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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세요!!]12소선지서 요약(예언서도움)

작성자김영희|작성시간02.11.19|조회수3,949 목록 댓글 0
예언서(선지서) 듣는 원우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립니다.

12소선지서 서론 요약

☆ 호세아 ☆
1. 책의 명칭과 소선지에서의 위치
호세아의 명칭은 저자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그 이름은 구원이란 뜻이다. 호세아서가 12소선지서 중 맨 처음에 기록된 것은 이 책이 그것들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 중에 가장 큰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요엘서같은 책은 호세아서 보다 앞서 기록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학자들의 일반적인 결론은 요엘서의 연대를 유다왕 요아스시대(835-796 B.C.)로 보는데 호세아서는 여로보암 Ⅱ세 때 (793-753 B.C.)라고 기록되어 있다(호 1:1).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 때 호세아서가 12소선지서의 첫째 책이된 것은 그 연대도 고려한 것이겠지만 특별히 그 분량을 생각한 것 때문일 것이다.
2. 저자와 그 시대
호세아 선지자는 북방 이스라엘 출신이다. 왕의 연대를 기록할 때에 유다왕들의 것을 먼저 기록한 것을 이상히 생각하는 자들도 없지 않으나 그것은 앞으로 다시 말하겠거니와 그의 사상적인 입장이 다윗 왕의 계통을 정통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활동한 기간은 1 : 1에 기록된대로 웃시야(767-739 B.C.), 요담(797-731 B.C), 아하스(731-715 B.C.), 히스기야(715-686 B.C.)때라고 했으니 이 때의 북방 왕들은 여로보암 Ⅱ세(793-753 B.C.)와 그 아들 스가랴(753 B.C.)와 혁명을 일으켜 스가랴와 여로보암의 집을 멸한 살룸(755 B.C.)과 또 혁명을 일으킨 므나헴(752-742 B.C.)과 그 아들 브가히야(742-740 B.C.)와 또 혁명을 일으킨 베가(740-732 B.C.)와 다시 혁명을 일으켰던 최후의 왕 호세아(732-722 B.C.)때까지로서, 그 기간은 아마도 50년간 전후가 될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최고의 번영기간과(여로보암 Ⅱ세 때)과 몰락 기간을 모두 체험한 선지자이다.
그와 동시대의 선지자들로서는 아모스(약간 앞선 것으로 생각됨)와 남방에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였다. 호세아의 메시지가 이스라엘의 개인적인 신앙과 윤리의 타락을 슬퍼하는 것이 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모스의 메시지와 잘 대조가 된다. 후자는 주로 사회적인 불의와 부정을 슬퍼하며 경고하는 것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3. 선지자의 비극적인 결혼
선지자의 고멜과 결혼은 그에게 있어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어떤 학자들은 그가 음란한 아내를 취한 그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환상적인 것이 아니면, 상징적 비유라고 했다. 그의 아내의 아버지의 이름(디블라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가 분명한 실제 인물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이러한 결혼을 요구한 것은 상당히 불합리한 듯 보이나 범죄한 죄인을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가 그의 '공의'와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과 공의가 서로 입맞추는' 거기에 죄인들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호세아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최후 승리를 보여주는 책이다. 물론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의 '아픔'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아픔'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참 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세아의 가정 비극은 선지자에게 짊어지운 하나의 십자가였다. 그는 그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몸소 증거해야 했던 것이다. 호세아서는 어디까지나 그의 메시지의 일방적인 선포였다. 말하자면 그의 설교로 되어 있다.
4. 선지자의 사상적 입장
호세아는 북조 이스라엘의 인물이면서도 남방 유다에 소망을 두고 산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 정통 왕은 다윗 계통에서 난 자이어야 한다는 그 입장에 있어서는 다른 선지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오직 남북 이스라엘의 통일로써만 북방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을 선언했고(1:6-11),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총을 참으로 입게 될 때에는 오직 그 왕 '다윗'을 구하는 때라고 했다(3:5). 그러기에 그는 북방 이스라엘은 범죄할지라도 남방 유다만은 성결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4:15).
혁명에 혁명을 거듭하면서 왕들은 무너지고, 일어나도 백성을 구원할 참 왕은 없었다(13:10). 이스라엘은 그 시초부터 끝날까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는 왕국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언약' 위에 세워진 남방 왕국에 소망을 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 요엘 ☆
1. 요엘서의 저자와 시대배경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는 말로 다분히 신앙고백적인 이름이다. 흔히 우상에게 미혹됨이 그 시절에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는 그러한 고백은 모든 우상은 헛것이요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그 신앙이 집약된 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남방 유다에 본적을 가진 자로 아마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선지자의 일을 하였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메시지의 내용은 남방 유다에 관해서 뿐이요 북방에 관한 것은 없다. 또 혹자는 생각하기를 요엘 선지자는 제단과 제사에 관한 말과 제사장들에 관한 말을 많이 했음을 보아(1:9,13, 14,16, 2:14,17) 혹 그는 제사장 출신이 아닌가 생각하는 자들도 있으나 그것은 그런 것 같지 않고 당시의 형편이, 제사장들이 크게 활동했던 요아스 왕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엘이 활동한 시기는 남방 유다의 '아달랴'의 이단정권을 무너뜨린 '여호야다의 반정(反正)'이후 세워진 요아스 왕 초기시대일 것이다. 그 증거로는 첫째로, 왕에 관한 기록은 볼 수 없고 오히려 장로들과 제사장들에 관한 말이 많다(1:2, 13-14).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여호야다의 반정'과 더불어 요아스 왕이 즉위한 것이 7세에 때의 일이기 때문이다(왕하 11:21). 그러므로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대거 정권에 참여하여 활동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엘서에 왕이 없다는 이유로 포로기 후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이스라엘의 성서 편집자들은 아모스서보다도 앞에 둠으로써 매우 앞선 선지자로 인정해 왔다.
둘째로, 본서를 요아스 왕 초기에 되어진 것으로 보는 이유는 유다의 원수로서 앗수르, 또는 바벨론이 거론되지 않고 베니게와 블레셋과 애굽과 에돔이 거론된 점이다. 앗수르가 강한 원수로 등단한 것은 요아스 왕의 손자인 웃시야 왕 이후의 일이다. 요시야 왕 때까지는 유다가 다메섹이나 앗수르의 침해를 받은 일은 없고, 또 바벨론이 그들의 원수로 등단할 것은 그때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때였다.
셋째로, 또 요엘서의 시대는 웃시야 왕 이전일 것으로 보는 것은 아모스 선지자가 요엘서를 인용했다는 점이다(요엘 1:4, 2:5을 암 4:9과, 또 요엘 3:16을 암 1:2과, 또는 요엘 3:18을 암 9:13과 비교하라). 아모스 선지자는 웃시야 왕 때의 선지자이다(암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를 포로 후의 것으로 보려는 학자들은 위에서 말한대로 왕의 기록이 없다는 것과 또 '이스라엘'이란 명칭을 유다에 적용한 것을 증거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밖에도 요엘 3:2에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땅을 나누웠으며'란 말을 들어 포로 후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예언'이다. 그런 것으로 시대를 말할 수는 없다.
