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29 - 은행나무거리에서 신사이바시로 들어와 도톤보리를 구경하다!
2024년 11월 27일 히라카타시 (枚万市) 에서 왕인묘(王仁墓) 에 구다라오 진자 (百濟王神社 백제왕
신사) 등을 구경하고는... 호시다 공원 (ほしだ公園) 을 걸은후 히라카타역 ( 校万駅 ) 에서
게이한본선 (京阪本線) 을 타고 요도바시역 (淀屋橋駅) 에 내려 나카노시마 (中の島) 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남쪽으로 대로를 걷는데.... 미도스지선 (御堂筋線) 요도야야바시역 (淀屋橋駅) 에서 혼마치
역 (本町駅) 을 지나 신사이바시역 (心齊橋駅) 에 이르는 넓은 대로는 소위 은행나무 길로
불리니 오사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4km 대로에 800 그루 은행 나무가 전구 조명을 밝히고 있습니다.
은행나무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하니 오늘은 지하철을 한번, 기차는 모두 4번을 타고 이 거리까지 온 건데
이번 간사이 여행이 내게는 일본 여행으로는 스무번째 가까이 되는 것 같아.... 엄청 많이 왔다고
생각했더니 국제신문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 칼럼에 보니 한국을 200차례나 찾은 일본인이 있어 놀랍니다?
70대 일본인 교류의 삶으로 활력 “韓 좋아 200차례 찾았죠” , 외국 사람들은
"인생 이모작" 을 어떻게 보낼까? 초장수 시대는 이러한 의문을 품게 된다.
우리만큼 단기간에 초고령화 사회로 가지 않은 곳도 있고, 저출산 문제와 별개로
초장수 시대로 가는 곳도 있다. 이번에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며
교류해 온 일본인을 만났으니 부산의 자갈치시장에서 활어회를 놓고 마주 앉았다.
타노시로 다카시(앞줄 가운데 붉은셔츠) 씨가 철도동호회 활동의 일환으로 일본 ‘명지철도’ 를
견학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은 기관차의 설명원이다.
- 부산을 자주 방문하신다고 들었어요. 지금까지 얼마나 방문하셨나요?
1984년 부산을 방문한 이후 지금까지 200번 정도 부산과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 부산대
박물관과 경주의 고분 및 불국사에서 매우 감격했었어요. 자갈치시장에도 왔었는데, 활어를 보고 신기
했어요. 일본 초밥집에서는 살아있는 물고기를 볼수 없거든요. 제게 한국은 왠지 친근했고 늘 그리웠습니다.
- 어떤 계기로 한국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셨나요? :
1981년 35살 무렵이었습니다. 하던 사업도 순조로웠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니
노후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우연히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이번에 만난 이는 일본인 타노시로 (田野城) 씨다. 현재 78세이니 경제 활동으로서
‘한 번 더 현역’ 을 지속할 연배는 아니다. 그러나 생애주기상 노인기로
접어드는 이분의 사례를 통해 고령화가 일찍 시작된 일본의 인생이모작 문화를 알아보자.
- 35세에 노후 준비를 생각하셨다니, 매우 빨랐군요. 젊은 시절 어떤 일에 종사하셨나요?
저의 부친은 오사카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던중 1945년 3월 13일 심야에 미군의 공습을 받았습니다.
결국 교토로 이사를 했는데, 전후 호경기와 여행 붐이 일어나면서 35㎜ 카메라도 잘 팔려 사업을 크게 확장
하셨어요. 1946년 태어난 저는 일본의 부흥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죠. 대학을 졸업한후 카메라 판매사
에 입사해 경험을 쌓은후, 카메라 판매점을 물려받아 2016년, 70세까지 종사하고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 그러면 한국과는 어떻게 교류를 하셨나요?
한국의 문화에 대해 흥미가 생겨서 처음에는 한국 거류민단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교실을 다녔어요. 그러다가
도시샤 (同志社) 대학 니시오 아키라 (西尾 昭) 지도교수께서 유학생중 우수한 분이라며 박명흠 씨를 소개해
주시더군요. 한국어를 많이 배운 계기가 되었고, 박명흠 교수와 는 30년 넘도록 가족들도 왕래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 그래도 어떻게 200번이나 한국을 방문하셨나요?
