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가 있는 풍경 (2편)
/ 모네타
남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한 실연이 너무 심했다
온갖 노력을 기울였기에 후유증이 심했다
그래서 돌파구를 찾다보니 공부
하지만 뻔질이처럼 놀던 남자가
마음을 다 잡아 먹고 공부한다고 해서
모두 남자 뜻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돌멩이가 금부치가 되지 못한 것처럼
역시 돌은 돌이었다
다행히 조상덕에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아이큐가 있기에
그나마 다행 중 다행이었다
문제는 남자가 그동안 너무 농땡이 치고
아직도 그 여학생을 잊지 못하는 데에 있었다
책만 잡으면 여학생 생각이 ‘솔솔’ 나고
다른 남학생이랑 노닥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울화가 치밀고
가슴이 답답해져 냉장고에 있는
물만 벌컥 들이키며 분을 삭혔다
그 여학생은 내 인연이 아니야
분명 더 멋진 다른 여학생이 다가올거야
수차례 되뇌이며 자신을 달래고
처량해진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 비추는 모습을
보면 영 죽을 맛이었다
공부도 안됐으면서 괜한 화를 가족에게
풀기만 했다
남자가 괜한 화풀이를 했지만 부모님과 식구들은
혹시나 변심하여 공부를 안할까봐
꾹꾹 화를 뱃속에 다지면서 참아야만 했다
공부를 하는 남자는 그제서야 이해했다
공부가 이렇게 힘드는 것을.....
공부 잘하는 녀석들이 괜히 성적이 좋은 것이
아니었던 것을 알아채린 것이었다
엄청난 노력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수학은 쉬운 공식부터 시작해야했고
영어는 쉬운 중학생 단어집을 구해 주야로 외웠다
국어는 신문을 집어들고 화장실에서도
읽고 또 읽었다
어느 날은 일어나자말자 코피가 주르륵 흘렀고
어느 날은 앞머리카락이 술술 빠져나와 손에 잡혔다
걱정되어 거울앞에서 요리조리 살펴보았지만
아직은 남은 머리카락이 많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글러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은 생각보다 더디 올랐고
처음 급속도로 상승하던 등수도 더 이상 오를 기세가
안 보였다
기초가 부실해서 모든 노력들이
바닥을 채우는데 사용되어 상승동력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실망만하고 노력을 멈출 수는 없었다
식구들에게 큰 소리를 친 것이 마음에 걸렸고
떠나버린 여학생에게 잘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남자는 대학예비고사를 간신히 통과하고
자신이 사는 동네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세칭 말하는 지방대학이었다
그것도 철학과였다
‘니가 대학에 가면 내손에 장을 지진다’
라는 담임선생님의 예측을 뒤집은 것이었다
그 말이 끈이었을까?
담임선생님은 남자가 대학에 합격하던 날
자전거를 타고 놀러가던 중
다가오는 자동차와 충돌하여 손가락뼈가 골절되어
기브스를 하고 병원에 한동안 입원하였다
철학과란 입으로 노는 곳
구름위에 천막을 치고 키타를 치며
라면을 끓여 먹는 곳
다리 근육은 필요없고 입주위 근육은 필수
허구헌날 논리싸움이다
쇼펜하우에르의 형이상학 이론
‘인간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가 등등
강의 시작부터 뜬구름 잡는 말만 늘어놓는 교수님
서양철학에서부터 동양철학까지
세상에 말 잘하는 사람들만 찾아내 공부하는 것이 철학
소크라테스의 말말말
‘너 꼬라지를 알라’
그 말은 이어받은 제자들의 말말말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라’
남자는 약간은 골이 아팠지만
답이 없는 물음이 너무 좋았다
생각나는대로 답하면 그것이 오케이였다
정해진 답만 늘어놓는 학생들은 교수님에게
핀잔을 여러 번 들었지만
일찍이 연애관을 탐미하고 연애학에 몰두했던
남자의 대답은 늘 교수님을 흡족하게 했다
그 바람에 남자는 인기가 있었다
은근히 말을 붙여오는 여대생이 있었고
남자옆에 앉기를 원하는 여대생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남자는 실연당한 아픔이 있었기에
강박관념이 생겨났다
‘또 차이면 어떡하나?’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저하고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물론 마음속으로 알까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거렸지만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
수백 번 중얼거리면서 늑대의 본성을 숨겼다
남자는 인기를 간직하면서 2학년으로 진급하였다
스스로 노력해서 된 것은 아니고 세월이 학년을
높여주었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철학이 몸에 밴 학도처럼
여자를 사귈 준비가 되었다
강의는 뒷전
앞에나 옆 또는 뒤에 앉은 여대생들의 몸매를 흝어보고
최상의 짝을 찾을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1학년 신입생 환영회가 벌어진 학생식당
술취한 남자의 시야에 잡히는 여대생이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남자가 눈을 비비고 보니
아니 고딩시절 사귀다가 ‘팽’을 놓았던 그 여학생이다
여학생은 선배들의 환영 술잔을 받느라 남자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남자는 속으로 놀라며 생각해 보았다
진짜 인연은 인연인 모양이다
철학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라이프니찌의 예정조화설이다
모든 미래는 신이 만들어놓은 길이다
인간을 그저 만들어 논 길을 가면 된다
원하지 않는다고 싫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남자는 생각해 보았다
여학생도 허구헌날 연애질 하느라
공부를 했겠는가
이 정도 대학 학과에 진학했으면 금상첨화인 것이리라
병신같은게 잘난 것도 없으면서
나를 ‘뻥’ 걷어 차
확 머리를 밀어 대머리를 만들어 버릴까?
아니면 돼지 여물통에 빠뜨려버릴까?
어휴 저 여물통좀 봐
우찌 그리 술술 술잔이 입술에 대자말자 잘 넘어가냐
남자는 속으로는 온갖 나쁜 짓을 하고픈
욕망이 들지만 또 한편으론
저렇게 술을 먹다보면 취해 몸을 못 가눌텐데
걱정이 몹시 된다
그 때부터 남자는 술을 자제하고 여자를 살폈다
여차하면 달려가 부축할 기세다
남자는 일어나 근처에 있는 주전자를 통째로 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술기운이 어느 정도 달아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