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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mabue, Maestà

작성자카타리나시에나|작성시간21.10.02|조회수160 목록 댓글 0

수세기 동안 성모 마리아는 신성한 존재였기 때문에 숭배되었다. 같은 주제를 다룬 이전 그림들과 비교할 때 치마부에의 성모는 삼차원적으로 따라서 사실적인 방식으로 묘사되었다. 얼굴에는 환하고 그늘진 부분이 있어서 사실적으로 보이고, 성모자는 보는 이를 똑바로 응시해 주의를 집중시킨다. 옥좌를 지탱하고 있는 천사들은 두 중심인물 뒤로 물러선 것처럼 보이는데 앞쪽의 천사들은 뒤쪽의 천사들보다 더 크고 서로 겹쳐서 서 있게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특징들 때문에 옥좌가 입체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밑에 예언자 네 명을 그려 넣었는데, 이들을 입체적으로 묘사한 조각적 표현 양식은 시대를 훨씬 앞선 것처럼 보인다. 또한 그림에 그려진 건축물의 잠재력을 처음으로 인식했고, 장소와 입체감을 위하여 배경에 건축물을 도입하였다.

"치마부에는 자기가 생각했던 회화의 영역을 장악했으며, 지금은 하늘의 별들을 잡고 있다."
- 치마부에의 묘비명

마에스타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그려졌다. 이 그림은 그 때문에 금빛으로 칠해진 뒤쪽 하늘과 함께 천상 세계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그분들’이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 열어놓은 창과도 같다.

치마부에, 두초, 조토
Comabue 1280, Duccio 1285, Giotto1380

옥좌의 마리아 1306-1310년 경
제자 조토와 비교되는 작품인데, 제자가 스승을 훨씬 넘어섰음을 느낄 수 있다. 치마부에는 선으로 조토는 명암과 면을 위주로 표현했다. 옷의 주름, 천사들의 모습, 얼굴 등 모든 부분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치마부에 이후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표현 양식이 비잔틴 미술을 대체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비잔틴 미술의 전통이 갖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비잔틴 미술의 전통이 사라진 것이라한다.
그리고 만일 치마부에의 영광이 그의 제자 조토의 위대성과 대조되지 않았다면 그의 명성은 더욱 커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치마부에가 있었기에, 르네상스의 시초도 그리고 조토도 빛을 발할 수 있었다.

Comabue 1280, Duccio 1285, Giotto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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