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5 - 홍도역에 명월산해간 불야성을 구경하면서 칭다오의 역사를 생각하다!
2025년 9월 6일 산둥성의 칭다오 Qingdao 공항(靑岛 胶东机场) 에 내려 지하철로 5.4 광장역
五四廣場站 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후 칭다오 맥주박물관 ( Qingdao
bear museum) 을 구경하고는 택시로 중산로 북쪽 독일 교회인 미카엘 성당에 내려 구경합니다.
교회를 구경하고 걸어 내려와 차 없는 거리 중산로를 구경하는데..... 중산로 (中山路) 는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번화가로 독일식 건축물과 쇼핑에 해산물등 맛집 탐방을 즐길수 있는 거리니 독일
식민지시대 건축물은 풍취가 있어 보이며 또한 레트로 감성이 가득한 골목을 걷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잔차오 棧橋 (잔교) 인데 청나라 광서(1891년) 연간에 세운 것으로
2층 전망대 후이란거 回瀾閣 (회란각) 에 올라 바라 보는 칭다오 시내 풍경이
아름답다고 하며 해 질 무렵 방문하면 환상적인 노을과 함께 인생 샷을 남길 수 있답니다.
다시 중산로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고는 식당 종업원에게 가까운 지하철역인 중산로역을
묻는데..... “디테 쭝산루짠 짜이날?” 이라고 물어서 직원이 가리켜 주는대로 걸으니
중산로역이 나올줄 알았더니 기차역인 칭다오역이 보이고 그 앞에 칭다오 지하철역 입니다.
칭다오역은 식민지 제국인 독일인들이 건설한 것이니 당연히 당대 독일의 바로크식 어느 역사를 본따
지었을 것으로 보는데.... 일본도 유럽에서 서구 문명을 도입하면서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역을
본따 도툐역을 지었고 그후 도쿄역을 본따 서울에 경성역 (서울역 구 역사) 를 지었던 것을 떠올립니다.
그러고는 이제 명월산해간 불야성 ( 明月山海間 不夜城) 을 보기 위해 지하철로 내려가 매표 기계에서
8호선을 클릭해 나온 노선도에서 홍도 과기관 역을 클릭하니 5위안이 나오는지라 2명을 클릭해
10위안인데 마침 현금 투입구에 녹색불이 들어온지라 10위안 지폐를 넣으니 지하철 표 2장이 나옵니다.
1호선을 타고 달려서 칭다오북역에 내려 다시 8호선으로 환승해서는 4정거장인 홍도과기관 (红岛科技馆)
역에 가까워질 무렵 지하철 안의 승객들에게 명월산해간 불야성( 明月山海間 不夜城) 에 가기
위해 여기서 내리는게 맞느냐고 물으니 모두들 모른다고 말하며 처녀 2명은 휴대폰으로 지도를 클릭합니다.
그러는중 지하철이 멈춘지라 사위가 먼저 내리고 내가 따라 내리니 역에서 내린 어느 여자분이 아니라며
다시 올라타라고 말하는데.... 망설이다가 나는 급히 올라탔는데 사위가 타기 전에 문이 닫히는지라
급히 손을 넣었더니.... 우리나라 같으면 덜컹! 하고 문이 다시 열리는게 보통이니 그때 올라 타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 중국의 지하철 8호선은 무지막지한 힘으로 거세게 닫히니 이러다가는
손목이 잘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놀라서 급히 손을 빼니 문은 거세게
닫히는데..... 손목이 시큰거리는게 까닭했으면 큰 사고가 날뻔 했으니 천만다행 입니다.
그러자 조금 전에 휴대폰에서 내릴 역을 검색하던 처녀가 여기서 4정거장을 더 가서 훙도짠(홍도역) 에
내리면 된다고 말하며 다른 청년은 벽에 게시된 지하철이 움직이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진행도 그림에서 내릴 역을 손가락으로 가르쳐 주는지라..... 감사 인사를 하고는 다음 역에서 내립니다.
그러고는 바로 반대편으로 가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중국에서는 많은 역이 타는 곳과 반대편
타는곳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지라 역 밖으로 나갔다가 되돌아올 필요가 없으니 좋은데....
시내 지하철은 배차 간격이 2~3분인데 비해 교외선인 8호선은 9~10분 간격이라 오래 기다립니다.
서로 말은 못했지만 사위는 분명 내린 역에서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 전화를 하니 휴대폰이 꺼져 있고 메시지를 말하랍니다?
사위는 국내에서 하루에 4천원 정도 하는 아주 싼 유심칩을 구입해 여기서
갈아끼운지라 새 휴대폰은 번호가 없는 것이고 옛 휴대폰은 유심을
뺐으니 꺼진 것인데..... 나중에 만나니 통화는 안되지만 카톡은 된다나요?
