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히메현 마쓰야마5 - 마쓰야마 성을 보고는 역에서 이마바리행 기차를 타다!
어제 2025년 8월 7일 다카마쓰에서 우타즈와 마루카메 (丸龜) 를 거쳐 에히메현의 현청 소재지인
마쓰야마 (松山駅) 에 도착해 도요코인 마쓰야마 이찌방초 호텔에 체크인후 전차를 타고
도고온천 (道後溫泉) 에서 족욕후 시계탑에서 인형극을 보고는... 혼칸에 가서 온천욕을 했습니다.
여행 사흘째인 2025년 8월 8일 도요코인 호텔을 나와 마쓰야마성을 보기 위해 시내 쪽으로
한정거장을 걸어서 오카이도에 도착하는데.... 건너편에 오카이도(大街道)
아케이드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캐릭터를 찾아볼 수도 있다지만 나중에 보기로 합니다.
근처에 마쓰야마조 니노마루시세키테엔 (松山城二之丸史跡庭園) 라고 마쓰야마성을 수비하기 위한 방어시설
이 있었는데 1872년에 소실된후 1992년 5월 러시아군 포로와 일본인 간호사의 사랑이 담긴 금화가 발견
되어 사랑의 성지로 여겨져 웨딩 촬영지로 인기이며 연인들의 로맨틱한 프러포즈 장소로도 이용된다고 합니다.
또한 아이쇼테이 愛松亭 (애송정) 라고 일본인이 좋아하는 나쓰메 소세키가 마쓰야마 중학교에 영어
교사로 부임해 하숙했던 자리에 만든 카페가 있고 그 옆에 반스이소 萬翠莊(만취장) 는
마쓰야마 옛 번주의 후손 하시마쓰 사다코토의 별장으로 프랑스풍 건물은 최고의 사교장 이었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저런 곳은 내려오면서 들러기로 하고는..... 먼저 마쓰야마성 부터 보려는 생각으로 여기
“언덕위의 구름” 이라고 적힌 언덕길을 걸어서 7~8분 올라가니 거기에 마쓰야마성 리프트가 보입니다.
여기서 1천엔을 내면 리프트와 마쓰야마성 입장권을 주는데..... 혼자서 타는 리프트를 타거나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케이블카라 불리는 여러 사람이 타는 차량인 로프웨이를 타도 됩니다.
리프트에서 내려서는 가게등 건물을 지나면 마쓰야마성의 성벽이 보이는데.... 성의
정문은 여기서도 7~8분을 더 걸어 올라가야 하며 성의 모서리는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여인의 치마자락 처럼 날렵하게 밖으로 나온 산기즈미 축성 방식을 봅니다.
성벽을 돌아가니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문짝이 없는 도나시몬(戶無門) 이며
조금 뒤쪽에 정문인 쓰쓰이몬(簡井門) 으로 튼튼하게 지어졌는데
이 문을 지나면 성의 혼마루 (本丸) 가 나오며 문 위에는 망루 까지 있습니다.
적군이 치열한 전투 끝에 저 정문인 쓰쓰이문을 통과해도 다시 문이 가로막으니
가쿠레몬(隱門) 이 버티고 서 있는데 이는 배후에서 쓰쓰이몬을 간신히
넘어온 적군을 습격하기 위한 시설로 보이며..... 이윽고 혼마루에 도착합니다.
텐슈카쿠( 천수각) 로 들어가서는 경사가 무지 가파른 나무 계단 여러층계를 허겁지겁 올라가
드디어 최상층에 올라가서는 창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마쓰야마성은 일본에
옛날 텐슈가쿠(천수) 가 현존하는 12개 성 가운데 하나라 당연히 일본의 100 명성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 마쓰야마성에는 번주의 저택 터를 복원한 니노마루 정원이 있는데.... 꽃과 나무외에도
안쪽 어전터는 “유수원” 이라고 하니 과거 모습을 재현했는데 장작불을 피우고 하는
야외공연인 가면음악극을 상연하기도 한다는데 2013년에 “연인의 성지” 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임금의 궁궐도 아닌데 번주의 저택을 “어전 (御殿)” 이라고 부르는게 이상한 분도 있겠지만, 일본은 15~
16 세기 센고쿠 시대에는 200여개 나라로 갈라져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으로 날을 지샜습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쟁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설치했지만 전국을
270개 번으로 나누었으니..... 번주는 영지에서 영민을 다스리면서 세금을 거두고
군대를 양성하며 가신과 사무라이들은 대를 이어 번주를 섬기니 영내에서는 사실상 왕입니다.
