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Expolio
The Disrobing of Christ
평온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그의 이상화된 모습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폭력으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와 로마를 거쳐 1577년에 스페인의 고도 톨레도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은 본명 대신 엘 그레코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그가 톨레도로 가게 된 이유는 로마에서 루이스 데 카스티야(Luis de Castilla)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톨레도대성당의 수석사제였던 디에고 데 카스티야(Diego de Castilla, c.1510-1584)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다.
그가 중재하여 두 개의 중요한 작품을 의뢰했기에 엘 그레코가 톨레도로 가게 된 것이다. 그 중 한 작품이 톨레도대성당의 제의실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이다. 엘 그레코가 톨레도의 공식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도 1577년 7월 2일에 체결된 이 작품의 계약서이다. 톨레도에서 처음으로 주문을 받아 제작한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은 엘 그레코의 최고 명작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붉은 옷을 입고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며 하늘을 신비롭게 바라보며 정중앙에 서 있다. 그분의 오른손에는 밧줄이 묶여 있고, 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가 한 손으로 밧줄을 잡아당기며 다른 손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벗기려고 한다.
그런데 그 남자의 반대편에는 갑옷을 입은 사람이 관객을 보고 있다. 그는 관객들의 시선을 중앙에 있는 그리스도에게로 모으고 있다. 그는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을 보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코 15,39) 하고 고백한 백인대장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 군사였는데,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튄 피로 시력을 회복하고 나서 개종한 성 롱기누스와 동일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갑옷에는 선혈의 색이 비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피와 미사가 연관되고, 기적과 신앙의 회복이 연관된다는 것이 암시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복음서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옷 벗김을 당했다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다만 로마 군사들이 그리스도의 옷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는 기록만 있다.(요한 19,23-24)
엘 그레코는 성경의 전통을 무시하고 비잔틴 전통을 차용하여 이 내용을 이미지화시켰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옷 벗김을 당하는 장면이기보다는 그리스도가 체포당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리스도의 뒤쪽에는 창검을 든 군사들의 무리가 있고, 그리스도의 오른쪽에는 배신의 입맞춤을 시도하고 있는 유다의 음흉한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를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조롱했던 악한 강도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반대편에서 그를 바라보며 선하게 말을 건네는 사람을 십자가 위에서 회개한 착한 강도로도 볼 수 있다.
화면의 오른쪽 하단에 있는 사람은 허리를 굽혀 드릴로 십자가에 구멍을 내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가 달릴 십자가에 못을 쉽게 박으려고 구멍을 뚫고 있는 것이다.
성모와 다른 두 마리아는 근심의 눈길로 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가격을 책정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화가는 900두카트를 요구했고, 의뢰인들은 227투카트만을 주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뢰인들은 작품가격을 깎기 위해 억지에 가까운 투정을 부렸다. “그 어느 것도 그리스도보다 위에 위치할 수 없다. 하물며 창검을 든 로마 군사를 그리스도 위에 그리다니, 그리스도에게 모욕을 퍼붓고 있는 이교도들이 감히 어떻게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그려질 수 있단 말인가?
왼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근심에 찬 성모는 또 어떤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어떻게 천한 목수 따위에게 시선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최종 가격은 317두카트로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명성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고,
그 결과 최소한 17개의 복사본이 엘 그레코의 화실에서 제작된 후 전 세계로 흩어졌다.
이 작품은 양식적으로 비잔틴 이콘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매너리즘이 혼합된 양상을 보인다. 또한 특이한 주제를 새로운 도상과 독창적인 화면구성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중세 이래 그리스도의 수난은 성화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으나, 그리스도의 옷을 벗기는 장면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장면이었다.
엘 그레코는 이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도입한 도상과 구성은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도상은 옷을 온전히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다른 화가들의 도상전통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톨레도대성당의 제의실에 걸리기 위해 그려졌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도가 옷을 벗은 곳에서 사제가 다시 옷을 입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 그림을 제작한 것이다.
그는 사제가 입는 옷이 그리스도의 옷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런데 사제가 입는 옷이 순교를 상징하는 붉은 옷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부활의 영광을 얻은 미사의 의미를 말해 준다.
또한 이 작품은 톨레도라는 도시의 자부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은 톨레도대성당이 스페인 교회의 수장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를 넘어, 전 세계 이교도와 이단 세력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 선택된 ‘새로운 예루살렘’이라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작된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에서 예수의 옷이 예외적으로 강조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예수의 옷은 사제의 제의를 암시하면서 동시에 톨레도의 주보성인인 성 일데폰소가 성모로부터 받았다는 제의를 연상시키기에 효과적인 장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은 단순히 감상만을 위해 제작된 작품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의실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미사 집전을 준비하는 사제들이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있어 효과적인 시각적 도구였고, 사제가 입는 제의에 신적인 권위를 더하는 장치였으며, 나아가 톨레도의 종교적 자부심을 과시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림에 나타나는 전통적 주제와 도상으로부터의 일탈은 이처럼 장소의 기능과 역사적 맥락에 맞도록 재구성된 결과였던 것이다.
평온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그의 이상화된 모습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폭력으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보입니다. 배경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한 인물이 그리스도를 비난하듯 가리키고 있는 동안 다른 두 사람은 누가 그의 옷을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왼쪽에는 녹색 옷을 입은 남자가 그를 밧줄로 단단히 붙잡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그의 옷을 찢으려 하고 있습니다 . 오른쪽 아래에서는 노란색 옷을 입은 남자가 십자가 위로 몸을 굽혀 그리스도의 발에 못을 박을 구멍을 뚫고 있습니다. 구세주의 빛나는 얼굴은 그를 둘러싼 사형 집행자들의 거친 모습과 격렬하게 대조되어 그들의 움직임, 몸짓, 창으로 혼란스러운 인상을 줍니다.
그리스도는 밝은 붉은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엘 그레코는 바로 이 붉은색 튜닉 위에 자신의 예술에 담긴 풍부한 표현력을 집중시켰습니다. 신성한 수난을 환유적으로 상징하는 보라색 옷은 가볍게 주름 잡혀 펼쳐져 있으며, 전경에 있는 노란색과 파란색의 두 가지 색채만이 붉은색의 찬란한 찬가에 근접하는, 강렬한 개성을 드러냅니다.
왼쪽 전경에서 세 명의 마리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 장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그들이 이 시점에 있었다고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성당 당국은 그들의 존재에 반대했습니다. 그레코는 아마도 그리스도의 손목에 감긴 밧줄과 같은 다른 것들과 함께 이 세부 사항을 성 보나벤투라 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명상 에서 따왔을 것입니다 . 또한 고문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머리보다 높은 곳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은 대성당 위원들이 가격에 대한 중재 과정에서 언급했습니다.
엘 그레코는 전경에 수직적이고 촘촘하게 구도를 설계하면서 잔혹한 고문자들에 의한 그리스도의 억압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건장하고 키가 크며 고요한 그리스도의 모습은 마치 벽처럼 수직으로 세워진 구도의 중앙을 지배한다.
엘 그레코는 16세기 중후반 매너리즘 화가들 에게 흔히 나타나는 공간 소거법을 선택했다 . 해럴드 웨시 에 따르면 , 엘 그레코는 "아마도 머리들을 줄줄이 겹쳐 군중을 표현한 후기 비잔틴 회화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한다.
⬆️톨레도 ⬇️뮌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