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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lgrim ♡

올드 카이로 순례

작성자카타리나시에나|작성시간21.05.27|조회수26 목록 댓글 0

카이로의 발상지 올드 카이로
초기 그리스도교의 박해와 수난의 역사유물
- 콥트 박물관

뉴 카이로의 남부에 나일 강 따라 자리한 올드 카이로.
카이로의 발상지인 이곳에 로마시대의 성벽 유적, 폐허가 된 채 버려져 있는 카이로 발상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푸스타트,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교의 수난의 역사가 스며있는 4~5세기의 콥트교회들이 남아 있다.
일명 콥트 카이로Coptic Cairo라고도 불린다.
이집트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것은 기원 42년 무렵이었다.
복음 전도사이며 마가복음을 쓴 성 마가St.Mark가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로마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오면서 그리스도교를 이집트에 전파했다.
그리스도교가 일신교로서 새로운 종교인데도 이집트인들은 생소하게 느끼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부활 등 교리의 일부가 고대 이집트의 사생관과 비슷했고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가의 모양이 고대 이집트의 영생의 열쇠 앙크Ankh와 흡사했다.
또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 이시스 여신이 어린 호루스를 안고 있는 모습과 같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리스도교는 짧은 기간에 이집트 전역에 전파되었으며 그 중심지가 알렉산드리아였다.


⬆️아기 예수 이집트 피난의 모자이크 벽화(무알라카 교회).

⬆️성화 '원죄' 오른쪽 금단의 열매를 따먹기 전의 아담과 하와, 왼쪽은 따먹은 후 앞을 가린 아담과 하와(콥트 박물관).

성화 외에도 콥트 교회의 건축 장식·묘비·기둥머리·구리제품·유리제품·상아·금은 세공·콥트어로 쓴 성서의 양피지 사본·이콘성화·프레스코화·콥트직물·토기 따위가 전시되고 있다.
로마타워의 오른 쪽에 바빌론 성의 성벽을 이용하여 세운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무알라카 교회Muallaqa Church가 있다. 무알라카는 아랍어로 「매달다」라는 뜻이다. 바빌론 성의 남서부 성벽 위에 공중에 매달아 놓은 것처럼 교회가 서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공중교회Hanging Church라고도 불린다. 본당 성소의 입구 문 위에 성모마리아, 천사 가브리엘, 베드로, 세례 요한, 천사 미카엘, 사도 바울의 성화가 있다. 그밖에 이 교회에 있던 100여점의 성화는 현재 콥트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요셉-마리아, 아기 예수 데리고 피난 생활 3년반

무알라카 교회의 오른 쪽 지하계단을 내려가 좁은 골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성 세르기우스 교회St. Sergius Church가 나온다. 303년, 로마 황제 맥시밀리안 때 시리아의 알라사파에서 순교한 세르기우스와 바쿠스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다. 이 교회가 유명한 것은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난 왔을 때 한 달 동안 머물었던 동굴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아기예수 피난교회」라고도 불린다. 유대국 왕 헤롯Herod: B.C.73~4(유대왕국의 왕으로 예루살렘 신전 재건. 예수의 탄생을 두려워하여 베들레헴의 많은 유아를 학살했음)의 박해를 피해 요셉과 성모 마리아와 함께 아기예수는 팔레스타인에서 당나귀를 타고 이집트로 피난 와서 3년 반 가까이 있었다. 성경 신약의 마태복음 2장 13~15절에 성가족의 이집트 피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교회는 좁다란 골목에 교회 입구가 반 지하로 되어 있어 겉으로 보아서는 교회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은 생각보다 넓다. 중앙에 제단이 있고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대리석 기둥이 좌우로 6개씩 두 줄로 서 있다. 모두 흰 대리석 기둥인데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은전 30닢에 예수를 판 유다Judas를 상징하는 기둥만은 붉은 대리석 기둥이다.
본당에 예수의 탄생, 기적, 세례, 부활을 그린 성화가 있다. 아기 예수가 숨었던 지하 동굴은 지하수로 반쯤 잠겨있어 들어갈 수 없다. 매년 6월 1일 아기 예수를 기리는 축제가 이 교회에서 열린다.
지금은 콥트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이집트의 그리스도 교도를 부르는 말 '콥트'

이슬람 군이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 이집트인들은 대부분이 그리스도교도였다.
아랍인들은 그들을 킵트Qibt라고 불렀다. 이것이 영어로 콥트Copts( 콥트교도라는 뜻)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집트가 이슬람화 되면서 대부분의 콥트교도들은 무슬림으로 개종했다.
콥트들에게 부과한 이슬람 왕조의 중과세가 그들을 개종하게 만들었다.
콥트들 역시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될 때까지 심한 박해를 받았다.
특히 4세기 초,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많은 콥트들이 학살되었다. 콥트교회에서는 이 아픔을 후세까지 길이 알리기 위해 황제가 즉위한 284년을 「콥트 순교의 해」로 정했다. 이 해를 원년으로 한 콥트교회 독자의 교력敎曆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 뒤 5세기 중반, 터키의 칼케돈Chalcedon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콥트교회의 단성론單性論이 이단으로 몰려 파문을 당하면서 콥트들은 더 심한 박해를 받았다.
(단성론: 예수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속성인 인성과 신으로서의 속성인 신성의 두 가지 성격이 있다는 것이 양성론. 곧 예수는 육체를 가진 사람인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로서 신이라는 것. 반면에 콥트 교회처럼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만 있다고 하는 것이 단성론. 곧 예수는 육체를 가졌지만, 그 본질은 신이라는 것임)

이슬람-로마 군의 격전지에 세운 콥트박물관

올드 카이로에는 지하철을 이용하면 쉽게 갈 수 있다.
카이로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헬만-마그로선의 지하철 마리 기르기스Mari Girgis역에서 내리면 그 일대가 올드 카이로이다. 역 바로 앞에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시대에 세운 성곽도시 바빌론 성의 성문이었던 로마타워 유적이 남아 있다. 이 바빌론 성은 이슬람 군이 카이로에 침공했을 때 로마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나일 강의 물줄기가 지금처럼 바뀌기 전에는 이 탑에서 나일 강에 오가는 배를 감시할 수 있었다.
로마타워 바로 옆에 1908년에 마르코스 시마이카 파샤가 설립하여 개관한 콥트 박물관Coptic Museum이 있다. 세계 최대의 콥트 예술품 1만 6천 점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초기 그리스도교의 박해와 수난의 역사를 보여주는 많은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그리스도 교도라면 꼭 봐야할 박물관이다. 특히 이 박물관에 있는 예수나 성서를 주제로 한 콥트 미술의 프레스코화들이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파이윰에서 출토된 성화 <원죄原罪>이다.
2층 9호실에 걸려 있는 이 성화는 똑같은 모습의 남녀 두 쌍이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다.
이것은 뱀의 유혹으로 금단의 지혜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열매를 따먹기 전의 아담과 하와는 앞을 가리지 않고 있으나 따먹은 후에는 나무 잎으로 앞을 가리고 있는 것이 매우 애교스럽다. 아담과 하와의 낙원 추방은 중세 유럽의 화가들이 많이 그린 테마였다. 그들의 그림에는 신과의 약속을 깬 것에 대한 아담과 하와의 후회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밖에 <비너스 탄생>, <그리스도 승천>의 성화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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