해서 이웃나라와의 국경에는 관소를 설치했으니 영민들은 이웃 번으로 여행을 가려면 번주에게
신청해 통행허가서인 여권을 발급받아야 했고 또 관소에서 상인들의 휴대한
상품에는 관세를 징수했으니 번주가 주최하면 어전회의 이고 아들은 세자, 딸은 공주로 불렸습니다.
조선은 중앙집권제니 군대는 왕의 군사라 대장이 죽으면 임명하면 되지만, 일본은 번주 개인의 군대니 일왕이나
막부 쇼군의 지휘를 받는게 아니라 다이묘(번주) 지휘를 받으니 병사들이 죽으면 영주가 자기 돈으로 자기
영지에서 보충했으며, 우리나라는 귀향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교토에서 마쓰야마로 내려가면 “귀국” 이라 합니다.
옛 이요 번의 마쓰야마조 松山城 (송산성) 는 카츠야마산 정상에 축성된 견고한 성으로
가토 요시아키 (加藤嘉明) 가 1602년에 축성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는
수군을 이끌고 임진왜란때 조선에 건너왔는데 당시 참전한 수군 대장은 10명 가량 됩니다.
도도 다카토라 : 2천명, 와키지카 야스하루 : 1500명, 구키 요시타카 : 1500명, 가토 요시아키 : 1천명, 구와야마
마사하루 : 1천명, 구루시마 미치후사 : 7백명, 도쿠이 미치토시 : 7백명, 스가이 에몬쇼우 : 250명, 호리우치
요지요사 : 850명, 스기와카 덴사부로 : 650명으로, 가토 요시아키는 4번째 장수로 5만석 가량의 영주 였습니다.
그의 부친 가토 노리아키는 나고야 동쪽 미카와번의 영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이었는데, 불교도들인 잇코
잇키가 봉기하자 가담하여 패하니 유랑자가 되니.... 요시아키는 부친 처럼 유랑자 신세를 거쳐 오와리
(나고야) 의 영주 오다 노부나가의 새로운 가신이 된 하시바 히데요시 (훗날 도요토미) 의 수하로 들어 갑니다.
1583년 일본의 통일을 목전에 두고 부하 미쓰히데에게 죽임을 당한 오다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은 히데요시는
상급자인 시바타 가쓰이에와 맞붙는데.... 서로 노부나가의 자리를 노리는 이 시즈가타케의 전투에서
가토 요시아키는 후쿠시마 마사요리, 가토 기요마사와 더불어 맹활약을 벌여서 “일곱창” 으로 불리게 됩니다.
158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아 시코쿠를 정벌하여 아와지노쿠니 1만 5천석에 임명되고 이어 규슈정벌
과 호조씨와 싸운 오다와라 전투에 수군으로 참전해 큰 공을 세우고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가토 요시아키 (加藤嘉明) 는 수군으로 참전했으나 안골포 해전에서 이순신장군에게 패한후 부산에 진을 칩니다.
새로 삼도 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권율의 독촉으로 부산으로 진격해오자..... 가토 요시아키는 원균의 함대를
맞받아쳐서 거제도 칠천량으로 후퇴한 원균의 조선 수군을 전멸시키는데, 이때 무사히 도주한게 경상
우수사 배설의 12척이니 이순신이 다시 수군통제사가 되어 133척 왜군과 싸운 명량대첩의 13척중 12척입니다.
