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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마태 11,2-11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의 갈등

작성자카타리나 S.|작성시간21.11.12|조회수322 목록 댓글 0

(마태 11,2-11)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답변하시다

2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시다

7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루카 3,10-18)
10군중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12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스승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자,
13요한은 그들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하고 일렀다.
14군사들도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렀다.
15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7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18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의 갈등
▫️▫️▫️▫️▫️▫️박상대 마르코 신부

대림환의 세 번째 촛불이 환히 타올랐다. 대림환에 꽂혀있는 분홍색 초에 불을 붙인 것이다. 대림환을 자세히 살펴보면 네 개의 초 가운데 두 개는 보라색, 하나는 분홍색, 나머지 하나는 흰색이다.
오늘 대림 제3주일에 기쁨을 상징하는 분홍색 초를 켠 이유는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대림 제3주일을 “가우데떼”(Gaudete, 기뻐하여라) 주일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오늘 미사의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주님과 함께 언제나 기뻐하여라.”(필립4,4-5)라는 입당송에서 따온 것으로서 성탄의 기쁨을 미리 맛보자는 전례적 의도와 배려에서 기인한다. 사제는 오늘 자주색 제의 대신에 장미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가우데떼’의 전례적 의미를 살릴 수도 있다.

오늘 복음은 기뻐하라는 ‘가우데떼 주일’의 전례적 의미와는 달리 다소 무겁게 시작한다. 시커먼 벽에 촘촘한 창살과 어둡고 칙칙한 공간, 사해 동쪽 마캐루스 요새의 감옥에 세례자 요한이 갇혀있다.(플라비우스, 유대고사18,116-119)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 자기 삶의 모든 것을 광야에 쏟아 부은 사람, 오직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태어난 사람, 세례자 요한이 이제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아무도 그를 구해주지 않고, 하늘나라가 도래한 표징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감옥은 광야에서만큼 생각하기에 좋은 곳이다. 감옥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꿈꾸며, 질문을 던지고 의문도 가질 수 있는 곳이다.메시아를 위한 선구자로서 그 길을 닦고 밝히며, 회개의 설교와 세례를 베풀던 일이 다 무엇인가? 감옥이라는 거동의 제한을 받는 공간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시켜 예수께 반신반의(半信半疑)의 질문을 던진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3절) 우리는 선구자의 의심과 의문을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 또한 삶의 기로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또 선택한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의문을 던지며 의심을 품는가? 이것일까, 아니면 저것일까 하는 갈등 말이다.

세례자 요한만큼 그 제자들도 의심과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3절) 이 질문은 우선 세례자 요한의 질문이었고, 동시에 그 제자들의 질문이며,나아가 이스라엘 전체의 질문이며, 오늘날 현대인의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이 이렀다면 대답은 통상 “맞다-아니다”라는 둘 중 하나다. 그러나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그런 모양이 아니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4절)는 것이다. 그들이 예수에게서 본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자기들 눈으로 마귀 들린 사람들이 멀쩡해지고 소경이 보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이 전하여지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이사29,18; 36,5-6; 61,1 참조) 예수님의 참된 대답은 곧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6절)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본 대로 생각하고, 배운 대로 행동한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각자 자신의 몫이다. 도래한 메시아에 대한 불신과 믿음은 강요되거나 한 마디의 대답 속에 들어 있지 않다. 각자 스스로가 결단해야 함이다.

한국교회는1984년부터 오늘 대림 제3주일을 자선주일로 정하여 모든 신자들이 자신의 가진 바를 나눔으로써 구세주의 탄생을 준비하고 또한 이로써 기쁨의 성탄이 되기를 촉구한다. 우리는 자신의 전 생애와 마지막 목숨까지도 우리 인간에게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성체성사의 신비를 깊이 깨닫고, 가난한 이를 위해 서로 나누자는 자선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요즘 조국의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려운 이유가 다 다르다. 손바닥만한 밥그릇 채우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고, 밥솥만한 밥그릇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불법과 편법은 용납될 수 없다. 속임수와 부정은 가난한 서민들을 더 어렵게 만들뿐 아니라 서민의 희망을 앗아가는 죄악이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제발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의 가진 것을 나누자. 없다면 빈손으로라도 악수를 청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며, 따뜻한 삶의 온정과 격려를 나누도록 하자.




(마태 11,2-11)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답변하시다

2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시다

7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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