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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을 향하여]신구약중간사(예제 및 답안)

작성자바보온달|작성시간03.01.09|조회수283 목록 댓글 0
"신구약 중간 사 주관식 문제"

1. 헤롯 왕가의 왕들을 간단히 설명하시오.
막카비의 지도자들에 의해 자유 성전 국가가 이어 지던 하스모니안 왕가가 물러나고 이스라엘에는 로마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도움으로 이두매(혼혈인)출신의 헤롯 대왕(주전37-주전4)이 유대인의 왕이 된다. 그는 자신의 권력의 유지를 위해 매우 심한 숙청을 단행하였으며 심지어 하스모니안 왕조 출신의 자신의 아내 '마리안느'까지도 죽인다. 치세말기에는 불안 때문에 자신의 아들까지 숙청하며 죽기 5일전에도 한 아들을 죽였다. 그는 건축에 힘을 기울였다(헤롯 성전건축과 안토니아 요새, 세바스타등이 있다.)
헤롯이 죽은 후에 그의 유언에 따라 아켈라우스(유대와 사마리아, 민족왕), 헤롯 안디바스(갈릴리와 베레아 , 분본왕), 빌립( 갈릴리 북동지역, 분본왕)등에 의해서 다스려진다. 이후 이스라엘은 헤롯 아그립바 일세에 의해서 37-44년까지 통치되는데 이 사람은 헤롯대왕의 손자이다. 성경에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죽은 후에 팔레스틴 전지역은 로마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된다.
그 다음으로 그의 아들 아그립바 이세는 빌립의 영토를 다스렸으며 행25장에서 베스도가 바울의 문제에 자문을 요청하는 인물이다.

2.요세프스가 말하는 유대교의 네 분파에 대해 논하시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엣센파, 그리고 열심당 혹은 열혈 당원이라는 분파가 기득권을 갖고 있었다. 당시 예루살렘은 제사장의 이해 관계에 의해서 다스려 지던 공동체였는데 그 제사장의 주체가 바로 사두개파 인 것이다. 이들은 사독의 합법적인 후손으로서 성전의 제사를 관리하는 귀족계급의 사람들로서 부활을 믿지 않았고 천사와 영의 존재들을 부인하였다.
바리새파들은 엣센파와 사두개파의 중간계층으로 분리 된 자 분리주의자들이란 의미이다. 마카비 반란의 주요지지자인 하시딤의 후손으로 그들의 주된 목표는 순전히 종교적인 목표, 즉 변화된 세계에서 율법을 성취하고 조상들의 유전(울타리를 치다)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극단파에 속하는 엣센파는 사독계파에서 반드시 대 제사장이 나와야 한다는 논리로 하스몬가의 시몬이 제사장직에 앉자 이에 반발하여 예루살렘의 공동체에 반발하고 사해지역의 쿰란 (동굴)지역으로 들어가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룬 자들이다. 이들의 인적구성은 제사장들이었으며 극단적 이원론 자들로서 흑백논리가 강하며 자신들의 우월감 속에 살았던 자들이다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태양을 보고 묵상하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열혈당원(셀롯인)으로서 이들은 바리새파들과 같은 사고를 갖고 있었으나 메시야의 세상에 오심에 대한 방법이 달랐다. 메시야는 바리새파가 말하는 자신들의 회개가 아직 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에 비해 이들은 예정되었어도 우리가 칼을 들고 일어서면 메시야가 앞당겨 오실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후에 예루살렘의 멸망 때 그들은 끝까지 투쟁한 기록을 갖고 있다.
신약성경에는 사두개와 바리새와 열심당원만이 등장하고 엣센파는 등장하지 않는 것은 그들은 기득권을 빼앗기고 쿰란의 공동체를 이끌며 세상과 단절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교 공동체들인 네 분파는 예수님 당시 존재하였다. 그들은 잘 못된 메시야 관과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자신들의 학문의 우월주의와 위선 때문에 그리고 율법의 오해와 잘못된 유전의 보존을 위한 방법 때문에 예수님께 심하게 질타를 받은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본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교만으로 오신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는 죄를 저지르고 마는 독사의 자식들이 된 것이다.

3. 마카비 전쟁에 관하여 아는 대로 논하시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에 팔레스틴 지역은 이짚트를 분할 맡은 프톨레미 왕조에 의해 지배받아 왔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이후 셀류키드(시리아 지역)왕조의 통치 안에 들어가게 된다. 안티오쿠스 4세가 들어서면서 그가 임명한 총독 아폴로니오스는 유대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처음에는 종교적인 것이기 보다 백성들을 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신성한 성전에 이방의 신을 들여놓으며 자신들의 신을 함께 믿도록 강요하였고 자신들의 제의에 참여할 것과 할례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돼지고기를 먹게 하였다. 이에 반감을 가진 자들은 유대의 산으로 숨어들었고 제사장 하스몬의 후손 맛다디아의 아들인 마카비(망치, 유다)가 이끄는 유격대에 가담 야간을 이용하여 성전의 기물을 부수는 등 활발한 유격전을 전개하여 나간다.(168-164) 마카비 전쟁은 처음 종교적인 목표가 주된 목표였는데, 즉 성전과 예루살렘 시, 그리고 유대 땅을 이방인의 가증한 것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스몬가의 사람들은 모든 주민들이 예루살렘에 충성하게 만드는 정책을 도용하여 이두매를 정복한 후에는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강요하였고 사마리아의 그리심 성전을 파괴하였으며 사마리아인들에게 예루살렘 권위를 강요하였다. 결국 하스몬 왕가는 요한 힐카노스 사후에 아들들의 분열과 실정으로 많은 땅을 정복하기는 하였지만 로마의 폼페이 장군에 의해 주전 65년 정복을 당하고 그 막카비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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