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7주일설교 요한복음14:4-14
본문: 요한복음14:4-14
제목: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오늘은 요한복음14:4-14의 말씀을 가지고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우리 율리교회 성도님들은
믿은 지 몇 년 안 되는 분도 있지만
믿은 지 대부분은 몇십 년씩 되거나
모태 신앙을 가졌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직분을 가지고
봉사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성경을 읽었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많은 예배와 봉사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어렵고 힘든 세상 속에서
말씀 안에 잘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막상 인생이라는 폭풍 앞에서
말씀이 그들을 인도하지 못하고
불안과 염려 속에서 방황하는 분들을 봅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오래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 많은 경험과 본 것이 있었는데
어찌 그렇게 행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교회만의 문제인가요?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와 똑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었습니다.
빌립은 누구였습니까?
그는 예수를 만나자 마자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친구 나다나엘에게 전도하며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며 메시아를 증언했던 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은 예수님과 3년 반이나 먹고 자며
예수님께 수많은 말씀을 들었고
그 누구도 경험하거나 보지 못했던
수많은 기적을 눈앞에서 경험했던 자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최고의 훈련을 받은
교회의 핵심 중직자’였습니다.
그런 빌립이 예수님께로부터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빌립은 예수님께 이런 요구를 하였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빌립의 소원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늘 보았던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었으며
여전히 오래 믿었지만 여전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들은 그런 빌립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1.길 되신 예수님(4-7절)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은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들을 위하여
그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거처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예수님에게로 영접하여
믿는 자들도 있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자들 너희만은 내가 가는 길을
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아멘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까?
그렇게 믿었던 제자가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누구입니까?
도마가 말합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니까?”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신다는 말에
걱정과 두려움에 압도되어
주님 의도를 놓친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가시는 목적지를
그저 눈에 보이는 ‘공간적 장소’로만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두고 어디로 가시려는 걸까?’라고
불안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목적지는
장소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아버지’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말하는 목적지와
제자들이 말하는 목적지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아직도 영적인 세계를
육적인 세계에서 찾으려고 하니
잘못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길을 모른다고?”
6절을 읽겠습니다.
“네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길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고
참된 음료라고 하셨고
양의 문이라고 하셨고
참된 목자라고도 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거할 곳이 많은
아버지 집으로 인도할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를 만나 그가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알았고 보게 된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고
예수님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멘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 그런가요!
주님을 만났으니
이제 아버지도 만났다고 해야 맞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말하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자신들을 버려두고 죽음의 길로 가시거나
혹은 자신들이 따라갈 수 없는 하늘로(영적인 세계로)
완전히 가버리신다고 생각하여
고아처럼 버려질까 두려웠습니다.
이처럼 남의 다리만 긁고 있으니
문제가 해결되거나 바른 대답이나
진리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셨지만
제자들은 전혀 상관없이
불안하고 염려가 있어 믿음으로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앞에 계셨지만
주님이 분명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주님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
여전히 두려움과 근심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8-11절)
그런 도마보다 한술 더 뜨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빌립이었습니다.
빌립이 요구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빌립은 예수님의 영적인 설명이
복잡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마치 떼를 쓰는 아이처럼
“그 장황한 말씀 마시고,
그냥 내 눈앞에 하나님을 직접 보여 주시면
깨끗하게 믿겠습니다!”하고 조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성경 말씀 말고, 내 눈앞에 기적이나
하나님의 모습을 확 보여주면
잘 믿겠다고 합니다.
대단하게 하나님을 보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제자들의 이해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답답하기는 예수님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말씀하십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지 않느냐!”
다시 말해 이렇게 함께 있으면서 보여 주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느냐?
나를 그렇게 보고서도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느냐고 안타까워 하십니다.
그러면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하면서
속상한 마음으로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답답합니다.
