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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율시인

청옥 문학 특집 <2026년 눈여겨볼 시인>/이채율

작성자나타샤|작성시간26.06.13|조회수30 목록 댓글 0

 

 

 

    계간 《청옥문학》 (2026년 여름호, 제66호) 

             특집 <2026년 눈여겨볼 시인>  

 

이채율 시인

 

 

 

 

1. 허들링

 

여긴 눈사람이 모여드는 눈밭이에요.

콩물 덩얼덩얼한 목소리 두부할매 곁으로

건어물아재 주억거리며 걸어오네요.

그 옆 코다리삼촌 안짱걸음으로 다가옵니다.

만푸장 국수아지매와 61번 노점상 엄마도 모여서요.

 

우린 겨울을 받아 안으며 어깨가 둥글어져요.

둥글게 둥글게 눈을 굴리며

시장 골목에서 눈사람이 되어요.

작은 어깰 더 작게 오므리고

시멘트 장바닥에 새벽처럼 쪼그려 앉아요.

 

한데 붙으려는 건 서로에게 녹아들려는 것이죠.

녹아드는 건 눈사람 으뜸가는 수완이잖아요.

 

극지란 시린 사람이 사는 오지여서

서로를 끌어안으면 가슴과 가슴은 따뜻해집니다.

 

졸린 눈을 털외투에 감추며

저마다 손난로 하나씩 호주머니에 넣고

신경통 쑤시던 간밤 안부를 난전으로 펼쳐놓지요.

 

그럴 때 우린

어쩌면 북극이 아닌 남극을 생각하죠.

 

빙하 좌판 골목에

드문드문 유빙이 떠내려오면

언 살에 박힌 젖은 입술도 잠시 따뜻해집니다.

 

싸락눈만 한 마수걸이 흥정에 바구니 속 비닐봉지

제비갈매기 부리처럼 부풀어 오르고

눈썹엔 흰 눈발이 달라붙어요.

 

물건값 후려치는 뜨내기 어깃장을

얼음 벼랑까지 내쫓기도 하지만

시도 때도 없는 마트 할인행사엔

하루치 추위가 서너 곱절로 세차게 몰려옵니다.

 

내일이 된다는 건 언 발 위에 언 발을 얹는 일입니다.

 

눈발은 아까보다 거세지고

손난로는 어느새 얼음처럼 차가워졌지만

어쩌겠어요, 파장될 때까진

어떡하든 견뎌내야 하는 아득한 설원인걸요.

 

조금씩 앉은 자리를 좁히는

눈사람들의 어깨너머로

오늘은 따뜻한 설국 하나 태어납니다.

 

 

2. 억새 투막집

 

섬 속의 섬

은빛 치마 입은 집 있습니다

 

감자알 같은 자식 마가목 같은 아내 맥박

옹송거리며 울타리 칩니다

 

수십만 평 척박한 애환

땅 냄새 나도록 일궈낸 농사꾼

사는 곳이지요

 

섬 안에 숨겨둔 보물섬 같은 울릉의 너른 품에서

바람과 눈 다독이며 산마늘 같은

알싸한 고립 버텨냈습니다

 

생의 우데기 처마까지 두르고

가슴 한켠에 분지 하나 고요히 들어앉힐 땐

깍새는 바닷빛 깃 다듬고 섬말나리는 별빛 쟁였지요

 

자늑자늑

일렁이는 억새꽃 하얀 윤슬 사이로

햇빛 둥지를 틀어주었기에

맨몸으로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오지에서 살려고

마음속 오지 하나 더 개척했고

투박하지만 울릉의 속살이라

그 살 내음에 위로받으며 안간힘 다해 살아왔습니다

 

참억새로 살아온 깍치댕이* 고단한 숨 고르는 안식처

 

뭇사람이 부지깽이나물처럼

별미라 불러주는 이름

억새 투막집입니다

 

알봉 바람 바스락댈 때마다

긴 치맛자락 따라 햇귀 다글다글합니다

 

* 깍치댕이 : 울릉도 나리 분지처럼 높고 평지에 살며 농사를 지던 개척민을 가리키는 방언, ‘높은 평지의 농사꾼’

 

 

3. 헤우

 