되돌아 오는 지하철을 타고 조금 전에 내린 홍도과기관 (红岛科技馆) 역에 내리니 사위가 여기로 건너와
있는데 이 역은 타는 곳과 반대편 타는 곳이 마주 보지 않으니 계단 으로 올라가서는 다시 반대편으로
내려 가야 하는데.... 이윽고 도착한 지하철을 타고 4정거장을 가서 홍도화차참 (红岛火车站) 에 내립니다.
어느분 여행기에 명월산해간 불야성( 明月山海間 不夜城) 은 8호선을 타고 “홍도역” 에 내린다고 한글로 적혀
있는지라 노선도를 살피다가 홍도 과기관역에 잘못 내린 것인데... 요즘 한국인들의 글은 100% 한글 뿐이라?
만약에 저 분 여행기에 한자를 넣어 홍도 화차참 (红岛火车站) 이라고 적어 주었으면 이런 잘못은 없었을
것이지만, 하지만 이제는 모두들 편하게 100% 한글로만 쓰니...... 이런 기대는 소용 없는가 합니다.
그런데 우린 청도역에서 5위안에 표를 끊었는데 원래 생각한 역 보다 4정거장을 더 왔으니 틀림없이
5원 보다 더 나올것이라 여겨 나가지 않고 정산기 기계에 표를 올리니 6위안이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 정산기에는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넣는 구멍이 없으니 휴대폰에서 알리페이 앱으로 카드 마다 1위안
씩을 더 결제해야 하는지라 알리페이앱에서 “스캔” 을 누르니 어무 반응이 없어 난감한데.... 그때 사위가
“결제” 버튼을 누르니 비밀번호를 넣어라는 메시지가 뜨는지라 누르고는 그 표를 기계에 넣고 무사히 나옵니다.
현지 발음으로 “홍도훠처짠” 에 내려 밖으로 나와서는 주변을 살펴보니 여긴 허허 벌판인데 멀리 불빛이
보이는지라 도로를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명월산해간 불야성( 明月山海間 不夜城) 가는 버스나
아님 택시 타는 곳이 있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가로젓는게 마치 “돈이 썩어 나가니? ” 이런 표정 입니다?
7~8분을 걸어서 입구에 도착해 노점 포장 마차에서 국수를 볶은 것을 15위안에 사서 사위와
갈라먹고는 이제 행사장으로 들어가는데.... 여긴 거리 공연이 아주 특이하고 유명합니다;
그런데 각종 공연은 시간대가 따로 있으니.... 바깥만 보고 오늘은 그냥 가수가 노래
부르는 정도이고 주 관람은 1인당 50위안씩 하는 서커스 공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안쪽에 2층 집들이 성 처럼 둘러싼 안쪽으로 들어가면 본 무대 입니다.
칭다오 青岛 (청도) 는 19세기 말 내주부 교주 즉묵현의 평범한 어촌 청도진으로, 만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청도(샤오칭다오) 로 부터 이름을 따 왔는데.... 자오저우만은
항구 만들기 좋은 위치로 만 안쪽인 교주(자오저우시), 즉묵(지모구) 등이 번성 했습니다.
수나라 때부터 핑두시 쪽에 있었던 즉묵현과 불기현이 합쳐지고 치소가 지모구청에 설치
되면서 칭다오만 일대도 즉묵에 속하게 되었으니..... 부산과 동래의 경우와
비슷하게 칭다오가 넘사벽으로 커졌고 즉묵은 칭다오의 현급 도시로 명맥을 유지합니다.
19세기말 청도진이 위치한 자오저우만 (胶州湾, 교주만) 어귀가 독일 제국에게 할양
되어 해군 기지키아우초우가 되었으며...... 상하이와 마찬가지로 100년간
서양 열강의 식민지로 조계지가 설치되었으니 칭다오는 키아우초우의 중심지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중 독일이 신경쓰지 못하는 틈에 연합군에 군수물자를 팔며 이득을 보던
일본 제국이 연합군에 가담, 제국군을 진군시켜 이곳을 점령했으며....
1927년 1차 산동파병과 1928년 2차 산동파병 등 일제의 중국 침략 기지로 활용됩니다.
그후 국민정부 아래 12개 직할시 중 하나로 지정되어서 지역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니. 국민당
정부 시절에 지정된 직할시였지만 산둥성내 성도인 지난시를 능가하는 경제력과
인구를 가지고 전국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기에 직할시로 승급되길 원하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이후 중일전쟁에 다시 일본에게 점령되었다가 일제 패망 이후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며
국공내전 때는 화북지역 국민당 최후의 보루로 버티다가 1949년 6월 2일
공산당 홍군에 점령되었고,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 시기 연안개방도시로 선택됩니다.
