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저우 1 - 푸저우에서 표를 끊어 기차로 저장성 원저우에 도착해 호텔을 찾다!
2025년 3월 13일 푸젠성(복건성) 푸저우역 광장에 자리한 헌팅 호텔 汉庭酒店 (福州火车站
南广场店) 에서 일어나 빵과 커피로 아침을 떼우는데..... 엊그제 보니 원래 아침은 돈을
내야 하기로 아침 식사를 부탁하니 이틀치 식권 4장을 주기에 돈이 아까워 2장은 반환했습니다.
그러면서 가격이 얼마냐고 물으니 리셉션의 여직원은 "무료" 라고 말해 염장을 지릅니다?
아니 돈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요? 그렇다고 방금 반환한 식권을 다시 달라고 말하자니
낯이 뜨거운지라, 오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멀쩡한 식당을 두고 빵으로 아침을 떼운다는....
지금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 없는데.... 그러고는 배낭을 메고 내려와 호텔에 체크아웃을 하고 6~
7분 거리에 푸저우역으로 가서는 지하로 내려가 배낭을 엑스레이 기게에 통과 시킨후
65세 이상은 공짜니 객복중심의 직원에게 여권을 보이니, 수동으로 문을 열어주어 들어갑니다.
낮에 지하철은 자리가 많아 늘 앉아서 갔었는데, 오늘은 마침 아침 출근시간 때문에 지하철은
입추의 여지가 없어 복자한데..... 그러고는 시가지를 벗어나니 다음 역에서 많은
사람이 내렸기로 앉아가는데, 푸저우역에서 16정거장인 푸저우남역은 한시간 가량 걸립니다.
푸저우난역(복주남역) 은 교외에 엄청 크게 지어진 역인데 역 건물로 들어가 배낭을 엑스레이 기계에 통과시킨후
오른쪽으로 한참 걸어서 티켓 오피스 Ticket Office 인 서우피오처 售票处 Shoupiaochu 로 찾아 갑니다.
엣날에는 중국의 기차역에서 표를 사자면 엄청난 인파로 줄이 10개도 넘고 줄 서 있으면 새치기
를 하려는 사람들을 온몸으로 저지하고는 했으니...... 표를 사는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하이역 근처 호텔에서는 수수료를 받고 대신 기차표를 사 주는 곳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들 자기 휴대폰으로 기차앱에 접속해서 바로 예매를 하니..... 기차역에서
티켓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은지라 널널하니 이제 기차표 사는 일은 아주 수월해 졌습니다.
푸저우난역에서 10시 24분에 출발하는 D 3166 기차는 2등석이 21,900원
이고 1등석은 35,000인데 원저우 남역에서는 1시간에 2대 정도 있습니다.
휴대폰에 트립닷컴 trip.com 앱을 다운로드 받았으니 저 앱을 열어서 기차시간표를 확인하고는
한국에서 여행계획서를 작성하면서 미리 종이에 인쇄해온 쪽지와 여권 2장을 창구로 들이밉니다.
福州南 ⇒ 温州南 3月 13日 高速动车 D 3166
10 时 24分 出发 一等 2人, 沒有 二等
그런데 지금 시간이 9시 이니.... 전광판에 빠른 시간대가 있는지라 저 종이를 거두어 들이고는 그냥
“원저우 난, 양런!” 이라고 말하니 자동으로 2등표로 끊어 주는데..... 1인당 109元 입니다.
예정 시간보다 35분이 빠른 09시 47분 남경남역으로 가는 D3142 티켓을 받고 1층 대기실로 갑니다.
전광판에는 어쩐일인지 우리 기차 번호가 뜨지 않고 몇 번 지나가더니 그때서야 비로소 표시가 뜨는데 좀
이상합니다? 옆 승객에게 원저우 남역 으로 가는 D3142 기차표를 보이고 물으니 2층으로 가라는데,
2층에 올라가니 전광판에 우리 기차가 떠 있으니 대기실이 다른지라 1층에서는 자주 뜨지 않았던 것일까요?
중국의 기차 승차는 여러군데 개찰구 중에서 전광판을 보고 해당 개찰구를 찾아 가야
하며 보통 기차 출발 15분 전에 개찰을 시작해서 5분 전에 문을 닫다 버리는데,
4~ 5개 줄을 서서 나갈 때에는 '기차표' 가 아니라 "신분증" 을 기계에 스캔하고 나갑니다.
