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결투(大醉俠)
최용현(수필가)
1960년대 중후반, 한국형 멜로영화와 할리우드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우리나라 극장가에 새로운 장르의 영화가 들어왔다. 홍콩의 란란쇼가 경영하는 쇼브라더스사에서 제작한 검술영화 ‘대취협(大醉俠, Come Drink with Me)’이 수입된 것이다.
‘대취협’(1966년)은 1967년 ‘방랑의 결투’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서울 파라마운트극장에서 28일간 17만 6천여 명, 부산에서는 2개 극장에서 27일간 15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그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 지금 70세가 훌쩍 넘었으리라.
이 영화는 홍콩무협영화의 서막을 연 호금전 감독의 첫 번째 검술영화로, 담장을 날아오르거나 객잔 1층과 2층 사이를 날아다니며 칼싸움을 하고 중국무협소설에나 나오는 장풍(掌風)을 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오락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이후 10여 년간 홍콩검술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전성기를 누리는 도화선 역할을 한다.
총독의 아들 장대인이 호위병들과 함께 죄수를 호송하면서 산악지대를 지나가고 있다. 이때 갑자기 나타난 옥면호(진홍렬 扮)가 이끄는 도적떼의 습격을 받아 호위병들은 몰살당하고 장대인은 납치된다. 도적들은 감옥에 갇혀있는 자신들의 두목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납치한 장대인과 교환하자는 서신을 보낸다.
총독은 이 요구를 거절하고, 자신의 딸인 여검객 금연자(金燕者, 정패패 扮)를 보내 도적떼를 소탕하고 오빠 장대인을 구하게 한다. 남장을 한 금연자(금제비)는 도적떼가 머무르고 있는 객잔에서 결전을 벌여 도적들을 물리친다. 그날 밤, 금연자는 낮에 도망쳤던 도적들이 숙소에 침입하려는 낌새를 간파한 술주정뱅이 걸인 범대비(악화 扮)가 유인하는 대로 밖으로 나갔다가 위기를 모면한다.
늘 술에 취해 있어서 대취협(大醉俠)으로 불리는 무협고수 범대비는 동자(童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객잔 등에서 노래를 하여 구걸한 돈으로 굶주림을 해결하는데, 그는 금연자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숨어서 도와준다. 도적들은 근처의 사찰인 광제사를 점령하여 그곳에 장대인을 가둬두고 자신들의 뒤를 봐주는 요공대사(양지명 扮)를 기다리고 있다.
장대인이 사찰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금연자는 홀로 광제사로 쳐들어가서 도적들과 대결을 펼친다. 그러다가 수세에 몰리게 되자 담장을 넘다가 옥면호가 던진 독침을 어깨에 맞고 숲속에서 쓰러지고 만다. 숨어서 지켜보던 범대비가 그녀를 자신의 숙소로 데려가서 해독 탕약을 먹이고 독을 풀어 기력을 회복하게 해준다.
한편, 광제사로 돌아온 무협고수 요공대사는 사제였던 범대비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요공대사는 10년 전에 고아인 범대비를 데려다가 청죽파 스승에게 무공을 배우게 하여 은혜를 베풀었지만, 그 후에 문파의 상징인 청죽장(靑竹杖)을 차지하기 위해 스승을 살해하고 도망친 파렴치범이다.
청죽장은 청죽파의 계승자가 된 범대비가 보관하고 있는데, 요공대사는 청죽장을 뺏기 위해 범대비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범대비는 요공대사에게 청죽장을 뺏기지 않으려고 거지차림으로 숨어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있을 요공대사와의 결투에 대비하여 부지런히 장풍과 악력(握力) 수련을 하고 있다.
드디어 마주친 범대비와 요공도사는 불꽃 튀는 대결을 펼치는데, 젊은 범대비가 승기를 잡고 요공대사의 목에 칼끝을 겨누게 된다. 범대비는 어릴 때 자신을 구해준 은혜를 생각하며 ‘깊은 산에 들어가서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시오.’ 하며 요공대사를 놓아준다. 그러나 요공대사가 뒤따라와서 반격을 하자, 다시 치열한 대결 끝에 요공대사를 참살한다.
기력을 되찾은 금연자는 옥면호가 이끄는 도적떼를 물리치면서 장대인을 구해내고 호위병들과 함께 도적떼의 두목을 압송해가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방랑의 결투’는 스토리가 짜임새가 있고 탄탄하며 검술 장면들의 영상미도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객잔에서 금연자가 실력을 선보이는 모습과 막판에 나오는 두 고수들의 숨 막히는 대결은 이후의 무협영화에 공식처럼 자리하게 된다. 여주인공 정패패는 단숨에 스타덤에 올라 ‘검의 여왕’으로 불리며 홍콩무협영화 최초의 여성 협객으로 큰 인기를 누린다.
이 영화에서 정패패는 짧은 쌍검을 무기로 사용하는데, 오른손 칼은 바로 쥐고 왼손 칼은 뒤로 쥐고 춤을 추듯 우아하고 날렵하게 검술을 구사한다. 그녀는 발레와 무용으로 다져진 유연한 몸놀림으로 칼싸움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2년 후, 속편인 ‘금연자’(1968년)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심야의 결투’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는데, 감독이 호금전에서 장철로 바뀌면서 내용도 완전히 장철 스타일로 바뀐다. 주인공 왕우가 악당들을 순식간에 처참한 시체로 만들면서 화면을 온통 피로 물들이는 것이다. 타이틀 롤을 맡은 정패패는 자신이 주인공인줄 알았다가 시사회 때 아닌 것을 알고 엄청 실망했다고 한다.
호금전 감독은 이어서 나온 ‘용문객잔’(1967년)과 ‘협녀’(1971년)에서도 검술영화에 우아함과 장엄함을 가미한 안무적(按舞的) 미학을 추구하여 폭력적 미학을 추구하는 장철 감독과 함께 홍콩 쇼브라더스의 무협 붐을 이끌었다. ‘방랑의 결투’(1966년)에서 시작된 홍콩검술영화의 전성기는 초원 감독의 ‘유성호접검’(1976년)을 끝으로 서서히 막을 내린다. 1970년대 초반에 이소룡이 등장하고, 후반에는 성룡이 나타나면서 검술영화는 바야흐로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정패패는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수상한 ‘와호장룡’(2000년)에 악당인 ‘푸른 여우’로 출연하였다. ‘방랑의 결투’에서의 풋풋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중늙은이가 되어있었다. 그러더니 2024년 7월 17일 향년 78세로 영원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