려서 섞는데... 그러니까 봉문 없는 석조 묘지 한기”  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고베 해양박물관은 개항 120주년 기념물로 범선의 돛과 파도를 형상화 한 건물에 배와 항구를

테마로 했으며 고베항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는데..... 시간이 지나서 입장은 못합니다.

 

 

붉은색 포트타워를 바라보며 옛날에 왔을 때는 여기에 전시된 산타마리아호 범선을 구경한게 떠오르는

..... 그때 바닷가에 큰 호텔에 들르니 1인당 5000엔이 넘는지라 되돌아 나온 기억이 있습니다.

 

 

해변 귀퉁이에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사람들이 모델을 않혀 놓고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여기는 크루즈선이 많이 정박해

있으니루미나스호가 막 출항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던 기억이 따오릅니다.

 

 

오늘은 저 바닷가 호텔에서 결혼식 피로연을 한 것인지 신랑신부 외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손에 들고 있던 오색 풍선 수백개를 날리는 모습을 구경합니다.

 

그외 여기 부두에 신식 배로는 고베유람선파르데메르미나토모노가타리,

콘체르트호 외에도 서양의 고풍스러운 범선이 세척이나 더 있습니다.

 

 

이윽고 황혼이 되니 하늘에 노을이 불타고.... 역시 노을은 구름이 약간 있는

것이 더 운치가 있는데,  오늘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의 얘기인데 메리켄파크의 여러 건물들해양박물관이며 포트라이너 등이

점차 불을 켜기 시작하더니... 곧 야경이 해변을 장식하던게 떠오릅니다.

 

 

바다 건너편에 포트라이너 -トライナ 전철이 붉은색의 고베대교 를 지나

포트 아일랜드 -ト アイランド 섬으로 들어 가는 모습을 구경합니다!

 

 

옆의 부두로 건너가니 건너편에 중앙부두 터미날이 있고 모자이크 빌딩

이며 대관람차가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것이 참으로 이채롭습니다.

 

 

무슨 사진동우회 회원인양 중년 여성들이 많은 20여명이 삼각대위에 고급 카메라를

세우고 젊은 여성 모델을 대상으로 사진 찍는데 열중하고 있던게 기억이 납니다.

 

 

주저 앉아 바다를 보노라니 갑자기 솟구치는 물보라!!! 바다에서는 고등어가 수없이

뛰어 오르는데여러번 시도해 보았지만카메라에 잡는데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대관람차 색깔은 점점 화려해져 가고..... 해변을 걸어 나오면서 보니 해변 곳곳에 연인들이

쌍쌍이 앉아서 다정하게 밀어를 속삭이는 모습을 보았는데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입구에는 일왕(천황) 이 다녀갔는지, 일왕이 지었다는 시가 적힌 바위를 보는데....

그러고는 드디어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파크 (1995년 1월 17일 강도 7.2

지진이 덥쳐 5천여명이 죽었으니 그 장면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를 발견합니다.

 

 

어올 때 못보고 지나치기 쉬운데 그 이유로는 이것이 빌딩이 아니라그냥 바닷가에 부서진 해안벽

을 그대로 보존한채... 육상에는 아주 작은 조형물을 배치해 높이가 아주 낮았기 때문 입니다.

 

 

1995년 1월 17일 진도 7.2 대지진이 고베를 강타해 오래된 목조가옥이 촘촘하던 고베는 제대로 된 건물이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버렸습니다어린 시절을 고베에서 보낸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는 대지진후 고베를 빈터에 짙푸른 여름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그것은 친밀한

사람의 흰 피부에 남겨진 외과 수술 자국을 연상시킨다” .... 상처 입은 도시의 아픔 을 이야기 했습니다.

 

 

당시 간사이지방은 재일 한국-조선인만 35만명에 달할 정도로 한국인 수가 많은 지역이었으며 특히 고베에는

8만 7천명의 동포가 살고 있었으니한국인 피해자도 많아 유학생재일동포 등이 100여명 이상 사망

하고 1,000여명이 부상당했으니 한국 입장에서도 큰 사건 중 하나였고 언론에서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당시 사망자의 80% 인 5,000여명이 전통 목조주택에 깔려 사망했으며여기에 지진 발생

후에 정전, 복구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명피해가 더욱 늘어났는데 화재로

인해 사망한 시체가 너무 많아.... 한 보따리에 60여명의 유골이 수습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전통 방식으로 지은 노후 재래식 목조주택과 달리 새로 지은 미국식 목조주택이나 복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 등은 무사한 등 피해 양상이 대조적이었으니철근 콘크리트 건축의 경우 철근과

콘크리트가 하나로 연결된 일체형 구조였기 때문에 건물이 분해되거나 붕괴되어 사람이

압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이는 부재간 연결철물의 사용이 많았던 미국식 목조주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못이나 철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장부에 홈을 파서 짜맞춤 방식으로 구성된  전통

가옥의 경우 큰 지진에 못이나 철물없이 연결된 부재가 분리되어 통째로 무너지거나

압사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이 사건을 계기로 내진설계나 건축 기준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대지진이 엔화 가치를 급등시켰는데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한 엔화 매입과 재건작업을 위한  엔화

수요 급증이 원인으로써 미국 달러에 대해 20% 급등즉 80~70엔대로 진입하였는데,

플라자합의 이후 지속적으로 엔고가 유지되어 1995년까지 슈퍼 엔고상태였던 아시아 무역

시장에 고베 대지진이 터지자일본은 미국에 엔저 전환을 위한 외환시장 개입 허용을 요청합니다.

