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일본여행1

고치 마쓰리2 - 거리에서 "고치 마쓰리" 춤꾼 행열을 보다!

작성자바이칼3|작성시간26.06.21|조회수44 목록 댓글 0

 

고치 마쓰리2 - 거리에서 열정적인 "고치 마쓰리" 춤꾼 행열을 구경하다!

 

 

2025년 8월 10일 아와이케다 에키 阿波池田駅 (아파지전역에서 기차로 고치역에 도착하니 코치

요사코이 마쓰리 (よさこい)'  첫날인데..... MY 유 버스 MY 遊 バス 1일권(1000 

구입해 마키노 식물원을 구경하고는, 해변인 가쓰라하마 까지는 가지 못하고 고치 시내로 돌아옵니다.

 

 

버스는 산을 내려가 시가지로 접어들어 달리는 중에 전통 복장을 한 여인들을 뒤따라

마쓰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보이는지라 하리마야바시 터미널 정류소에

내려서는 도로를 건너 반대편 마쓰리 행열이 나아가는 옆 도로로 들어가 구경합니다.

 

 

오늘 우리 눈 앞에 고치현 마쓰리 행열에서 옛날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은 조금 전에 본 선두의

여인들을 제외하면  보이지 않고, 직장이나 마을 단위로 같은 복장을 맞춰 입기는 했는데.....

 

 

현대적인 복장이긴 하지만 마쓰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의욕이 넘치고 끼가 대단해서  힘든줄 모르고

큰 동작으로 구경꾼들을 휘어 잡으니 열기가 아주 뜨꺼운지라..... "신명이 난다" 말을 실감합니다.

 

 

코치 요사코이 마쓰리 (よさこい)' : 고치(高知의 '요사코이 마츠리는 고치시 상공회의소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불황을 극복하고자 기획했다는데음향기기를 실은 차를 선두로 나루코 (鳴子작물을 노리는 새를 쫓기

위한 농기구를 손에 쥔 무희들이  '요사코이부시(よさこい고치현의 민요)' 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행진합니다.

 

 

무희들이 각 연무장을 도는데요사코이 마츠리는 기본 룰만 지키면자신의 취향에 맞게 각색해서 즐길

 있으며의상도 전통적인 핫피 (法被와 기모노 부터 근대적인 것까지 종류도  풍부합니다.

180여개의 팀, 1만 5000명을 넘는 춤꾼 무희들이 보여 주는 활력 넘치는 퍼포먼스가 아주 볼만합니다.

 

 

요사코이 마츠리는 기본 룰만 지키면 각 팀의 개성대로 변행하고 창조해서 즐길수 있고,

의상도 전통적인 핫피 (法被와 기모노 부터 근대적인 것 까지

종류도 풍부한데  모두들 흥이 나서 열심이니 그 열기가 관중에게도 전해지는듯 합니다.

 

 

마쓰리를 보다가 마눌에게는 조금 전에 본 전통 복장 여인들을 찾아 보겠다고 말하고는 

앞 쪽으로 걸어가다가 사위와 함께 길거리에 가판대에서 파는 맥주를 한잔 하고

돌아오니 마쓰리의 열기가 어찌나 뜨거운지 마눌은 미처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무희들이 각 연무장을 도는데 매년 1만 5000명을 넘는 춤꾼 무희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볼만하니

나루코를 손에 든 무희들이 춤을 추며 거리를 행진하면.... 대개 50만명이 넘게 구경한다고 하는데,

그렇디고 이 자리에 그리 모인건 아니고 시내 도처 여러 곳에서 며칠 동안 이어지니 총계인 듯 합니다?

 

 

어제 2025년 8월 9일에 벌어진 '요사코이 마츠리 전야제에서는 전년도 요사코이 마츠리

의 수상 팀이  우승컵과 깃발을 반환한 후스테이지 위에서 춤을 선보였다는데.....

회장의 분위기가 크게 고조된 후 4000발의 불꽃이 기분을 더욱 고조시켜 주었디고 합니다.

 

 

이 도시는 '현존 12천수중 하나인 천수각을 갖고 있는 (1747년 건축고치성이 유명하며 또한 고치성

동쪽 히로메 시장에서는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수 있고남쪽 해안가의 가츠라하마 공원에는

해변가 백사장에 사카모토 료마의 동상가츠라하마 아쿠아리움사카모토 료마 기념관 등이 있습니다.

 

 

일본 진언종 불교도의 순례길인 시코쿠 오헨로도 고치현을 지나가며, 카미시에는 류가도 동굴,

호빵맨의 아버지 야나세 타카시 기념관이 있고 그리고 대형 잡화점 체인인

돈키호테는 일본 47개 도도부현 중 고치현에만 지점이 없었으나 2025년 1월에야 개장했습니다.

