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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마태 13,24-30 가라지의 비유

작성자카타리나시에나|작성시간21.07.08|조회수165 목록 댓글 0

가라지의 비유
24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 선인과 죄인이 공존하는 교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두 번째 비유설교로서 하늘나라를 밭에 뿌린 좋은 씨에 비유한 내용이다. 앞서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연결시켜 본다면 좋은 복음의 씨앗이 좋은 토양에 뿌려진 것과 같은 경우이다. 그러므로 그 씨앗이 싹을 피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튼튼히 하여 잎사귀와 꽃을 피우고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을 일만 남았다.

그런데 문제는 낮에 복음선포자들이 좋은 복음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난 뒤, 어두운 밤을 틈타 원수들이 와서 그 좋은 밀밭에 ‘가라지’를 뿌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비유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밭에 좋은 씨를 뿌린 것에 비길 수 있는 데, 밤새 원수가 와서 밀밭에 가라지를 뿌렸음으로 이는 이중적 비유인 셈이다. 이 비유는 오직 마태오복음에만 있다. 마르코복음은 같은 대목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4,26-29)를 전해 준다.

비유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비유가 왜 양성되었는지를 물어 볼 필요가 있다. 즉 비유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마 마르코복음 공동체에서는 이런 의문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도래와 그분의 말씀과 행적으로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가 왜 이렇게 더디게 성장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에 비하여 마태오복음 공동체에서는 ‘좋은 씨를 뿌려 좋은 열매만 자라나야 할 하느님의 밭에 왜 가라지가 함께 자라나는가?’ 라는 의문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곧 파종과 수확이라는 시간 속에 아무도 모르게 함께 자라난 가라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따라서 마태오복음의 ‘밀과 가라지의 비유’나 마르코복음의 ‘스스로 자라나는 씨의 비유’는 당시의 교회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어버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결국 마르코복음은 하느님의 나라가 곧 완성되리라는 지나치게 성급한 종말론적 관념을 수정하여 바로잡아 주려했고, 마태오복음은 교회가 선인(善人)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죄인(罪人)과 공존(共存)하는 공동체임을 가르쳐야 했던 것이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선인과 죄인이 함께 뒤섞여 사는 교회의 실태에 매우 잘 어울리는 비유이다. 교회는 거룩하지만 교회의 구성원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교회가 거룩한 이유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구성원은 아무도 스스로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교회에 관한 교의신학은 세 가지의 교회를 말한다. ① 지상의 교회, 또는 지상여정의 교회, ② 천상의 교회, 또는 개선교회, 천상성인들의 교회, ③ 정화의 교회, 또는 단련 받는 교회, 연옥의 교회가 그것이다.(교회헌장 7장 참조)
종말에 이르러 완성되기 전까지 교회는 이 세 가지 교회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상태적인 관점에서 보면 각각의 교회는 독립적이지만 신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교회는 하나이고 서로 밀접하게 교류한다.

교회 안에는 늘 죄인들을 선인들로부터 가려내어 단죄하고 격리시키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교회가 선인뿐만 아니라 죄인들과 함께 성장하여 간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우리가 어제 복음을 통하여 배운 바가 바로 그것이다. 단 한번 복음의 씨앗이 어디에 뿌려지느냐는 것으로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동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찾아온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누구나 공평하게 기회를 가진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이런 기회는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으며, 앗아갈 수도 없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섣부른 선별작업에서 선인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29절) 밀과 가라지를 선별하는 작업은 그렇다하더라도, 우리 사람들 중에 누가 있어 선인과 죄인을 정확히 구별하겠는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선인과 죄인의 구별은 절대적으로 하느님의 종말심판에 맡겨져 있다. 그때까지의 시간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요, 인내와 관용의 시간이다.

교회는 그저 그 품에 죄인들을 품고 있으므로 거룩하면서도 항상 정화(淨化)되어야 하겠기에 끊임없이 회개(悔改)와 쇄신(刷新)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교회헌장 8항)

- 박상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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