2. 요엘서의 내용과 그 성격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에 관한 '계시록'이다. 여호와의 날의 심판이 어떻게 철저할 것을 '메뚜기의 재난'으로 보여주면서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모든 거민들의 회개를 강요하고 있다. 제1장에서 보는 '메뚜기'는 하나의 생물학적인 곤충의 재난으로 보기는 너무도 지나친다. 이것은 오히려 요한계시록의 '황충'(=메뚜기)의 재난과 일치함을 본다(계 9:3-10). 선지자 자신도 그 메뚜기 떼는 곧 '큰 군대'라고 했다(2:25).
그들은 침략하여 올 '한 이족'이요(1:6)이요, 또 '많고 강한 백성이요'(2:2), '말 같고 기병 같으며 항오를 벌인 강한 군사 같다'고 했으나(2:4,5,), 곧 또 그것은 '큰 군대'라고 했다(2:25).
이러한 사실로 보아 그 '메뚜기이 재난'은 비유가 아닌, 요엘 선지자가 본 '환상'(vision)이요, 묵시의 기록이다.
그런데 요엘서의 특수한 것은 1:4에서 '팟종이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은 늣이 먹고 늣이 먹고 남긴 것은 황충이 먹었도다'라고 한 점인데 이것은 '완전한 멸망'을 말한다. 또한 네 재난은 바벨론, 파사, 렐라, 로마의 침략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니엘서에서 이 예언이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또 특기할 만한 것은 '여호와의 날'의 무서운 심판을 예고하면서 시온의 자녀들에게 '기뻐하라!'고 선포하신 말씀이다. 여기의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이 있고 '메시야의 강림이 예언'이 있으며(2:23, 주해참고), 성령강림의 예언이 있다(2:28ff.). 그리고 나서 마지막 날의 큰 심판이 있다. 제 3장의 소위 '여호사밧 골짜기'의 심판이 그것이다.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는' 마지막 그 때에(3:15), 영원한 예루살렘(3:20), '거룩한 새 예루살렘'(3:17)의 환상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최후의 승리가 선포된다.
3. 요엘서의 목적
본서의 목적은 임박한 '여호와의 날'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겸손히 회개해야 할 것인데, 특히 장로들(한국역, 늙은 자 1:2)과 제사장들이 먼저 회개해야 할 것을 말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하면 '구원의 날'이요 즐거운 날로 알았다. 그러나 선지자는 먼저 그 날이 어떻게 두려운 심판의 날임을 알려주었다. 이런 점에서 요엘 선지자와 아모스 선지자는 그 입장을 같이 한다(암 5:18-20).
'여호와의 날'(1:15, 2:1,11,14)은 멸망의 날이요(1:15), 캄캄한 날이요(2:1), 심히 두려운 날이요(2:11), 해와 달과 별들이 그 빛을 거두는 마지막 날이다(3:15).
그러나 참으로 회개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원한 축복의 날이요, 최후의 승리의 날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새 땅을 기업으로 얻는 날임을 알려 주어(3:18) 그들에게 큰 소망을 보여 주려는데 본서의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소망 중에 환란을 이기며 기뻐할 것을(2:21)가르쳐 주었다. 특별히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과 같이 그리스도의 강림의 예언과(2:23), 성령 강림의 약속은(2:28ff.) 본 선지서의 핵심을 이룬다.

☆ 아모스☆
1. 저자 아모스에 대하여
아모스서의 저자인 아모스 선지자는 드고아 출신이다. 드고아는 1140m의 고지대(高地帶)에 속하는 곳이다. 건조한 모래 땅이기 때문에 농경에는 적합하지 않으나 목축 지대로서는 좋은 곳이었다.
그는 평민출신의 선지자이다. 아모스는 '말씀의 선지' 중 맨 처음으로 나타난 선지자라고 하는데 그러한 첫 선지자를 평민 출신 중에서 택하셨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그의 직업은 목자요 뽕나무 재배하는 자였다고 스스로 밝혔다. '목자'란 말은 많은 양떼를 거느리는 일반적인 양을 치는 목자와는 좀 다르다(1:1 주해 1 참고).
그가 키운 나무는 열매를 따는 뽕나무로서 가난한 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직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그는 부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평지에서 무화과 나무도 재배하는 자였다. 그로 보아 부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무화과나무(한국역, 뽕나무)를 재배하면서 고지에서 또 평지에서 때를 따라 하나님과 교통하고 이스라엘의 장래를 생각하여 탄식도 하고 슬퍼도 하는 뜻 깊은 사상가요 지혜자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를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순종했다. 그는 남방 유다 출신이지만 북쪽 이스라엘의 동포를 위하여 사마리아로(8:14), 또는 벧엘로(7:13) 가서 자리를 옮겨 가면서 말씀을 중거했다.
2. 아모스의 시대적 환경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는 "유다왕 웃시야 시대 곧 이스라엘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2세) 시대의 지진 전 2년"(1:1). 그렇다면 그는 남방의 이사야와 미가 보다는 훨씬 선배요 호세아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때의 지진으로 인하여 받은 피해는 큰 것 같다. 그러한 재난이 있었다 할지라도 여로보암 2세 때의 번영이란 것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 때는 모세를 통하여 약속했던 이스라엘의 전 영역이었다(신 32:36). 국가의 부강과 더불어 그들의 사치함도 극도에 달하게 되었다. 그들은 경루궁과 여름궁이 있었고 상아궁도 있었다(3:15). 상층부의 타락과 더불어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고 불의와 부정과 착취는 성해갔다.
특별히 "부자(父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간다"(2:7 하)는 말에서 그들의 도덕적 타락이 어느 정도였는지도 알게 된다.
그들을 가리켜 선지자는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이라고 책망하기도 했다(8:4).
3. 아모스의 내용
본서의 1,2장은 아모스의 메시지의 서론 부분에 해당된다. 이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주변 열강들(수리아, 블레셋, 베니게, 에돔, 암몬, 모압)의 죄악과 심판을 선포한 후에(1:3-2:3) 남방 유다의 죄를 지적하며 심판할 것을 선포했다(2:4-5).
그리고 나서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은 저들에 못지 않은 더 큰 죄악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심판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2:6-16).
그의 설교와 환상들은 모두 이스라엘에 관영 되어가는 죄악으로 인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경고하는 것들이지마는, 그러나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5:4,6,8)는 간곡한 권면을 그는 반복하여 외쳤다. 여기에서 아모스의 메시지의 특색으로 하나님을 찾는 그 구체적인 행동은 "악을 미워하며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며"(5:15), "오직 공법을 몰 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리는 것"(5:24)임을 분명히 한데 있다.