저에게는 같은 듯 다른 한국문화가 재미있더군요. 시간만 나면 혼자나 가족, 그리고 친구와 동호회 회원들을 데리고
왔죠. 1987년, 41세 때 설립된 교토아시아태평양 우호협회 사무국장을 맡게 되어, 한일 양국의 청소년 대학생
사업가의 교류를 주관하기도 했어요. 부산에 있는 한일문화교류협회와는 자주 교류해 양국간의 우호를 증진했습니다.
한국을 이렇게 200번이나 방문해 온 그의 일상은 어떠할까? 미셀 마페졸리는 개인의 일상생활은 정치
경제의 큰 구조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선험적 이론으로 포섭되지 않는 미세한 영역이라고 했다.
앙리 르페브르가 말하는 "소외" 나, 버트런트 러셀의 "행복" 이 교차할 수 있는 그의 일상을 더 들어보자.
- 칠십대 후반 생애 전환기를 보내는 일상이 궁금합니다. 한 주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월요일에는 아내의 친구 부부가 찾아왔기에 음식점에서 식사하며 즐겼습니다. 화요일에는
친구와 골프를 치러 갔죠. 수요일에는 정형외과에 가서 재활치료를 했습니다.
목요일은 골프 였어요. 금요일은 방을 정리했고 토요일에는 손자의 피아노 발표회와
자위대 음악회에 참석했습니다. 매일 7000보를 걷고있으며, 날마다 신문 보고 온천욕을 합니다.
-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나 봐요?
제겐 세 종류의 친구가 있어요.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의 친구와는 골프나 식사 모임을 주로 하죠. 라이온스나
로터리 클럽 등 봉사 단체에서 맺어진 친구도 있습니다. 저는 철도동호회 동료들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 철도 동호회는 생소하군요. 어떻게 활동하나요?
20대 청년부터 90대까지로 1956년 설립된 도시샤 (同志社) 대학 철도 동호회는 OB까지
300명이 넘는 역사를 자랑합니다. 40명 정도 우리들은 시대에 겁먹지 않고
기차와 철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21세기를 사는 즐거움을 공유하고 있지요. 또
지난달 30일에는 동호회의 OB 들이 우리집에 와서 놀았고 한국에도 견학한 적이 있습니다.
- 한국을 견학해요?
2006년 2월에 코레일 부산기지를 견학했었죠. 한국에는 우리와 같은 철도 동호회가 없기에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셨지만 곧 이해하셔서 안내해 주시더군요. KTX 의 승차감도 검증했었어요.
동호회 활동을 하는 이는 알지만 무료감을 해소하는 이상이다. 카플란은 여가는 집단
활동을 통해 생활의 위엄을 찾는 계기라고 했다. 그래도 실제 인생 최후의
자아 실현의 기회일 수 있는 여가 종목을 철도와 기차에서 찾은 것은 참 흥미롭다.
- 일본의 중노인들은 어떤 취미 생활을 많이 합니까?
한국에는 등산을 가는 중노인이 매우 많더군요. 일본에서는 볼수 없는 현상이라 놀랐어요. 일본
에서는 운동뿐만 아니라 유화나 수묵화 그림 그리기, 하이쿠(俳句) 나 가라오케, 클래식
이 인기 종목입니다. 고담 (古談), 만담도 큰 인기입니다. 골프장 가는 중노인 부부도 늘었어요.
- 한국인의 인생 일모작은 경쟁적으로 노력하는 분위기인데 일본은 어떤가요?
일본인도 발전을 위해 노력합니다. ‘신은 세밀한 곳에도 깃든다’ 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노력해 조직이 더 발전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죠.
한국과는 약간 다르죠. 그리고 은퇴후 신분이나 직급에 무관하게 친구처럼 지냅니다.
- 이제까지의 생애에 힘든 것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았지만, 아내에게 신장 질환이 발견되었을 때 힘들었죠. 고심
끝에 저의 신장을 이식해 주었습니다. 65세 때 대지진이 있던 해였고 손녀가 태어
나던 해였습니다. 그를 계기로 저는 은퇴를 준비했었고, 5년 후 일에서 손을 놓았습니다.
그후 아내가 약하기 때문에 제가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해 아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나 빨래를 하지만 저의 행복입니다. 아내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저는 아내가
젊은 나이에 시집와 주고, 부모님을 모셨고, 아이들을 낳고 잘 키워주었으니 훈장을 주고 싶습니다.