우리 같은 외국인은 중국인 신분증이 없으니 일반 줄로는 나갈수가 없고 주로 가장 오른쪽에 차장이 서
있으니 거기로 가서 여권을 보아면 기계에 스캔한 다음에 수동으로 문을 열어주니 개찰을 해서 조금
전에 전광판에 떠 있던 그 플랫폼으로 찾아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가니 그냥 따라가면 됩니다.
그 다음 티켓에 적힌 해당 차량에 타야 하는데 플랫폼으로 나갈 때 왼쪽과 오른쪽 두 군데로 올라가는데 그 앞
모니터에 보면 예로 1~7번 차량은 왼쪽, 8~16번 차량은 오른쪽이라는 표시가 뜨니 그걸 보고 올라갑니다.
승객들이 일단 플랫폼으로 가면 발 아래에 차량 번호 표시가 보이는데..... 보통은 기차가 최소
3종류는 되니 기차 객차 숫자 길이가 다른지라 차량 위치 번호가 다른데 조금전에
대기실 전광판에 황색, 녹색, 파랑색 표시가 적혀 있었으니, 그걸 기억해 색깔대로 가서 섭니다.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플랫폼에 대기하고 있는 차장에게 티켓을 보여 주면 해당 자리를
알려 주는데..... 그래서 해당 차량에 탄후 자리에 앉아 있으면 차장이 오면
기차표나 혹은 인터넷 예매시는 휴대폰에서 보여주는데 3분지 2는 검사를 하지 않습니다.
기차는 근 2시간 가량을 남지나해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북쪽으로 달리는데..... 그러니까
푸젠성(복건성) 에서 저장성 (절강성) 으로 넘어오는데, 그 경계를 알수는 없습니다.
기차는 바닷가에 끝없이 이아지는 철길을 달리는데 밖을 보니 옆 길은 다리라기 보다는 바다 위에 교각을
놓아 건설한 도로가 얼나마 긴지 가도가도 끝이 없으니 ..... 현대 토목공학의 발달은 놀랍습니다?
드디어 원저우 남짠 (温州南站 온주남참, 온주남역) 에 도착해서는 차장에게 우리 호텔이
어딘지 물으니..... 모른다고 할줄 알았더니 바로 가르켜 주는게 그럼 큰 호텔인가 봅니다?
칭원, 윈저우 호텔 짜이날? 請問, 温州君廷酒店公寓(温州南站店 : 寧波路 3009 號, 瓯海区, 温州)在哪儿
차장이 가르쳐 주는대로 역 안에서 게속 걸으니 밖으로 나가는 통로가 보이고 마치 구름 다리 같은 도로로
올라서니 저 멀리 왼쪽에 엄청 큰 여러동의 건물이 보이는데..... 그럼 저리도 거대한 큰 건물이 우리 호텔 일러나?
온난한 기후의 저장성 원저우시는 북쪽으로는 강이 흐르고, 마을 전체를 덮듯이 수로와
강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원저우는 항저우나 닝보 등에서도 가까워 접근성이
아주 양호한 편인데.... 관광을 한다면 주변 마을과 함께 효율적으로 돌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원저우시는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은지라 맨얼굴 그대로의 깊은 중국 생활상을 경험할수 있을
것이며 예로부터 상재가 뛰어나 중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원저우인..... 중국의 유대인 으로 까지 불리는 이들의 고향을 관광하는 것은 체험이 될 것 같습니다.
원저우 상인 (温州商) 의 명성이 이룩된 것은 송대의 일이다. 송대 당시 산업으로는 무역항에 걸맞게
조선업이 있었으며, 그 밖에 칠기 제조 및 신발 제조가 특히 유명했다. 송대 유학의 한 갈래
이자 절강유학 (절동학파) 의 하나인 영가학파 (永嘉学派) 가 이 지역에서 발달하였다.
지역의 특색에 따라 실사구시를 추구하고 상업을 농업에 비해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이 특징이다.