 까치놀 따라 모래미 바다 걷습니다 몽돌 위로 파도가 일렁이네요 밀려오고 밀려가는 참빗 물결 누이 발걸음입니다 갯가에선 물김 헹굼질 한창인데 겨울 햇살 널어놓은 김발 고향 집에 두고 온 서책 같습니다

 

 오누이는 한 나무서 나뉜 가지라지요 두물머리 떠난 누이와 쉽사리 헤어짐 어쩔 수 없었고요 어린 게처럼 오종종거리던 형제도 뿔뿔 흩어졌습니다 나주에서 마지막 보았던 약용은 축일학 앓았답니다 개펄 산죽 섶 꽂이 따라 얼금얼금 보고픔 아릿한데 갈매긴 쇠잔한 노을 물고 북녘으로 가뭇없습니다

 

 산그리메 넘어 한양 그립니다 두 하늘 섬김 격랑이지만 머잖아 칠흑의 갈기 잠재우고 천주 세상 오겠지요 십자고상 읊조리며 떠난 자형 베드로와 몇몇 나직하게 불러봅니다 하늘은 아주 공평해서 아무 발에나 다 맞는 버선과 같다지요** 끝끝내 사해四海가 내 형제인 세상 꿈꿉니다

 

 함치르르한 헤우 몇 톳 남쪽 바다 물비늘로 묶어 보냅니다 자산은 사흘 이어 싸락눈이고 해 질 녘엔 한기까지 더합니다 찬바람 갈마드니 갖옷 꼭 걸치시고 고뿔도 조심 하십시오 마른미역 두 꼭지도 딸려 보내니 생신에 챙겨 드세요 초겨울 제맛 든 초사리 김처럼 아득한 어둠 걷히고 모든 이 한결같은 날 반드시 옵니다 그날까지 강건하길 바랍니다

 

 갑자년 십일월 열여드레 손암 안드레아 씁니다

 

*헤우 ; ‘김’의 방언 (전남)

**조선 천주 교회사 신 태보 양말론 인용

 

4. 오늘을 끓이다

 

아랫도리가 살짝 찌그러진 주전자가

뭉근히 녹차 빛 천수경을

끓이고 있다

 

벼룩시장에서 사 온 골동품 속엔

 

수시로 대웅전을 참배하던 솔바람이며

그 바람이 휩쓸고 간 탁발승 발자국이며

길 잃은 뭇 중생 울음이 들어 있다

 

관음의 농도로 짙어가는 늙은 오후가

주름진 수만 겁 조각으로 끓이는

경전 한 모금

 

코뚜레 낀 하루가 이토록 뜨거운 건

 

내 목청도 한때 물녁에서 생울음으로

울대가 부어터진 적 있어서다

 

묵언이 아제아제 피어오르는 거실 한켠

백팔 망상을 굴리는 저물녘 등 뒤로

 

근처 모든 오늘이 온몸으로 열반한 찻물처럼

자작자작 내려앉는다

 

잡초와 구르는 돌에게도

차와 경전은 어디에서든 같이 한다는데

어제를 묵혀버리기 전에 내일을 마신다

 

창밖으론 멀리 시간의 뒤축이 날아가고

덜 여문 오늘이 시린 복사뼈를

자꾸만 당목으로 친다

 

 

 

5. 닭 파는 노인

 

새벽부터 닭 열댓 마리 경운기에 싣고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오일장 생선 좌판 비린내며 그릇가게 달그락거림이며 국밥집 선지 냄새 지천 사이로 가두리 그물치고 품에 걸 풀어놓는다 일찌감치 자리 잡은 가을 모종 장사꾼 옆에 슬그머니 눈칠 보며

 

  암탉 눈꺼풀 껌뻑껌뻑하고 또 다른 몇 마리 지나는 사람 발뒤꿈치 쪼아댄다 점심때까지 팔려나가는 놈없고 쌀장사 구 씨와 먹은 돼지국밥 새우젓 짰던지 물 자꾸 당기는데 자릴 뜨질 못한다 이틀 후 말복이라 장꾼만 많고 드문드문 객꾼 눈길조차 좀체 없어

 

  파장하면 실비집 들르지 말고 곧장 오라며 신신당부하던 할멈 잔소리 대낮에 닭 홰치듯 울린다 아들객지 공사장 가고 혼자 몸 푼 며느리 미역이며 고등어자반 복합비료도 사야 하는데 이놈 날 파리 왜 이리 날아드는지