그러나 본서의 결론 부분(9:11-15)에서는 앞으로 나타날 이스라엘의 큰 소망을 보여 주었다. 그 남은 자들이 다시 고토로 돌아오게 될 것과 황무해진 성읍을 다시 재건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아모스의 메시지는 호세아와 그 입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은 육신의 이스라엘의 귀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그의 영원한 왕국을 말하는 것으로 "다윗의 언약"의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최후의 소망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약의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또한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그의 재림으로 영원히 이루어질 것이다(행 15:16-17, 참고).

☆미가☆
1. 미가 선지의 시대적 배경
'미가'라는 명칭은 소위 미가야의 단축형으로 '누가 여호와 같겠느냐?'란 뜻을 가진 이름이다. 기원전 8세기의 선지자로서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의 인물이다(1:1을 사 1:1과 비교하라). 그의 아버지나 혹은 조상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점으로 보아서 그는 아마도 비천한 가문의 출신일 것이다. [모라셋]이라는 그의 출생지는 예루살렘 서남, 약 20마일 지점에 있는 적은 시골 마을이다. 그가 이러한 적은 시골 마을의 출신이었음으로 시골에서 살고 있는 비천한 농부들과 가난한 목자들의 환경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메시지에는 그들이 어떻게 권력자들에게 압박을 당하고 있었던가 하는 내용이 반영되어 있음을 본다(3:1-4).
그가 살았던 모라셋은 또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아모스 선지자가 살았던 '드고아'와도 가까운 거리였다. 아마도 그들 사이에 주고 받은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가 선지자는 아모스와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특별히 같은 시대의 이사야 선지자와의 주고 받은 영향이 있었을 것이란 점은 그 메시지와 유사점이 많음을 보아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 선지자의 메시지와 그의 신학의 윤리성
미가의 메시지는 사마리아가 어떻게 멸망할 것을 말하는 예언으로 시작된다(1:6). 이것은 북쪽 이스라엘의 각성을 깨우치기 위함만이 아니라 사마리아의 멸망을 보고 남쪽 예루살렘도 회개해야 할 것을 깨우치기 위하여서였다. 그럼에도 회개가 없는 유다를 위하여 그는 얼마나 애타하며 호소했고 슬퍼하며 경고했다. 북쪽 이스라엘을 멸한 앗수르가 유다도 공격했으나 예루살렘을 점령하지는 못하고 물러갔다. 그렇다면 유다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깊이 회개했어야 할 것인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므로 남방 유다는 앞으로 닥쳐올 '재앙의 때'를 면치 못할 것을 선포했다(2:3).
그는 특별히 유다의 지도자들 즉, '치리자'들(3:1,9)과 '선지자'들(3:5ff)과 '제사장'들(3:11)의 죄악을 슬퍼했다.
위의 세 계층(치리자, 선지자, 제사장)의 부패는 곧 그대로가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불러오게 된다. 선지자는 성령의 붙드림을 힘입어 드디어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고 성전의 황페를 결정적으로 선포한 선지자가 되었던 것이다(3:12).
영적인 새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혈통적인 육신의 나라는 무너져야 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이스라엘을 얻기 위해서는 범죄한 옛 이스라엘은 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이산과 포로지에의 추방은 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필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남은 자'로써 새로운 이스라엘의 '새 나라'를 세워야 했다. 이러한 '새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한 왕이 탄생할 것을 선포한 것이 미가 선지의 메시지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4,5장, 특별히 5:2).
그러므로 선지자는 육신의 나라의 멸망을 선포하면서도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보았으며, 소망 중에 감사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선지자는 우리의 구속주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길은 오직 '공의와 인자와 겸손'으로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가 선지자의 메시지의 특징은 '가진 자'들의 무한한 탐심과 '없는 자'들에 대한 착취를 공격한 말씀이라든가(2:1-5, 8-9), 또 통치자들의 불의와 탈취를 공격한 것과(3:1-4, 9) 또 선지자들(3:5-7)과 제사장들(3:11-12)의 부정과 욕심을 신랄히 비판하며 공격한 것들은 특별히 두드러지게 눈에 뜨인다. 그리고 또 당시의 사회 전체에 사랑이 식어지고 서로 물고 찢으며 악을 행하며 이기주의와 향락주의가 팽창되어가는 사회상을 분석하며 탄식하며 경고하는, 선지자의 안타까운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의 큰 소망이란 결국 메시야의 강림과 그의 영원한 통치의 나라 즉, 그리스도의 왕국에 있었던 것이다.
3. 미가서의 내용 개요
미가서는 다음과 같이 셋으로 구분되는데 그때마다 너희는 '들을지어다'(1:2, 3:1, 6:1)란 말로 시작된다.
제1부 죄악의 심판과 남은 자의 회복(1장, 2장)
제2부 죄악의 심판과 메시야의 구원(3장-5장)
제3부 죄악의 심판과 '남은 자들'의 소망(6장, 7장)
그런데 이 세 부분이 끝날 때마다 하나님의 크신 '약속'으로 끝나는 것이 특이하다(2:12-13; 4:1-5 :15; 7 :18-20).

☆ 하박국 ☆
1. 하박국서의 저자와 시대배경
하박국이란 그 이름은 '안으리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고대 어떤 랍비들은 열왕기하 4:16에 나타난 수넴 여인의 아들일 것이라 했다. 레위 후손일 가능성도 있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내 수금'이란 말과 '영장'이란 말은 선지자가 성전에서 봉사한 레위의 후손이라는 근거가 되기에 어느 정도 충분한 자료라고 본다.
하박국이 활동한 시대는 벌써 갈대아의 세력이 크게 예견되었을 때였다(1 : 6-10). 여기의 '갈대아'라고 하는 것은, 앗수르가 점점 약해지면서 바벨론의 세력이 대두되게 되었는데, 이처럼 신흥세력으로 일어난 바벨론을 말한다. 요시야 왕때부터 바벨론은 세력이 강화되었다. 므깃도의 전쟁에서 요시아왕이 전사한 이후(609 B.C.), 그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609 B.C.), 여호야김(609-597 B.C.), 여호야긴(597 B.C.)과 시드기야(597-586 B.C.)등은 신흥 바벨론인 소위 갈대아의 세력에 시달리다가 망했고 마침내는 예루살렘도 함락되었다(586 B.C.).
이 때에 활동한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이었는데 하박국 선지자도 그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 여호아하스는 위에 오른지 3개월 만에 애굽왕 바로느고에게 폐위되고 말았으나 그 짧은 재위 기간에도 악한 일을 많이 한 인물이요(왕하 23:32), 또 그 뒤를 이은 여호야김은 애굽왕에게 호의를 얻으려고 많은 은과 금을 백성들에게 늑봉하여 그에게 바치면서 백성들을 괴롭게한 악한 임금이었다(왕하 23 :34-37). 나라가 어려워지는 그러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야김의 그 사치한 마음은 궁전을 크게 지으며, 백성들의 노력을 동원했고 또 백성들을 압박하여 무죄한 피를 많이 흘리게 했다(렘 22 : 13-19, 왕하 24 : 4).