가토 요시아키는 칠천량 전투시 맹활약해 부상을 입은 공으로 1595년 이요노쿠니(마쓰야마) 6만석에 임명되어
마쓰야마의 다이묘 (大名) 가 되었으며 명나라 대군의 포위공격을 받은 울산성 전투에서 고립된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를 수군으로 구원한 공으로 4만석 영지가 늘어 이요노쿠니(마쓰야마) 10만석에 임명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에는 무단파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 지지파가 되는데, 이시다 미츠나리
실각의 계기가 된 미츠나리 습격에도 참여했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으로 참전하여
미츠나리군과 전투를 벌였고, 이요의 영지에도 무라카미 모토요시 등이 이끄는 모리군이 이요의
다이묘였던 고노 가문 잔당들과 연계해 공격했으나.... 부하 츠쿠다 카즈나리의 활약으로 막아냅니다.
이요국 번주 가토 요시아키가 축성한 마츠야마 성은 센고쿠 시대 최후의 명성(名城) 인데 옆인 오즈성의
도도 타카토라와 사이가 굉장히 나빴다는데... 명량해전 왜군 총수 도도 다카토라는 가토 기요마사와
더불어 축성에 능한 것으로 유명한데, 요시아키도 마츠야마 성을 축성했으니 전문가 수준이라 할 것입니다.
후에 아이즈번 가모 가문이 적통이 끊기면서 아이즈 번으로 전봉되는데, 센다이번의 다테 마사무네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방안이었으니, 요시아키가 장시간에 걸쳐 개수한 마츠야마성이 완성되기 직전이었고,
요시아키 또한 '저는 늙어서 이제 힘이 없다' 는 이유로 고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전봉 확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가토 요시아키의 아이즈 전봉을 도쿠가와 막부에 추천한 이가 바로, 이웃집 웬수 도도 타카토라
였다는 데..... 처음에는 도도 다카토라 자신이 아이즈로 가기를 원했으나, 후에
요시아키를 추천했으니 이를 악의로 보아야할지 호의로 보아야할지 아직도 난감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일단 자신이 먼저 가려한 점이나, 공히 이요 20만석에서 아이즈 40만석으로 영지가 두 배나 뻥튀기 되는 상황을
보면, 요시아키의 이익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아예 순수한 호의로 보기도 애매한 것이, 요시아키가
기껏 공들여 쌓은 마츠야마성의 완성 직전에 보내버린 걸 감안하면 내가 못 갈 바에야.... 옆집 웬수
녀석이라도 눈에 안보게 보내버리자는 심리는 아니었던지 대인군자인지 아니면 소인배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라?
가토 요시아키는 유언마저도 '아이즈를 내놓고, 옛 영지로 돌아가고 싶다' 고 했다는듯 하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으며, 막장 아들인 아키나리 대에서 가이에키 당하면서 다른 의미로 소원이 이루어
지기는 했다나요? 그래도 오미 미즈구치 (近江水口) 2만석으로 겨우겨우 다이묘의
위치를 지켰으며, 소위 호걸형의 인물을 싫어했는데 이는 평소 요시아키의 발언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용사라 함은 책임감이 강하되 성실하며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허나 호걸이라는 부류는 이기고 있는
싸움에는 나서기를 좋아하면서도 위기에는 쉬이 동료를 저버린다.' 이로인해 가신 반 나오유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군을 마음대로 출격시키자 대판 싸우고 나오유키가 가토가를 나온 이후에도 취업방해 까지 했답니다.
임진왜란때 호랑이가 눈 앞에 나타나도 꼼짝도 하지 않아 모두 그 용기에 놀랐는데 알고보니 자고있는 것이었다
는 일화나, 손등에 담배불이 떨어져 타들어가는데도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는 일화 등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소위 '나가하마 조' 라고 불리는 히데요시가 나가하마성 (長浜城) 의 성주주였을 시절 발탁한 시동 중에서는
거의 공기로 취급된다는데 현재 가토 요시아키는 직계후손이 남아있지 않으니, 성이 같은 가토 기요마사
가 본인 사후에 가문이 몰락한 것과 별개로 일단 직계 후손 자체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 입니다.
