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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율시인

허그 베어를 만나다/이채율

작성자나타샤|작성시간26.06.18|조회수9 목록 댓글 0

허그 베어를 만나다/이채율


걸을 때 보도블록 경계선은 밟지 않아요.
미끄러지지 않게 발끝으로 걷고
건너뛸 땐 돌멩이가 발부리에 채이기도 하죠.

길가에 주저앉기도 하고
차도와 인도가 나뉘지 않은 도로에선
왼발 오른발 가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평면 줄을 밟지 않는 건
매번 같은 식당 같은 자리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고
이웃과 눈인사를 섞지 않는 건
강아지는 강아지일 뿐이니까요.

그리움처럼 말랑한 시간이 따뜻해지면
우린 점점 굳어지는 간격을 따라
까맣게 잊힌 예절을 가슴에 새겨넣습니다.

담장에 오도카니 걸려있는 빨간 우편함
누군가 잘못 보낸 수십 통의 우편물을
읽을 사람이 없다면

발가락으로 지구본을 돌리며 순간 밟히는 대로
세계여행을 떠날 거예요.

태평양 어디에 사는 원주민의 안부를 물으며
분홍 장미를 안고 부유하는 우리에게
허그 베어를 만나는 소원을 들어줄 거예요.

국경 없는 바다 유목민 바자우족처럼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서 걸으면 수십 미터 물속도 환해집니다.

발볼이 헐렁해진 경사 탓에
내 곁을 지켜보는 비스듬한 오늘이
단 한 번의 호흡으로 유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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