하박국은 여호야김의 학정을 보며 어떻게 해서 공의가 시행되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항변하였다. 그래서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답변하신다.
애굽의 바로느고가 갈그미스 전쟁에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게 패한 후(605 B.C) 예루살렘이 포위 되기까지(597 B.C.)의 그 기간에 하박국의 메시지가 증거된 것으로 보인다.
2. 하박국서의 특색
하박국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과 더불어 '신앙의 문제'를 갖고 대질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음이 특이하다. 특별히 첫장에서는 악인이 득세하고 의인이 핍박을 받는 현실을 보고, 공의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이라면 어찌 이런 일이 용납되겠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선지자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갈대아인을 일으켜 그들을 징계하리라는 것이었다(1:5-11). 그러나 그에게 다른 고민이 또 있었다. 그것은 갈대아인들의 간악함이 지나치도록열국을 살륙하게 버려 둠은 어찜인가하는 문제였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간악한 갈대아를 반드시 멸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이것은 진실로 신구약 성경의 중심이 되는 진리의 말씀으로, 사도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주제를 이 말씀의 인용으로 설명했던 것이다(롬 1 : 17, 갈 3 : 11).
또 이 책이 같은 시대의 예레미야의 말씀과는 그 빛깔을 달리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갈대아의 멸망과 또 그들에 대한 저주를 강하게 표현한 점이다. 그리고 하박국의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강림으로 어떻게 악한 세상의 권세가 파멸될 것이 묘사되고, 선지자가 어떻게 힘을 얻어 세상을 승리할 것이 기록되어 있다. 1장에서 그렇게 고민하던 선지자가 드디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얻고, 큰 기쁨으로 마침내 환난을 극복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3장에서 얻는다.
3. 하박국서의 문제성
하박국서의 문제성은 사해사본의 하박국 주석의 발굴로 생겨지게 되었다. 사해사본에는 3장이 빠져있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제3장의 '하박국의 기도'는 별도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박국의 노래가 포로기 후 3,4세기의 기록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 증거가 성전에서 악기가 크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정당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성경의 기록대로 볼지라도 벌써 다윗 시대에 악기는 사용되었다(암 6:5). 또 사해사본의 하박국 주석은 완성된 주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박국서는 제3장이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그 책 전체의 사상적인 완결을 이루게 된 것이다. 제3장이야말로 하박국의 메시지의 결론이라고 보아 좋은 것이다. 만일에 이것이 별도로 떨어진다면 하박국서는 미완성의 책이라고 보리 만큼 제3장의 비중은 높다.
4. 하박국서의 신학
하박국서의 메시지 중심은 2:4의 내용에서 볼 수 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말씀은 신약성경, 로마서 1:17과 갈 3:11에서 사도 바울이 '율법의 행함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의 근거로서 인용한 말씀이다. 또 그와는 달리 히브리서에서는(히 10:37) 장차 받을 약속을 위하여 성도들은 끝까지 믿음으로 참고 견디어야 할 것을 말할 때에도 하박국의 이 본문을 인용했다. 이처럼 '믿음'이란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인 동시에 또 구원 얻은 자들이 세상을 참고 이겨야 하는 데도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이것이 하박국의 공헌이다(3:16-19).
또한 말세론적인 역사관이 하박국서의 두드러진 면이다.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윤리가 어떻게 큰 저주를 불러들여 화를 피할 수 없이 될 것을 거듭 거듭 선포한 것이 하박국의 메시지의 중심 부분을 이루고 있다(2:6-19). 그러한 멸망의 선포는 드디어 주의 강림으로 이루어질 것이요, 그의 진노하심으로 끝날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 하박국의 메시지의 내용이다(3:5,6,9-12,15). 그러나 이처럼 악한 세상을 멸하는 것은 그 자체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그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하심임을 본서는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3:13). 마침내 세상은 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져서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2 : 14)고 선지자는 선포했는데, 이러한 말세론은 하박국서의 메시지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5. 하박국서의 내용 개요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한 그 시기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유다 말기의 여호야김왕이 통치하던 시대로서, 불의와 부정과 간악과 패역이 넘치던 때였고 위정자들은 착취와 겁탈을 일삼는 때였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자들을 보고만 계시고 속히 벌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선지자의 마음을 괴롭게 한 것이었다. 그가 믿어온 공의의 하나님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신앙의 고민이 그를 더욱 괴롭게 했다(1:2-4).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답변이 있다. 그 대답인즉 하나님께서 유다의 간악함을 징벌하기 위하여 갈대아(바벨론)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답을 들은 선지자에게는 또 다른 질문이 있게 됐다. 즉, 하나님께서는 '눈이 정결하여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는 거룩한 자인데, 어떻게 그런 악한 자들을 사용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족같이, 주권자 없는 곤충 같이 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1:12-17). 이에 대한 답변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하박국서의 중심이 되는 말씀,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는 그것이었다. 그 후 바벨론을 저주하며 멸망을 선포했다(2:6,9,12,15,19,).
둘째 부분(3장)은 '하박국의 기도'(3:1)라고도 하고, 또 하박국의 노래'(3:19)라고도 하는 것으로서, 선지자의 예언적인 기도요 예언적인 노래이기도 한 부분이다. 공중 예배로 지어진 이 노래는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온 천하에 미치고(3:3-6), 그의 영광이 어떻게 충만하며(3:3), 그의 심판이 어떻게 철저하며(3:4-15), 그의 구원이 어떻게 확실할 것을 잘 나타내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마침내 주의 강림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였는데(3:3), 그가 강림하시되 그리스도의 초림 때 같이 베들레헴의 객사의 구유가 아니요, 또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심도 아니라, 말을 타시고 병기를 거느리시고(3:8,15) 하늘과 땅을 진동케 하시며(3:6,10) 강림하실 것을 보여준다. 앞으로도 말하겠거니와 이 본문에서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설명했고, 칼빈은 구원의 확실성을 말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진 선지자는 비록 지금은 큰 환난을 당하고 그 몸이 떨리며(3:16), 소출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어도(3:17)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고 하는 신앙의 승리를 마침내 선포했다.

☆ 스바냐 ☆
1. 스바냐의 저자와 시대배경
스바냐란 말의 뜻은 '여호와께서 감추셨다' 혹은 '여호와께서 간직하셨다' 혹은 '보호하셨다'는 뜻이다. 그는 '히스기야의 현손이다' 라고 했다. 여기의 히스기야는 히스기야 왕을 가리키는 말일 것임이 거의 분명하다. 왜냐하면 선지자의 가문의 신분을 밝힐 때에 4대의 걸쳐서 조상의 이름을 말한 것은 특별한 예외에 속한다. 그는 시대적(요시야왕 시대에 스바냐는 활동함)으로 보아서 요시야왕의 증조부 히스기야 왕일 것이 거의 분명하다. 만일에 그것이 그렇지 않다면 달리 어떤 사람을 말할 수 있을까? 히스기야가 왕 히스기야임이 분명하다면 요시야왕은 스바냐 선지자의 어린 숙부의 관계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스바냐가 왕족의 피를 받은 자라면 그는 왕궁 출입이 자유로왔을 것이고 어린 요시야 왕에게 끼친 감화도 컸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시야 왕이 16세에 벌써 여호와를 찾았고(대하 34:1-3), 24세 때는 6년에 걸쳐서 남북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을 숙청했고(대하 34:3-8),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통곡하며 회개하고 큰 부흥을 일으켰던 것(대하 34:19-27)은, 아마도 그 배후에 스바냐의 감화가 있었을 것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의 활동무대는 예루살렘이었다.
