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일본여행1

아마쿠사 2 - 아마쿠사섬 혼도에서 크리스천 박물관에!

작성자은혜|작성시간26.06.17|조회수45 목록 댓글 0

 

아마쿠사 2 - 버스로 아마쿠사섬의 혼도에 도착해 크리스천 박물관에 가다!

 

 

2025년 12월 7일 구마모토역에서 기차를 타고 우토에키 (宇土駅 우토역) 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거성인 우토조아토 (宇土 古城 (宇土城跡

구경하고는 기독교도들의 섬이라는 아마쿠사로 가려는데 10시 47분 기차를 놓칩니다.

 

 

다음 기차 대신 버스를 타는데 구마모토 사쿠라 버스 터미널을 출발해 우토역 동구에 12

03분에 도착하는 아마쿠사호(あまくさ버스를 타고는 가미 아마쿠사섬을

지나 2시간 10분만인 15시 15분에 혼도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요금은 2,450엔 입니다.

 

 

아마쿠사섬의 중심인 혼도에서 호텔 선로드 (ホテルサンロード 에 체크인후 시내지도를

받고 아마쿠사 크리스천 뮤지엄 (天草 キリシタン 博物館 위치를 적은

다음에 택시를 불러 달래서 타고 시가지를 통과해 산으로 올라가는데 요금은 1400엔 입니다.

 

 

언덕이라 아마쿠사 시가지가 잘 내려다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가 300엔씩 입장료를 내고

한국어 팜플렛을 받으니..... 직원은 우릴 데리고 가서 기독교 관련 영상물을 틀어줍니다.

 

 

서양 선교사들이 나가사키에서 아마쿠에 건너와 교회를 세우고는 여기 아마쿠사섬이 기독교도들의

이 된 과정에다가훗날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시마바라 반란이 일어난 과정을

설명하는 자료들이 많은데 사진 촬영 불가라 찍지 못하는게 아쉬우니 바깥 게시물을 대신 찍습니다.

 

 

여기 아마쿠사 섬은 주민 70~80 % 가 기독교도가 되었는데 남쪽 사키츠 마을에는 아직도

오에 천주당과 사키츠 성당 (﨑津聖堂) 등이 남아 있으며.... 기독교 금지령 이후

1873년에 해제될 때 까지 숨어 지내던 카쿠레 키리시탄 (숨은 그리스도인이 유명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총포를 얻기위해 선교사들을 환대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잘해주었으니...

사쓰마의 시마즈씨가 80% 를 장악한 규슈를 정복하는 전쟁에서 서양 무력의 도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모양인데, 정복후 서양 무력을 빌릴 필요가 없으니 선교사 추방등 배척합니다?

 

 

대원군이 러시아 침입에 프랑스의 도움을 얻고자 했다가 러시아인이 물러가자 프랑스 도움이 필요 없어지고,

내실에 천주교도가 출입한다는 소문이 돌자..... 태도를 180도 돌변해 천주교 탄압령을 내린 것과 같습니다.

 

 

너희 예수교는 왜  일본  방방곡곡 거리에서 포교하는가?  왜 말고기와 소고기 를 먹는가?

왜 너희 유럽 상인들은 우리 일본인 부녀자들을 돈을 주고 사서는 외국에 노예로 파는가?”

 

 

토사구팽 이라는 것은 동서고금 어느시대나 있던 것으로 필요할때는 간절한 태도를 보이지만다이묘

들  까지도 천주교도가 되어 세력이 급격히 늘어난데다가 서양 상인들이 일본인

부녀자들을 노예로 마카오에 파는게 심기를 거슬린 것인데..... 규슈 정복 후에야 본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히데요시의 추방령에는 일본은 신국 (神國이므로 크리스천 나라에서 악마의 가르침을 설교하기

위해 온 것은 나쁘며예수교 신도들은 신과 부처의 사원을 파괴하니 일본의 법이  파괴

되는지라 선교사들은 20일 내에 떠나라단 포르투칼 나우선들이 상거래를 위해 오는 것은 허락한다

 

 

노부나가는 서양 선교사들에게 비와호수에 천수각을 금으로 도배한 이즈치성 아래 교회를 설립

하는 편의를 봐주었으며히데요시도 그런 정책을 취하는등 몇년간 봄날이었는데.....