보고서도 모르는 제자들이나
그것을 보고 있는 예수님이나
안타깝기는 일반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그렇다고 제자들을 무시하거나 꾸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이해할 때까지 또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 거하고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전에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10:38에서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을 깨달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모든 일은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시든지 병든 자를 고치시든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든지
모두가 다 예수님 안에 계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고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보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요한복음1: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은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에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보았다면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저는 자라나는 손자들을 보면서
어쩌면 그렇게 엄마를 닮았는지 신기합니다.
엄마가 낳았기에
그 엄마를 닮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똑같지는 않습니다.
아빠도 있고 환경도 있고 돌연변이도 있습니다.
인간의 닮음은 일부입니다.
외모나 습관 중 일부만 닮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는
단순한 닮은 꼴을 넘어 본질과 행하시는 일
곧 사역에 있어서 완벽하게 하나이신 관계입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시고
오직 하나님이 그 안에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못 믿겠다면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믿지 못하니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물이 포도주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죽은 자가 살 수 있으며
어떻게 사람이 파도가 이는 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시기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하신 일을 보았다면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 분으로서
믿고 따라야 합니다.
3.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12-14절)
예수님은 이렇게 무지하고
믿음이 없어 보이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십니까?
그들은 무지나 연약함을
책망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위로하시며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자들에게 주어질
놀라운 특권과 약속을 선포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 감이라”
얼마나 이 놀라운 말씀입니까?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들었고 보았고
우리의 삶을 통해서 경험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성경에서 있었던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술 더 떠서 말씀하십니다.
그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할 뿐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큰 일을 한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보다 능력이 많아서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완성하시고 아버지께로 가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공간적 제한을 떠나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더 넓고 큰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 방방곡곡에서 성령 충만한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사랑의 행동들이 행하여지고
그래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얼마나 많은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럴 뿐 아니라 이렇게 행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무한한 하늘의 자원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13-14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눈앞에 계셔서
구하면 풍랑도 잠잠케 하고 먹을 것도 해결해 주고
귀신 들린 자들의 위협에서도 건져 주었듯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떠난다고 하니
제자들은 두려웠습니다.
길을 잃은 고아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지만,
이제 너희가 ‘ 내 이름으로’ 기도할 때 내가
그 기도에 응답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고
놀라운 복된 말씀입니까?
이것이 주님을 온전히 아는 자들이
누리는 권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권세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눈에 안 보인다고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속 도마와 빌립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직분을 받아 봉사하면서도,
막상 삶의 폭풍을 만나면 영적 방향 감각을 잃고
두려워하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이 안타까운 질문 앞에서 우리가 지식의 신앙을 넘어,
삶으로 주님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 결단하고 실행해야 할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첫째, 세상의 다른 길이 아닌
‘오직 예수’라는 길만 걸어가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인생의 방황이 찾아올 때,
우리는 자꾸 세상의 육적인 방법이나
인간적인 지름길을 찾으려 합니다.
제자들이 목적지를
공간적인 장소로 오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고,
참된 평안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내 생각과 계산을 내려놓고
"주님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길입니다"라고
매일 고백하며, 말씀이 인도하는
그 길만 묵묵히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내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닮은 자’로
하나님을 보여 주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말씀과 기적이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나타냈던 것처럼,
이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할 통로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닮듯, 우리도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우리의 친절한 말 한마디,
정직한 행동 하나, 사랑의 섬김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보니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군요"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셋째, 낙심과 염려를 멈추고
‘예수의 이름’으로 무릎 꿇고 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고아처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하늘의 자원을 움직일
마스터키, 바로 ‘내 이름으로 구하라’는
기도의 특권을 주셨습니다.
염려할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불안해할 시간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 풀 수 없는 인생의 닫힌 문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전능하신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주님이 친히 행하시고 일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우리 율리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답을 가졌고,
가장 강력한 권세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번 한 주간,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온전히 깊이 알아가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직 예수의 길을 걷고,
삶으로 하나님을 보여 주며,
그 이름의 권세로 기도의 기적을 체험하여
삶의 모든 폭풍을 넉넉히 이겨내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