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갑 신부님]신앙생활의 기준은 믿음의 중심이다

작성자프란치스코|작성시간26.06.05|조회수14 목록 댓글 0

신문갑 신부(부산교구)

연중 제9주간 토요일
마르코 12,38-44

신앙생활의 기준은 믿음의 중심이다

오늘 복음은 율법학자들과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믿음의 모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의 신앙생활과 가난한 과부의 신앙생활을 구분 짖는 유일한 기준은
바로 믿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로 구분됩니다.

율법학자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그 믿음의 중심은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합니다.
율법학자들에게 있어서는 하느님의 말씀도, 하느님의 뜻도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해 이용됩니다.

이들에게 하느님과 신앙은 다른 사람에게 인사 받고,
회당이나 잔치에서 윗자리,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챙기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결국 이들에게 신앙생활은 자기 자신을 위한 하느님과의 거래가 되어 버립니다.

복음에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이들에게 있어서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 역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투자의 의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의 모습을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이러한 자들은 더욱 엄중한 단죄를 받을 것이다.”

반면에 가난한 과부의 신앙생활 속에는 그 믿음의 중심이 철저히 하느님께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 사실은 과부가 보여주는 봉헌 하나만으로도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과부가 보여준 봉헌은 율사들이 보여준 모습과는 정반대로 그 모든 것보다 우선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진 봉헌이었습니다.

과부의 봉헌 속에는 어떠한 계산도,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능력껏 아낌없이 바치는 모습, 주님을 찬양하며 내 가장 소중한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모습이 담겨져 있는 아름다운 봉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러한 과부의 봉헌을 극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우리들의 신앙 생활속에는 율법학자의 모습도, 가난한 과부의 모습도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주님께 받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주님을 찬양하며
아무런 조건없이 오로지 주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내 신앙의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도 있지만 또 때로는 내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주님과 거래를 하며
내 뜻에 주님을 맞추려는 마음으로 철저히 나 자신을 신앙의 중심으로 두고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이번 한번만 해주시면 제가 이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도해 드릴테니 이번 한번만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하느님과 흥정을 벌이고
“내가 이렇게 하느님께 정성을 들였는데 어떻게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러 실수가 있느냐“
원망하며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실 자체에 회의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두가지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과연 우리가 하느님께 드려야할 믿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가난한 과부처럼
하느님께 인정받는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부산교구 신문갑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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