그 밖에는 육조 시대 시인으로 사영운 (谢灵运 ; 강락(康乐)) 이 유명하다. 원·명·청대에는 비교적 쇠락하였
으나 영국 외교관이 피살된 마가리 사건 (Margary Affair) 을 계기로 영국은 청나라에 추가적인
개항을 요구했으니 1876년 옌타이조약 (煙台条约) 이 체결되는데, 이때 원저우가 개항장중 하나로 포함된다.
개항 이후 원저우는 국제적인 무역항으로서 다시금 크게 도약하여, 청말·민국 시기 상대적
번영을 구가한다. 영국을 중심으로 서구 열강의 상사 (商社) 가 진출하고
차, 목재, 백반 등 원재료 및 우산, 실크, 약재 등 지역 특산물을 수출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특히 제2차 중일전쟁 시기에는 바닷가 해안의 항구이면서도 일본군에 끝까지 점령되지 않으면서
중국의 거의 유일한 무역항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마오쩌둥 치하에서
국제 무역과 상업이 탄압 받으며 몰락하였다가 개혁개방을 거쳐 다시 경제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총 생산의 55.6% 가 3차 산업, 41%가 2차 산업으로 중국의 서비스업 및 공업 중심의 도시다.
3차산업의 경우, 투자 산업과 무역업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투자
산업의 경우 첨단산업 투자가 투자산업의 30%를 차지하여 가장 거대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중국의 여타 대도시들이 다 그렇듯 부동산 산업도 만만찮게 거대하며, 이 부동산의
상당수가 단순 주거지 개발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의외로 관광업이 꽤
활성화된 도시인데, 2018년 원저우를 방문한 관광객 수가 무려 1억 1917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2차 산업의 경우, 중국 동남권 해안도시가 그렇듯 철강 산업이나 경공업은 사장세이나 반면에
첨단산업 및 장비 제조업이 크게 상승세에 있다. 현재 원저우의
첨단산업, 장비제조업의의 부가가치는 2018년 기준 각각 10.9%, 11.5%가 성장하였다고 한다.
1차 산업의 경우, 대도시인 원저우의 특성 상 딱히 성장을 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으나,
주로 원예 및 과수, 채소를 중심으로 재배된다고 한다. 반면에 쌀이나 밀 등의
곡류 재배는 앞서서 설명한 작물과 비교하면 크게 재배되고 있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은 참 힘들게 호텔을 찾았는데.... 이준식 성균관대 교수가 동아일보
이준식의 한시 한수 백발 앞에서 묻다 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어제 홍안이었던 얼굴이 늙은이가 되고, 순식간에 댕기 머리가 백발로 변했구나.
일평생 겪은 마음 상한 일 그 얼마이던가. 불문(佛門)에 귀의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시름을 달래랴.
(宿昔朱顔成暮齒, 須臾白髮變垂髫. 一生幾許傷心事, 不向空門何處銷.)
― ‘백발을 탄식하다 ( 탄백발 · 嘆白髮)’ 왕유 (王維 · 701∼ 761 )
어제까지 붉던 얼굴이 순식간에 백발로 변해버린다. 시는 그 허망한 변화를 단도직입적으로
찌른다. ‘일평생 겪은 마음 상한 일 그 얼마이던가. 불문에 귀의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시름을 달래랴.’ 여기에 젊음의 상실과 삶의 번뇌, 그리고 해탈에 대한 갈망이 농축돼 있다.
단순한 종교적 귀의가 아닌 스스로의 내면을 직시하려는 시인의 결연한 다짐이 드러난다. 왕유의
생애를 떠올리면 이 시는 더 선명해진다. 스물한 살에 장원 급제하며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권력 다툼 속에서 좌천을 거듭했고, 안사의 난 때는 반군에게 억류돼 굴욕을 겪었다.
서른 무렵 아내를 잃고 독신으로 지내야 했던 개인적 고독 또한 그의 어깨를 눌렀다. 외부의
풍랑과 내면의 상흔이 겹겹이 쌓였으니 불문을 향한 눈길은 어쩌면 필연이었을 것이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잔혹하다. 젊음은 사라지고 흰머리는 늘어나며 마음을 흔드는 사건들은
끝없이 이어진다. 왕유가 불문에서 찾으려 했던 위안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누군가는 종교에서, 누군가는 예술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일상의 작은
평온에서 해탈의 순간을 만난다. ‘번뇌를 직시하되 각자의
방식으로 해탈을 찾아라.’ 이 시가 커다란 울림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