전혀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추방령으로 인해 선교사들은 나가사키로 가서 숨어 지내게 됩니다.

 

 

나가사키 교회들이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히데요시는 이후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라

흐지부지 되었다가나우선의 사령관이 예방하고 선교사 발리냐노가

인도 부왕의 사절이라 칭하고는 교토 취락제에서 히데요시를 만나면서 없었던 일이 됩니다.

 

 

그런데 임진왜란후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아시아 처럼 일본이 서양에

침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천주교도들을 처형하니 무려  3만 70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부모 앞에서 자식이 펄펄 끓는 100도 온천 구덩이에 던져지고..... 사람의 몸에 불로 고문을 가해

타죽이기도 했으니 당시 극심한 박해로 현재 일본의 기독교 신자는 인구의 1% 에 못미칩니다.

 

 

"절망하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두렵습니다당신 침묵의 무게가 두렵습니다기도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저는 허공에 기도하는 것 입니까?"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  을 원작으로

한 마틴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  는 이 처럼 끊임 없는 천주교 탄압에 고통받는

포르투갈인 신부의 모습을 통해 종교 만큼이나 숭고한 인간적 고뇌의 과정을 유려하게 묘사합니다.

 

 

기리시탄 영주 고니시 유키나가의 봉토였던 아마쿠사 제도는 그리스도의 섬” 이라고 불였는데

도쿠가와 시절에도 탄압이 계속되니 1637년에는 시마바라 반도에서 아마쿠사 시로의

주도로 4만명 신도가 반란을 일으켜 4개월간 12만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산을 내려가는데 언덕에는 공동묘지가 즐비하니 일본은 흙으로 된 봉분을 쓰는게 아니라 돌로

된 가족묘지를 만든후 시신은 화장을 해서 뼛가루를 들고와 가족묘지 두껑을 연 후에 그 안에 넣습니다.

 

 

문득 동아일보 조유라 기자가 신문에 쓴  품을 잃은 아이들,  이제  국가가 품는다...

국내 입양 우선“  이란 기사가 떠오르는데..... 일본은 오십년 전 부터 일본 아이

들은 외로 입양하지 않고,  일본에서 키우고 있는데 이제야 일본을 따라 한다는?

 

 

복지부 “2029년엔 0명 될수 있게”, 불가피한 입양은 정부가 직접 협의내년부터 해외 입양이

단계적으로 중단된다. 6·25전쟁 직후 1953년 전쟁 고아 대책의 하나로

해외 입양이 시작된지 73년 만이다정부는 2029년까지 해외 입양을 완전 중단할 계획이다.

 

 

정부는 아동을 해외로 보내는 대신 국내 입양등 보호체계를 적용하고장애 아동등

불가피 하게 해외 입양이 필요한  아동이 있을때는 아동복지

기관이  아닌 정부가 직접 해외 당국관련 기관과 협의해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국은 1980년대 연간 8,000명이 넘는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으며 고아 수출국’ 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이스란 복지부 1차관은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점에서 2, 3

안에 해외 입양은 중단하려 한다” 며 국내에서 모든 아이가 성장할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책을 병행하며..... 2029년에는 해외 입양이 0명이 될수있도록 하겠다” 고 말했다.

 

 

1953년 시작된 해외 입양은 1955년 미국인 해리 홀트가 어린이 8명을 미국 가정에 보내면서 본격화

됐다보건복지부는 1958년부터 올해 11월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동은 16만 8608명이었다.

