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4 - 스미요시타이샤 신사에서 하치모우데를 생각하고 시치고산을 구경하다!
2024년 11월 25일 사카이 난바역에서 전철을 타고 사카이역 (南海電鐵堺駅) 에 도착하여 걸어서
사카이항 (旧堺港) 에 가서 南蛮人像 (남만인상) 을 지나 옛날 나무 등대 (燈臺 旧堺灯台 )
를 구경하는데.... 맞은편에는 16세기에 포르투갈인들이 배를 타고 상륙한 곳으로 벽화들을 봅니다.
그러고는 사카이역 (南海電鐵堺駅) 에 돌아와서 전철을 타고 오사카로 돌아오는 도중에
스미요시타이샤역 ( 住吉大社駅 ) 에 내릴려고 하는데, 이런? 아주 작은 역이라
도큐 (特急 특급) 도 아닌 쾌속열차 주제에.... 우리 전철이 서지 않고 그냥 통과해 버립니다?
다음 역에서 내려서는 후쓰 (보통) 열차를 타고 되돌아 와서 스미요시타이샤역 ( 住吉大社駅 )
에 내려서는 오른쪽으로 가니 여긴 신사인 스미요시타이샤( 住吉大社 ) 가 아니고
그냥 보통 공원인 스미요시코엔( 住吉公園 ) 인지라 둘러보다가 “바쇼 시비” 가 있어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공원을 나와 도로를 건너 반대편에 자리한 스미요시 신사로 가는데.... 스미요시타이샤 (住吉大社)
는 전국에 2300개의 스미요시 신사의 총 본사로 211년에 진좌한 것으로 알려진 오래된 신사이니,
국보로 지정된 본전과 아름다운 반교 등 많은 볼거리가 있으며 오사카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참배 장소입니다.
신사는 셋츠 쿠니 이치노미야 (Settsu Kuni Ichinomiya) 로 추앙을 받는지라 연초에는 하치모우데 라고 해서
무려 200만명 이상의 순례자가 방문하는 유명한 곳으로.... 초록에 둘러싸인 경내는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는데, 고대 건축 양식을 전하는 4 개의 본당에 상징으로 여겨지는 안티 브릿지(다이코 대교)가 있습니다.
스미요시 타이샤에 모셔져 있는 스미요시 대신은 바다의 신으로 옛날부터 외교와 무역에, 산업을
수호하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니, 옛날 책에 따르면 바닷속에서 3신이 탄생하고 총칭해서
스미요시 대신 이라고 불리니...... 제14대 츄아이왕의 황후인 진구가 211년에 모셨다고 합니다.
참배길에서 처음 보이는 것은 “소리하시 (反橋)” 이니 정면에서는 경사가 급한
계단이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아치형 다리가 보이는데...... 여기 급경사는
밤이 되면 21시까지 라이트업 되어 간사이 야경 100선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매년 1월 1일이면 “하치모우데” 라고 해서 새벽에 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와 하루에
신사 3곳을 참배한다는데.... 간사이 지방에서 첫 참배지로 꼽히는게
보통은 여기 스미요시타이샤 신사이니 이 기간에는 무려 200만명이 찾는다는데 이걸 믿어야 하나....
스미요시 타이샤의 토리이는 아주 드물게 돌로 만들어진 사각 기둥 토리이로 카쿠토리이
(角鳥居) 라고 하는데..... 이런 사각기둥은 옛날 양식으로 아주 드물고
본전과 배전에 사이에 건립되어 있는 목조 주홍색 칠의 도리이가 원형이 불리고 있습니다.
토리이를 지나면 본전이 보이는데 현재 본전 건물은 1810년에 만들어졌고 일본 국보 건축물에 지정되어 있는데...
일본 전국적으로도 드문 건축 배치이니 구조는 “스미요시 즈쿠리“ 라고 하며 지붕은 히와다부키(檜皮葺)
로 직선적인 박공 구조이며 출입구는 츠마이리 (妻入り) 라고 하고 지붕 양쪽이 정면으로 향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돌의 울타리 안에는 “五 / 大 / 力”, 3개의 작은 돌이 있고 이것을 부적으로 하면 소원
성취에 효력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는 곳을 오대력(五大力) 이라고
하는데 오대력은 “수명 복력 체력 지력 재력” 을 말한다니 좋은건 다 갖다가 붙인다는...