 

 

사투리로는 시코쿠 방언의 일종인 "도사벤" 을 사용하는데 외부와 교류가 쉽지 않았던 지리 탓인지

꽤나 어려운 편인데..... 다만 도사벤 사용 지역은 중부 및 동부이며 서부는 하타벤을 사용

하는데, 그럼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중앙과는 말이 많이 다른 듯 합니다?

 

 

간식으로는 고구마 스틱인 켄삐가 유명하다는데 옛날에는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막대과자였다고 하며

켄삐는 '개고기 껍질이란 말로, 임진왜란때 죠소카베가 조선 사람들을 많이 납치해와서 조선인들이

모여살던 마을에서 개고기 대신 밀가루 반죽을 부쳐먹고 이름을 켄삐 (犬皮라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조선인들이 들여온 음식은 그 외에도 도토리묵과 조선식 두부가 있다고 하는데, 고치현은 과거 일본에서

유일하게 도토리묵을 만들어 먹는 곳이었으며, 도토리 두부 라는 뜻의 카시도후 (カシ豆腐)  혹은

카시키리도후 (かしきり豆腐라 부르는데 한국처럼 간장을 치는 게 아닌 유자 미소에 곁들여 먹습니다.

 

 

두부도 단단한 조선식 두부가 전해져 오는데, 임진왜란 때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끌고온 박호인

(朴好仁과 그의 아들 아키츠키 타네노부 등의 조선인 포로들이 고치성 옆의

도진마치 (唐人町에서 두부를 만들어왔으며 끌려온 조선인 포로 후손이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모토치카의 가신 오타니 요쥬로 (小谷与十郎가 끌고온 것인데,  그녀를 마음에 들어해 자기

아들과 혼인하길 권했으나 조선국녀는  '나는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몸'  이라

거부했고  결국 독신으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일본에서 마치고

말았는데 현재 남아있는 그녀 비문은 요쥬로의 증손자가 세운 것이며 한국어 팜플렛이 있답니다!

 

 

여기 고치는 술의 고장으로 유명한데, 위의 조선인 후손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지에서 일본

에서는 전혀 하지 않는 헨빠이 (返杯) 라고 하는 한국식 술잔 돌리기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었던 탓에......  코로나 19 가 터지자 자제해 달라는 문구가 식당에 붙었다고 합니다.

 

 

"고치 사람은 길에서 1만엔을 주우면 2만엔 어치 술을 마시러 간다" ....  라고 할 정도?

이게  단순히  통념이 아니라 실제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2017년 일본 현의

통계에 의하면 1인당 111.6 리터를 마시는 도쿄에 이은 95.5 리터로 술소비량 2위랍니다.

 

 

하지만 경제 문화적 도쿄의 위상을 고려하면 실제 소비량 1위는 고치라 봐도 될 것인데 지역의

사케 주조장에서 만드는 사케는 사카모토 료마의 이름을 딴 것도 여럿 있으며.... 민요로

요사코이부시 (よさこい가 전해지며,  요사코이 마츠리에서 추는 요사코이 춤도 유명합니다.

 

 

고치현에서만큼은 일본 공산당의 기반이 있는 편인데, 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고치현 제1

에서 출마한 야마하라 겐지로 의원이 소선거구제 하에서 지역구 당선된 최초의 공산당 의원

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정도며 단순 득표율만 따지면 공산당의 근거지인 오키나와현과 교토부 다음갑니다.

 

 

그러나 공산당 의원이 꾸준히 석패로 당선되는 교토오사카 등의 지역과 달리, 2000년대 이후 공산당의 득표율

은  10% 대 후반에 그치고 있는데, 1996년 총선에서 당선된 야마하라 의원도자유민주당이 후보 공천을

포기하고비공산당 계열 후보의 표심이 민주당과 신진당으로 갈라져 28.6% 의 득표율로 겨우 당선된 경우랍니다.

 

 

고치현은 일본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처음으로 인정한 곳이란느데....여성참정권에 관한 법안이

없다 보니 이러한  헛점을 노려서 고치현 일부 시정촌 일대에 1880년 인정하였지만

4년 만에 중앙정부가 여성 참정권에 관한 제한 법안을 제정하면서 짧은 기간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시코쿠 최대 길이의 시만토강 (四万十川은 일본 3대청류 (清流중에 하나라고 불리우며,

시코쿠 (四国에서 가장 긴 196km의 강인데.....맑은 수질과 47개의 잠수교를

가졌으며 손대지 않은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니 1,2인용 카누를 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지역이지만  한국 유학생이 들어가는데  문턱이 낮은  메이토쿠기주쿠 고등학교

가 있는데....그나마 비교적 조기 유학이 가능한 다른 학교에 비해 학비도 저렴하고 유학생은

유학생들끼리 반을 편성하고 사감의 통제를 받는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되어있어 한국 유학생이 많이 갑니다.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로 겨울 훈련지니 김성근 감독의 야구팀들이 이곳으로 겨울 전지훈련을 왔는데

고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1996년 오릭스와 2003년 다이에 호크스가

일본시리즈 우승을 하던 당시 전지훈련을 했던 곳으로 '우승의 기운이 가득한 곳으로 통한다고 합니다.