1980년대에만  6만 5329명의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고 한국은  고아 수출국’  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1950, 60년대 전쟁고아와 혼혈 아동을 중심으로 보내던 해외입양은 1980년대 이후 미혼모 아동으로 바뀌었다.

해외 입양을 주선하는 단체는 고아 수출로 돈벌이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일부 아동은 부모가

있어도 고아로 위장돼 해외로 입양됐으며입양 기관의 관리를 받지못해 불법체류자가 돼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국내 입양은 2010년 1,462, 2020년 260지난해 154건으로 감소세다최현선

세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든 아동이 입양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시설형 보호 보다는 가정 위탁 등 가정형 보호를 확대해야 한다” 고 말했다.

 

 

위탁 부모에게 학교 전입학은행계좌 개설사회보장급여 신청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부분에 법정대리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된다현재는

위탁부모에게 친권이 없어 위탁 아동이 병원 수술을 받을때 보호자로 결정할수 없다.

 

 

그런데 일본 보다 50년이나 늦으면서도 해외 입양을 완전히 금지하지 못한건

정상아가 아닌  "장애아를 입양할 한국인"  은 거의 없기 때문 입니다?

 

 

2012년 고아 입양국 세계 1위인 미국은 "일본계 마사하루 엘리스씨가 5명등

9,320명의 입양아를 받아들였는데고아 송출국은 대한민국이

수십년간 부동의 1위를 차지했으니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경은씨는 전세계 송출 고아  45만명 중에 40% 인 18만명이 한국 고아라는데, 이제는 한해 961명으로 6

로 내려갔습니다만.... 한국 인구가 세계에서 1% 도 안되는데 고아 수출은 무려 40% 를 독차지 했다니?

 

 

우리 정부는 고아 송출국 1위라는 오명을 벗고 나라 체면을 회복하기 위해 2013년 입양아

출생신고를 의무화 하고 해외 입양전 5개월간 국내입양을 먼저 시도하며

국내에서 실패해 외국으로 내보낼때도 보건복지부장관의 허락 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송출 고아의 70% 가 입양되는 미국의 경우  양부모는 수백만원의 수수료 를 내는지라

서류와 사진만 보고 쉽게 입양했으나, 2013년 부터는 한국 가정법원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는등 입양 전에 한국을 방문해야 하도록 강제하는데아이티나 에티오피아

등은 양부모가 사전에 2번을 미리 방문해야 하도록 하며 인도는 7주간 생활까지 요구합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과 2012년 2년 동안 국내에서 단 한건도 입양이 성사 되지 못한

선천적인 "장애아"  를 우선적으로 외국에 내보내는 쪽으로 노력하며....

정상아는 입양 통제를 강화하는등 눈물겨운 노력으로 저만큼 숫자를 낮춘 것이지요!

 

 

1953년 부터 시작된 고아 송출은 2007년까지 16만명이었고 2012년까지 17만명이라는데,

1970년대  46,000명 이던 송출 숫자는 1980년대 66,500, 1990년대 22,900

그리고 2000년대 19,400, 2010년대는 4,163명으로 숫자를 줄여왔는데..... 일본 처럼

완전히 금지하지 못하는 것은 선천적 유전병과 장애아는 국내입양 희망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입양아 송출국 1위는 중국으로 4,400명이지만 인구 비율로 보자면 중국 인구

는  14억명에 우린 5천만명 정도이니.... 그럼 한국 961명 이라는 숫자는

비율로  보자면,   우리나라가  중국 보다 아직도  오히려 6배에  달하는  것이지요?

