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한복음14:25-31)

작성자오정원|작성시간26.06.21|조회수22 목록 댓글 0




260621주일설교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한복음14:25-31)

 

본문: 요한복음14:25-31

제목: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오늘은 요한복음14:25-31의 말씀을 가지고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저는 텔레비전에서 보는

어떤 침대 광고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차 밖에서는 사람들이 싸우고 난리를 치는데

자신만은 차 안 침대에서 평안하게 자는 모습을 보여주며

흔들리지 않는 평안함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평안함이란 이런 것입니다.

나만 아무 일 없으면 그것을 평화라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평안함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평안하다고 할 때 무엇이 평안한 것일까요?

 

세상은 평화를 말합니다.

 

힘으로 눌러놓고 아무 일이 없으면

그것을 평화라고 합니다.

 

그것은 로마가 말했던 평화

팍스 로마나라고 했습니다.

 

강력한 로마의 군사력 앞에

다른 나라가 꼼짝 못하고 가만히 있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두고 평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비발디가 작곡한 노래 중에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곡의 가사를 보면

 

세상에는 참된 평화가 없네, 순수한 믿음으로 가득찬

영혼 속에만 평화가 있을 뿐라고 노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참된 평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그러한 길을 찾아보며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보혜사 성령님(26)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떠나신다고 하셨습니다.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두려웠고 염려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고

제자들과 우리를 위하여

거처를 마련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사역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우리 모두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사역을 하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부모나 선생님이나

선배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종 잘못 배운 것 때문에

인생을 어렵게 사는 경우를 봅니다.

 

잘못 배운 표현 때문에 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잘못 처신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온전한 바른 길이 무엇인지

모른채 행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이는 백만원이 넘는 스마트 폰을 사서

단지 전화나 카톡 정도만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이처럼 하나님 자녀의 풍성한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겨우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내 뜻과 이기적인 욕심을 따라 살면

결국 분쟁과 오해를 낳을 뿐입니다.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참된 평화를 이루는 지혜는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도록

말씀을 읽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을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가르침을 받았다면

그것이 실생활에서 사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글을 배웠으면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가르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침 받았다면

우리는 그 가르침이 사용되어야 하며

그 말씀에 따라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공부하기도 하였습니다.

수시로 읽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그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일을 당할 때 앞이 캄캄합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두렵기만 하고 낙심이 가득하여

좌절하거나 실망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인지

아닌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사람과 다를 거 하나 없이

욕심에 따라서 아니면 사람들의 말을 따라서 행합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주신 지혜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갈 바를 모르는 우리의 길에

말씀으로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내 욕심에 빠져서 잘못된 길을 가는 상황에

말씀을 생각나게 하여 주어서 발을 돌이키게 하십니다.

 

세상 풍조를 따라가다가

말씀이 생각나서 회개하고 주님을 따릅니다.

 

2.예수님의 평안을 받으라(27)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하셨고

그 다른 보혜사가 성령님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고

또한 예수님이 말씀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령님을 보내주시며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도록 해 주시는 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떠나시면서 하늘에 올라가시면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힘껏 마음껏 행동을 합니다.

 

왜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며

모든 것을 다 주며 그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일까요?

 

그가 누렸으면 하는 것이 있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누리기를 원하셨을까요?

어떤 상태에 있기를 원하셨을까요?

 

부모 된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어떤 상태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자녀가 무엇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누리기를 원하는 것은

평안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셔서 처음 하신 말이 바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주님의 제자들에게 원하는 것은 평안입니다.

평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평안은 무엇이고 평화는 무엇입니까?

 

평안은 개인적인 것이라면

평화는 사회적인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평안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평안해야 합니다.

 

내가 불편하다고 말했던 침대 광고처럼

세상이 어떻게 되든 나만 평안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평안하고 사람들과 관계도 평화로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평안이었습니다.

평화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십니까?

나의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평안이 아니고

철학자나 어떤 상담가가 말하는 평안이 아니고

예수님이 가지신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평안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무엇입니까?

세상이 주는 평화는 무엇입니까?

 

세상이 주는 평화는 힘으로 눌러놓아

저항할 수 없는 상태, ‘팍스 로마나입니다.

 

가정 안에서도 힘이나 물질을 가진 자의 압력에 눌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태를

평안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평안이 아닙니다.

불평을 말하면 고통이 따르기에

억지로 침묵하는 불안의 상태일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평안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상황이

아무 일이 없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십자가로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가신 길은 아니었습니다.

괴로워하셨고 거두어 주시길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예수님이 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누렸던 평안은

외부 환경 곧 십자가라는 거대한 위기에

지배받지 않는 내면의 평안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와 온전한 관계와 순종을 통해

이 땅에 가져오신 참된 평화 시작점입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평안이 바로서야

세상과의 수평적인 평화가 열립니다.