가토 요시아키는 특이한 투구로 유명한 전국시대 사무라이 중에서도 유독 독특한 투구를
자랑했는데, 오징어(?) 로 오해할 만한 투구는 사실은 후지산을 본 뜬 것이라고 합니다.
성을 내려와서는 이제 이마바리로 가기 위해 마쓰야마역으로 가는데 우린 국내에서 모 여행사
를 통해 신청하고 다카마쓰역에서 발급받은..... 올 시코쿠 레일패스 All Shikoku
Rail Pass 가 있는데, 기차표 처럼 생겼으니 개찰구 기계에 넣으면 앞쪽 구멍으로 올라옵니다.
올 시코쿠 레일패스 All Shikoku Rail Pass 는 시코쿠섬에서 JR 시코쿠, 다카마쓰시
코토덴, 마쓰야마시 이요테츠, 고치시 전차 토사덴, 토사 쿠로시오
철도 및 아사카이간 철도에다가 소도시마로 운영되는 모든 열차를 이용할수 있습니다.
기차역으로 가면서 전차와 길거리에서 일본인들을 보노라니 문득 최지원 기자와 김하경 기자가 동아
일보에 쓴 “ 日 과학자 노벨 생리의학상 이어 화학상... 올해 벌써 2명 ” 이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자가면역질환 원인 연구 사카구치
금속유기 골격체 개발 기타가와 등
일본 노벨상 수상은 31번째 달해!
올해 노벨 화학상은 기후 변화의 구원투수로 불리는 ‘금속유기 골격체(MOF)’ 를 연구한 기타가와 스스무
(北川進) 교토대 교수, 리처드 롭슨 호주 멜버른대 교수, 오마르 야기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UC버클리) 교수 3명에게 돌아갔다. 앞서 6일 발표된 노벨 생리의학상에서도 사카구치 시몬
(坂口志文) 일본 오사카대 석좌교수가 수상해 올해 과학 분야에서 두명의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자가 연구한 MOF는 철, 아연 같은 금속과 유기물질
(리간드)을 결합한 다공성(多孔性) 물질이다. 구멍이 많은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무게에 비해 외부와 맞닿는
표면적이 넓다. 주상훈 서울대 화학 교수는 “ 1g의 MOF가 축구장 하나만큼의 표면적을 가진다” 고 설명했다.
표면적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화학 반응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가장 유용하다고 평가되는
분야는 이산화탄소와 물 포집이다. 학계에서는 2022년 조지 시미즈 캐나다 캘거리대 화학과 교수팀이
MOF의 일종인 ‘CALF-20’ 상용화에 성공하며 노벨위원회가 MOF의 산업적 가치 및 기후변화 해결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보고 있다. 국내는 LG전자가 공기청정기의 탈취 필터로 MOF 를 활용하고 있다.
수상자들은 MOF와 같은 고체화합물을 설계하고 합성하는 일종의 ‘규칙’을 마련했다. 야기 교수와 UC버클리
에서 함께 연구했던 김자헌 숭실대 교수는 “고체화합물은 설계할 때 연구자의 의도가 반영되기 매우
어려운 물질” 이며 “수상자들은 연구자가 원하는 고체화합물을 만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고 설명했다.
한편 6일 발표한 노벨 생리의학상은 메리 브렁코 미국 시애틀 시스템생물학연구소 수석 프로그램 매니저, 프레드
램즈델 미국 소노마 바이오테라퓨틱스 과학 고문, 사카구치 시몬 일본 오사카대 석좌교수가 공동 수상했다.
이들은 관절 류머티즘, 건선 등 면역세포가 자기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조절
T세포’ 를 연구했다. 이들의 발견은 자가면역질환은 물론이고 항암제 개발과 장기이식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에 생리의학상과 화학상에서 일본인 과학자가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일본의 노벨상 수상은
31번째 (외국 국적의 일본인 포함하면 34명?) 가 됐다. 올해 처럼 한 해에 2명 이상의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2002년, 2008년, 2010년, 2014년, 2015년에 이어 6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