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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백년 보시 하루 계 지킴만 못해 ☜

작성자반야|작성시간13.04.01|조회수10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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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 보시 하루 계 지킴만 못해 
                                       
              오계는 모든 선법과 계의 근본이다. 불교의 계율은 오계에서 팔관재계, 사미십계,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를 비롯하여 범망보살 10중대계, 48경계 등 온갖 계법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계에 의지해 점차로 닦고 배워 삼취정계(三聚淨戒)를 모두 지키면서 청정하여 범함이 없으면 시라바라밀(尸羅波羅密)을 원만히 성취하게 되고 위없는 보리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오계를 수지하면 탐진치 삼독의 번뇌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살생하지 말라’는 계를 지키면 성냄을 없애게 되는데 살생하는 죄는 진심(瞋心)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훔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는 계를 지키면 탐욕을 없애게 되는데 이는 탐심·탐욕으로 인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를 지키면 어리석음을 깨뜨리게 되는데 어리석은 마음에서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를 지키면 게으름을 없애게 되는데 술을 마시면 모든 계를 쉽게 깨뜨리기 때문이다. 재물과 이성(異性)과 술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근본이다. 여기에 탐착하면 한 개인은 집안을 망하게 하고 위정자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 『선생경』에 이르기를 “만약에 누가 오계를 지키지 않고도 생사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만약 어떤 사람이 나고 죽음의 큰 바다를 건너고자 한다면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오계를 받아서 지켜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오계는 단지 부처님의 제자들이 몸을 닦고 도를 행하는 규약으로 삼는 것인데 국가 경제나 민생의 문제 또는 세계 평화의 문제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가정에 있고 가정의 근본은 구성원 각자의 수신(修身)에 있다. 닦은 후에야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 오계를 지키는 것은 곧 몸을 닦는 것 ― 가정을 다스리고 나서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고 나라를 다스리고 나서야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를 평화롭고 삶을 즐겁게 하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스스로 오계를 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모든 중생들에게 네 가지 공양(음식, 의복, 와구, 탕약)을 백년 동안 보시를 하더라도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계를 지킨 공덕만 같지 못하나니 계법은 정(情)과 비정(非情)의 온갖 경계에 두루 통용되기 때문이다.” 하였다. 요즘 널리 행해지고 있는 좋은 현상 중의 하나가 바로 오계를 주고 받는 수계산림인데 수계산림이 겨우 며칠 동안만 행해지는 것은 무척 아쉽다. 그나마도 의식 의궤와 불공을 올리는 행사가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고 나머지 짧은 시간에 계법에 대해 강의할 뿐이다. 이런 실정이므로 수계를 하고 돌아오자마자 곧 계를 범할 뿐만 아니라 그 잘못을 알지도 못한다. 그러다 보면 계를 받은 사람이나 계를 받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이 죄를 더하게 되고 어리석고 완고한 사람들은 죄에다 죄를 더하는 꼴이 되어도 참회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 마음으로 참회하고 깨끗한 계를 받아 지키려는 이가 있어도 그 문에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현실이다. 계를 지킴에 있어 우리 불자들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지적한다면 ‘개차법(開遮法)’을 들 수 있겠다. 원래 ‘개’는 행위의 허가, ‘차’는 금지를 말하는 것이다. 즉 어떤 일을 허락하는 것을 ‘개’, 금하는 것을 ‘차’라고 하는데 해도 좋은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개차라고 하며 이것은 곧 계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계초심학인문』에 “오계나 십계 등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계를 받으면 그 계에 있어서의 지범개차의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受五戒十戒等 善知持犯開遮).”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을 ‘5계와 10계를 받아서 잘 가지고 범하고 트고 막음을 알아야 한다’고 해석하고 결국 개차법이란 계를 잘 지키되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을 가지라는 말로 이해를 하게 되면 계율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계하는 일을 자기 중심적이고 편의적으로 이해하여 초심자나 불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생명이 위험할 때는 계율을 지키지 않아도 좋은(犯 또는 開) 죽게 될지라도 계율은 지켜야만 하는 것(持 또는 遮)”을 말하는 의미에서의 ‘개차법’은 다른 입장과 각도에서 설명되어야 할 문제이다. - 해인총림 율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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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대전마하불교성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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