선지자의 활동시기는 요시야왕 시대(640-690 B.C.)라고 했다(습 1:1). 선지자의 우상숭배의 공격으로 보아(1 : 4-6) 그의 활동은 요시야왕의 개혁(621 B.C.) 전일 것임이 아마도 분명하다. 이 시대는 종교적으로 심히 타락한 시대였다. 히스기야가 무너뜨린 모든 바알 제단들은 다시 복구되었고(대하 33:1-10) 또 그 아들 아몬이 위에 올라서는 그 아버지 보다도 더했다(33:23).
이러한 우상 종교의 심판을 선포하며 나선 자가 바로 스바냐 선지자인 것이다(습 1:4-18, 3:1-7). 그러나 그는 결코 미래에 대하여 비판하지 않았다. 더 좋은 날이 올 것을 그는 선포했다. 그것은 '남은 자'의 구원과 메시야 왕국의 성취를 바라본 것이었다. 그날은 결국 말세론적으로 '메시야 왕국'의 완성으로써 드디어 성취될 것을 선지자는 강조했다(2:11, 3:9,10,14-20).
선지자가 말하는 궁극적 심판은 기독론적이요 말세론적이다(3:9-20).
2. 스바냐서의 특색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므낫세와 아몬과 요시아 왕에게 이르기까지에 있어서 특별히 므낫세와 아몬 시대는 지극히 암흑한 시대였다. 그때에는 히스기야 왕때의 개혁의 흔적은 찾아 볼수도 없으리 만큼 우상 종교는 완전히 복구되어 있어, 종교적으로 심히 부패된 시대였다(1:4-7, 3:1-4). 사회적으로는 지도자들의 불의와 부정이 극심했고 (1:8,9 : 3;1-4) 일반 대중에 있어서도 여호와를 온저히 떠나 배반한 자들이 많은 때였다(1:6). 선지자들은 '그 사람됨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3:4) 또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며' 오히려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라(3:4)고 했다.
그런 자들에게 이제 곧 '심판의 날' 즉 '여호와의 (큰)날'이 임박했음을 선포한 것이, 선지자의 메시지의 중심을 이룬다(1:14-16). 그가 받은 여호와의 날의 계시는 철저하게 말세론적이다.
여호와의 날은 무서운 심판의 날로서 '범세계적'인 것을 강조한데 그의 메시지의 특색이 있다(1:2,3:2:4-15, 3:8). 심판이 세계적인 것인 동시에 구원도 또한 초 민족적이요, 범세계적인 것을 강조했다(2:3, 11:3:9,10).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장소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요, 이방 모든 사람이 사는 '각각 자기의 처소'가 될 것을 보여준 것도, 그의 메시지가 어떻게 기독론적이요 복음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1:11, 요 4:1).
3. 스바냐의 교리적 가치
본서의 교리적 가치는 다음 몇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도덕적이요 윤리적인 교훈이다. 선지자는 사회의 지도자의 불의와 강포를 강하게 정죄한 동시에(1:9, 3:19)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어떻게 남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을 밝혔다(3:12). 그리고 또 교만한 자들이 어떻게 심판을 받게 되고(2:10), 겸손한 자가 어떻게 여호와를 찾아 나오며, 또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자가 어떻게 여호와의 날에 보호받을 것을 가르쳤다(2:3).
둘째는 하나님의 징계로 고난을 받는 것은 멸망을 위함이 아니요 구원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가르쳤다. 이스라엘은 환난의 날에 여호와를 찾아 그 교훈을 받게 될 것이요, 다시 번성할 것을 분몀히 백성들 앞에 밝히 언명했다(3:7,11,12)
셋째는 여호와의 복음의 세계성을 강조한데 있다. 넷째는 역사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분명히 말한 것이 특별히 돋보인다.
이스라엘의 구속사만 아니라 열방의 세속사까지라도 모두 하나님의 장중에서 섭리되면서, 마침내 메시야의 왕국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굴러가고 있다는 역사철학을 우리는 스바냐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다.
4. 스바냐서의 내용
본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갈린다. 첫째는 여호와의 날의 심판이요, 둘째는 메시야의 왕국의 완성이다. 1,2장에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심판이 있고 이방 열국들의 심판이 선포되어 있다. 또한 이방 구원의 약속이 있는 것이 특별히 돋보인다. 블레셋, 모압, 암몬, 구스, 앗수르의 심판이 선포되어 있다. 또한 남은 자들이 어떻게 구원을 완전히 이룰 것인가에 대해 말했다.
이방의 많은 족속들의 입술이 깨끗해지고(3:9,10) 사죄의 은혜가 넘치며 남은 자들이 성화되어 '여호와의 기쁨'이 될 것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들이 어떻게 영화로와질 것이 선포되어 있다.
두 번에 걸친 '임마누엘'의 약속이 있다(15,17). 첫 번째는 두려워 말라(15절)는 권면을 위함이요, 둘째번은 구원의 소망을 주기 위한 약속이다.
☆ 요나 ☆
1. 저자 요나와 그 시대 배경
본서의 저자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을 지닌 이름으로 그는 아밋대의 아들(1:1)이라고 했다. 그는 스불론 지파에 속한 갈릴리 사람이다. 그는 여로보암 2세(793-753 B.C.)때의 인물이다. 왕하 14:25에 보면 선지자 요나는 여로보암 왕이 앞으로 크게 '이스라엘의 지경을 회복하여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넓힐 것을 말했고, 이스라엘의 고난 당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실 것을 예언한 선지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여로보암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부강케 한 것은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잘 순종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었다(왕하 14:26,27)
요나의 선교로 니느웨는 부흥하였다. 그 후 약 150년이 지난 기원전 612년에 니느웨는 완전히 멸망했다.