 

 

자국 대출금리 보다 낮은 저금리 엔화달러화 채권을 엔고만 믿고 잔뜩 투자했던 동남아시아 국가

들이 10년만에 끝난 엔고에서 엔저 전환으로 경상수지 적자 폭탄을 얻어맞고금융시장이

개방되어 있던 태국은 그 혼란을 노린 조지 소로스등 환투기 세력들이 달러 페그

고정환율제로 묶여있던 바트화를 공격해 큰 이득을 취하고 태국 정부는 IMF 행을 선택하게 됩니다.

 

 

태국의 붕괴는 동남아시아 전체 단기외채 위기로 이어졌고 월가는 아시아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레포트를

내고 있었는데 똑같이 장기 엔고를 낙관하고 있었으며태국과는 달리 금융시장이 폐쇄되어 있어 해외

헤지펀드의 환치기 공격을 받지 않을거라 안심한 한국 또한 약달러엔고시절 미국일본의 저금리

믿고 종금사들이 달러엔화 단기 차입후 원화로 환전해 국내 기업에 대출하는 돈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종금사들이 고금리 전환과 엔저 전환으로 무너지면서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가 들이닥쳤고,

한보 부터 시작해 기아자동차 까지 줄줄이 무너지면서 위기가 현실화되었습니다.

 

 

한국은 고정환율제를 조정하기 어려울 만큼 미국와 외교마찰이 심각했던 상황에서 일본 자금까지 빠져

나가면서 한국도 결국 1997년 외환 위기가 현실화 되니 고베 대지진은 닛케이 폭락으로  인한

베어링 은행 파산은 물론이고,  2년뒤 아시아 전체의 금융위기를 일으킨 트리거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 지진으로 고베항의 기반 시설이 무너지면서 '환적 하물' 들이 대거 이탈하여 부산항이  그

역할을 이어 받았으니 "남의 불행은 나의 햄복" 이라?  횡재를 한 것인데..... 이 지진 이후

소니가 비상충전 기능이 있는 라디오인 ICF-B200 을 1995년에 발매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 고베 에서 서양인의 거주지 이진칸이 유명한데 스타벅스 기타노이진칸점

은 1907년 지어진 건물로 유형 문화재였으나... 1995년 한신 대지진으로 훼손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고베시는 건물을 해체한뒤 건물자재를 보관 했으니....

이후 민간 사업가가 기존 자재로 고풍스럽게 건물을 올렸으니 고베 명물 기타노 이진칸 입니다!

 

 

옛날에 이탈리아를 전국 일주하면서 시칠리아섬 동부에 있는 대도시 카타니아

Catania 에 갔었는데 도시 한 복판에 화산 폭발로 인해 참상을 겪어 파괴

된 시가지 건물 일부를 전시해 둔 곳을 보고는.... 소름이 끼치는걸 느꼈습니다.

 

 

카타니아 Catania 는 BC 8세기에 건설된 이래 시칠리아 섬 에서 인구  2위 도시로 17세기

애트나 화산 폭발로 파괴된후 18세기에 바로크 양식 으로 재건되었는데 도시가

용암과  화산재에 뒤덮인 횟수는 무려 7번 이었다니 현 시가지는 8번째로 지어진 것입니다?

 

 

특히 1669년 화산 폭발은 도시를 완전히 집어삼키고 무려 1만 2천명의 시민들이 죽었으나

살아남은 자들은 도시를 재건 했다는데.... “애트나 화산은 카타니아를 만들었고

역사는 카타니아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라고 말해진다는데...... 카타니아는

19세기에 음악가인  빈첸초 벨리니 탄생지 로,   애트나 화산 관광의  출발지 라고 합니다.

 

 

고베는 오늘이 3번째 여행이니 옛날 2번째로 왔을 때 여길 나가서 시립박물관을 보았는데,

거리에 장님의 보행을 돕기위한 점자판 편의시설이 인상적이었던게 기억이 납니다.

 

 

조금 더 걸어서 플라워 로드 フラワ-ド 는 지하에 산치카라 불리는 쇼핑센터가

있으니 방문기간이 7월 20일 이라면 고베 마쓰리 神戶 まつり 삼바페스티벌

과 또 메리켄파크에서 펼쳐지는미나토 고베 해상 불꽃놀이”  를 즐길수 있습니다.

 

 

그때는 꽃시계가 만들어지며 평소에는 플라워로드 시청사 무료전망대 (24날씨가 좋으면 아와지섬

까지 보인다에 오르면 시가지를 조망할수 잇으며지붕을 씌운 상가에서 우회전하여 몇굽이

돌아 빠져나오면 산노미야 광장이고,  JR. 한큐역을 보며 오른쪽 가까운 곳이 한신 산노미야역 입니다.

 

 

소라쿠엔을 보고는 걸어내려 오다가 지하철 겐초마에역을 지나 효고현청 건너편에 일본에는 보기 드문 교회로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한후 나와서는 산노미야 센타가이 さんのみや センタカイ (대형 쇼핑몰를 봅니다.

 

 

계속 걸어서 토어 로드 トアロ-ド 를 찾아가서 구경을 하는데 고베항 개항 당시에 발전한

번화가로 세련된 잡화점과 카페인테리어 소품숍 들이 많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아직 오전인 때문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으니 오후가 돼야 붐비는가 봅니다?

 

 

고베 는 오래 전에 개항한 국제 무역 도시로 일본 제3위의 무역항 이자 인구 6위 도시로

효고현 현청 소재지 인데 1945년에는 미군의 공습으로 도시가 초토화

되었고 1995년 1월 17일 진도 7.2 대지진으로 괴멸적인 피해 를 입었으니

사망자 4,500부상자 15천명가옥 파괴 12만동 피해를 입었지만 복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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