스미요시 타이샤에서 개최되는 축제는 6월에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에 지정된 오타우에
신사 (御田植神事) 를 경내 남쪽에서 하는데..... 곡물이 풍부하게 성장하고
벼 이삭이 충분히 익는 가을을 맞이는 의식으로 지금도 엄숙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름을 맞이는 7월 30일 ~ 8월 1일에는 스미요시 마츠리 (住吉祭) 가 개최되는데 스미요시 타이샤는 오사카
를 정화한다고 해서 축제를 “오하라이” 라고도 부르니 어신령 (오미타마) 을 담은 가마 (神輿 신여)
가 행렬을 만들어서는 사카이에 있는 슈쿠인돈구 까지 지나가는 “미코시코토교” (神輿渡御) 가 진행됩니다.
매월 첫 용의 날에 열리는 것이 핫타츠 마이리(初辰まいり) 이니.... 사업 번창, 가내 안전의
”핫타츠상” 이라고 사랑받고 있고 매월 첫 용의 날이 되면 멀리서 방문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여기 스미요시 신사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이 유난히도
많은데 아이들은 옛 일본 전통 옷인 기모노를 입고 있으먀 7.5.3 이란 간판이 더러 보입니다.
일본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족들이 아이를 데리고 신사에 가서 축원을 하며 매년 1월 1일 가족
들이 새벽부터 신사 3곳을 순례하며 결혼식은 양가 집안만 모여 신사에서 전통 예법으로 하고 친지나
지인들은 예식장이나 호텔을 빌려 서양식으로 피롱녀을 하며 죽으면 절에서 화장을 하고 신주를 모십니다.
오늘 여기 시치고산 (七五三, しちごさん) 은 3, 5세가 된 남자아이와 3, 7세가 된 여자
아이를 그 해 11월 15일 가까운 신사나 절에 데리고 가서 그때까지
무사히 성장했음을 축하하는 일본의 전통 행사이니 한국으로 치면 또는 돌잔치인 셈입니다.
시치는 7, 고는 5, 산은 3 으로 직역하면 753 으로 2024년에는 남자는 2019년과
2021년생이, 여자는 2017년과 2021년생이 시치고산을 맞는데, 즉
2022년부터는 레이와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줄줄이 시치고산을 맞게 되는 셈입니다.
일본의 대부분의 연중 행사가 그렇듯, 이것도 원래는 음력 11월 15일에 열렸는데 음력 11월이면 양력으로는 12~1월
내외라 농사가 완전히 끝난 뒤였으니 농한기 보름날에 한 해 수확을 고마워하고, 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행사
였으나.... 현대에서는 양력 11월 15일에 열리지만, 11월 주말을 고르는 일도 많다고 하니 오늘 온 사람들인가 합니다.
근대화 이전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영아 사망률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유독
중근세 일본에서 이런 풍습이 생겨난 것은 일본의 신토 의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좀 더 깊게 들어가자면 '7살까지는 우리 아이가 아니라 신의 아이이기 때문에, 7살 이전에
아이가 사망하면 원래 부모인 신에게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신의 아이를
7년 키워줬으니 신께서 보답으로 진짜 자식을 점지해줄 것' 이라는 일종의 자기위안 입니다.
에도 시대에는 7살까지는 어린 아기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호적에도 쉽게 올리지 않았고,
7살을 넘기면 비로소 가족들과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식으로 받아들였으니..... 즉, 시치고산은 지금까지
아이가 살아남았음을 신령에게 감사드리고 비로소 가족과 지역의 일원으로 받아들임을 축하하는 행사였던 것입니다.
대개 시치고산 때는 아이에게 일본 남녀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아이 옷으로 작게 만든 것을 입히는데....
3세쯤 되는 아이들에겐 히후 (被布) 라는 조끼 비슷한 옷을 위에 입히는데, 정식 기모노 입기는
조금 어려운 아이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하며 남아들도 입으나 거의 절대다수 여아들이 입는다고 합니다.