여로보암 2세의 이스라엘 왕국은 팔레스틴의 영역을 넘어서 주변에 가장 강한 영향을 미치는 강국이 된 것은 다음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가장 큰 원수로 이스라엘을 항시 괴롭혔던 하사엘과 벤하닷 2세의 다메섹은 앗수르의 공격으로 심히 약하여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처럼 다메섹까지 진출했던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또한 공격할 차례에 있었으나 당시 북방의 새로운 세력인 우라르트〔아라랏〕의 공격을 받고 그것을 막기 위하여 다메섹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여로보암 2세는 나라를 부강케 할 수 있는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앗수르에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고 또 완전한 일식이 있어서 하늘과 땅이 캄캄해진 때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형편으로 보아 이러한 재난과 자연적인 현상은 앗수르의 왕과 그 백성들을 큰 공포속에 몰아 넣을 수 있었을리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당시 요나 선지자의 니느웨의 멸망을 외친 메시지를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희어진 밭'이 되어 있었으리라는 것도 우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니느웨의 회개는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이러한 일들이 가세되어 요나의 설교는 더욱 큰 효험을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2. 요나서의 단일성
요나서의 단일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은 제2장이 후에 삽입되었거나 혹은 보충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 기도와 감사의 노래를 구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② 그 내용이 구원받은 후의 일같이 되어 있는 것도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③ 요나서 전체를 보면 요나의 기도가 두 번 나온다. 만일에 2장을 뽑아 버리면 그 균형도 깨어진다. ④ 본문의 기도는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을 감사하는, 즉 물고기를 강조하는 내용이 아니라 깊은 바다 속이란 것이 강조되어 있음을 본다.
3. 요나서의 해석상의 문제점
역대로 많은 학자들은 요나서의 해석상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 해석 방법에 있어서도 요나서를 하나의 '신화'로 보는 학자도 있었고, 또는 풍유적인 소설 같은 이야기로 보는 자도 있었다. 그 밖에도 또 하나의 '비유'로 보는 자도 있다. 그러나 역대의 복음적인 학자들과 유다의 전통은 본서를 역사적인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예수께서도 요나의 사건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인 '이적'으로 말씀하셨던 것이다(마 12:38-41, 눅 11:29-32).
본문이 하나의 비유가 아니요 역사적 사실인 것은 '요나' 자신이 비유적인 인물이 아니요 분명히 '아밋대의 아들' 이라는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유라면 그 비유의 목적이 있어야 하며 그 길이도 짧아야 하는데 그런 것이 요나서에 없는 것으로 보아 역사적이다.
역사적 해석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첫째, '니느웨가 극히 큰 성읍이으로 삼일길이라'(3:3)는 말은 지나친 과장이요 실제적인 역사성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의 형편으로 3일 길의 성읍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2장의 요나의 기도가 물고기 뱃속에서의 기도라면(2:1),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란 말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고기 뱃 속에서는 '바다 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요나의 하룻동안의 설교로(3:4) 니느웨가 전부 회개했다는 말도 그 역사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주장을 거절하는 것은 첫째로 니느웨가 3일길이라는 말도 다음 그가 '하룻길을 행하며 외쳤다'(3:4)는 말로 보아 그것은 전도자로서의 3일 길을 말함이요 니느웨의 직경 거리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또 둘째로 그들의 주장과 같이 물고기 뱃속에 '바다 풀'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요나가 물고기 뱃속이라는 의식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가 깊은 바다에 던지웠을 때의 그 환경을 의식하면서 한 기도임이 분명하다. 끝으로 요나 한 사람의 하룻동안의 설교로 온 니느웨가 회개했다는 말은 얼핏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고 성경적인 용례로 보아도 특수한 것만은 사실이다. 앗수르에는 당시 큰 재난이 있었고, 또 완전한 일식이 있었다. 천체를 숭배하던 그들에게 낮의 해가 없어지는 완전한 일식을 처음 만나게 될 때 그들이 말할 수 없는 공포에 질려 있었을 것도 우리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설명보다도 예수께서 친히 요나의 사건을 하나의 역사적인 이적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요나서는 역사적인 것이지만 사실은 그 이상의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듯이(마 12:39-41, 눅 11:29-32)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예언적 사건이요, 모형적 예표인 것이다.
4. 요나서의 내용 개요
요나서는 선지자의 첫 번 소명과 그의 불순종의 기록이다(1장). 하나님께 감사하는 노래(2장)가 있다. 선지자의 두 번째 소명과 순종, 3장에는 선지자의 설교와 니느웨의 회개가 있고 그들의 구전이 기록되어 있다. 4장은 선지자의 불평과 하나님의 답변이 있다.
5. 요나서의 사상과 교훈
요나서에서 몇 개의 중요한 사상을 본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구원의 복음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넘어서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되어야 할 것을 실제로 가르쳐 준 것이 요나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그 크신 은혜의 복음을 자기 민족에게만 가두어 두려 말고 그것을 모든 족속에게 증거해야 할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두 번째는 요나의 선지자로서의 체험은 장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예표한 것이요, 또 그의 죽음과 부활은 이방의 모든 족속들에게 큰 구원의 근원이 될 것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은 '요나 보다 더 큰 이' 가 여기있다(마 12:39-41)고 하셨다. 셋째는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그들이 어떻게 큰 환난을 당해야 할 것을 선지자의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간접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는 요나의 전도는 이스라엘의 완악성을 간접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즉, 다시말하면 니느웨는 요나 한 사람의 설교를 듣고도 회개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는 많은 선지자들이 보내졌지마는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라 하셨다(마 12:41).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오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그를 죽었던 것이다. 다섯 번째는 원수의 나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스라엘 자신을 위한 것이란 것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니느웨가 회개하여 여호와의 종교를 알게 되었기에, 후일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잡혀 갔을지라도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으며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호 2:14,15).
분명히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고, 그의 행하시는 일의 깊이는 사람이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이다.
☆ 나훔 ☆
1. 나훔서의 저자와 시대배경
나훔은 유다 출신인 가능성이 높다(1:15). 그는 본서에서 분명히 앗수르의 멸망을 선포한 선지자이지만 그의 마음에는 유다를 생각하며 유다의 구원을 기뻐했던 자였다(1:15).
나훔이란 그 이름의 뜻은 '위로가 충만하다' 는 뜻으로 '위로자' 란 말일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가장 큰 원수였던 앗수르의 징벌을 선포하는 내용인데, 그것은 그대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구원과 위로의 메시지인 것이다(1:15).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 본서는 니느웨의 멸망을 앞에 두고 기록한 예언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선지자의 활동기간은 기원전 663년에서 612년까지의 그 기간일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훔 선지자는 유다 말기의 선지자들인 스바냐와 하박국과 예레미야보다 약간 앞선 선지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동시대의 선지자일 것이다.
2. 나훔서의 주제와 특색
본서의 주제는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나훔서의 깊은 교훈을 우리는 지나쳐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며 학살하는 군국주의는 필경 멸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철저히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책이 바로 나훔서이기 때문이다. 즉, 다시말하면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2)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어떻게 인간 역사에서 적중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 준 것이 나훔서의 예언인 것이다.
니느웨를 수도로 하고 있는 앗수르는 많은 나라들과 백성들을 괴롭힌 군사대국이요, 철저한 침략주의의 나라였다. 어떤 역사학자는 앗수르를 가리켜 '동방의 망나니'리거 했다. 앗수르는 또 이스라엘의 가장 큰 원수였다.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앗수르에 내림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낸다(1:6).