- 놀라운 말씀이군요. 삶에서 어떤 마음가짐이 중요했나요?
젊은 시절 제 첫 직장의 사장이 아랫사람의 괴로움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저는 제일 먼저 출근해서 온갖 곳을 도맡아 청소하며 성실하게 했죠.
내가 먼저 노력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수 없기 때문이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나는 ‘언제 죽어도 후회가 없는 것이 좋은 인생’ 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6월 까지 딸 부부와 손자 3명 등 7명이 함께 살았습니다만, 근처로
이사를 했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두 손자가 함께 자려고 오니 쓸쓸해진 우리를 위로해 줍니다.
저는 가족들이 행복하게 성장할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저에겐 행복입니다. 언제 죽어도
만족스러운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 덕분
입니다. 하지만 또 한 가지를 생각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지금 보다 더 친해지면 좋겠습니다.
타노시로 씨의 인생 성공의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일본의 베이비부머로서 국가 경제가 성장
하는 안정된 시대환경에서 생을 보내왔다. 긍정적 성격과 함께한 친구, 대인관계
에서 신뢰를 얻는 자세가 있다. 마땅히 지고지순의 배필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이 한국과 이웃해 있어 좋다. 인생이 2배로 즐거워졌다’
며 니시오아키라 교수와 함께 웃으며 말한다. 그에겐 한국과 교류
하여 얻는 즐거움 또한 ‘언제 죽어도 후회 없는 삶’ 에 크게 기여하는 듯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조명을 밝힌 은행나무 거리에서 루이뷔통과 구찌등 명품숍
들 까지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서 드디어 신사이바시역에 이르러 골목으로
들어가서는 복잡하기 그지 없는 시사이바시스지를 걸어서 도톤보리 로 찾아갑니다.
도톤보리 (道頓堀) 는 오사카 남쪽에 흐르는 도톤보리 강 주변에 형성된 유흥가로 서민적인 분위기를
느낄수 있으며 난바로 이어지는 에비스바시에서 센니치마에도리 까지 500m 가량 이어집니다.
도톤보리 (道頓堀) 는 동쪽의 닛폰바시에 이르는 지역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독특한 간판이
많으니 에비스바시의 글리코 제과점 마라도너 옥외 간판은 트레이드 마크라고 합니다.
여기 다리 앞에는 여러번 왔지만 오늘도 세게 여러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틈도
없는데.... 언제나 그렇듯 중국인들이 엄청 많고 또 한국말 소리가 가득한 곳입니다.
마눌이 돈키호테에 간다는데 예전에 왓을때 오늘과는 반대로 난바에서 온지라
아케이드 상가로 해서 도톤보리 どうとんぼり 道頓堀(도돈굴) 로
걸어가다가 마눌이 “藥(약)” 이라는큰 글자 간판이 달린 가게로 들어 갑니다.
잡화점 이면서도 한쪽에는 각종 "약" 들을 팔고 있으니 놀라움을 금할수 없습니다.
미국은 만여종이 넘는 약을 이런 잡화점에서 팔고 있으며 일본은 2천종 정도
파는줄 아는데.... 대한민국은 달랑 11종 그것도 한 품목은 한 제약회사 제품 뿐입니다.
한국 약사들은 약의 오남용을 막아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11종 이상은 절대 불가랍니다? 그럼
일본과 미국에 유럽 나라들은 정부에서 국민건강을 해치고 사람들이 약의 오남용에 찌들게
되는걸 알면서도, 수천종이 넘는 약을 의사나 약사 처방없이 파는가 보는데.... 대한민국! 좋은나라 라?
우리나라에서는 “藥(약)” 은 의사의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사에게 사는게 원칙인
나라인지라...... 일본의 슈퍼에서 각종 약들을 파는 모습이 신기했었는데, 중국인
손님들이 약을 대량구매하니 종업원도 중국어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보입니다?
마눌은 그 때 온 적이 있으니 자기 기억으로는 돈키호테가 강 건너 아래쪽이라지만
나는 그렇지 않지 싶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위쪽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조금 걸으니 거기에 있는데 역시나 중국인과 한국인들로 인산인해 입니다.
몇가지 상품들을 구입해서는 나오니 이제는 비가 내리는지라 더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여긴 오코노미야키가 주 종목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