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네 집 [ 개정판/양장 ]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이동
박완서 저 | 문학동네 | 2006년 08월 25일
책소개
박완서의 단편소설 전집 제6권. 1995년 1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을 수록했다. 작가 스스로 말했듯이 다른 전작들보다 한결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바로 보는 엄정함과 치열함이 살아 있는 작품집이다.
1999년 출간된 전집을 새로운 장정으로 다시 선보이는 개정판이다. 초판에는 빠져 있던 1998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왔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추가하여, 총 여섯 권으로 구성했다. 1971년 3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발표된 박완서의 단편소설들을 총망라했으며, 각각의 작품은 발표시기 순으로 나누어 실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탁월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가 매 작품마다 선보여온 이러한 결실은,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 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개정판 작가의 말
작가의 말
마른 꽃
환각의 나비
참을 수 없는 비밀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너무도 쓸쓸한 당신
그 여자네 집
꽃잎 속의 가시
공놀이하는 여자
J-1 비자
나의 웬수덩어리
해설 - 겉멋과 정욕 / 박혜경
작가 연보
단편소설 연보
박완서의 작품. 소설의 화자와 같은 마을에 살던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통해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시대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된 작품이다. 정확히 말하면 위안부 자체를 다뤘다기보다는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젊은 나이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야 했던 당시 여성들의 비극과 시대의 비극을 나타내고 있다.
줄거리
마을에 같이 살던 곱단이와 만득이는 서로 풋풋한 사랑을 이어갔으나, 만득이가 징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가고 곱단이는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산다는 어느 중년 남성과 결혼해서 마을을 떠나게 된다.
만득이는 해방 후 돌아와서 고향 마을의 다른 처녀인 순애와 결혼해서 살게 된다. 이후 남북 분단으로 인해 곱단이의 소식은 영영 알 길이 없게 된다. 실향민들의 모임에서 화자는 만득이 부부와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는데, 순애는 화자에게 "아직도 남편(만득)이 곱단이를 그리워한다"라고 말하며 질투의 감정을 나타낸다.어찌나 질투했는지 70대 노인으로 사망한 장례식장에 20대 모습의 영정사진을 놓으라고 남편이나 가족에게 유언한 듯 하다. 문제는 그 때문에 오히려 순애의 젊은 시절과 어린 시절 곱단이의 외모가 비교당하는 역효과가 나타나 버렸다.(...)
순애의 사망 이후 화자는 만득이와 만나서 그동안 만득이가 가졌던 감정을 듣게 된다. 의외로 만득이는 "곱단이에 대한 애정은 거의 사라졌고 이젠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다."라고 한다. 그보다는 곱단이와 헤어지게 된 계기인 위안부 문제와 남북 분단 문제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게 곱단이에 대한 애정으로 오해를 받게 되었다고. '(제국주의 범죄에 대해)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라며 눈물이 맺힌 만득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난다.
시인 김용택이 지은 시이자 해당 시가 수록된 시집의 이름이다. 박완서가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쓴 것이 바로 1번 항목인 소설.
소설 도입부에서 화자가 이 시를 낭송하는 것을 듣고 과거를 회상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사실, 이 시와 소설의 내용이나 주제는 전혀 다르다. 사실 소설에 실린 건 마지막 부분이고 원문은 현대시 치곤 꽤 길다.
다음은 원문이다. 전문을 인용한다.
<<그 여자네 집>>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
자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하. 면.......
<그 여자네 집>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