 

  꼬박꼬박 조는 수탉 복달임하고 남은 달걀 한 꾸러미 멸치와 맞바꿔볼까 아직 남은 암탉과 오골계 또 어쩔까 맞은 편 채소 약초 두부 장사 파장 준비하는데 해는 뉘엿뉘엿 마무리하는 보따리로 잠기고 턱 괴고 쪼그려 애꿎은 돗대 담배만 잘근잘근

 

 

 

  *닭 파는 노인: 허림(許林)작품, 남농 기념관 소장

 

 

 

 

[작가의 말]

 

 지구 어느 한 모퉁이에서는 서로 이해 관계로 인해 시끄러운 3월이 지났다. 그들은 자기네 삶 보다 타인을 위한다는 핑계로 명분이 거창하다. 썸머스노우가 한창인 4월에 들어서도 잠잠하지는 않다. 나도 여럿 문제를 안고 한 계절을 관통해 가고 있다. 어찌 보면 12개월이나 되는 달 중에 쓸만한 계절은 없는 듯 하다. 하지만 난 작년부터 일상에서 직업 보다 시작 활동 영역 더 넓어져 세상 혼란함에서 좀 벗어난 듯 하다. 시인으로 산다는 건 분명 사람 사는 일과 무관하지않을 터인데 글자만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니 먹고사는 것과 연결짓지 못하는 문학인의 정체성 가치관 혼란이란 사회성 결여로 돌아온다. 

 문학을 한다는 건 결국 사람 연구인 것이다. 나에게서 주변 인물 탐구로 나아가는 글 쓰기. 사람을 쓰겠다고 결심하고부터 작은 것 하나 예사로 봐 지지 않는다. 이러 함이 일상을 예민하게 하였다. 순간 텅스텐을 씹는 입이 되거나 우라늄 같은

위험성도 지니고 나프타 같은 특수한 성향도 보였다. 더러 혼자 덩거마니 있기도 하는데 이번엔 2주를 거의 고립하였다. 혼자 된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깊은 동굴로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 하게 될 듯 해서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물멍 불멍이라 하지만 비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불가에선 좌선으로 선정에 들어 나를 비우는 멍 때리기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난 잠시 불가에 발을 들인 적도 있어 좌선을 곧잘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비워지지 않는 걸 비우기란 쉽지 않다. 공하고 허한 게 글자로 쓰긴 쉬워도 쉽지 않는 것이다. 시작도 마찬가지다. 채우고 덧씌우기 보다 빼고 덜 쓰기인데 펜만 잡으면 어찌나 할 말이 많은 지 쓴 걸 삭제하고 버리기란 어려운 결단이다. 말 많은 세상에 말을 안 할 수도 덜하기도 힘든데 말로 이어지는 시 쓰기를 선택해 글 쓰레기를 만드는 내가 온당할까? 내 시도 종량제 처리해야 할 게 많다. 

 얼굴 이름 나이 값 하고 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더러 sns 상에 검색 되는 시인 이름에 올라오니 원고 청탁도 들곤 한다. 그렇지만 그 무게감은 독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부담감 있어 긴장하게 한다. 이번에 청옥문학에서 5편을 청탁 해 와 아끼는 작품을 선정했다. 

 이웃과 맨살 부비며 함께 겨울을 이겨낸 '허들링', 울릉 나리 분지에 사는 깍치댕이들의 고단하고 억척스런 삶을 들여다 본 '억새 투막집',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천주교 신자인 자산어보 저자 정약전 삶과 천주교 사상을 피력한 나의 최대 애시 '헤우', 그리고 젊은 내 20대가 녹아든 불교적 정신 세계를 그린 '오늘을 끓이다', 묘사시 '닭 파는 노인'을 청옥문학회 회원에게 선보이기로 한다. 

 다소 서툴고 미흡하더라도 성장하려고 발돋음하는 시인의 정신세계 확장으로 보고 격려의 눈으로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가의 말을 가름한다. 오늘 산벚이 활짝 핀 국수봉 산 길을 걷자니 장끼가 퍼들껑 내 등을 밟고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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