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최용현(수필가)
언어를 연구하는 음성학자이면서 독신주의자인 히긴스 교수(렉스 해리슨 扮)는 런던의 한 극장 앞에서 인도 방언을 연구하는 학문적 절친 피커링 대령(윌프리드 하이드-와이트 扮)을 만나는데, 두 사람이 이런 내기를 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히긴스 교수가 바로 앞에서 남루한 옷차림과 거칠고 천박한 말투로 꽃을 파는 아가씨를 가리키면서, 이 아가씨를 데려가서 발음과 예법 등을 잘 가르쳐서 6개월 이내에 국제 외교무대에 내보낼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되고 우아한 숙녀로 만들어놓을 자신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피커링 대령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엘리자(오드리 헵번 扮)는 자신의 발음과 말투를 고치면 우아한 숙녀가 될 수 있다는 그 신사의 말을 되새겨보다가 히긴스 교수의 집을 찾아간다. 그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교습(敎習)을 시작하기로 하는데, 마침 그 집에서 묵고 있던 피커링 대령이 레슨비를 부담해주기로 한다. 목욕으로 온몸의 묵은 때를 씻어낸 엘리자는 걸음걸이와 식사예절, 말하는 법, 영어 발음 등에 대한 맹훈련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히긴스 교수가 요구하는 문장, 예컨대 ‘The Rain in Spain Stays Mainly in the Plain(스페인에서 비는 평야에 그대로 남아있다).’를 제대로 발음하는 것이 고역이었으나 밤낮없이 연습하다 보니 어느 날 드디어 제대로 된 발음이 나왔다. 기뻐하던 히긴스 교수는 엘리자와 함께 춤을 추는데, 엘리자는 그날 밤 흥분과 설렘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히긴스 교수는 엘리자를 예쁘게 꾸며서 경마장에 데려간다. 엘리자는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그런대로 잘 어울렸으나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예전의 천박한 말투와 촌스런 억양이 튀어나왔다. 히긴스 교수는 발음만 바뀌어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더욱 맹렬한 트레이닝 끝에 마침내 엘리자는 마지막 관문인 영어 발음을 유창하게 구사하게 된다. 그러자, 히긴스 교수는 여왕이 참석하는 대사관 무도회에 엘리자를 데리고 간다. 이 무도회에서 엘리자는 어떤 귀부인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아한 숙녀가 되어 있었고, 왕자와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완벽한 성공이었다.
히긴스 교수는 내기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지만, 엘리자는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완전히 상류층에 속할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짐을 싸서 히긴스 교수의 집을 나온다. 먼저, 전에 꽃을 팔던 곳에 들러보지만 그곳이 낯설기만 할 뿐이었다. 엘리자는 히긴스 교수의 어머니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히긴스 교수는 어느새 엘리자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지만, 이미 엘리자는 떠나고 없다. 그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어머니의 집에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엘리자와 다시 만난다. 히긴스 교수와 엘리자는 서로 좋아하면서도 티격태격하며 말다툼을 벌이다가 헤어지는데, 엘리자가 히긴스 교수의 집으로 돌아오는 극적인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64년)’는 버너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Pygmalion)’을 바탕으로 조지 쿠커 감독이 만든 뮤지컬 영화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 최고의 뮤지컬영화라는 찬사를 보냈고, 2018년부터 미국 의회도서관 국립영화등기부의 영구보존영화가 되었다.
영화 이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는 1956년 초연 이후 7년 동안 2700회 이상 공연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는데, 워너브라더스가 거금 5백만 달러(현재가치로 약 4천만 달러)를 주고 판권을 따냈다. 뮤지컬의 두 주역 렉스 해리슨과 줄리 앤드류스가 영화에도 당연히 캐스팅될 줄 알았지만, 렉스 해리슨은 캐스팅되었으나 여주인공은 할리우드에서 인지도가 낮은 줄리 앤드류스 대신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인 오드리 헵번이 캐스팅되었다. 오드리 헵번은 영화 역사상 두 번째로 1백만 달러를 받는 여배우가 되었다.
그런데, 줄리 앤드류스의 가창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오드리 헵번의 캐스팅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뮤지컬에서 요구하는 고도의 가창력을 오드리 헵번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워너브라더스가 오드리 헵번에게 기대한 것은 흥행을 담보해줄 수 있는 미모와 인기였다. 오드리 헵번이 부를 노래를 더빙할 가수는 이미 섭외해놨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는 제작비 2천만 달러를 투입하여 7천만 달러를 벌어들여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아울러 아카데미 시상식 12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음향상, 음악상, 미술상, 의상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에게는 영화배우로서의 정점을 장식하면서 동시에 상처만 남긴 영화가 되었다.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줄리 앤드류스의 배역을 뺏었다는 비판여론에 시달렸다. 또, 당시 할리우드에서 더빙은 흔한 일이었음에도 오드리 헵번의 더빙은 욕을 먹었고, 뛰어난 연기를 펼쳤음에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는 치욕을 당했다(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15. 9.20).
반면에, 줄리 앤드류스는 ‘메리 포핀스’(1964년)에서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여우주연상을 차지하였다. 그 영화는 최종 1억 달러를 벌어들여 ‘마이 페어 레이디’의 흥행을 앞질렀다. 또, 이듬해에는 줄리 앤드류스의 인생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운드 오브 뮤직’(1965년)에서 주연을 맡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2연속 수상하였다. 그 영화는 최종 1억 5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뮤지컬영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