특히 미혼 여자용 기모노인 후리소데는 아이용이라도 제법 화려하고 귀엽지만 (정식 후리소데만큼은
아니지만) 가격이 꽤 비싸서 요즘은 대여하거나 서양식 정장을 입기도 하며
그리고 가까운 절이나 신사로 데리고 가서 참배하거나,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돈도 한국의 백일사진이나 돌사진 값만큼 꽤 비싼 편인데 그래도 아이가 있는 집은 대부분 찍고 보통
앞에 아이를 앉히고 부모가 양쪽 뒤에 앉아 찍는데, 이런 사진 자체를 시치고산이라고도 부릅니다.
시치고산의 아동용 기모노 중 3세 유아용은 조끼를 덧입게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날에는 아이를
축하하며 홍백 (紅白) 으로 염색한 가래엿인 치토세아메 (ちとせあめ) 를 선물로 줍니다.
일본에서 1% 정도라는 그리스도교인들도 시치고산을 교파에 맞게 받아들여 성직자 주도로 아이들을
축복하고 축하하는 행사를 열지만 그리스도교가 아무래도 소수라 신사에서 하는 시치고산
행사보다는 단촐할 수밖에 없으므로, 아쉬움을 느끼고는 그리스도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사에서 시치고산 행사를 하고 싶다고 느끼는 부모들도 있어..... 종교적인 고민을 하기도 한답니다.
일본의 횡단보도 교통 신호음으로 유명한 에도 시대의 동요 도랸세의 가사에서도 시치고산 (七五三,
しちごさん) 에 관련된 내용이 있다고 하는데.... 축원하는 연령의 3세, 5세,
7세라는 것은 중국에서는 기수가 운기가 좋은 수로 여겨진 것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답니다.
3세는「카미오키(髪置)」 라고 해 처음으로 머리를 기르는 의식이고, 5세는 「하카마기(袴着)」 라고 해서
처음으로 하카마 (袴- 겉에 입는 아래옷 )」를 입는 의식. 그리고, 7세는「오비토키 (帯解)」 라고
해서 츠케오비 (付け帯) 를 풀고 어른들이 매는 오비 (帯) 를 매는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의식을 통해서 남아는 비로소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여아는 하나의 여성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니....
그 시작은 도쿠가와 막부 5대 쇼군인 쓰나요시 (綱吉) 가 병약한 장남 도쿠마쓰 (德松, 1679~1683) 의 건강을
기원하는 행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유력한 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세기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음력 11월은 수확을 마치고 신에게 감사하는 달이니..... 보름날 마을사람들은 수호신을 찾아
수확을 감사하고 아이의 성장을 감사하고 가호를 빈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메이지 이후 음력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서 양력 11월 15일이 ‘시치고산’ 날이 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지역에 따라 13세가 되는 해 축하 행사 (十三?り) 를 하는 곳도 있고, 날을 달리하는 곳도 있으며 호사스럽게
피로연을 베푸는 곳도 있는데, 여하튼 내 자식 잘 자라서 고맙고 더 잘 자라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 날 입니다.
일본도 근대 이전에는 아이를 무탈하게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역병, 영양 등의 문제로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7살이 되기 전 까지는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기사 조선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왕실은 환경도 좋고 허준이 동의보감을 지은 나라인지라 늘 어의가
돌보니 의료 환경이 우수함에도, 고종의 왕비인 민왕비는 첫째 아들 왕자는 닷새만에 죽었고 둘째 공주는 7개월
만에, 넷째 왕자는 14일째에, 넷째 왕자는 5개월 만에 죽었으며 둘째 왕자만이 유일하게 성장해 순종이 되었습니다.
신도를 믿는 일본인들은 ‘이세상과 저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 언제라도 신의 품으로 돌아갈수 있다’
고 생각했었던지라..... 그러니 죽음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는데, 7살이 된 후에야 비로소
지역 사회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되었으니 ‘시치고산’ 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비롯된 의식이었습니다.
외국도 마찬가지이니.....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아네트의 어머니인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는 16명의 자녀 중에, 3세 이전에 죽는 자식이 3명이고 16세 이전에 죽은 자식도 3명이었으니
성년으로 성장한 자식은 10명인데, 15번째 출생한 자식이 마리 앙투아네트로 딸로서는 11녀로 막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