 

예수님은 그런 평안을 가지고 있었고

제자들에게 그런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은 우리를 어둠 속에 있게 합니다.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기도하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먼저 가셨던 길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마의 땀이 핏방울이 될 때까지 괴로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기도의 자리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씩이나 기도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은 주님의 뜻을 깨닫고

평안으로 갈 때까지 기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불안하고 두려워서 어둠 속에 갇혔을 때

세상은 어떤 빛을 줍니다.

하지만 그 빛은 꺼지는 빛입니다.

 

어떤 힘 있는 자가 구해줍니까?

하지만 그는 우리를 그 힘 아래 굴복하게 만듭니다.

평안이 아니라 평안을 가장한 불안을 더 키우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떤 상황 어떤 일이 생긴다 하여도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게 되면

우리는 평안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죽음 앞에 있었던 예수님이셨지만

아버지의 뜻을 알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예수님에게는

평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런 평안을

누리도록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를 믿고 있고

그가 보내주실 성령을 믿고 있다면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말씀에 아멘 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의 발길이 어느 상황에 있습니까?

무엇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그래서 불안과 염려 속에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평화 속에 살고 있습니까?

 

3.아버지께로 가시는 예수님(28)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셔서 성령을 보내주셔야만,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뿐 아니라,

지금 오늘 여기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현재의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사는 삶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데

죽어서 천국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천국을 누리는 자가 나중에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지금을 어떻게 살고 있어야 합니까?

 

그저 지금은 상관없고 죽어서 천국만 가면 됩니까?

 

지금 천국을 경험하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고

주님이 가지신 기쁨을 누리는 자가

바로 나중에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말씀 속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은 재림을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포함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하루 없이 우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없고

이 하루가 우리를 보여주는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예수님이 떠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고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제자들이나 우리들은 기뻐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보다 아버지께서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제자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수준에서

한 단계 올라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저 단순히 예수님이 떠나고

이별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아니라

왜 예수님이 가시려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던 자신들에게

그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 주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단계를 넘어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는 것은

고통받는 인간의 몸에서 벗어나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권좌로 복귀하신다는 말입니다.

 

왜 그것이 기뻐해야 하는 일일까요?

 

예수님이 곁에 계실 때는

한 공간에만 계실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면 예루살렘에

갈릴리면 갈릴리에만 계셔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떠나고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시면 온 세상 모든 성도의 마음속에

동시에 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선

영적인 편재, 충만함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분이 주시는 지혜로

그분이 주시는 위로로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있어야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실 수 있기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나감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고 인정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어떤 힘과 권력과 돈으로

평화나 안식을 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평안으로 인도할 것이기에

우리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 우리는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내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그 사실을 기억나게 해 주시므로

주님의 통치를 믿고 따르게 됨으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고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거대한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고백하셨습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환경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함으로 누리는 하늘의 평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평안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마음에

영원히 채워주시려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세상의 거짓 평안에 속지 않고,

주님이 주신 진짜 평안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오늘 무엇을 결단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야 할 세 가지 믿음의 지침을 나눕니다.

 

첫째, 내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주파수'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세상의 수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불안을 부추기는 뉴스, 욕심을 자극하는

세상의 풍조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성령을 모시고도 내 생각대로 살다 보니

작은 일에도 앞이 캄캄해지고 두려운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어떤 문제를 결정하거나 감정이 앞설 때

잠시 숨을 고르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성령님, 이 순간 제가 기억해야 할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제 입술과 마음을 가르쳐 주옵소서.”

 

내 욕심을 내려놓고 성령의 가르치심에 귀를 기울일 때, 주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돌이키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 불안과 염려가 찾아올 때,

'어둠의 자리'를 떠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예수님도 십자가 앞에서 이마의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두려움의 어둠 속에

멍하니 주저앉아 계시지 않았습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세 번이나

간절히 부르짖으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의 기도가

마침내 모든 두려움을 삼키는 평안을 가져왔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꺼져가는

임시방편의 빛을 던져주거나,

힘으로 우리를 굴복시키려 합니다.

 

그것은 평안이 아니라 불안을 키울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삶의 거센 풍랑이 일어날 때

사람을 찾아다니거나 원망하지 말고,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내 뜻을 관철시키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주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정돈될 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셋째, 나중이 아니라 '오늘, 바로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살아내십시오.

 

우리의 신앙은 단지 죽어서 갈

저 천국만을 바라보며

오늘을 불행하게 견뎌내는 것이 아닙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우리 안에 찾아오신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는 '오늘'이라는 이 하루 동안

주님과 동행하는 현재의 천국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편하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

"흔들리지 않는 평안함"이라고 말하는

세상의 이기적인 평안을 거부하십시오.

 

나 한 사람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평안을 누리고,

그 평안을 통해 가정과 일터에서

이웃과 화평을 이루는 진짜 '평화의 통로'가 되십시오.

 

오늘 하루를 주님의 다스림에 맡겨드릴 때,

우리가 딛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됩니다.

 

[마무리 선포]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의 이름으로 오신

최고의 스승이자 위로자이신 성령님이 함께하십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거친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늘의 평안을 당당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행함으로,

오늘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를

천국으로 바꾸어 가시는 신실한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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