 

 

재일교포 출신 김성근 감독이 2006년 말 SK 와이번스의 감독에 임명된 뒤로 경질된 시즌인 2011년 까지 매년

전지훈련과 마무리 훈련을 이곳에서 했는데, 일본 방송 NHK 에서도 재일교포 야구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고치에서 전지훈련하던 김성근 감독과 SK 선수들의 분량을 많이 할애하여 촬영해 방영한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면서 고치와의 인연이 끊기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한국 최초의 독립 야구 구단 고양 원더스의 사령탑을 거쳐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프로에 복귀한 현재 까지 고치로 전지 훈련을 오가고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고치시 역시 매번 선수단을 이끌고 와서 돈을 써는 김성근 감독과 특별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듯 지역단체장이 환영행사와 피로연을 열어주기도 하고 고양 원더스

소속 으로 훈련을 찾았을 때는 고치시장과 지역유지들이 성금을 모아 전달하는등

고치시 입장에서도 협조를 많이 해주니... 훈련을 오기 전에 구장을 보수까지 해 줄 정도랍니다.

 

 

그러나 한화 이글스가 2016년 FA 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해 우승 후보까지 부상했음에도 가을야구

진출에  9년 연속으로 실패하자 고치에서 훈련중 선수들의 부상으로 시즌 초 선수 구상이

꼬인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김성근이 2017년 5월 감독에서 물러나며 인연도 끝났습니다.

 

 

2010년대 이후 한국 프로 야구단은 평균  10도나 더 따뜻한  오키나와나 일본 구단과 연습 경기가

원활한  미야자키 혹은 대만에 가는데..... 고치현은 시골이라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지자체가 전폭적인 지원을 보장하기에 비시즌기간 일부 선수들은 합동 자주훈련을 하러 오기도 합니다.

 

 

2022년 NPB 스프링 캠프 요약을 보면.... 한신 타이거즈 2군과 세이부 라이온즈 2군이 고치에서 전지훈련을

갖었으며, 고치도 1~2월 날씨로 치면 한국에 비하면 정오가 되면 10도로 충분히 따뜻한 편인 데다가 시차

가 없고동남아 보다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이 크며 특히 일본 프로팀은 기차로 갈수 있어서 이점이 더 큽니다.

 

 

한신 타이거스가 매년 고치의 아키 시영구장에서 전지훈련을 갖고있는데 , 10도로 충분히 겨울을

맞이하는 일본 본토 중에 따뜻한 편이지만 최근 기후의 변화로 인해 10도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추운 경우도 있으니, 대표적으로 2016년 한화가 이 상황을 맞이해 초반에 감기 등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히로스에 료코는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요코하마에서 성장했으며 고치현은 2025년 연초에 도쿠시마현

과  함께 난카이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으로 지목되는 곳이니, 지진 발발시  쓰나미가 덮치는데

걸리는 시간이 10분이 채 안되는 것으로 예상되며 파도도 최고 20m 이상이고  2018년 7

태풍 쁘라삐룬의 영향으로 고치현 우마지촌에만 3일 동안 1,161mm 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습니다.

 

 

애니메이션 용과 주근깨 공주바다가 들린다의 주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며, 대한민국 교민은 2018년 기준

517명이 고치현에 거주하고 있으며....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팔때 커피와 빵을 내놓는 것과는 다르게,

국물요리 (된장국우동 등가 하나씩은 꼭 붙으며 이곳 출신 노나카 샤나는 한국 걸그룹 Lapillus 멤버입니다.

 

 

고치현이 시코쿠 4개현 중에 인구는 가장 적으면서도 역사적대중문화적인

존재감으로  다른 3개 현들과 급이 다른 이유는.... 바로 사카모토 료마

(坂本龍馬라는 인물과 막부 말기 도사번의 정치 참여라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타가키 다이스케 (板垣退助는 일본 국회의 아버지라 불리는 메이지 시대 정치가로 막부말인 

1868년 보신전쟁 발발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토막과 좌막파 사이 자세가 불분명했던

도사번 내 존황양이파의 리더였으며전쟁 당시 도사번을 이끈 토막혁명의 주역 중 하나였습니다.

 

 

조슈번과 사쓰마번에 히젠번과  여기 도사번 존왕양이파 5천명이  교토 동남쪽에서  도쿠가와 막부군

1만 5천을 쳐부순 것을 시작으로 홋카이도 하코다테 함락까지 1년간에 걸친 보신전쟁 승리로 이룬

메이지유신 시대에 고치현 이타가키는 자유 민권 운동 정치가로 대두했으니, 1890년 일본 사상 첫

선거에서 제1당이 된 자유당(일본) 의 당수로 메이지 시대 입헌 정치의 기틀 마련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