 

 

일본계 미국인 마사하루 엘리스씨는 한국 아이 그것도 "장애인을 5명이나 입양

우리를 놀라게 하는데.... 일본에서 이민온 마사하루 씨는 아들 토미와 딸

션이 있는데도 부인 제닛씨와 함께 입양아를 키우는 보람된 일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고국인 일본에서 입양을 시도했지만 일본은 국제입양을 허용하지 않는지라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고 합니다마사하루씨가 처음부터 장애아를 원한건 아니고 남들처럼 건강한 아이 를

원했으나 한국에서 온 서류에 장애아 밖에 없었으니 빨리 입양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장애아 밖에 없다니 어쩔수 없이 받아 들였다는데,

6세 캐리(윤정순와 5세 크리스토퍼(윤성기남매로 두 아이는

선천적으로 뼈가 약해 쉽게 부러지는 유전병인 취약성 골절” 을 앓고 있었읍니다.

 

 

장애아이고 하니 한명만 입양할 생각이었지만  남매가 따로 입양되어  "헤어지는 것"  을 원치않았던

마사하루씨 부부는 함께 집으로 데려옵니다이후에도 1987년 서울 강남구에서 소아마비를 앓고

있던 장애아 조미혜(제이니양은 미국 포틀랜드의 저 마사하루씨 집에 입양되면서 살길을 찾습니다.

 

 

윤정순윤성기 형제에 이어 세번째로 입양한 이수정 양이 미국에서 수술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자다시 서울의 홀트 아동복지회에 연락해서는 33개월된 제이니양을 입양한 것이지요?

 

 

제이니양은 몇년전 11월 엄마와 함께 24년 만에 처음 찾은 서울에서 제일 먼저 한 것은

그의 친부모를 찾는 일이었지만.... 서류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외 에이미 프렌치씨는 입양에 대해 처음에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교회 모임에서 친구가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어서 그렇게 하라”  는  하늘의 목소리를 들은게 입양의  시초라고 합니다?

 

 

입양된 은수는 두 다리가 불구인채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양부모가 수술을 해주어 18개월후

서울의 암사 재활원장이 미국을 방문했을때 "아이가 걸어다니고 있는 기적"

을 목격할수 있었답니다!  은수의 양부모 에이미 프랜치씨는 두 아들과

딸이 있음에도 2명의 한국 장애아를 포함 3명의 장애아를 훌륭하게 키우고 있는 것이네요?

 

 

라배마 버밍업의 가드너 부부는 본인 자식 4명 외에 12명을 입양했고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의 짐 실콕과 앨리스 부부는 무려 35명을 입양해 잘 키워서 8명이나 분가를 시켰답니다.

 

 

엘리스씨는 8살때 영국 하층민 삶을 다룬 올리버라는 뮤지컬영화를 본후 "고아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

후에 뇌성마비자폐증발달장애 장애아 들을 입양해 키운 것이지요아이들이 장애아로 태어난 것은

아이들의 죄가 아니니 하나님이 자신에게 이런 "소명을 주신 것이라 여기고 순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2013년 법이 바뀌어 미국인 양부모가 한국에 와서 법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은 IR3 비자는 자동적

으로 시민권이 나오지만양부모가 한국에 오지않고 서류와 사진만 보고 입양한

IR4 비자는 18세 이전에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해주어야 하는데그러지

않으면 무국적자가 되니 현재 26,800명 으로 추정되는데.... 지금 미국에서 추방당하고 있습니다!

 

 

1979년 3살때 입양된 아담 크래서씨는 미국에 부인과 3명의 자녀까지 있는데도 2016년에

강제 추방되어 한국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해외 입양아

모임 회장  정 트래카씨는 한국의 보건 복지부가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으로

손을 놓고있을 것이 아니라 저 2만 7천에 가까운 무국적자 시민권 취득에 나서라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선거에서 표가 안되는 문제에 노력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우리나라에는

불교와 가톨릭 및 개신교도 신자가 전체 인구의 70% 를 넘는다는데,  기독교도가 백만명만

더 늘면 예수님의 사랑을  "입이 아닌 행동"  으로 행하는 사람이 나올까요?  아직도 장애아

는 외국 입양에만 매달린다니.... 정부도 한국에 참된 기독교인은 별로 없다는걸 아는 모양 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