이러한 원수들의 멸망은, 곧 그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인 것을 보여준 것이 또한 나훔의 메시지의 특색일 것이다(1:7,12,13,15).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공의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바라볼 것 뿐이요, 그리고 또 하나님만이 환난 날에 산성이시요 그를 찾는 자들의 구원자이심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며, 믿게하는 것이 본서의 내용이다. 또 그와 동시에 원수들이 진멸된 후 마침내 메시야의 통치로써 새로운 평화의 질서가 이루어질 것을(1:15)보여 주는 것이 본서의 교훈이다.
3. 나훔서의 내용 개요
제1장 -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1 : 1-15)
제2장 - 니느웨의 멸망의 모습(2 :1-13)
제3장 - 니느웨의 죄와 그의 피할 수 없는 운명(3 : 1-19)

☆ 오바댜 ☆
1. 오바댜의 성격과 내용
본서는 구약성경 중 가장 적은 책이다. 오바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종' 이란 뜻으로서, 성경에서 흔히 보는 명칭이다.
본서의 특색은 처음부터 일관하여 에돔의 죄악을 심판하는 말씀으로 되어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에도 그들은 이스라엘의 행로를 막아 이스라엘에 대한 적의를 나타냈던 자들이다(민 20:14-21; 21:4; 삿 11:17,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돔을 미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형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신 23:7,8). 그러나 에돔은 항시 이스라엘에 대하여 조금도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창 12:3)라고 하신 그대로라면 그들은 진실로 저주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히 오바댜서는 그 전체가 에돔의 멸망을 선포하는 것으로 되어 있음이 특이하다.
2. 오바댜서의 기록 시대
기록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1:11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본서가 언제 기록되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여호람 때의 예루살렘의 침략만으로 국한시키려는 경향,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한 후에 본서를 기록했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역사적 사건의 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언을 말하는 것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예레미야보다는 앞선 것으로 보는데, 오바댜의 영향을 예레미야가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에돔의 멸망과 오바댜의 성취
에돔의 완전한 멸망을 선지자는 여러 곳에서 말했으나(8-10,15,16, 18-20) 그 완전한 멸망은 먼 후일의 일이었다.
에돔은 여호람 왕(848-841 B.C.)때에도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궁중의 모든 재물들만 아니라 아내들과 아들들까지도 탈취했고(대상 22:16, 17), 또 후일 유다가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최후 멸망할 때도 유다의 환란 당함을 기뻐했고 또 원수들을 도와 유다를 괴롭혔던 것이다(애가 4:21,22, 시 137 : 7).
에돔은 잔인했다. 그러나 아랍족속들의 침략을 받아 말라기 시대에는 황무해지고 말았다. 그들은 세일에서 밀려나 유다 남방 네게브로 옮겨왔다. 그 후 이두메라고 불리웠다. 이것은 에돔의 헬라어 명칭이다. 훗일 유다의 헤롯왕은 에돔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그를 끝으로 '이두메'라는 명칭도 역사에서 사라지고 에돔족속은 영원히 끊어져 버려, 오바댜의 예언같이 되었다.

4. 오바댜서의 교훈
본서의 교훈을 두 가지로 크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심판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혈통을 같이 하는 에돔이 그 형제 이스라엘에 대한 잔인함을 심판했다. 물론 이스라엘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에돔만 아니라 종국에는 모든 만국이 다같이 그의 행한대로 받을 것을 선포한 것이 오바댜서의 큰 교훈이다(15). 둘째로 그 심판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 의 완성에 있다. '시온 산'과 '에서의 산' 이 대립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역사의 종국까지 병행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5. 오바댜서의 내용 개요
본서의 내옹은 에돔의 영원한 멸망과 이스라엘의 영원한 구원을 선포한 데 있다. 여기의 에돔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인 이방들의 대표로 되어있고, 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표자로 되어있다.
1. 에돔의 멸망에 관한 예언(1-9)
2. 에돔이 멸망하는 이유(10-14)
3. 여호와의 날의 예언(15-21)

☆스가랴☆
1. 스가랴의 저자와 시대적 배경
[스가랴]라는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다]라는 신앙고백적인 말이다. 그는 잇도의 후손으로서 제사장 가문의 출신인 동시에 그 가문의 족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는 제사장의 위치에서 선지자가 된 사람이다.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된 때는 아마도 청년기였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가 처음 '이상'을 보게 된 것이 다리오왕 2년이라고 했으니 그 때는 B.C. 520년 되는 해다. 학개 선지자보다 2개월이 뒤진다. 그의 활동기간은 약 50년으로 보고 있으나, 그것은 확실치 않다.
2. 스가랴서의 단일성
일부 학자들은 스가랴서의 전반부(1-6장, 7-8장)는 스가랴의 저작성을 인정하나, 그 후반부(9장-14장)는 저자가 다르다고 한다. 그 다르다고 주장하는 자들 중에서도, 또 그 후반부를 포로 전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또 더러는 포로 후 먼 후일 헬라시대로 보는 자들도 있다.
후반부의 저자를 예레미야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마태복음에서 예레미야의 글이라고 하면서 스가랴서 11:13절을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이같이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첫째, 그 내용면에 있어서 전반부는 성전재건과 예루살렘성의 재건에 관한 것이 주제가 되어 있으나(1:16, 2:4, 4:6-9, 6:12), 후반부에는 그것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음을 들어 그것은 저자가 다른 때문이라고 했다.
둘째, 비판학자들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문체의 다른 점을 지적한다. 전반부는 '이상'으로서 산문으로 되어있으나, 후반부(9-14)는 주로 시(詩) 형태로 취하기 때문에 저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셋째로, 스가랴의 후반부가 먼 후일 '헬라시대'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9:13의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란 구절을 들어, 여기의 헬라가 나오는 것은 이 부분이 헬라시대(약 330 B.C.)에 기록된 증거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스가랴서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기록에 있어서 그 전반부는 스가랴의 초기저작이요, 후반부는 그의 밀기의 작품이라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3. 스가랴서의 목적과 주제
전반부는 먼저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의 성결한 생활을 요구한데 있다. 학개서와 같이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성전건축을 중단한 후 그들을 위로하며(1:13)격려하고 그 재건을 성공케 하기 위한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성전건축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영화로운 미래의 승리의 예표요 상징인 점을 여러 모양으로 가르쳐 주어 그들로 소망을 갖게 하려는데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후반부는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으로, 그의 왕국에 승리와 영광을 말하며, 남은 자들에게 소망을 주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스가랴서의 주제를 말한다면 그 전반부가 '성전재건'과 예루살렘의 재건에 있다면, 그 후반부는 '기독론' 과 '말세론' 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4. 스가랴서의 신학
기독론 : 스가랴에서는 메시야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많은 기록이 있고, 그 메시야는 '여호와의 사자'로서 특별히 나타나고 있다. 나타날 메시야를 '순'(3:8, 6:12), 또 '내 종'(3:8), 혹은 '내 목자'(13:7)란 말로 말했고, 또 그를 가르켜 다스리는 왕이요 제사장으로 말했다(6:13, 히 6:20-7:1 비교).
