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적하던차에 초중등 시절, 유년기를 보낸 더부골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검색해보고
그유구함에 파적삼아 몇자 올려 볼까합니다
통일신라 이후 옛지명으로 부터 유래된 고봉산주변의 자연마을로 중산말, 안악곡(안해골)
왜골, 더부골이 있었으며 더부골은 고봉산인근에 있는 마을 이라는 의미 랍니다.
고분군 조성기; 통일신라기~ 조선시대
소 재 지 ; 고양시 일산6동
내 용 일 반;1992년 일산 신도시 2기 개발계획 으로 중산지구 시행개시전에한양대, 명지대
박물관이 공동 시행한 문화재에 대한 지표및 발굴 조사에 따른성과물로 통일신라 말기 고려초에
조성된것으로 판단되는 주검받침(시상)을 갖춘돌방무덤(석실분)과 고려시대돌덧널무덤( 석곽분)및
조선시대 널무덤(토광묘),회곽묘등이 발견되었고 특히더부골 고분군 유적에서는 구릉에 열지어
분포하는 65기의 널무덤과 1기의(돌덧널무덤(석곽묘)가 조사되었다 당시 매장의 특징으로
토기호, 백자,청자의 대접과 접시,청동제 식기류, 동전,용도 불명의철제편등의 생활 용품을 기본
조합으로 목관과 묘광의 벽면사이 또는 목관의 밑에 매납하는 껴묻거리의매납방식에 대한 일정한
정형이 밝혀졌다.
무덤의 구조상 주목되는것은 무덤중앙 바닥에 작은 구덩이를파고 그안에 철제편과 토기호등을
매납한 요갱으로 원삼국기의 창원다호리유적과 진천 송두리 유적, 그리고 고려조의 개성
법성당 분묘 유적에서도 전례를 찿아볼수있어 요갱전통이 고려 /조선조까지 이어짐을 알수있고
출토유물로는 고려조의 청,백, 녹청자류와 두드림 무늬가 시문된 편호, 장신호가 있고 조선조의
세종5년(1423년)에 주조된 조선통보가있어 더부골 고분군유적은 고려말 조선조 에
조성되었음을 알수있다.이에 본인의 소시적 기억으로는 더부골이 삼태기모양의 지형으로
항상 아늑함을 느꼈던바*** 그곳이 바로 명당중의 명당, 옥음골아니었나싶습니다.헤헤
통상 조상들은 양택 못지않게 음택선정에 각별했던것도 사실이잖읍니까? 중딩때 뛰어 놀던 앞산이
천년전 조상들의 공동 묘지였다니 놀랍기만하고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는 무엇일까하는 생각도
잠시해봅니다! 의외로 스토리가 많은 유서깊은 곳에서 성장해왔음을 깨닫게 된것도 큰소득인듯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행복한 하루이길 바라며! 1/31/2012 더부골 풍운아 강경순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