인구는 1,026 만명에 달하니 한국인과 조선족의 인구수도 꽤 되는 편이며 전체 인구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의 웬만한 중소도시 인구 수준은 되는데....
면적은 약 11,026㎢ 이고 칭다오에서 한국 사람이 주로 많이 사는 지역은 성양구입니다.
주요 특산물은 칭따오 맥주가 있으며, 중국내에서 유명한 와인 산지로도 꼽히는데, 라오산 (崂山) 지역에
녹차 및 광천수도 생산되며 해안 도시인 덕택에 가리비 등 각종 싱싱한 해산물 요리로도 유명
했지만, 남획으로 고기가 잘 안잡히게 되었고, 칭다오 앞바다 오염도 심해서 현재는 대다수가 양식입니다.
대한민국과 가까우니 대한민국 기업이 1990년대 초반부터 많이 진출해 있고 코리아타운 도 있으며, 1994년
대한민국 영사관도 설치되어 있다. 웨이하이가 한국에서 더 가깝지만, 칭다오가 더 큰 도시고 관광지도
많아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보이니 대한민국과 가장 가까운 대도시로 일본 후쿠오카와 비슷한 포지션 입니다.
우리나라 한인들이 많이 살고있는 곳은 칭다오 시내가 아닌, 구 공항인 칭다오 류팅 국제
공항과 가까운 청양구(城阳区) 로 칭다오에서 가장 많고 중국에서
두번째로 인원이 많은 한국인 학교인 칭다오 청운 한국학교도 청양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교민 사회 중심지는 5.4광장에서 칭다오 대학까지 스난구 신시가지, 맥주성(啤酒城) 이 있는 라오산구였는데
2000년을 전후로 일본 AEON계 백화점 JUSCO 와 까르푸가 시남구 신시가지에 들어오면서 칭다오
중심지가 되고 당시 소비력이 현지인 보다 현저히 높던 교민들은 교외지역에 위치한 이곳에 몰려 살게됩니다.
낙후되었던 칭다오에서 교민들의 구매력은 강해서 고급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한국인 특별 분양을 할 정도였으며
2000년대 호황기가 지나고 인건비가 상승해 교민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파산 혹은 야반
도주를 하니.... 교민사회가 많이 흉흉해지고 현지인들이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칭다오 시가지 지역의 개발한계로 2010년 전후로 칭다오 류팅 국제공항 청양구(城阳区)의 도시계획이
잡히고 개발이 시작되었으니 청양구는 공항에 인접하고 저렴한 토지사용료와 인건비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소규모 공장들이 많던 지역이어서 한국인 및 조선족 거주 인구가 제법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살기에 기반 시설도 나쁘지 않아 시내에 살던 많은 한국인들이 청양구로 이사 를 오게 되는데,
교외 지역 공장과도 가까워 가족 이주 교민 같은 경우 금상첨화이니 시가지의
교민이 급격히 줄어들자 영사관도 원래 있던 라오산구 (崂山区) 에서 청양구로 2016년에 이전합니다.
칭다오의 바닷가를 낀 시가지에 정주하는 한국인은 세자리 수 정도로 줄어 시내에서는 한국어
듣긴 좀 힘든편이나 그래도 잘 찾아 보면 한인들이나 조선족들이 운영하고 있는
점포들을 적잖이 찾아볼 수 있기는 하며.... 다롄, 옌타이와 비슷하게 단기 관광지로 인기입니다.
청양구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조선족이 하는 식당을 쉽게
볼수 있으며 조선족 자치구에 온 느낌도 있는데..... 구 공항인 칭다오 류팅 국제
공항의 포화로 신 공항이 건설되었고 대구광역시와 자매결연, 인천광역시와 우호결연 입니다.
그러고는 걸어나와 다시 홍도 화차참 (红岛火车站) 에 가서는 티켓 발매기에서
휴대폰 알리페이 앱을 켜서 스캔을 눌러 표 2장을 사서 지하철 8호선을
타고는 칭다오북역에 내려..... 반대편에서 3호선에 올라 5.4 광장역에 내립니다.
이번에는 북쪽 B1 출구로 제대로 찾아 나와 걸어서 南区 闽江路 5号 호텔 근처 일본계 슈퍼인
세븐 일레븐 에서 맥주를 구입하여 칭다오 푸신 호텔 Fuxin Hotel 青岛 府新大厦 로
돌아와서는 마시고 잠이 드는데...... 내일은 일찍 일어나 웨이하이(위해) 에 다녀올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