구원론과 윤리 :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환상을 보여준 후에(3:1-5),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3:9)고 하신 그 말씀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역사가 어떻게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 '선택'의 진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이는데(1:17, 2:12, 3:2). 또 이러한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쳐 준다(12:10)
말세론 : 스가랴서가 신약성경에 인용된 구절은 대강 71개에 달하는데, 그 중에서도 요한계시록에 인용된 것은 무려 30개에 이른다는 것을 말했다(즉, 1장-8장에서 20회, 9-14에서 8회).
스가랴서의 말세론도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같이, 이른바 '여호와의 날'에 집중되어 있다. '그 날'은 대부분 하나님의 심판과 결부되는 말세론적인 표현에 사용된 말이다. '심판의 날' 이란 말은 구속받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구원의 날이요, 승리와 영광의 날을 가리킨 것임은 다른 선지자들의 경우와 같다(사 4:2-6, 호 2:18-23, 욜 3:18-21, 암 9:11-15, 미 4:6-8). 그 뿐만 아니라 메시야의 왕국의 새로운 수도,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과(2:1-5), 또 메시야가 영원히 거기에서 다스릴 것도 가르쳐 준다(8:3, 14:9). 이것은 모두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은 구속받은 성도들을 위한 영원한 낙원임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5. 스가랴서의 내용분해
제1부 스가랴서의 8개의 이상
제2부 금식문제에 대하여
제3부 예 언

☆학개☆
저자
학개의 이름의 뜻은 "나의 절기" 라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어떤 뜻에서 붙여진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또한 그의 출신 성분과 역사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다. 그는 바벨론 포로지 태생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청년일 수도 있고, 포로지에서 자기 동포를 위하여 활동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예루살렘의 첫 성전을 보았을 수도 있다.
역사적 배경
고레스 왕(539-529 B.C.) 이 바벨론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해방을 선포한 것은 고레스 원년 1월 19일이었다. 그 때 5만명이 귀환한다. 그러나 그 때 이스라엘의 포로들이 다 돌아온 것은 아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먼저 성전재건에 착수했으나 어려움이 많았다. 그 어려움은 사마리아를 위시한 기존 집권자들의 질투와 대항 때문이었다. 그런 중에 파사의 내부문제, 즉 고레스왕의 전사가 있었다. 고레스 왕의 죽음과 그의 아들 켐비세스 애굽 원정으로 나라가 비어 있는 틈을 타서 파사 본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캄비세스는 반란으로 자살해 버렸다. 반란 주동자가 가우마타는 곧 다리오에게 처형되었다. 고레스의 뒤를 이은 캠비세스가 왕위에 있을 때, 사마리아 총독들은 성곽을 건축하는 사실에 대해서 상소를 올렸다. 왕의 명령으로 중단된 후, 15년 다리오 왕 2년에 다시 시작되었다. 이 때 학개와 스가랴가 나타난다.

☆말라기☆
시대배경
선지자들은 주로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나타났다. 말라기 선지자도 역시 여명을 기다리는 영적 암흑시대에 태어난 인물이었다. 선지자들이 강조하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리라던 그러한 새 시대는 도래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무하게도 그들이 간 후 한 세대가 거의 끝나려는 때에 말라기 선지자는 나타났다. 성전은 벌써 완공 되었으나 앞서간 선지자와 학개를 통하여 말씀하신 거기에 충만하리라던 하나님의 영광(학 2:6-7)은 기다려도 임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 준수의 무익성을 말하게 되었다. 종교적 의식은 외식에 지나지 않았고 타락된 제사를 드렸다.
이러한 시대를 경고하면서 나타날 메시야의 세 시대를 준비케 하고자 보내신바 된 선지자가 바로 구약의 마지막 성경을 기록한 말라기였다.
말라기의 특성
말라기 선지자를 모세의 율법을 적용하여 강조하지 않는다하여 서기관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것을 사용함으로서 선지자임이 분명하다. 그의 메시지의 특색을 살펴본다면, 첫째로, 말라기의 기본적인 교훈은 항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케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본다. 둘째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의 관계를 부자(父子)의 관계로 설명했음이 특이하다(1:6, 3:17). 셋째로, 아버지 되신 언약의 하나님은 항상 그 자녀들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밝힘과 동시에 복의 근원이 아버지 하나님께 있음을 말했다(3:10-12). 넷째로, 말라기 선지자에게 있어서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의 자녀들의 근본적인 죄는 곧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한 점이다(2:1-3). 다섯째로,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잃었다는 것은 곧 바로 그들의 이웃에 대힌 사랑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과의 관계가 불충성하다는 것은 곧 그대로 그 이웃과의 관계도 파괴에 이르렀다는 것을 밝혀줌이 특이하다(2:10-16). 여섯째로, 하나님께서는 주인이시요 왕이심을 첨가하여 말했음도 특별하다(1:6,14). 일곱째로, 말라기서에는 민족(열국)들의 심판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믿음을 새롭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여덟 번째, 말라기서의 결론적인 큰 교훈은 언약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있어서 마땅히 그와 동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2:6). 끝으로, 또 그는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거룩히 보존함에 있어서 예배의 제사적 의식을 중요시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순종심]보다 그것을 더 높이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특별히 의인의 행위가 기록될 [기념책]에 대한 사상과(3:16) 주의 길을 예비할 엘리야가 나타날 것(4:5)을 강조한 것은 특이하다.
저자 말라기
말라기는 "나의 사자" 라는 뜻이다(1:1). 탈검은 서기관 에스라의 한 다른 이름이라고 보았고 칼빈은 에스라의 별명이라고 보았다. 말라기란 말라기야(여호와의 사자)의 축소형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선지서에서 보듯이 첫 책머리에 선지자의 개인의 이름이 밝혀진 전통으로 보아서는 개인의 고유명사인 듯하다.
말라기의 내용 구분
말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6개의 설교로 구분함이 좋을 듯하다.
제1설교 (1:1-5) - 타락한 이스라엘 자녀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지만 그 사랑을 배반하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제2설교 (1:6-2:9) - 타락한 제사장들
형식적인 제사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제3설교 (2:10-16) - 가정생활의 타락(타락한 가장들)
하나님께서는 더러운 가정을 슬퍼하신다
제4걸교 (2:17-3:6) - 심판주의 강림
언약의 사자가 심판주로 임하여 더러움을 깨끗이 할 것이며, 택한자를 보존하신다.
제5설교 (3:7-12) - 경건한 헌물
헌물을 정성껏 바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동시에 저주를 받았던 것은 십일조의 헌물을 도적질했기 때문이다.
제6설교 (3:13-4:6) - 임박한 심판의 준비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날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희 구원이 되리라고 가르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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